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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97화 (297/432)

297화 - 제55장. 음마(陰魔) 그리고 월하사신(月下死神) (2)

15년간 절치부심했다.

비밀결사체 형식으로 자객단(刺客團)을 창설하기로 하고 열 명의 제자를 거두었다. 다섯은 살문에서부터 그들 부부를 존경해서 따라온 자들이었고, 다섯은 새로 들였다. 그들의 실력이 성숙해지자 모두 하산시킨 후, 하오문과 비혈단에 가입시켰다. 그들은 뛰어난 실력으로 일찍이 간부가 되었고 살문과 관련된 정보를 서파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파파는 그렇게 음지에서 살문의 움직임을 좇았고, 그들이 천마신교에 붙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천무방이 큰 전쟁을 대비해 조직을 정비하여 인재를 모은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그렇게 천무방에 가입하였다.

천무방이라면 살문에 직접 닿을 수 있고 또 그만한 힘을 빌릴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이 자리에 이르렀다.

서파파가 증오로 물들인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비릿한 조소를 짓던 입술을 떼었다.

“민중의 혼란을 끌어낼 수 없었을 때, 네놈들은 곧바로 도망쳤어야 했다. 이 백무살막을 전개한 순간, 너희는 내 제자들의 놀잇감이 되는 걸 자처한 것이야. 자신을 가두기 위한 포위망을 스스로 구축하는 꼴을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자, 비겁자여! 곧 넘을 황천길, 어디 근사하게 발악해보아라!”

서파파가 순간 돌진하여 은자검으로 기효산을 찔렀다. 정말 쾌속한 솜씨여서 금방이라도 목을 꿰뚫을 것 같았지만, 그녀의 비하와 다르게 기효산의 무공이 약하지 않아 구유무영보가 남긴 잔상만 꿰뚫렸다.

다만 기효산도 기민했던 회피와 달리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고 있었다.

‘저 육시랄 년을 찢어 죽이고 싶은데……!’

기효산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경계했다. 그렇게 마음 따라가다간 정말 여기서 뼈를 묻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시를 내린 건 박전이었다.

“이언종을 죽여라!”

박전의 야심은 기효산의 그것과 결이 달라서 살문 살수의 자존심에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아무리 살문이 불리한 상황이어도 목표가 눈앞에 있는 이상, 거기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으며 그것이 통상의 사상과도 일치해 있었다.

백무살막은 여전한데 거길 빠져나온 살수들이 일제히 이언종을 노리고 움직임을 갖추자 기효산도 일단은 거기에 따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혁성이 박전을 바라보고 에마가 다른 살수들을 보는 그 뒤에서 여희선이 옥적을 입에 물었다.

옥적경파공.

난약파 음공의 조예는 음계만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가린 채 휘둘러도 옥적 가까이 기류를 조절하여 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입에 물면 하단전의 호흡을 제대로 전할 수 있어서 훨씬 더 집약적이고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부우…….

옥적경파공 연임주방(演林奏綁)

음공의 파장이 퍼지면서 신경이 쓰이도록 붙들어 매고,

우웅우웅……!

요응혼시(搖應混時).

일시 흔드는 음이 시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니 백무살막 안으로 들어와 있던 살수들 모두가 저마다 움직임이 주춤거리거나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기효산과 박전 같은 신살수들이 경각심을 바짝 세우고 흑살수도 두어 명이 급히 내공으로 청각을 닫아 영향을 덜 받았지만, 나머지는 크게 몸이 흔들렸다.

푸웅!

추태단파(追太斷破).

순간적으로 음이 꺾인다 싶더니 일부 살수들이 입으로 적지 않은 피를 토해내며 크게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로 에마가 뛰어들었다.

휘리릭-!

수앵신검류(秀櫻迅劍流) 상앵미연(翔櫻迷燕).

벚꽃의 꽃잎을 피워내는 에마의 검기(劍氣)가 춤을 추듯 휘두르는 검기(劍技)에 맞춰 날갯짓처럼 연달아 펼쳐졌다. 신속의 검술은 내부적 충격에 살수들이 멈칫하는 그 찰나를 파고드니 벚꽃잎들을 모는 검영이 여지없이 목을 훑고 급소를 베었다.

이혁성도 검을 뽑고 박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위협적인 돌격에 박전이 몸을 뒤로 띄웠고 쌍렴도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장막을 쳤다. 그러자 이혁성은 되려 방향을 틀어 여희선의 음공을 버텨냈던 흑살수들을 덮쳤다.

비뢰검이라는 별호답게 그의 검격은 정말로 섬전처럼 빨랐다.

살문 내에서 인정받는 흑살수들의 높은 무공 수준으로도 제대로 반응하고 대처할 수 없었는지 여지없이 피가 튀며 숨통을 끊어놓았다.

‘다 죽는다……!’

박전 자신과 기효산을 제외한 백무살막을 벗어난 살수들이 순식간에 명을 달리했다.

이언종을 둘러싼 이혁성, 여희선, 에마 세 사람이 구축한 방진은 도저히 뚫을 수 있을 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박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해산(解散)!”

이대로 목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개죽음이라는 생각이 바로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박전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르자 백무살막 속에서도 살아남은 살수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살계 구성부터 불안정했던 상황에서 다들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발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황검당도 만만치 않았다.

백무살막 속에선 분명 한 치 앞도 방어하기 힘들었지만,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서파파의 자객단이 실력을 드러내면서 살수들을 강하게 제어했다. 그들에게도 백무살막은 편안한 환경이었고 하나하나가 흑살수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춰서 판세가 뒤엎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수들이 백무살막을 벗어나 도망치자 잠깐 수세에 몰렸던 검객들이 다시 운신의 기회를 얻었다. 자객단도 즉각 반응하여 신호를 보내니 황검당 전원 연무 바깥으로 뛰쳐나가며 살수들의 뒤를 쫓았다.

그 가운데서 이혁성과 서파파가 제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서파파는 구유무영보를 펼치면서 기효산의 뒤를 악착같이 쫓았고 이혁성은 즉각 박전의 등을 노리고 검을 던졌다.

비뢰어검술.

쐐액!

예리한 검기를 품고 쏘아져 나가는 이혁성의 장검에 박전이 가까스로 반응했지만, 검은 직선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찌익-!

‘큿!’

어깻죽지의 바짝 조여 맨 가죽덧옷이 찢기며 통증과 함께 피가 튀었다. 쌍렴도라는 기병을 휘둘러 만드는 칼의 장막은 그 궤적의 기이함이 생소하게 다가올 텐데도 이혁성은 자신의 통찰력으로써 검을 장막의 틈바구니로 집어넣는다.

취리리리-!

“끄아아아!”

집요한 어검술이 그리는 검광의 고리들 속에 갇힌 박전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흩뿌려지는 선혈이 마치 혈무처럼 흩뿌려질 정도이니 그 움직임마저 느려진다.

푸욱!

“끅……!”

오래 끌 생각도 없었는지 이혁성의 검이 자비 없이 심장을 꿰뚫는다. 동시에 검의 궤적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쏘아 보내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서파파와 뒤엉켜 싸우던 기효산의 발목을 관통한다.

콰득!

“으아악!”

기효산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자 다소 수세에 몰려 있던 서파파도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이혁성이 검을 거두면서 다가오자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당주.”

“혹시 제 개입이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사과하겠소.”

“흘흘흘! 내가 죽어도 당주가 이 녀석을 처치하는 건 무리가 없겠지만, 그러면 무슨 소용이겠소? 이놈들이 죽는 걸 살아서 봐야 의미가 있는 것이제.”

서파파가 기효산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씨발!”

기효산이 흑도를 휘두르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한쪽 발목이 박살이나 땅바닥에서 등을 뗄 수 없는 기효산의 몸부림이란 서파파에겐 그저 갓난아기의 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푹!

“끄악!”

그녀의 은자검이 손목을 관통하자 기효산은 손에서 흑도마저 놓치게 되었다. 푹푹푹! 섬뜩한 소리가 연달아 퍼질 때마다 그의 사지 관절부에 작은 구멍이 하나씩 늘어났다.

“끄으윽! 죽여, 이 악독한 년아!”

“푸흘흘! 곱게 죽여서야 내 남편의 원통함을 풀 수 있겠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죽는 날은 오늘이 아닐 것이니, 널 이 나라 황제에게 바쳐 역모죄를 처분하게 할 것이다.”

“아, 안 돼! 죽여, 이 씨팔……! 으악!”

역모죄란 말에 기효산이 겁에 질려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서파파의 은자검이 움직이더니 그대로 손목과 발목의 힘줄을 도려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기효산의 붉게 충혈된 눈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언젠가 젊었을 적 어금니 안쪽에 심어두었었던 독단(毒丹)이 생각났다. 그는 신살수의 자리를 꿰찼을 때, 그 지위의 자율권에 따라 독단을 제거하였었다. 그것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그만큼 역모죄로 다스려질 중형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살수들이 황검당의 검객들에게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그들의 시점에서 아직 사금령과 월왕부쪽에 있을 몇 명의 살수들이 남아있겠지만, 실상 살문은 멸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주변을 에워쌌던 연무가 걷히고 위협도 사라지자 이언종은 에마, 여희선의 호위를 받으며 이혁성 근처로 다가왔다.

“이 당주, 정말 고생 많으셨소. 이제 위기를 넘긴 거로 봐도 되겠소?”

“다른 곳보다 황궁에 살문주인 월하사신 사금령이 남아있습니다. 진도건이 황제를 무사히 지켜내고 그자를 꺾길 바라야겠죠.”

이혁성은 지금의 진도건이 사금령에게 질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변수는 사금령이 마교에서 무엇을 받았느냐는 거겠지.’

* * * *

광안전의 문은 모두 닫힌 채로 삼면에 있었다. 정면은 주로 대신들이 이용한다면 측면 중 좌측은 황제가 오가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외에는 벽을 지탱하는 기둥을 따라 문이 있었으나 물리적으로 잠겨있어서 강제로 부수지 않는 한 바깥에선 열 방법이 없었다.

사방이 닫힌 광안전 내부에서 이인효는 용상에 앉아 숨죽인 채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고 진도건은 중앙에 가만히 선 채로 눈을 감은 채 기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아 촛불조차 미동도 없는 무거운 침묵.

그 침묵 속으로 멀리서부터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란과 굉음 등이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덜컥!

그런 적막 속의 부스럼 같은 작은 소음에 서서히 적응될 때쯤에 갑자기 정문 문이 덜컥 열린 건 정말 갑작스러웠다.

바깥에선 어떤 인기척도,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채 문만 열려버린 것이었다.

진도건도 그때 눈을 떴다.

휘이이잉-!

덜컹덜컹!

전내로 돌풍이 거칠게 불어닥치더니 잠기지 않은 문들까지 빗장이 부러져가며 모두 열려버렸다. 촛불이 일제히 꺼졌고 대신 바깥의 미약한 달빛과 광안전 가까이에서 밝히고 있는 화로 때문인지 어스름한 저녁의 어둠이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공기도 얼어붙기 시작하니 광안전 안 곳곳에서 조금씩 살얼음이 끼고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자신의 입김이 보여지는 한기에 등골은 오싹해지고 몸은 움츠러든다.

‘온다……! 월하사신이 온다……!’

이인효가 두려움이 엄습해오자 용상에 앉은 채로 부들부들 떨 때, 진도건은 군자검 자루를 쥔 채 광안전 중심에서 기감을 최대한 확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문이 덜컥 열릴 때.

아니, 그보다 좀 더 전에 불탑 위에 있는 한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잠깐 그 기척을 놓쳤는데 이내 광안전 가까이에서 다시 한번 기척을 포착하여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유령같군.’

대단히 잘 갈무리된 수준은 확실히 그 월하사신이란 명성처럼 소리소문없이 접근하여 목숨을 취할 수 있을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정말 유령처럼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 있어서 진도건은 그를 잡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란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힐 뻔했다.

츠자자자……!

대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이 힘은 달 뜬 밤을 지배하고픈 그의 욕망을 담은 마기에 의한 것.

흩뿌려진 한기와 그로 인해 얼어붙은 공기로 뿌예진 공간 안에서 상대를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동시에 공간 전체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니 언제 어디서부터 나타날지 몰랐다.

이 현상이 갖는 목적성이었으나 오직 진도건에게은 허용되지 않는다.

팟!

진도건의 신형이 신호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때마침 그를 보던 이인효의 망막에 찰나 간 자신에게 쇄도하며 발검하는 진도건의 모습이 잡혔다.

반응조차 할 수 없다.

카앙!

흑검의 그림자가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 이인효의 머리 위를 지나치려는 순간, 불꽃이 튀면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흑도의 윤곽이 어둠 속에서 드러냈다.

그 사이 진도건은 이미 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이인효를 지나 용상을 밟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사금령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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