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285화 (285/432)

285화 - 제52장. 제국충무왕 이언종 (5)

단번에 느껴지는 마교의 존재들.

그 숫자가 많진 않지만, 진도건의 광대한 기감 아래 개개인들의 크고 작은 기척들이 군데군데에서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지는 않습니다만……, 숨어있는 듯하군요.”

“살문인가?”

“그렇게 예상됩니다.”

“마교에 가입하면서 마공을 받아들였나 보군.”

군을 의도대로 움직이고자 한다면 거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소수의 몇몇만 손아귀에 둘 수 있으면 되므로 살문만 이곳에 있다는 상황이 이해되었다. 또 사천 무림 전쟁이나 감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전쟁을 고려해본다면 천마신교가 구주마종의 본 전력을 여기까지 분산시킬 가능성도 적었다. 천마신교도 효율적인 선택을 한 셈이었다.

“일단 기를 갈무리하고서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파악하시죠.”

“그러지.”

진도건과 안효철은 각자 내공을 거의 완벽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구주마종의 신마나 천하오절 급의 무인이 정말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 직접 주시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존재를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사람의 행색뿐이었으나 여기서 진도건의 감각이 절묘하게 발휘되었다.

살문 살수들의 존재를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이나 동선을 피해서 골목 등으로 우회하는 등 시야에 들지 않고 피해 다닐 수 있던 것이다.

진도건과 안효철은 거대한 흥경의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지리적인 정보는 두 시진이 되지 않아 시가지 중심으로는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닌 후, 두 사람이 다음 행동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시 멈춘 곳은 월왕부(越王府)를 바라볼 수 있는 어느 골목의 그늘 속이었다.

“인원은?”

“살수는 넷. 그중 하나의 기가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성혈신마로 생각되는 자가 있군요. 대단히 깊이 있게 정제되어있고 상당한 내력을 갖춘 자입니다. 과연…… 신마들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수준입니다.”

“들키지 않고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겠어.”

두 사람은 이미 흥경에서 황궁을 제외한 나머지를 돌아다니면서 이인우가 황제를 알현한 뒤에 월왕부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황궁과 월왕부 중간에서 이인우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이언종으로부터 그의 부인과 한 살배기 아기가 살문 수중에 있을 가능성을 들어버렸으니 사실상 그 계산은 악수였다.

“저희 의도대로 기회가 만들어져야 할 겁니다. 황검당이 제때 도착하여 이언종을 보호할 수 있게 되면 그가 상소를 올리기 위해 흥경으로 올라오겠지요. 그럼 살문도 그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 들 겁니다. 그때가 아마 월왕부에 있는 살수들의 숫자도 줄어드는 때일 겁니다.”

“그 전에 황제는 만나야겠지?”

“그래야죠. 다만 아직 월하사신으로 특정할 만한 기척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살문의 수장인 만큼 마공을 이었다면 그에 어울리는 기척이 느껴지리라 생각했는데…….”

“신살수는?”

“당장에 특정 지을 만한 수준은 두 명. 하나는 지금 월왕부에 있고, 다른 하나는 흥경 외곽지역에 있는 추밀원에 있었습니다.”

“그럼 월하사신은 벌써 황궁에 있을 가능성도 있겠어.”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안효철이 예상하는 말에 진도건은 잠시 침묵하다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사실 서하 황궁의 구역은 상당히 넓었다. 진도건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넓은 구역을 관리하는 집단을 떠올린다면 두 곳이 있었으니 바로 창천맹과 천무방이었다. 그러나 역시 일국의 황궁에 비할 만한 너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으로 진도건이 마기를 감지하는 기감은 황궁 외곽으로만 따라 돌아도 그 내부를 전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월왕부에 있는 성혈신마로 추정되는 갈무리된 기척도 아주 작지만, 그 농밀한 마기의 존재감을 느낀 것인데 그런 수준은커녕 평범한 기척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진도건이 작게 중얼거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단 파악은 해두었으니 먼저 황제를 만나러…….”

“잠깐.”

안효철의 말을 진도건이 끊었다.

그의 시선이 월왕부에 있었는데 안효철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왜 말을 끊었는지 알게 되었다.

월왕부 대문이 열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그중 붉은색 관복을 입은 중년인이 그 용모나 풍채 같은 것이 도드라져 보였다.

‘월왕 이인우.’

이미 주변을 탐색하면서 황궁에 출입하는 관인들 몇몇을 보았다. 그러나 방금 월왕부에서 나온 자의 관복은 다른 관인들처럼 붉은 일색이 아니라 황색 수실로 둥그런 꽃 문양 같은 것들이 규칙적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소매 등도 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월왕 이인우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복색이었다.

그는 이제 막 약관 즈음 되어 보이는 젊은 관리 한 명이 월왕부를 나서는 걸 배웅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이인우의 표정은 확실히 그늘진 듯해 보였지만, 적어도 그 젊은 관리를 바라보는 동안에는 신뢰의 감정이 담겨있어 보였다.

진도건과 안효철은 본능적으로 이인우가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청각을 예민하게 했다. 다행히 한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대화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샤 감푸, 우리 안전(安全)이 병세가 회복된다면 모두 자네 수완 덕일세.”

“아닙니다, 전하. 소인이야말로 전하의 배려로 관직을 얻어 봉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배려는 무슨.”

“보양에 쓸 약재도 최상품으로 구해볼 수 있도록 알아보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게. 날 돕는다고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면 중서령(中書令)이 날 타박할 것이야.”

“소인이 처신을 잘하여 전하께서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쓰겠사옵니다.”

“그래, 조심히 가시게.”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진도건과 안효철의 눈빛이 빛났다.

제갈무문이 얘기했었던 ‘월왕 이인우와 가까운 중서성의 젊은 관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맞는 것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진도건과 안효철이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낮게 속삭였다.

곧 아샤 감푸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진도건과 안효철도 그늘 속으로 숨어서 골목을 돌았다.

진도건은 아샤 감푸의 기척에 대한 인지력을 높이면서 살수들의 기척을 살폈다. 굳이 시야에 두지 않더라도 진도건의 기감은 그들의 기척을 정확하게 느끼고 분별해내었기 때문에 추적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아샤 감푸는 중서성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진도건과 안효철은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아샤 감푸가 중간에 중서성이 아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자 조금 놀랐다.

‘살수들이 감시하는 위치를 알고 있어?’

진도건이 좀 더 접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안효철도 바짝 붙어서 뒤따랐다.

조금 더 쫓자 아샤 감푸가 한 건물에 들어갔는데 그곳은 헌책들을 차곡히 쌓아놓은 고서점(古書店)이었다.

진도건과 안효철은 고서점 입구 앞에 섰다.

“여긴 시야에 벗어난 곳인가?”

“그렇습니다.”

“평범한 고서점은 아니군. 내공을 갖춘 자들이 몇 있어. 역시…….”

“하오문이겠지요. 들어가시죠.”

안효철이 앞서서 고서점 안으로 들어갔고 진도건은 잠시 바깥으로 기감을 돌려 감시의 눈길이 없는지 확인을 마친 후에야 뒤따라 들어갔다.

고서점은 꽤 커서 서하에서 발간된 서적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나 법제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송나라의 서적들도 대단히 많이 보였다. 그 가운데선 수, 당 시대부터 이어진 정말 오래전에 편찬된 서책들도 취급하고 있었다.

즉, 서하의 문인들이 이따금씩 이곳을 찾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고서점인데, 그곳에 들어온 안효철은 건장한 체격에 장포를 과하게 두르고 있었고, 방립을 쓴 채 군자검을 패용한 진도건의 행색은 누가 보기에도 이 장소와 모순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시오?”

이마 한가운데 있는 점이 인상적인 중년의 점주가 안효철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뒤따라 들어오는 진도건의 입에서 나왔다.

“이곳에 들어온 아샤 감푸를 찾아왔소이다.”

“참상관(參上官) 나으리는 어째 찾으시오?”

진도건이 점주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점주의 얼굴에 경계심 섞인 표정이 떠오르는데, 진도건이 방립을 살짝 들어 그에게 얼굴을 보였다. 창가로 스며들어온 햇살 아래 진도건의 적안이 또렷이 보인 것은 물론이었다.

“천무방의 진도건이 하오문을 통해 아샤 감푸 참상관을 뵙고 싶소이다.”

“지, 진도건……!”

점주가 깜짝 놀라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오문은 천무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관계된 인물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중원과 멀리 떨어진 이곳 흥경에서도 모르고 있을 수 없었다.

“몰라뵈어 송구합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주는 뒤돌아서 책장을 돌아갔다. 부산스러운 소리가 잠시 나더니 끼익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발걸음이 들려오더니 곧이어 다른 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함께 섞여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 앞에 아샤 감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인이 중서성 참상관 아샤 감푸입니다.”

“진도건입니다. 이쪽은 안효철 대협이시고요.”

“헙! 아, 안효철!”

옆에 있던 고서점주가 입을 틀어막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천하오절과 철갑권왕이라는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진도건이 아샤 감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참상관께서 월왕부에 있다가 살문 살수들을 본 걸 하오문에 전달한 장본인이 맞으시오?”

아샤 감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인이 그 사람입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소인은 어려서는 하오문에 거둬져 굶주림을 피할 수 있었고, 조금 커서는 월왕 전하의 눈에 들게 되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관직도 주셨습니다. 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한 일이지요.”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소만.”

“조금 우려가 되었습니다. 복면인이 월왕부에 있는 것도 의아했는데, 그들이 왕비마마 처소 주변을 맴도는 걸 알게 되고 나선 전하께서 고용한 자들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오문의 무림인명부(武林人名簿)에서 보았던 이름을 쓰는 자가 월왕 전하 앞에 나타났었습니다. 그게 살문 신살수 중 한 사람인 천살성(天殺星) 기효산(奇梟山)이었지요.”

천살성 기효산은 신살수 가운데서도 가장 명성과 무공이 높은 자였다. 그가 열 명의 흑살수와 인살수 스무 명을 모두 동원하여 사파무림 중에서 칠성파 다음으로 명성이 있었던 양천방(陽天幇)을 기습한 일은 강호에서 유명한 사건이었다. 당시의 기습으로 방주 장평(張平)과 핵심 간부 셋이 기효산 한 사람에게 목숨을 잃었으며 주요 인물들도 흑살수의 칼에 목이 떨어져 조직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었다.

“어떻게 그게 기효산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지?”

“기효산의 찢어진 입은 다른 유명한 무림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특징입니다.”

옆에 있던 고점주가 거들자 진도건과 안효철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도건이나 안효철 모두 그 이름을 듣기만 했을 뿐 외모적인 특징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럼 이인우가 걱정되어서 그때 봤던 내용을 하오문에 전달한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아무런 해코지 없이 금방 모습을 감추긴 했지만, 그런 자가 월왕부에 있다는 게 결코 예삿일이 아닐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효산이 자넬 봤을 것 같은데, 용케 살아서 돌아다니는군.”

“제가 하오문에 거둬졌었긴 했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엔 철없는 젊은 관리로 보였겠지요. 또 월왕부에 살수들이 머무는 걸 보면 나름의 목적이 있어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안효철이 아샤 감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린 나이에 머리가 영민하고, 그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판단할 줄 아니 일국의 친왕이 아끼는 게 당연하군.”

“과찬이십니다. 두 분께서 오신 건 월왕 전하를 돕기 위해 오신 것입니까?”

“그것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만, 더 크게는 감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왔소. 혹시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게 없겠소?”

진도건의 질문에 아샤 감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아, 전쟁이라고 하시니까 생각난 건데……, 오늘 월왕 전하께서 입궁하여 황제 폐하를 뵙고 오셨는데 그 자리에서 어제 추밀원에서 논의된 추가 파병과 관련한 상소문에 대해 폐하의 재가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편제를 구성하고 있으니 아마 늦어도 이틀 뒤엔 이곳에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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