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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61화 (261/432)

261화 - 제48장. 마령검 탈혼갑(魔靈劍 奪魂鉀) (1)

참격의 검강이 단원진이 있던 자리를 지나서 맞은편의 기둥을 긁고 지나갔다.

잘려나가는 잔상을 뒤로하고, 단원진이 눈을 까뒤집은 양자성 앞으로 불쑥 솟아오르듯 나타났다.

양자성이 그 움직임에 반응하여 뭔가 행동하기도 전에 단원진의 오른손이 양자성의 이마를 덥석 짚었다.

후웅-!

그 순간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돌풍이 크게 잃었다.

돌풍은 잠깐에 그쳤지만, 그 순간에 무슨 작용이 일었는지 양자성이 눈빛을 되찾았다.

“……헉,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양자성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는 급히 마령검을 거두고 그 자리에 엎드리려 했다. 그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이물감에 동작이 막히면서 엎드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반만 무릎을 꿇는 것에 그쳤다.

“이, 이건……!”

당혹스러워하는 양자성과 달리 단원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치 기대했던 것을 발견했던 것처럼.

“이렇기에 마령검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그 확언에 대해 손에 쥔 마령검을 보는 양자성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마령검의 자루와 호수 부분에서 알 수 없는 조직이 일어나 그의 손목까지 덮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쥐고 있는 건지, 붙들려 있는 건지 모를 상태 속에서 마치 자신의 손이 단전의 내공과 마령검을 연결 짓는 통로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양자성으로선 여전히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칠흑마장을 쓰러뜨렸을 때, 검의 위력이 탐났던 천마조사는 칠흑마장의 손에서 검을 뺏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마치 한 몸처럼 이어져 있어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고 했지. 마치 검객이 검을 잃어버리는 걸 불명예라 여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야. 심통이 난 천마조사는 극양공을 일으켜 탈혼갑 안을 완전히 불태워버렸다. 그때야 칠흑마장도 소멸하면서 검과 갑주를 연결하던 조직도 사라져 비로소 손에서 놓게 되었다고 하더구나.”

“……놀랍군요. 그런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양자성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심경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단원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 그거야 네가 고민해볼 문제지 않겠느냐?”

양자성은 감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댔다. 그러다 그런 자신의 꼴이 한심했는지 심호흡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내공이 계속해서 검에 흐른다. 하지만, 탈혼갑의 설명처럼 삼켜지는 게 아니라…… 마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처럼. 그렇다면…….’

단원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양자성이 무얼 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변화는 금방 일어났다. 곧 양자성의 손을 덮고 있던 조직이 물러나듯 호수와 자루로 돌아간 것이다.

양자성이 눈을 뜨자 단원진이 바로 그 연유를 물었다.

“어떻게 하였느냐?”

“검에서 손을 놓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검으로 통하는 기의 흐름을 차단하려고 했습니다. 쉽지 않았는 데 성공해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거 놀랍군. 어때? 네 생명력을 갈취하려는 느낌이더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기운을 받은 마령검이 그 어떤 검보다 날카롭고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싶어 하는 그 잠재력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너에게도 다행인 일이군. 그래, 마령검을 쥐라고 한 내가 밉지 않았더냐?”

“두려운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찌 스승님께 불경스러운 마음을 품겠습니까? 오히려 제게 이런 마검을 선물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양자성이 왼손을 가슴에 댄 체 깊이 고개를 숙이며 그 말과 행동을 일치시켰다.

‘영악한 녀석.’

단원진은 이미 이 순간에 오기까지 양자성의 표정 하나,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있었다. 비록 사제관계라고 하나 양자성이 자신에게 결코 진심을 모두 내비치지 않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원진은 겉으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양자성을 바로 서도록 일으켰다.

“나는 오늘 네게 큰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네게 걸었던 기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동안 만들지 못했던 또 하나의 마도를, 또 다른 마성을 개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떤 것을 말입니까?”

“내 비록 천마의 편린을 네게 이어주었지만, 네 기질이나 기색을 보아하니 나나 교주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마령검이 너를 이렇게 불러내고야 말았으니 이게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저기로 물러서 보아라.”

양자성은 그의 분부대로 제단에서 내려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섰다.

단원진은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보랏빛 광휘가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자 그 주변으로 술식과 술진이 빛무리와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가 그대로 지면과 기둥, 벽에 박히면서 그 형상을 새겼다.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는 양자성은 그 술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천혼제정대진……!”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다.

양자성은 비록 천마동 뿐이 보지 못했지만, 이런 술진은 환도에 따른 마기로 하나하나 진형과 술식을 새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원진이 호흡 한 번, 손짓 한 번에 술진을 불러내어 공간에 새겨버리자 그의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단원진이 양자성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부터 이곳을 네가 전용하여 무공을 연성하도록 하여라.”

“제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제가 어찌 은혜를 갚으면 좋겠습니까?”

양자성이 이번에는 마령검을 놓고 엎드려 절을 한 후, 다시 일어났다.

단원진이 정말 손쉽게 일을 처리하긴 했지만, 이렇게 독자적인 공간에서 천혼제정대진을 구성하여 천산의 기운을 이용해 마공을 연성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아홉 신마와 단원진 부자뿐이었다.

마성이 구체화 되고 마공의 기반을 쌓고 나면 이후로는 언제든지 회복 및 성장을 위해 사용되는 별도의 마정을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을 단원진이 양자성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이는 천마신공의 전수만큼 정말 큰 선물이라는 걸 알았기에 양자성도 적잖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껄껄껄! 네가 만족해한다면 그걸로 됐다. 내가 오히려 기대되는구나. 앞으로 천마신공의 연성은 마령검을 손에 쥐고 하여라. 아마 그것이 네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아니, 내겐 이미 네 길이 보이는 듯하구나.”

양자성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단원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후후후……!”

단원진이 제단에서 내려와 양자성의 곁에 섰다. 그는 제단과 용암공동 주변을 크게 둘러보더니 양자성의 어깨를 툭 짚었다.

“마성이란 자고로 본성과 결합한 새로운 자아, 새로운 영혼. 앞으로 이곳은 검마동(劍魔洞)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껄껄껄!”

단원진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양자성을 남겨두고 천마동 쪽으로 걸어갔다.

“태상교주님의 뜻대로.”

양자성은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멀어져가는 단원진의 등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깊이 수그렸다.

걸음 소리가 차츰 멀어지며 그 기척이 천마동 쪽으로 넘어가자 비로소 양자성도 몸을 바로 세웠다. 단원진이 떠났어도 그의 손에 피워진 횃불은 계속해서 검마동 안을 밝히고 있었다.

양자성은 제단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도 시선은 계속해서 단원진이 사라진 천마동 방향에 머물다가 끝내 몸의 방향으로 돌아왔다.

저벅저벅…….

차분히 걷는 걸음걸이로 제단에 올라선 양자성이 차분히 호흡을 이었다.

마령검에 염(念)을 통하자 조직이 일어나며 손목을 덮었다.

차분함을 유지한 채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양자성은 마령검을 다리 위에 놓고 눈을 감았다.

다시 천마신공을 연성함과 동시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마성에 다가가야만 했다.

다만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기 직전, 그는 조금 전 단원진과 나눴던 대화 가운데 나왔던 한 단어에 아주 잠깐 생각이 머물렀다.

‘[내가]라…….’

* * *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송자(玄松子)가 허리 숙여 인사하자 당혁수도 따라 허리를 숙였다.

“참사를 막는 데 도움이 된 게 없어서 돌아가신 하송진인을 죽어서도 뵐 낯이 없을 뻔했는데, 현송자께서 다행히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시니 이 당모도 위안이 됩니다. 향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청성파의 재건을 위해서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뭐든 도와드리리다.”

“원시천존, 빈도가 찾아뵈어서 여러 가지로 자주 묻고 배우겠습니다.”

현송자와 작별 인사까지 마친 당혁수는 노군각에서 걸어 나와 청성파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성도성 관부의 지원으로 동원된 목수나 석공들이 뚝딱뚝딱, 일하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하는 소란으로 곳곳에 흙먼지가 적잖이 일어나곤 했으나 시체와 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한 주 전의 모습보단 그래도 활력이란 게 흐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했던가?’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산에서 내려가는 당혁수는 청성산에 뿌리부터 다시 내리려는 청성파의 모습에 꽤 감격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고 여겨졌던 청성파는 다행히 현송자라는 심지 굳은 중년의 도사를 장문진인으로 추대하면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잃은 게 너무 많아 수습이라는 말이 부적절하긴 했지만, 그가 보기에 현송자는 꽤 걸출한 인물로 무너진 문파의 중심을 잡기 적합한 위인이었다. 청성칠자에 가려지긴 했으나 바로 아래 항렬의 제자로서 사천 성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니며 그 덕성을 펼치던 사람이었다.

무공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바깥으로 알려진 명성이 높진 않았으나, 기초나 철할이 탄탄하여 문파 내 명망은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이는 경외에 있다가 살아남은 청성파 제자들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좋은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또 청성파가 정말 많은 사람을 잃었지만, 건물 내 많은 경전이나 무공비급 등은 잘 남아있었다.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두 세대가 흐르고 나면 다시 옛 명성을 회복할 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혁수는 사천무림의 최고수였으니 현송자는 후일 강호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여러 가르침을 베풀어달라고 청했다. 또 현재 당문이 사천의 민관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 청성파가 기반을 다시 쌓을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해달라고 청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던 당혁수는 현송자라는 구심점에 대한 높은 만족감으로 흔쾌히 수락했으니 당문으로 돌아가는 그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진 상황이었다.

시원스러운 바람을 뚫고 질주하는 당혁수의 신형도 어느새 성문에 이르렀다.

마침 성문을 지키는 병사나 행인들도 당혁수를 알아보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성도에서 벌어진 사건이란 건 일반 백성들과 관의 인사들은 잠시 기절해있던 탓에 직접 목격한 바가 없어서 얼떨떨한 감정만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미산과 청성산은 각각 불가와 도가의 성지나 다름없었으니 아미파의 피해를 막고 청성파의 멸문에 이른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의 명망은 민관에 두루 알려지게 되었다.

“당노야(唐老爺).”

한 노파가 당혁수를 불렀다.

아미산을 꾸준히 갔던 모양인지 노파는 고맙다면서 손목에 찼던 염주를 풀어 당혁수의 손에 쥐여 줬다.

“도량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할 일을 한 것뿐이지요.”

당혁수가 손에 내력을 담아 노파의 등을 쓰다듬으니 따뜻한 기가 전달되었다.

노파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띄워졌다. 노파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 세상의 미륵이 되어주시구려.”

“허허…….”

청성파와 달리 아미파는 명망 높았던 스님들이 대부분 살아남았으니 불자들은 이렇듯 당혁수를 칭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상황이 난감하기만 하니 당혁수도 어색한 웃음으로 어렵게 노파의 손을 떼어내고는 서둘러 당문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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