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 제47장. 혼돈의 씨앗은 여전히 잠재하다 (5)
양자성이 안에 들어가서 시선을 돌리는데 대단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틈이 발생하면서 잠깐 돌먼지가 발생한 것도 있었지만, 고작 들어오는 빛이라는 게 입구에 사람 하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높고 긴 틈으로 스며드는 천마동의 횃불 빛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단원진은 이미 잘 아는 공간이었는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양자성은 그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따라가는데 마치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도 들려왔다. 어딘가 외부로 통하는 공기 통로가 있는 것인지 혹은 그 무저갱과 같은 지형이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얼마간 걸어가자 앞에서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안이 환해지면서 내부 모습이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천마동의 틈을 건너 들어온 길은 평범한 동굴인 듯 보였지만, 두 사람이 선 곳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 아니었다.
흡사 용암공동 초입에서처럼 이곳도 똑같이 용암이 흘렀다가 어디론가 빠져나가며 만들어진 동굴이었다. 하나 다른 건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자국들 위로 무수히 많은 패인 자국들이 곳곳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마치 주백자와 격전을 치르면서 발생했던 격전의 흔적들과 꽤 닮아있었다.
다만 더 눈길을 끄는 건 동굴 중심에 있었다.
원형으로 뚫린 동굴을 지탱하기 위해서인지 여섯 개의 기둥이 둥그렇게 세워져 있었고 그 가운데 제단처럼 보이는 원단 하나가 있었다. 각 기둥은 거무튀튀한 사슬이 휘감겨있었는데 그 사슬들이 제단으로 모여 무언가를 묶어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과 제단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양자성의 눈에도 그 묶여있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보였다.
‘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 자루 검처럼 보이는 물체가 6개 기둥에 연결된 사슬에 묶여서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아래 제단이 있는 것도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더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바닥에 새겨진 술진의 형상도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양자성이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풍경에 당혹감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끌끌! 봉인진(封印陣)이다.”
“봉인? 무엇을 말입니까?”
“뭐긴, 저 검이지.”
그렇게 얘기하면서 단원진이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휘젓자 여섯 가닥의 검은 사슬에서 누런빛이 흘러나오며 꿈틀거렸다.
챠르륵!
“여전히 반응이 없군.”
단원진이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의 얼굴엔 마치 짓궂은 어린아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꿀꺽!
양자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멍하니 검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분명 검이었다.
거무튀튀하긴 했지만, 그보단 잿빛의 바위 색에 좀 더 가까웠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렁이는 횃불로 인해 사슬에 묶여 먼지가 덜 쌓인 부분으로 광택 같은 게 살짝 흐르는 게 보이기도 했다. 자루와 호수 부분은 열십(十)자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정제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기보다 뭔가 괴이한 구조를 띄고 있었다.
그런 특이한 형상을 반사적으로 훑어보고 있었을 뿐, 양자성의 의식은 이미 그 검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단원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천마조사께서 최초로 발견한 용암공동이다. 그리고 여기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가 저 검과 검은 갑주를 걸치고 천마조사를 공격해왔다. 저 검은 천마조사의 검을 파괴해버릴 정도로 강력했고, 갑주는 웬만한 공격으로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마신공의 마기와 닮은 기운을 그 존재가 갖고 있었는데, 그 덕인지 결국 소멸시킬 수 있었다. 천마조사께선 그걸 칠흑마장(漆黑魔將)라고 불렀는데 저 검은 바로 칠흑마장이 다루었던 검, 마령검(魔靈劍)이다.”
“마령검. ……칠흑마장을 소멸시켰다고 하셨는데, 그럼 갑주도 저렇게 봉인한 것입니까?”
단원진이 양자성을 쳐다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령검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귀담아들은 모양이군.”
“제자가 어찌 스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흐음, 네 짐작처럼 전리품은 마령검만이 아니라 칠흑마장이 입고 있던 갑주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여기에 없다.”
“그럼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글쎄, 중원 어딘가에 굴러다니면서 애먼 주인의 목숨을 갈취하고 있겠지.”
단원진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칠흑마장은 소멸된 게 아니라 갑주 안에 자신을 봉인한 것이었다. 천마조사도 그 방어력이 탐이나 입었지만, 곧 자신의 생명과 기운을 갑주가 빨아들이는 걸 깨닫고 바로 벗어 버렸다. 파괴하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무저갱에 던져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칠흑마장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지. 그래서 천마조사는 갑주를 중원 반대편에 버리고 돌아왔다. 만약 그것에 영성이 깃들어 있다면 아마 자신을 착용한 자의 생명력을 갈취하면서 부활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단원진이 마령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검을 되찾으러 올지도 모르지.”
꿀꺽!
양자성은 긴장 가득한 이야기에 마른침을 삼키면서 단원진의 뒷모습과 마령검을 번갈아 보았다.
천마신공의 연성에 속도를 내지 못해 질책을 받던 게 불과 반 시진 전쯤 일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들을 너무 많이 마주하는 바람에 머릿속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자꾸 마령검에 시선이 끌리는 게 왜인지 몰랐는데 단원진의 설명 중에 짚이는 부분이 떠올랐다.
“그럼 마령검도 그렇게 주인의 목숨을 탐하는 검이어서 저렇게 봉인해둔 것입니까?”
직접 물어보았음에도 양자성은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만약 마령검이 그 갑주처럼 사용자의 생명력을 갈취하는 거라면 지금 저 검에 끌리는 자신의 심정이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해 단원진이 어떻게 대답해줄지, 과연 그 대답이 거짓이 아닌지 의심부터 드는 것이다.
“글쎄. ……그래, 지금 와서는 ‘글쎄’라는 의문이 먼저 앞서는구나.”
단원진이 그렇게 말하곤 손을 들었다. 그 손안에 칠흑의 천마기가 담겨 불길이 일렁이듯 광휘를 뿜어냈다. 그리고 팔을 휘두르자 그 기운이 일제히 여섯 갈래로 갈라져 뻗어 나가더니 사슬에 달라붙어 활활 타올랐다.
챠라라락-!
단단하게 묶였던 사슬이 일제히 풀렸다.
카앙!
그것으로 봉인이 풀린 것인지 마령검이 그대로 떨어져 제단에 비스듬히 꽂혔다. 그와 함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면서 그 형태와 색을 조금 더 온전하게 드러냈다.
단원진은 제단 위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령검을 뽑아 들었다.
마기를 검신 위로 한 차례 뿜어내자 오랜 시간 쌓여 굳어버린 먼지들까지 완전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 갑주는 생명력을 갈취하기 때문에 탈혼갑(奪魂甲)이라 불렀는데, 마령검은 그것과 다르게 이 이상한 형상을 제외하면 평범한 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직접 만져봐도 그저 쇳덩이나 돌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지는 걸 보니 분명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그런데 천마조사께선 마령검이란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직접 싸우셨을 때, 검에서 어떤 형상의 변화 같은 걸 봤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야. 두 눈에 새겨진 그 기억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는 이상은 마령검을 보통의 검처럼 취급하여 폐기할 수는 없었으니 이름을 붙이고 봉인한 까닭이다.”
단원진이 양자성을 향해 손짓했다.
제단 위로 올라오라는 뜻이었다.
양자성이 조심스럽게 제단 위로 올라가 단원진을 마주 보도록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령검에 쏠렸다.
두근두근…….
심장의 떨림.
소유하고 싶다는 끌림.
“갖고 싶지 않으냐?”
양자성이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넌 이미 여기에 들어설 때부터 강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을 보자마자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냐?”
양자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단원진이 그렇게 묻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양자성은 그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묻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끌림이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님을.
단원진의 손에서 마령검이 공중에 붕 떠오르면서 양자성에게 가까이 움직여 둘 사이에서 멈췄다.
“들어보아라.”
양자성이 그 말에 마령검의 자루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바로 쥐지 못하고 그 앞에서 멈추었다.
그의 머뭇거림을 보고 단원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네 재능을 보고 천마신공을 전수하긴 했으나 현재로선 넌 강정학이 전해준 뿌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강정학의 이름이 나오자 양자성이 깜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
“제게 있어서 이제 스승은 태상교주님 한 분뿐인데, 제자가 어찌 감히……!
“큭큭! 굳이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내가 단순하게 생각한 측면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천마의 마성은 오롯이 천마로 발현되리라 생각했지만, 내 피를 이은 내 아들과 달리 넌 강정학의 진전을 이었다. 그의 무공이 명성에 걸맞은 수준이라면 마성에 의한 변질이 그리 일방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터. 게다가 마령검을 향한 이끌림을 고려한다면 네 마성은 나나 내 아들과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아마 이 검이 말해줄 수도 있겠지.”
단원진의 말에 양자성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달라진 눈으로 마령검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단원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성취를 어정쩡하게 마칠 요량이 아니라면 마령검을 들어 네 운명을 시험해보아라. 어차피 고도의 경지는 네가 스스로 개척해야 하거늘. 나의 눈에는 너와 마령검 사이에 강한 인연의 고리가 느껴지니, 오직 네 선택에 달렸다.”
양자성은 단원진의 이야기를 듣고 그 뜻을 곰곰이 곱씹었다.
점점 불안의 기색이 사라지고 결심의 빛이 눈에 떠올랐다.
“스승님의 기대에 부응해 보이겠습니다.”
천천히 마령검을 향해 다시 손을 뻗는 양자성의 모습을 보면서 단원진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그래, 내 기대에 부응하여라. 널 선택한 최초의 의도 이상의 것을 성취해내라. 그것이 오직 나를 더 완전한 지경에 이르게 할 것이니……!’
잔잔한 미소를 품은 얼굴의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심은 더 큰 환희와 검은 야심을 더불어 품는다. 그리고 두 눈으로 뚫어지도록 양자성이 마령검을 향해 손을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덥석.
마침내 하얀 손이 마령검의 자루를 쥐었다.
첫 느낌은 그저 무거운 검을 한 자루 쥐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래로 기울어진 검을 다시 위로 향하게 들 때까지만 해도 그 첫 느낌은 변하지 않은 채 사그라져갔다.
그 마령검의 모습을 손안에 쥔 자루부터 호수 그리고 검신까지 찬찬히 위로 훑어보는 바로 그때,
알 수 없는 느낌에 고개를 든 단원진의 눈에 흰자위로 까뒤집은 눈을 한 양자성의 모습이 보였다.
등골을 관통하는 섬뜩한 느낌.
급히 뒤로 뛰어오르는 그의 앞에 거대한 참격이 쇄도했다.
카카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