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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52화 (252/432)

252화 - 제46장. 사투(死鬪)의 종착 (2)

단지 혈색으로 물들었을 뿐인 순수한 파천진기.

내공의 진격은 찰나.

용천혈에서 폭발한 기운이 진도건의 신형을 밀어내니 어느새 단지운의 코앞에 이르렀다.

미처 파황멸뢰옥을 풀지 못하고 있던 단지운은 진도건의 갑작스러운 접근을 감지하고 두 손을 풀었다. 그리고 남은 내력을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로 되돌리는 순간, 진도건의 검이 붉은 벼락을 뿜었다.

파천혈마공 육혈뢰수라망(六血雷修羅鋩).

찰나 간, 연쇄 교차하는 여섯 개의 검광은 마치 붉은 벼락을 내리꽂는 아수라의 심판.

바닥까지 끌어모은 파천진기에 한 줌의 호흡을 더하고, 원류검결로써 한계를 초월한 육신으로 뿌려낸 필살의 검기(劍技)가 단지운을 관통했다.

쩌엉!

……!

어둠을 밝히는 붉은 뇌광(雷光) 속 찰나 간 장면들이 칠흑의 안개를 뚫고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흩뿌려지는 출혈의 양과 쓰러지는 단지운, 참격의 마무리 자세에 도달한 진도건의 모습까지 모두가 기대하거나 걱정했던 서사의 결말이 뜻밖의 반전으로 끝날 것인가 하는 혼란이 있었다.

그것은 진도건도 마찬가지였다.

터질 것 같이 뛰는 심장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던 그의 심경은 흥분의 도가니로 요동치고 있었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두근거리는 심장과 달리 차갑게 이성을 유지하는 머리가 한몸으로 모순된 채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게 다시 들어왔다.

‘또……!’

쓰러지는 단지운의 두 눈이 일순 까뒤집어지며 칠흑의 어둠으로 물들더니 한순간 소름 끼칠 정도로 마기가 요동쳤다.

그 순간 동시에 밖으로 폭사되었던 혈마의 기운이 다시 진도건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혈마의 환상이 어느새 진도건과 겹쳐져 외형을 이루더니 그 앞에 기운을 응집했다.

그 앞을 암안(暗眼)을 한 단지운이 덮쳤다.

꽈앙!

“커헉!”

피를 토하며 충격에 뒤로 몸이 떠오른 진도건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고통에 일그러뜨린 눈으로 단지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어느새 단지운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그 암안이 착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 필요 없다. 이제 진짜 끝을 내자.”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리는 단지운은 난자된 상처들로 인해 피에 흠뻑 적셔진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진도건으로선 정말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일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깊이 검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버티고 제 목소리 그대로 낼 정도로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다.

절정의 검기를 발휘했다고 생각했는데, 심정적으로 불붙은 조급함이 오히려 예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나 자신을 의심하게도 만들었다.

기가 막히는 일은 다음에 더 벌어졌다.

눈에 벌어질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린 상처들이 다시 붙기 시작하면서 출혈도 멈추었다. 밖으로 흘러나온 피들은 몸에 검은 불길 같은 것이 일어나더니 대부분 지워졌다. 원래의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복구한 것이었다.

성큼성큼 내딛는 단지운의 걸음에 진도건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군자검을 쥔 그의 손은 긴장감에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대거 소진된 내력의 공허함은 이 순간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단지운의 두 손에 막대한 공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회복을 마치자 다시 공격하려는 것이다.

칠흑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듯 두 손에 모이더니 이윽고 선명한 고리의 형상이 그 위에 갖춰졌다.

천마신공 마령환(魔令環).

살의의 바탕 위에 형성된 강기의 고리가 앞으로 뿌리는 손짓으로부터 떠나 진도건을 향해 쏘아졌다.

피할 여유도 없이 진도건이 가진 진력을 끄집어내며 검강을 일으키는 그때, 천서은이 그의 뒤에 나타나 두 손바닥으로 진도건의 등을 눌렀다.

쏟아지는 파천진기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낸 진도건의 검엔 어느새 혈광의 검강과 더불어 청홍의 벼락이 함께 요동쳤다. 진도건이 그 타오르는 검강을 들어 날아오는 마령환을 향해 내리쳤다.

콰앙!

“큭!”

군자검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에 진도건이 침음성을 삼켰다.

천서은이 돕지 않았으면 위험할 뻔했다는 느낌에 등골이 오싹했다.

위험이 이것으로 그칠 리 없다.

후우욱!

후폭풍을 뚫고 단지운이 날아올랐다. 그를 둘러싼 칠흑의 마기가 마치 한 마리 대붕(大鵬)처럼 날개를 펼친다. 하늘에서 먹잇감을 노리듯 그대로 하강하여 두 사람을 덮쳤다.

쿠쿠쿠쿵!

단지운 한 사람을 상대로 진도건과 천서은이 합격을 펼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둘이 하나에게 핍박받는 처지에 불과했다.

무적.

그 말 외에 달리 두 사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두 사람이 펼치는 검격과 기공의 공세는 폭넓고 변화가 커서 각각 한쪽 팔씩만 사용하여 상대하는 단지운의 입장에선 무슨 공격이든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지운은 가히 태산처럼 굳건했다. 아니, 그들의 본거지라 추정되는 천산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만해불침(萬害不侵).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류의 피해도 그를 침습할 수 없는 것인가?

그 절망의 벽처럼 서서 두 손으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한 마기의 파고를 일으키고 있으니 두 사람의 신세가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했다.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치열하게 버텨냈으나,

“차앗!”

단지운이 기합일성까지 소리치며 쌍장을 내지르니 두 사람 앞에 칠흑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콰쾅!

굉음과 함께 끝내 두 사람 모두 나가떨어졌다.

천서은은 담장을 뚫고 그 너머 전각 벽에 처박혔으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진도건은 바위와 충돌하여 기어이 뚫고 땅을 굴렀다.

“크윽…….”

진도건이 비틀거리면서 검에 기대어 일어났다.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아래턱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검은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단지운은 오만하게 서서 고개를 돌려 천서은 쪽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담벼락이 시야를 방해했지만, 그 사이로 연신 피를 게워내며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천서은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시 진도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침내 두 다리로 서서 그를 향해 검을 겨누는 진도건의 붉은 눈은 아직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필사적이군. ……더 할 게 있으면 보여봐라.”

“후우!”

진도건이 폐부 깊숙하게 쌓인 탁기를 강하게 내뱉으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보여보라 했으니 보일 뿐.

그 많던 내력이 대부분 빠져나간 하단전과 혈마단의 공허는 개의치 않는다. 파괴적인 혈마기의 도움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저 청성산의 맑은 호흡 한 줌을 검에 담아 전력의 검속을 발휘한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 단지운.

핏!

허공을 사선으로 가르는 섬광을 보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단지운이 뻗은 손과 그의 가슴에 다시 한번 검상이 새겨지며 피가 튀었다.

‘칫…….’

하지만, 역시나 소용없는 일격이었다.

상당한 출혈임에도 결국 그의 검기가 내부까지 뚫어내지 못했는지 다시 상처가 절로 봉합되어 제 피부를 되찾았다. 그러나 단지운은 진심으로 진도건에 대해 인정하고 있었다.

“천하에 가장 날카로운 검기를 가진 자가 누구냐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진도건, 네놈일 것이다.”

진중한 목소리에 담긴 진심 어린 극찬이었으나 이것은 그가 배려할 마지막 응대였다.

뻗은 손바닥에 새겨진 붉은 실선의 상흔을 숨기려는 듯 말아쥐면서 오직 검지만 남겨 진도건을 가리킨다.

그 끝에 집약되는 칠흑의 강환을 보면 마치 죽음을 예고하는 악마의 눈을 보는 듯하다.

천마신공 마안지(魔眼指).

그 손끝에서 쏘아진 칠흑의 섬광을 피하기엔 진도건은 이미 너무 많은 기력을 소진해 버렸다.

단지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 대신 날아오는 지력 그 찰나의 연속들을 마주하는 그때.

펑!

머리 옆을 스치는 또 하나의 지력이 단지운의 마안지와 부딪치며 기운이 터져나갔다.

그 폭발이 코앞이었음에도 진도건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늦지 않게 그를 뒤로 잡아당긴 허공섭물의 능력 덕분이었다.

“어딜 감히!”

천마의 판결을 훼방 놓은 자의 등장에 단지운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진도건은 미증유의 힘에 당겨지는 상황에서 고개를 돌려 난입한 자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강렬한 인상의 백발노인이 보였다.

그 인물의 정체를 알린 것은 멀찍이 있던 환마인 비작의 외침이었다.

“천수기륭 당혁수!”

화경의 경지에 오른 사천제일고수의 난입은 진도건을 죽음에서 구제하였다. 그리고 이미 이곳에 이르는 동안 단지운의 그 패도적인 존재감을 느꼈던 당혁수는 이미 전력을 다할 준비를 한 상태였다.

경공을 펼치는 당혁수의 신형과 진도건의 신형이 서로 교차했다.

백발노인의 청명한 안광이 번뜩이자 청성파 경내에 흐르는 공기의 가닥들이 실낱 하나하나 그의 감각에 인지된다.

단지운이 칠흑의 마기를 뿜어내며 태세를 갖추는 걸 당혁수는 무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 끝에 펼친 두 손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으나 이 공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

만천화우 위락경.

하늘 가득한 암기의 꽃비라면 누구든 죽일 수 있겠지만, 세상의 어느 누가 있어 그 많은 암기를 감추었다 던질 수 있으랴.

그 추상적 발상에 지나지 않아 오명(汚名)만 남았던 만천화우라는 당가의 절기가 암기술(暗器術)에서 암기공(暗氣功)으로, 당혁수의 재능 위에 마침내 꽃 피웠다.

만천화우 위락경은 그렇게 세상에 나타나 사혈신마 서문질의 최후를 안겼었다.

하지만, 당혁수는 여기까지 이르면서 고민했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으며 결심한 이상 이행하면 그만이다.

당혁수는 평생 쓸 일 없을 거라 여기고 감춰두었던 오의(奧義)의 문을 기꺼이 열어젖혔다.

만천화우 허무위락경(虛無蝟絡勁).

상단전의 극한 개방.

부릅뜬 눈, 청명한 안광, 핏발선 백막(白膜) 아래 피눈물이 흘렀다.

감지할 수도 없고, 무엇으로 막을 수도 없다.

천하를 태우고 파괴할 것 같은 칠흑의 마기와 그 호신강기, 호체진기를 모두 뚫고 보이지 않는 수만 가닥의 무형사(無形絲)가 단지운의 전신을 관통했다.

“억……!”

전신을 관통하는 위화감에 흘리는 희미한 신음.

단지운의 사고(思考)가 그 순간 완전히 정지했다.

이 무형사는 파괴적인 위력은 없으나 절대 피할 수 없었다. 신체 내부를 연결하는 신경계와 경락을 건드려 당혁수가 가진 의식의 빈틈을 심으니 종국에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신기(神技)였다.

그 지속시간은 불과 수초.

그것으로 충분했다.

단지운의 몸을 감싸던 칠흑의 마기는 주인 잃은 바람처럼 공중에 흩날려 사라지고 그 어떤 호신강기도 느껴지지 않는 절호의 기회가 마침내 열렸다. 그리고 진도건과 당혁수를 차례로 지나쳐 내달리는 안효철은 마치 검은 포환처럼 날아가 어느새 단지운의 앞에 돌입했다.

쐐액!

무쌍류 파마격.

활처럼 휘었던 허리가 마침내 시위를 놓으며 천자철갑의 반탄력과 막대한 경력을 담은 두 주먹이 단지운의 명치에 맹렬히 꽂힌다.

쩌엉!

새하얗게 질려 도망가는 공기의 바람 고리.

두 주먹으로부터 전해진 경력의 침습과 충격이 당혁수의 무형사를 대체하며 단지운의 전신을 관통했다. 충격에 떠밀려 허리를 굽힌 채 뒤로 날아가는데 단지운의 입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피가 줄기를 이으며 뿜어져 나왔다.

“교주님!”

선우도와 환마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비명처럼 단지운을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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