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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49화 (249/432)

249화 - 제45장. 스스로 가면을 벗다 (5)

지운천의 실소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진도건을 슬쩍 보더니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다시 본다. 상처를 만지면서도 주변의 먼 산을 바라보는 듯 시선을 던지는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머리까지 직격당하면서 강한 정신적 충격이라도 받아 실성한 것일까?

“크흐흐……, 과연! 냉소평, 그 영감의 능글맞은 면상에 칼자국이 새겨진 게 의아했었는데 이제 이해할 만해.”

그 목소리와 내용은 그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방증이지만, 상처만 새겨진 채 멀쩡히 서 있는 모습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진도건의 어림짐작대로의 기대와는 달리 지운천의 상태는 치명상을 입은 몸이라 보기 어려운 듯했다.

검격은 제대로 그를 베어냈지만, 내부를 보호하는 내력은 그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해서 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밀어냈던 것이니 피부가 갈라졌음은 명백했으나 근골이 제대로 뚫리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빠르게 그 상처를 수복하는 모습은 그 광경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진도건과 천서은을 경악하게 했다.

특히 진도건은 이미 일월신마에게 그런 모습을 한 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자신의 무공은 천양지차라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조금은 두렵군.’

솔직한 심정이었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구주마종의 대마두들 중 한 사람인 환도신마 선우도로부터 존자라 존칭 받는 지운천의 존재감이 되려 천마신교라는 집단적 존재감보다 돋보이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운천이 상처에 손을 직접 대지는 않은 채 그 위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러자 손과 상처에 동시에 검은 불길 같은 게 작게 일어나더니 출혈을 태우고 갈라진 피륙의 상처마저 지우기 시작했다. 얼굴부터 허리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던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제길, 저게 정녕 인간이 맞나?”

진도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운천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았다.

“그건 나도 할 소리요. 죽음으로 몰고 가면 쉽게 혈마를 끄집어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육신의 주인에게 일격을 허용할 줄이야. 결과적으론 이처럼 무용한 일격이었지만, 충분히 인상 깊은 검격이었소.”

지운천이 진도건의 어깨너머로 천서은을 한 번, 그리고 다시 진도건까지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 모두 합격이오. 자격이 충분해.”

진도건도 힐끗 천서은 쪽을 돌아보며 잠깐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멀찍이 떨어진 채 이쪽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내상을 다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격?”

진도건이 지운천을 보며 물었다.

지운천이 씩 웃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나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는 자격.”

그 오만한 말에 진도건이 바로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에 긴장감에 경직된 표정으로 어금니를 악물고 지운천을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서서히 떠오르는 지운천의 신형.

동시에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투기가 그로부터 발산되어 일대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콜록!”

갑작스러운 중압감에 천서은도 그만 피 맺힌 기침을 토해내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지운천을 바라봤다.

‘어둠이……!’

아직 해가 완전히 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음에도 사위가 점점 어두워지는 기분.

숨 막힐 듯한 투기에 심상치 않은 칠흑의 기운까지 아지랑이처럼 온몸으로 피워내는 지운천이 어느새 꽤 높이 떠올라 청성산 전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러러보던 선우도와 영무, 허룡, 비작이 납작 엎드렸다.

그 순간 엄청난 함성의 구호가 청성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광명대천! 천마군림! 광명대천! 천마군림! 광명대천! 천마군림! ……!”

산문을 가로막고 있었던 환도종 마인들의 칭송하는 외침에 선우도를 비롯한 세 환마인도 질세라 따라서 외쳤다.

광명대천, 천마군림.

열 차례나 반복되던 외침이 마침내 그쳤다.

그 여덟 자가 뜻하는 바는 단 하나.

진도건과 천서은은 어느새 불신의 빛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한 사내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고 있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품은 얼굴은 그대로이나 그는 두 사람이 아는 지운천이 아니었다.

“반갑다. 다시 날 소개하도록 하지. 나, 천마신교의 지존. 천마 단지운이다.”

천마 단지운.

패도로 가득 찬 오만이 말투부터 가득 배어있다.

꿀꺽!

완전히 달라져 버린 존재감에 진도건이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억지로 삼켰다.

마침내 지운천이란 가면을 스스로 벗어던진 단지운의 손에서 청유검이 둥실 떠올랐다.

쐐액!

검이 떠오를 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진도건의 반응도 눈부시게 빨라서 옆으로 크게 몸을 기울이니 그가 있던 자리로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청유검은 멀리 벗어나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서 방향을 틀며 원의 궤적을 그리더니 재차 날아들었다.

팽! 패패앵-!

두 번째 날아드는 것까지 몸을 비틀어 피하는 진도건의 시야에 땅에 널브러진 검 한 자루가 붕 떠오르는 게 잡혔다. 그리고 발목으로 날아드는 걸 몸을 띄우며 다시 피했다.

‘검들이……!’

공중으로 도약하며 몸을 휘도는 순간 십수 자루의 검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연쇄적으로 달려드는 주인 잃은 검들.

카카카캉!

진도건이 펼쳐내는 공중의 검무에 막혀 튕겨내고 빗나갔다.

말 그대로의 칼바람을 휘몰아치게 만드는 다중 이기어검의 무지막지함에도 불구하고 진도건이 노리는 건 날아드는 검이 아닌 그것들을 조종하는 단지운이었다.

진도건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빗겨나가는 검을 밟아 그 칼바람 속에서 몸을 빼냈다. 동시에 경공을 펼쳐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단지운을 향해 흑검의 연격을 휘둘렀다.

기습적이면서 물 흐르듯 연계된 움직임이었기에 검세 안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로 이형환위하여 기척이 나타난 걸 느끼자 판단을 그르쳤음을 깨달았다.

“늦어.”

차갑게 중얼거리는 단지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신공 천지멸뢰옥(天地滅牢獄).

왼손의 까닥거리는 가벼운 손짓에 진도건의 사방 지면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일제히 칠흑의 강기 다발이 나타나 쇄도했다.

거리가 있음에도 신외지경(身外地境)에서 곧장 강기를 일으키는 것.

흑풍신마를 상대로 겪어보았던 조화였으나 그조차도 이 정도 거리와 이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콰콰콰쾅!

“진도건!”

천서은이 깜짝 놀라 비명 지르듯 날카롭게 소리쳤다.

연쇄적인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는 그 한가운데에 진도건이 피하지 못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단지운이 손을 위로 들고 까딱거리자 그 주변에 머물던 청유검을 포함한 수십 자루가 이기어검이 되어 폭발 속으로 날아갔다.

슈슈슈슛!

단지운이 이기어검을 날리면서 천서은 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천서은은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대놓고 걱정하지 마시오. 질투 나니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떠들어대는 그 목소리는 하등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 속을 뚫고 나와선 단지운의 뒤에 나타나 검을 휘두르는 진도건의 모습에 눈빛이 떨릴 뿐이었다.

캬앙-!

피를 모는 참격이 쏟아졌으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듯 허공에 멈추었다.

마치 금속성 같은 소음은 강기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강기의 벽에 꽂힌 것처럼 혹은 무형의 힘에 의해 붙잡힌 것처럼 검은 허공에서 고정된 채 부르르 떨렸다.

“흐아압!”

진도건의 기합 일성에 붉은 기운이 검에서 폭발했다. 파천신공의 영향에 의한 붉은 전류까지 뻗치면서 기세의 흉흉함마저 드러냈다. 그러나 고작 한 치 정도의 거리만 전진하였을 뿐, 역시나 단지운의 통제 아래다.

“후후후!”

여유가 있는지 단지운이 웃음을 흘렸다.

핏빛으로 점철된 흑검은 그가 보기에도 여전히 꽤 위협적이었지만, 오히려 반보 가까이 가며 손가락을 들어 칼날을 가리켰다.

“애쓰는군. 적당히 쓰러져 혈마에게 몸을 맡긴다면, 어쩌면 목숨은 살려줬을지도 모르는데.”

“애써서 안 되니 주둥이만 나불대는군.”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진도건의 모습이 단지운의 눈에 가엽게 비쳤다.

방금의 일격에 호되게 당한 진도건은 이미 입고 있던 옷자락은 넝마가 되었고 온몸은 온갖 상처와 멍으로 울긋불긋해져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도 인상 깊은 적안의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살아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하하! 재밌어. 애초에 그대에 대한 흥미는 순전히 혈마 때문이었는데 말이야.”

“뭘 원하는 거지?”

“후후!”

단지운이 짧게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쩌엉!

“큭!”

앞을 스치는 손짓임에도 불구하고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경력의 충격이 퍼져나가며 진도건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그리고 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단지운이 바짝 거리를 좁혀서 손을 뻗었다.

검을 휘두르기에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가 운신의 속도에 우위가 있었다면 원하는 대로 거리를 조절하면 그만이었지만, 완전히 쫓기는 구도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검을 쥔 주먹 그대로 권각을 겨루는 것이었다.

파바바방!

북 터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단지운의 손속은 매우 빨랐지만, 진도건도 능히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단지 매 일격에 싣는 경력의 격차를 실감할 뿐이었다.

“뭘 원하냐고? 혈마의 본질이 무엇인지……!”

단지운이 말하던 걸 멈추고 급히 허리를 젖혔다.

훅!

흑검의 검영이 가슴 위를 훑고 지나갔다.

단지운은 검을 들고 권각을 펼치는 게 위험한 일임에도 오히려 절묘하게 손목을 틀어 기어코 검날을 집어넣는 진도건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검에 집중해서 되려 비게 된 복부의 공간으로 연환퇴로 가격했다.

퍼펑!

“윽!”

진도건이 신음을 흘리며 다시 뒤로 쭈욱 밀려났다. 역시나 호흡을 고를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단지운의 그림자에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끼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단지운의 두 발이 하늘에서부터 마치 유성처럼 지반에 내리꽂혔다.

진도건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 충돌로 그가 있던 자리의 반석들이 박살 나며 공중에 붕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단지운이 거기에 가벼운 손짓까지 더하자 그 떠오른 파편들이 일제히 진도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슈슈슛, 콰득!

진도건이 날아오는 바위 파편들을 보며 검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검에 걸리는 건 고작 한두 개뿐 나머지는 그의 검이 닿기도 전에 바스러져 먼지가 되어버렸다.

‘시야가……!’

인지하고 대응할 틈도 없었다.

먼지를 뚫고 불쑥 튀어나온 손이 우악스럽게 진도건의 목줄을 붙잡고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았다.

쿵! -콰콰콱!

그것도 모자라 그대로 지면에 끌고 밀어붙이더니 다시 번쩍 들더니 다른 방향으로 밀쳐냈다.

콰앙!

“커헉!”

진도건이 등을 그대로 전각의 석벽에 처박히며 검은 피를 절로 토했다. 그리고 미처 등이 벽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단지운이 코앞에서 나타나 그대로 다시 목줄을 움켜쥐며 밀어붙였다.

콰득!

단지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가 목줄을 움켜쥔 순간, 진도건도 왼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고는 검의 자루 머리를 들어 그대로 찍었기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하완을 버티는 두 줄기 팔뼈 중 하나인 척골(尺骨)이 부러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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