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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46화 (246/432)

246화 - 제45장. 스스로 가면을 벗다 (2)

천서은이 주먹을 꾹 쥐었다. 검을 쥔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중에서의 만남부터 이주에서 헤어지기까지 며칠 간의 여정 동안 보았던 지운천에 대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그 우연 같은 만남의 시작에선 호감이라 할 만한 감정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마교도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오늘에 이르러 되돌아봤을 때, 그것이 좋지 않은 시기에 불운하게 겹쳐 왜곡되어버린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거기에 절실함이 있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바로 잡기 위해서 결자해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운천을 쫓아 그 누구보다 먼저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적 앙금을 푸는 것만으로는 여기에 있을 이유로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도래해버린 청성의 도량 위에서 그녀는 무한한 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콰지지직…….

“호오!”

보기만 해도 찌릿한 푸른 벽력의 기운이 천서은에게 표출되기 시작하자 지운천이 감탄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대, 지금 내게 분노하고 있군. 사마(邪魔)란 결국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가치가 아니던가? 난 그대라면 내 신부로 아주 적격이라 생각하고 있소만.”

까득!

어금니 부딪치는 소리가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신부? 하!”

쿵!

굉음과 함께 지반이 짓눌리면서 천서은의 신형이 포환처럼 지운천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지운천-!”

노성(怒聲)을 지르는 천서은의 시야에 지운천의 모습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카카캉!

검광이 화려하게 펼쳐지면서 두 사람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녀에 반응한 뒤덮은 칠흑의 기운들이 요동쳤고 이내 흑검의 그림자를 쫓아 뻗어 나가는 전격(電激)과 연쇄적으로 부딪치는데 그 자체로 이미 혼돈이었다.

‘큭!’

천서은이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설마하니 힘에서 밀릴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검속은 강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자부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녀의 검격은 지운천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므로 당연히 어느 때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지운천은 그녀의 검격을 모두 받아내면서도 오히려 더 우월한 힘과 공력으로 조금씩 짓누르는 형세로 이끌고 있었다.

천무방의 삼대검법인 북천검법, 야천유운검, 천뢰삼검식이 파천신공의 벽력기공을 내포한 채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다. 흑검이 그리는 검은 궤적들은 그 변화무쌍한 초식과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검속과 맞물러 마치 그녀 자체를 검푸른 번개(黑靑雷)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카카카카카캉-!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검광 속에서 지운천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천서은의 얼굴과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수동적으로 맞대응하는 그에겐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넌 내게 안 돼.’

그의 미소가, 그의 여유가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운천은 그 기대를 여지없이 충족한다.

“내 신부가 될 만한 실력이오, 후후후!”

스치기만 해도 휩쓸려서 핏덩이가 되어버릴 칼날의 폭풍 속에서 마치 그녀의 심경을 읽은 것처럼 떠들어대는 지운천의 목소리가 그녀를 자극했다.

“닥쳐!”

천서은이 검 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북문뢰정의 일검을 내리꽂았다.

쩌엉!

검과 검이 맞부딪치기 직전 공력끼리 먼저 충돌하며 폭발했다.

지운천이 웃음과 함께 입을 벌리면서 뒤로 밀려나는 자신의 상황에 감탄하는 사이, 천서은도 역시 충격파에 밀려나 공중에 떠올랐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지운천의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이내 격노의 감정의 표정에 물들었다.

상단전을 자극하는 흔히 신공(神功)이라 부르는 무공들은 수행자의 창의(創意) 속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또 그 창의는 때때로 감정의 격류에 휩쓸려 본질적인 구체화를 강요하기도 한다.

파천신공 파천진뢰운(破天進雷雲).

후일 그렇게 명명될 절초의 구현.

콰지지지직-!

천지간 사방으로 갈래갈래 뻗어 나가는 파격적인 푸른 전격.

피까지 끓일 듯 분노의 열감이 전신으로 퍼진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전격이 공간을 끓어오르게 하니 일순간 수증기가 뭉클 피어올라 마치 구름에 휩싸여 보였다.

쿠르르르!

천둥이 들려온다.

뇌운이 점점 커지고 뻗어 나가며 하늘을 달리듯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지운천의 입가에 희열에 가득 찬 미소가 떠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듯한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끼면서 검신을 수평으로 당기는 자세를 취하니 칠흑의 광휘가 피부를 타고 흘렀다.

“멋지군!”

지운천이 너무도 순수한 현상의 발화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뇌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쿠르르…… 콰콰쾅!

“이런!”

엄청난 힘의 격돌에 깜짝 놀란 세 환마인들이 급히 선우도 앞을 가로막으며 환도역장(幻道力場)을 펼쳤다.

환도를 열어 공간을 왜곡시키는 비전의 방벽.

그 공능이 시전자의 환마력에 좌우되고 유지 시간이 짧긴 해도 그 잠깐의 시간만큼은 일월신마의 음양역장보다 강력한 왜곡력을 지닌 고차원의 술법이었다. 그것을 셋이 동시에 펼친 만큼 위력은 중첩되어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콰르릉!

벽력노성이 터지는 순간, 세 사람은 역장을 파고드는 칠흑의 마기와 벽력의 전류를 보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닿기 직전 힘을 잃고 흩어지지 않았다면 여지없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을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캉!

주인 잃은 숙녀검이 뇌운을 뚫고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꺄악!”

곧이어 비명과 함께 천서은의 신형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뇌운을 일으킨 힘의 원천이 되었던 천서은이 중심에서 빠져나가자 뇌운이 폭발할듯한 기세를 잃어버리고 허공에 흩어질 듯 부유했다. 그 아래로 지운천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두 팔을 넓게 펼친 채 칠흑의 기류를 옷처럼 휘감으며 내려오는 그의 모습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천서은은 거칠게 내동댕이쳐졌지만, 곧바로 일어나 두 발로 지면을 디뎠다. 식도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 채 끓어오르는 각혈을 뱉어내면서도 찌푸린 두 눈은 지운천에게 떼지 않았다.

쿠오오오오!

이미 사방을 에워싸는 칠흑의 기운이 뿜어내는 그 사악한 기분 그 자체에 오싹함을 느끼면서 천서은이 두 손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파천신공 개천

콰콰콰콰……!

폭발하듯 확장되는 벽력의 폭풍 위로 칠흑의 강기 다발이 연쇄적으로 꽂혔다. 검으로 허공을 한 번 휘젓는 것으로 이 엄청난 숫자의 강기들을 구현해 낸 지운천의 입가엔 미소가 역력했다.

마치 천서은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여유와 유희가 공존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파즈즈……!

그래서 그는 지면을 타고 흐르는 전류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격돌들과 힘에 밀려 나가떨어지기까지, 완벽한 열세라는 구도 속에서 천서은의 정신력은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두 눈을 지운천에게 떼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감각은 경력의 폭풍에 떠밀려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는 자신의 숙녀검과 아직 흩어지지 않아 뇌운으로서 하늘에 남아있다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흐아압!”

그녀가 전심전력으로 다시 한번 공력을 분출했다.

콰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필사적인 저항의 여파로 경력의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지운천의 사위를 가리면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위태롭게 관전하던 선우도와 환마인들도 그의 모습을 잠깐잠깐 찾을 수 없게 될 정도였다.

시야를 가리고 신경을 빼앗는 그런 상황 속에서 천서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솟구쳐라! 그리고 떨어져라!’

결연한 의지가 원하는 바를 요구할 때, 격전의 파편들과 파천신공으로 일궈낸 환경이 그녀의 의지에 반응했다.

츠츠츳!

지면으로 퍼졌던 전류가 일순간 모이더니 지운천의 발밑을 겨누는 것처럼 살짝 솟구쳐 올랐다.

하방에서 이뤄진 갑작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위협적인 경력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운천은 의식해서 호신강기를 제대로 펼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변화는 하늘에서 만들어졌다.

공중에서 핑그르르 돌던 숙녀검의 검끝이 돌연 지운천의 정수리를 겨누었다.

그사이 시끄러운 아래의 소란 속에서 그 경력을 미처 방출하지 못한 채 사라지지 않았던 뇌운으로부터 숙녀검까지 갈래 진 푸른 섬전(閃電)이 연결되었다.

지면으로부터 솟구친 전류.

뇌운을 타고 꿈틀거리는 번개.

미처 눈치채지 못한 지운천을 사이에 두고 벼락(霹靂)의 길이 열렸다.

번쩍!

섬광이 터지며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누구도 피할 새 없이 백광에 눈이 먼다.

쿠릉!

굉음은 그다음.

‘큭!’

선우도도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미 사후의 반응일 뿐이었다.

일시 멀었던 시야가 회복되고 있었지만, 선우도는 그걸 모두 기다리지 않고 급히 눈에 힘을 주며 직전까지 바라보았던 지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부리나케 소리쳤다.

“당장 막아!”

소리치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수직으로 수놓았다 사라지는 섬화(閃火)의 흔적 사이로 사람이 맥없이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건 틀림없는 지운천이기 때문이었다.

선우도가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손을 뻗자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떨어지는 지운천을 향해 날아갔다.

가장 찰나의 순간에 펼칠 수 있는,

토염의술(吐焰之術).

본래는 더 큰 불꽃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극심한 내상으로 환도가 흐트러진 그에겐 최선의 크기.

그 불만족의 불안 속에서 선우도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연달아 펼쳐지는 상황을 지켜본다.

그가 쏘아낸 불꽃을 쫓듯 허룡, 영무, 비작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사이 마치 시체처럼 땅에 떨어져 널브러지는 지운천의 위로 불꽃이 지나쳐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칠흑의 안개를 뚫고 나오며 자신에게 달아든 불꽃을 손으로 쳐내버리는 필사적인 표정의 천서은이 보였다.

우우웅-!

한 끗 차로 먼저 도착한 세 환마인이 다시 환도역장을 펼쳤다. 그러나 완벽한 역장의 방벽을 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반드시!’

이미 천서은이 벽력의 기운을 몰고 세 사람에게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힘의 열세 속에서 그녀가 유도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한 벼락이 정통으로 적중해 버렸다. 일반인이었다면 그것으로 죽었을지도 몰랐지만, 상대의 무서움을 잘 아는 그녀였기에 그 심장에 제대로 검을 꽂지 않고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파천신공 창천벽뢰.

다급히 끌어모은 공력임에도 그 위력은 강력하다.

콰르르릉!

“크윽!”

“컥!”

“으억!”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역장이 흩어져버리면서 세 사람이 달려왔던 방향으로 비명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때마침 가까이 떨어지는 숙녀검을 붙잡자 벼락으로 달궈진 검신의 열기가 손바닥에 전도되었다. 그러나 인지할 틈 따위 자신에게 주지 않은 채, 바로 역수검으로 돌려 지운천의 심장을 겨눴다.

그 순간 천서은은 깜짝 놀랐다.

후욱-, 텁!

대자로 뻗었던 지운천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내리꽂히는 검신을 그대로 손으로 잡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흑검이 붙잡혀 당황한 천서은의 감각에 지운천으로부터 마기의 응집이 느껴졌다.

지운천의 부릅뜬 눈과 눈이 마주치는 찰나, 천서은이 본능적으로 좌수에 벽력장의 기운을 담았다.

하지만, 천서은이 채 손바닥을 내지르기도 전에 지운천의 장력이 어느새 그녀의 복부에 닿았다.

파앙!

“푸웁-!”

내장을 파열시킬 듯 폭발하는 경력.

검마저 손에서 놓친 채 천서은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멀리 날아갔다.

그녀가 뿜은 피를 얼굴에 뒤집어쓴 지운천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며 멀어지는 천서은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는 듯 손에 쥔 흑검을 고쳐 쥐고 그녀의 심장을 노려 던졌다.

피잉!

화살처럼 쏘아진 숙녀검의 검은 검영(劍影).

하지만, 지운천의 의도대로 제 주인의 심장을 뚫지 못했다.

숙녀검은 천서은의 왼쪽 가슴에 닿기 직전 허공에 뚝 멈추었다. 그녀의 신형이 계속해서 멀어지는 틈에 흑검은 맥없이 땅에 떨어졌고, 그런 천서은의 뒤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그림자를 지운천이 알아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타났군, 진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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