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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41화 (241/432)

241화 - 제44장. 자천은 다시 창천이 되었으나 (3)

* * * *

“네가 환도(幻道)를 열어라.”

“아들아, 네가 환도를 이어라.”

천마신교의 교주가 3대를 이어 지금에 이르렀다면 환도마종 환도신마의 자리도 2대에 이르러 지금에 이르렀다.

구주마종 아홉 갈래로 대표되는 마도는 다른 측면으로 바라볼 때, 두 부류로 또 나눌 수 있었다.

스스로 마도에 도달한 종파 그리고 천마의 도 아래 분화되어 도달한 종파.

전자는 일월마도와 성혈마도였고, 후자는 나머지에 해당했다.

혈마도는 그 중 어디로 분류할 수 없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었다.

구마진은 천마도 아래에서 혈마가 되었으나 최초의 혈마 원건이나 지금의 진도건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전자의 일월마도와 성혈마도도 천마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은 것은 아니나 최소한 저마다의 본류가 존재하고 거기에 최초의 마인 단용후와 뜻을 같이하면서 스스로 마도에 오른 종파들이었다.

후자는 직접 그 마공과 마기의 성질을 파생시켰거나 미완성된 잠재력이 천마도 아래에서 재탄생해 성장하여 구주마종에 오른 경우였다.

후자 가운데서도 환도마종은 천마도로부터 최초로 갈라져 나온 분파였다.

단용후는 환도를 마도대의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열쇠’와 같다고 하였다. 워낙 오래전에 남겼던 말이기에 지금은 이를 아는 자는 매우 드물었지만, 제 아비에 이어 환도신마의 대를 이은 선우도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자였다.

선우도는 지운천보다 앞서서 청성산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성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도성에 환도강마대진계가 펼쳐지고 마침내 때가 되자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환의접혼대법(幻依接魂大法)을 펼치기 시작했다.

환의접혼대법.

환도의 힘을 빌려 생명체에게 혼을 투영하고 빙의하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하는 술법.

당연히 술자는 모든 위협이 무방비한 상태가 되니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보위가 필수적이었다.

그렇다면 환도신마는 무엇에 빙의한 것일까?

지운천이 나타난 건 그로부터 반 시진 가까이 흘렀을 때였다.

그는 환막 뒤에 숨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환도신마를 흘끔 보고는 영무와 허룡에게 지시하여 환도강마진계를 전개하도록 했다. 또한, 환진의 결계 안에 갇히게 된 모든 청성파 인물들을 척살하도록 했다.

일들이 착착 정리되고 청성파도 의도대로 경내에 집결하게 되자 지운천은 비로소 청성산에 오르기 직전 허룡과 맹호를 불러 마지막 지시를 남겼다.

“만약 진도건…… 붉은 머리, 붉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온다면 싸우지 말고 청성산으로 길을 열어라. 이화림의 감시자들이 도등까지 놓아가며 펼쳤던 환진을 깨뜨린 자가 그자이니 너희의 상대가 아니다. 그때도 노우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돌아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고.”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외에는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도 좋다. 물론 너희의 주 임무는 노우의 보위이니 그것을 최우선으로 해서 판단해라.”

“알겠습니다.”

지운천이 산을 오르면서 모습을 감추고 영무와 허룡은 다시 선우도 곁에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흐윽!”

갑자기 들려온 신음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두 시선이 선우도가 앉은 자리로 모였다.

“흡!”

이번엔 둘이 보는 상황에서 다시 신음이 들려왔다.

선우도의 일그러진 표정과 악다문 입 모양은 그 신음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한다.

“피?”

그때 허룡이 놀라 조용히 읊조렸다.

선우도의 입가에 검은 피가 맺힌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각혈량이 점점 많아지는지 조금씩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거기다 이어서 코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면서 무슨 고통을 참아내는지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신경 줄이 도드라지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설마!’

상황을 유추해보던 영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그의 상식적인 기준 아래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 * * *

붉은 기운을 머금은 검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자루만 이기어검술로 다루는 것도 지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데 자그마치 열 자루의 검이 오직 한 사람에 의해서 저마다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검에 찔리고, 베이고, 관통당하는 소리가 비명과 함께 여기저기 들려오고 있었다.

그 시전자가 진도건이라는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의 정신을 흔들어놓고자 서문질과 천혈강시가 합심하여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진도건은 한 자루 흑검에 두른 붉은 검강만을 가지고 신기에 이르렀다고 할만한 신속의 쾌검으로 쏟아지는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반격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혈마단에 축적된 상당량의 기운을 혈마가 가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도건이 가용하는 내공은 하단전에 축기된 파천신공의 기운과 혈마단의 일부 기운뿐이었다.

“크하하하! 이 환진 안에서 너와 나는 실로 무적인 것 같구나!”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큭큭! 조금만 더 놀고.”

진도건은 조금 걱정됐다.

환진 안이라 혈마의 의식이 현세에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이렇게 신나서 활개치는 걸 보니 환진이 사라지거나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시 잠들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혈마는 그 의식이 깨어날 때마다 진도건의 기억과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흡수했다.

환진 속에서 혈마의 의식이 진도건의 의식과 계속 공존하며 현세에 존재한다. 그것은 다시 얘기하면 삼단전의 능력을 진도건과 혈마가 분담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육신의 통제권을 진도건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혈마는 제한적이나마 중단전과 상단전의 잠재력을 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이는 곧 혈마단의 활용과 염력 사용까지 순수한 혼신(魂神)의 격으로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진도건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가 바랐던 것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환도종 마교도를 공격하는 열 자루의 검을 통제하는 건 바로 혈마였다. 그의 감각은 사각지대가 없었으므로 사방 모든 공간의 적들은 그의 목표가 되었다.

“몰아붙여!”

당주형이 소리치며 백기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간에 위협하던 환영은 사라지고 유영하는 검들이 돕고 있는 이상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건방진……!”

백기린은 그 실력 자체만 놓고 봐도 여전히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 많던 부하들이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들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전세가 이렇게 역전되어 버리자 서문질은 이 흐름을 어떻게든 끊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도! 놈을 붙들어 매라!”

쩌렁쩌렁한 외침.

선우도가 과연 누구의 이름인지 장내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추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혈강시의 움직임이 급변했기 때문이었다.

천혈강시를 조종하는 건 바로 환도신마 선우도였다.

환의접혼대법을 통해 천혈강시에 빙의한 선우도는 본인의 무공을 거의 팔할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환진의 비호와 그 힘의 증진을 누리고 있는 이상, 실상 본 실력 대부분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구주마종의 두 신마를 진도건이 상대하는 셈.

접근하는 천혈강시를 노리고 진도건의 쾌검이 찰나 네 번의 참격을 베었다.

슈루루루!

참격에 의한 검강이 천혈강시에 적중하는 순간, 기대했던 충격의 반발은 느껴지는 것 없이 마치 고인 물을 검으로 베는 듯한 물렁한 느낌이 전해졌다.

충돌점에서 허공으로 퍼지는 파문의 아지랑이가 진도건의 검격이 환술에 막혔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역시 맞았어……. 이 자 대단히 위험하다.’

천혈강시에 빙의한 선우도는 진도건에 대해 매우 큰 경각심을 품고 있었다.

분명 검격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천혈강시의 단단한 피부에 조금씩 생채기가 늘어나고 있었다.

순간적인 파괴력이라면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도 폭발하는 화약의 위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만한 규모의 환진에 의해 집중되는 보호력마저 대부분 상쇄시킬 정도로 그 절대적인 성능에 자신감이 있었던 선우도였다.

처음 맞부딪쳤을 때 진도건의 검격에 의해 천혈강시의 육체에 큰 자상이 새겨졌을 때만 해도 환진의 힘을 일부만 가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도 전체에서 벌어진 무림인을 대상으로 한 살육에 환영의 힘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새로운 적의 개입을 막기 위한 성도성 외곽의 환막을 제외하면 여력을 모두 천혈강시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도건은 자신의 힘을 이기어검술에 나누고 있음에도 여전히 핏빛에 물든 검기는 환진의 방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어쩌면 저 붉은 기운이 환진의 힘을 잠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기어검술이 끝나면…….’

환도신마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걸 당장 멈췄다.

반대로 생각을 역전시켜 아직 그에게 시간이 주어졌음을 인지한다.

환마대능력(幻魔大能力).

환진을 통해 천혈강시의 육체에 공급되는 마기가 환도신마 선우도의 마공이 되어 온몸에 스며들 듯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에 천혈강시 등에 새겨진 다귀면(多鬼面) 형태의 술식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집단을 상대로 한 최적의 환술.

일순간 푸른 광휘가 폭발하듯 퍼져나가더니 사방에 아귀를 떠올리게 하는 괴물의 환영들이 장내에 한가득 나타났다.

백귀야행의 술(百鬼夜行之術).

키에에에!

고막을 찌를듯한 귀곡성에 또다시 터져 나오며 당문인들을 공격하거나 진도건에게 달려들었다.

집단적인 귀물의 등장에 다시 당문인들이 수세에 몰리는 사이, 진도건의 적안이 흉광을 발한다.

“난잡하구나!”

이기어검술로 움직이던 열 자루 검들이 더 붉게 타오르며 사방을 휘젓고 다녔다. 혈마가 혈마단의 마기를 더 적극적으로 쏟아붓는 사이 진도건의 검에서 혈광이 사라지고 있었다.

“으음!”

처음 느껴본 기력의 공백에 진도건이 미세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선우도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환마대능력에 의해 움직이는 마기가 손등과 상완에 걸쳐진 술식에 흐르고 역시나 푸른 광망을 뿜어냈다. 동시에 천혈강시가 진도건의 빈틈을 노리고 빠르게 접근했다.

슈슈슈슉!

진도건에게서 날카로운 검광이 뿜어져 나갔다. 그러나 붉은 기운이 옅어진 검광은 무딘 칼에 지나지 않았다.

천혈강시가 두 팔을 휘두르며 힘을 잃은 검광들을 모두 튕겨냈다. 동시에 손을 뻗어 진도건의 왼팔을 잡아챘다. 그 순간 푸른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허공에 사각 판형의 환영이 여덟 개가 나타났다.

금고형가의 술(禁錮刑枷之術).

팔방을 점유하고 나타나 피하려고 했으나 천혈강시의 악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첫 번째 판형의 환영이 날아와 진도건의 목을 관통했다. 마치 죄수의 목에 씌우는 ‘칼(枷)’과 같았다. 나머지 일곱 개 중 네 개가 각각 사지의 목을 관통해 틀어박혔고 다른 세 개는 세 방향에서 허리에 꽂혔다.

고통은 없었다.

기경팔맥부터 전신세맥까지 하단전에서부터 솟구치던 기의 흐름도 멈추었다.

금고형가지술은 적중당하면 절대 해제할 수 없는 고차원적 술식을 포함하였기에 소진되는 마기만 해도 엄청나고 술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이 환진 안에서조차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무방비 상태에 놓인 진도건의 눈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엄청난 독기와 투기를 동시에 뿜어내고 있는 서문질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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