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 제44장. 자천은 다시 창천이 되었으나 (1)
광무혈폭마공은 강력한 외공을 기반하지 않으면 절대 높은 경지를 엿볼 수 없는 마공이었다.
이 마공을 통해 분출되는 마기는 근골을 대폭 강화함과 동시에 근신경계까지 더 예민하게 만들어서 절대적인 완력과 반응, 동작의 속도를 배가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신체적 훈련도 병행해야 했는데 외공의 성장은 인체의 복잡한 구조적 성장 한계와 결부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달성할 수준 이상부터는 자연적인 한계에 짓눌리게 되니 상대적으로 성장 구조가 단순한 편인 내공의 성장과 그 균형을 맞추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혁무술의 키나 골격, 근육의 밀도가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 가까이 큰 것은 실상 그러한 부작용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극단적인 성질로 인하여 역으로 기공의 경우 효율은 급감하여 강기공조차도 신체 강화를 위한 방편 그 이상의 신체 밖 분출은 무척 어려웠다.
신체 강화와 신체 부하가 양날의 검처럼 균형을 이루며 성장하게끔 했으니 기공의 분출에 집중하다가 이 균형이 무너지면 그 말로는 자멸뿐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혁무술의 호신강기 방호력은 상당히 굳건한 편이었음에도 신외지경(身外之境)까지, 피부 밖으로 두껍게 형성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침투하는 경력의 피해는 오롯이 몸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허점이 있었다.
……꽈르릉!
호신강기 위로 천서은의 강기가 충돌하는 순간, 전류가 그 내부로 침투하여 감전시켰다.
“으그그그……!”
신경 하나하나를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혁무술의 악다문 입에서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 호신강기가……!’
호신강기에 균열이 가면서 충격과 고통이 더 크게 전해졌다.
얇은 호신강기를 뚫고 침투한 전류는 신경계에 피해를 가져왔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마기의 운용이 반사적으로 일어나면서 가뜩이나 얇은 호신강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크아아악!”
혁무술이 괴성을 지르며 쌍권을 내질렀다. 그대로 덤벼든 천서은을 떼어내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광무혈폭마공의 마기는 신경계를 빠르게 돌려놓긴 했지만, 천서은과 충돌할 때마다 찰나 간 마비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퍼퍼펑!
그를 쫓아 연신 기공을 토해내는 천서은과 끊임없이 빈틈을 파고들어 공격을 꽂아 넣는 안효철을 상대로 혁무술은 이미 스스로부터 위태롭다는 강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상극.
성질의 상극이 아닌 무공이 가진 구조적 상극.
불과 며칠 전, 금태하의 가공할 무공에 염황신마가 조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태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 그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천서은이 그에게 이만한 위협을 안겨준다면 파천신공의 진정한 경지를 이룬 천무경과의 충돌을 과연 엄두나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물며 안효철이 지금은 그녀의 옆에서 싸우고 있으니 천무경을 대면하는 것과 같은 위협에 직면해있음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식이면 사냥당하는 건 내가 될 것이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지? 빌어먹을!’
천서은과 안효철의 연수합격(聯手合擊)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안효철의 귀신들린 박투술로 인하여 천서은은 정면충돌의 부담을 덜었고, 이미 천무경과 대련 경험이 있던 안효철은 파천신공의 특징을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있어서 보조를 맞추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천서은의 검격은 파천신공이 갖는 벽력의 성질로 인해 혁무술에게 충분히 위협이 되었고 기공술은 훌륭한 원거리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혁무술 그 자신은 천자철갑을 활용한 절대적 방패로 혁무술의 활동반경을 틀어막으니 격전의 우세를 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콰즈즈즈!
“흐아압!”
천서은이 기합을 지르며 이번엔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벽력의 기운을 쏟아내면서 검격이 혁무술의 이마를 향해 똑바로 떨어졌다.
북천검법 낙양벽중의 일초로 발휘되는 검력과 벽력의 기운이 조화되어 그 중후함이 배가 되니 날아드는 기세가 매우 무섭다.
‘이년이 기가 살아서 정면으로!’
안효철이 거리를 벌린 상황이었기에 혁무술은 그녀에게 집중하여 마공을 운용할 수 있었다.
광무혈폭마공 광극점(狂極點).
주먹 끝 한 치 앞에 일점 집중되는 공력은 화강암마저 으스러뜨리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
정권 일격에 검을 박살 내고 내상을 입혀 천서은의 예기를 꺾어놓을 참이었다.
훅!
충돌하려는 순간 검의 궤적에 변화가 일어났다.
참격은 검신의 잔상만을 남긴 채 혁무술의 주먹을 흘려보냈다. 변화는 검 끝이 물결을 그리며 파고드는 검세로 전환되니 그 수법이 매우 날카롭다.
야천유운검 야천은월(夜天隱月).
검격이 몸에 닿는 순간, 혁무술의 자세가 어느새 바뀌어 있다.
내질렀던 주먹은 회수되어 손바닥을 펼치고 다른 손은 그녀를 끌어안을 듯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빨라!’
그녀의 변초는 예리했지만, 혁무술의 대응속도는 자신의 간격 안에서 절대적이었다.
검광은 어깨를 스쳤고 그 틈에 혁무술의 대응이 그녀를 우악스럽게 덮쳤다. 일순간 천서은이 검을 놓으면서 몸을 회전시키며 장력과 각퇴의 연쇄를 펼친다.
파바바방!
벽력장과 충뢰척(衝雷踢)의 전환 속에 벽력기가 연신 번쩍였다.
하지만, 이 간격은 혁무술의 것이었다.
신경을 자극하는 감전의 효과가 혁무술의 움직임에 찰나 간 제동을 걸고 있음에도 혁무술의 예리한 감각은 시간을 더 세밀하게 쪼개어 그 틈바구니로 주먹을 밀어 넣었다.
쩌저정!
극한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신경계의 영역에서 혁무술의 주먹이 천서은을 상대로 무자비함을 발휘할 뻔했다.
거의 동시에 터진 연속된 굉음에 천서은과 혁무술이 동시에 밀려났다. 그리고 어느새 접근했었는지 혁무술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은 안효철도 갑자기 솟구친 발끝에 명치를 얻어맞고 몸이 붕 떠오르고 있었다.
천서은이 복부를 쓰다듬으며 금세 자세를 고쳤지만,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큰 내상을 피하기 어려웠어. 맨손 거리에선 어쩌면 도건보다 빠를지도…….’
그녀도 기회를 엿보고 덤벼든 것이었으나 광혈신마라는 이명과 그 폭발적인 반사신경은 그녀의 예상보다 더 빠르고 무거웠다.
“칫.”
혁무술로선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기회를 노렸던 것처럼 혁무술도 천서은을 무너뜨려서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일격 직전에 잠깐 공수를 교환했던 그 시간이 안효철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그만큼 천서은의 박투도 상당한 수준과 대응을 보여주었단 얘기였다.
안효철도 설마 자신에게까지 반격할 줄은 몰랐었기에 혁무술의 대응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명치 부분에 느껴지는 고통을 의식하며 천자철갑의 흉부를 쓰다듬었다.
‘지운천이란 자에게 일격을 당하고 나서 천자철갑이 신음하는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방호력이 약화되었어…….’
방금 당한 혁무술의 반응도 제대로 경력이 실리지 못했을 것인데 그 충격의 상당량이 육체까지 닿고 있었다.
안효철의 심정은 조금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세의 유불리가 아닌 다른 복잡한 원인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그 원인의 첫 기점은 바로 천자철갑에 있었다.
‘어떻게 할까…….’
세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교환하고 나서 천서은과 안효철이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처럼 혁무술도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천서은과 안효철을 차례로 바라볼 때, 불현듯 조금 전 일이 떠올랐다.
“진도건이란 놈은 어딨지?”
혁무술이 천서은을 보며 물었다.
갑자기 말을 거는 게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지만, 진도건을 찾는 물음에 천서은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이 그이를 왜 찾지?”
“역시 네년들이 나타났을 때, 그놈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일행이 맞긴 한가 보구나.”
마치 진도건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투에 천서은이 인상을 찌푸렸다.
“존자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셨는데 네년을 쳐 죽이면 대체 누구에게 전달해야 하나 갑자기 고민되어서 말이야.”
천서은이 안효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 지운천이란 자가 했던 말을 얘기하는 거로군.”
“지운천?”
그 이름이 이 자리에서 나올 줄 몰랐던 천서은으로선 정말 뜻밖이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본 혁무술은 이를 이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몸이 얘기해 봐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네놈이 얘기해주지 그러냐?”
“……나 지운천이 청성산에서 무덤을 파고 기다리겠다…….”
“확실한가요?”
“그렇네. 여기에 나타나 그 말을 남기고 떠났지. 그런데 그자를 아는가? 보통 심상치 않은 자인 것 같은데…….”
천서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악연이 있지요. 나와 그이를 갈라놓으려 했으니까요. ……결국, 본색을 드러낼 거로 생각했어도 이런 식일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왜 하필 청성산에…….”
천서은의 안색이 재차 어두워졌다.
면주에서 청성칠자 중 한 사람인 정평자 주윤과 만났던 일과 지운천이 결국 마교도였다라는 결론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두 가지를 더하면 나올 수 있는 건 청성파를 상대로 한 전쟁밖에 없었다.
천서은이 다시 혁무술을 돌아보았다.
뜻한 바가 먹혀들어 갔다고 확신한 혁무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지운천. 그자는 대체 누구지? 그도 구주마종의 신마 중 한 사람인가?”
“크크크! 글쎄, 지금이야 우린 그분을 존자라 부를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야. 내 생각엔 아마 청성산에 가면 그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그녀를 꼬드기는 말.
거기에 혁무술이 한 번 더 말을 내뱉으며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다.
“그런데 괜찮겠냐? 본교는 오늘 사천의 세 정파를 모두 무너뜨릴 계획인데, 청성파에 과연 존자를 감당할 강자가 있는지 의문이군. 크하하하! 뭐, 신경 쓸 필요 없다. 굳이 지금 가봐야 멸문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혁무술의 말에 천서은의 머릿속에 사천에서 벌어지는 격전의 정황이 빠르게 그려졌다.
아미파를 습격했을 사혈마종, 성도 당문을 노리고 펼쳐진 환도마종의 거대한 환진, 구룡문을 무너뜨린 광혈마종의 지원까지.
자그마치 세 개의 마종과 세 명의 신마급 절대고수들이 개입하는 이 전황 속에서 광혈신마가 지운천을 존자라 존칭한다면 그도 최소 그 정도 수준의 절대고수일지 모른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더구나 제갈무문의 사천무림 방어 계획은 마교의 계획을 간신히 쫓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를 막지 않으면 정말 청성파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내가 해야 해. 청성파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그자와의 악연을 결자해지(結者解之)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가야 해.’
천서은의 고개가 돌아가 안효철과 눈빛을 교환한다.
안효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게. 이 전장에서 나를 제외하면 그런 숨은 강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천 맹주의 피를 이은 자네뿐이겠지.”
“제가 가도 괜찮겠습니까?”
“걱정 말게나.”
천서은은 안효철이 걱정스러웠다. 그가 보여준 무위가 천하오절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수준인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따져본다면 안효철이란 야인을 직접 검증하고 천하오절의 명성을 부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부친 천무경이었기에 숨겨둔 한 수가 있으리란 기대를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곧 도우러 뒤따르겠네.”
역시나 말에 신뢰가 있는 느낌인지라 천서은은 기분 나쁘게 웃는 혁무술을 한 차례 노려보고는 바로 서쪽을 바라보며 경공을 펼쳤다.
그녀가 떠나자 곧바로 안효철과 혁무술이 다시 거세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전장 너머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서은이 떠나버린 상황에서 혁무술은 지운천과 조우한 이후,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진실을 꺼낼 셈이었다.
“안가야, 너 청성산에 지금 누가 있는지 알고 있나?”
찰싹 달라붙어 격렬하게 주먹을 부딪치면서 한창 기세를 올린 혁무술에게 밀려나던 안효철은 싸움 중에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천서은이 그곳으로 떠난 상황에서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와락!
혁무술이 일순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그 팔을 휘감아 붙잡고 안효철을 바짝 끌어당겼다. 어느새 혁무술이 안효철에게 귓속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거리가 가까워져 버렸다.
타앙!
정말 가까이 붙어있었음에도 그 간격을 이용해 몸통을 부딪치자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렇게 떠밀리듯 거리를 벌린 안효철의 안색은 아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정말로 남긴 혁무술의 귓속말은 그만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