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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33화 (233/432)

233화 - 제43장. 환도강마대진계(幻道降魔大陣界) (1)

안효철은 백제성 전투의 내용이 어떠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금태하와 격전을 치른 광혈신마의 현 상태는 절대 정상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는 금태하를 잘 몰랐지만, 천무경은 알고 있었다. 천하오절 가운데서도 천무경, 강정학, 금태하를 삼강이라 하여 따로 또 추앙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고 있었다.

광혈신마가 아무리 강하고 또 염황신마와 합공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피해 없이 금태하를 물리쳤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눈앞에서 그를 향해 무지막지한 주먹을 날리는 광혈신마의 모습엔 확실히 사투의 여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무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안효철의 체격이 절대 작지 않음에도 머리 하나 이상은 더 큰 체격으로, 오히려 그보다 반 치는 앞서는 속도를 보여주고 있으니 새삼 마교의 신마라 불리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는 기분이었다.

꽈꽝!

“으음……!”

안효철이 펼쳐낸 두 손의 방어를 헤집고 혁무술의 두 주먹이 어깨와 복부를 연달아 강타했다.

굉음이 울려 퍼질 정도의 충격 속에서 안효철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는데 오히려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는 건 혁무술이었다.

‘뭐 이런 반탄력이……!’

금태하의 그 단단한 호신강기를 때려도 겪어보지 못했던 반탄력이 느껴지자 당혹스러웠다.

안효철의 전신을 두르고 있는 검은 갑주.

천자철갑이라는 기보에 대한 내용은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 방호력이 황당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분명 경질의 편갑들이 엮여 전신을 두르고 있음에도 움직임에 불편함을 주는 기색이 없는 듯하니 혁무술도 이런 게 진정한 기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효철이 멈칫거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팟! 퍼퍼퍽!

금새 혁무술의 품으로 파고들어 짧은 틈새 속에 주먹을 떨쳐내니 육중한 몸체에 그대로 적중했다.

“크으으……!”

혁무술의 거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신음은 금태하에게 당했을 때처럼 진짜 고통에 찬 것이었다.

팡!

공간을 좁히며 안효철이 재차 따라붙었다.

혁무술의 팔이 그 자리를 휩쓸었으나 안효철은 비스듬히 피해내면서 어깨와 천자철갑의 반탄력으로 그 팔을 강하게 튕겨냈다.

퍼퍽! 쩌엉!

“끅……!”

신체에 회전력을 가하며 복부에 일권일퇴를 꽂아 넣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수직으로 솟구친 안효철의 발이 일찍 반응하지 못한 혁무술의 턱에 작렬했다.

무쌍류(無雙流).

적수공권의 실전적 박투술.

신체 모든 부위를 이용하여 공격할 수 있어야 함이 실전적 박투술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법이라면, 동작의 흐름과 각 단계는 마지막 일격에 총화(總和)를 쏟아붓도록 하는 힘의 연결을 매듭짓는 요체라 할 수 있다.

턱에 꽂히는 일격으로 혁무술의 거구가 공중에 잠깐 떠올랐다가 두 발로 착지하며 비틀거렸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무게중심을 잡는 듯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뚝 멈추더니 멍한 눈으로 안효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이 끊어졌는가!’

천자철갑의 반발력에서부터 안효철의 공격들까지. 전체적인 충격과 더불어 금태하와의 격전으로 누적된 피로까지 더해져 폭발한 것이었다.

쿵!

안효철의 발이 땅에 꽂혔다.

꽂히자마자 발끝이 세워져 비틀리더니 그 회전력이 허리로 옮겨 갔다. 허리의 회전에 맞춰 몸을 낮추면서 다음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몸은 일촉즉발의 화약고(火藥庫)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력이 주먹에 담겨졌다.

그 순간,

“거기까지.”

제동을 거는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안효철과 혁무술 사이로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나타난 젊은 사내.

느닷없는 등장에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안효철의 신형이 멈칫했다. 그 순간에 이미 일전의 몸짓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고 대신 그 공간을 싸늘한 긴장감이 메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수다.’

안효철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육안으로 보이는 미남자의 연령은 고작 이립(而立:30세)에서 몇 살 더 먹은 수준으로 짐작되지만, 느껴지는 무공의 경지는 일갑자(一甲子:60년) 이상을 산 화경의 고수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치 천무경을 대면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더 위험한 내력을 갖춘 자였다.

카르르르르…….

천자철갑마저 그 위험함을 인지하고 있는지, 혹은 착용자인 안효철의 긴장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주 조용히 울부짖는 소리가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물건을 가지고 있군.”

사내가 안효철의 검은 갑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들은 건가?’

천자철갑의 내적 울음에 반응한 듯한 사내의 말과 그 기분 나쁜 웃음에 안효철이 바짝 긴장했다.

사내는 안효철의 기습을 걱정하지 않는지 고개를 돌려 혁무술을 쳐다보았다. 안효철은 그래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사이 사내는 여유로운 태도로 반쯤 감긴 채 초점을 잃은 혁무술의 눈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회복력은 구주 가운데 으뜸일 텐데도 이 지경이라니, 금태하가 대단하긴 했나 보군.”

사내는 손을 뻗어 혁무술의 명치에 손바닥을 데었다. 그리고 내공을 주입하는 듯 이질적인 기류가 그의 팔에서부터 발현되더니 혁무술의 몸통에 스며들듯 사라졌다.

그 기류는 분명한 마기였다.

“……허억! 헉! 헉!”

기를 불어넣자마자 혁무술의 눈이 번쩍 뜨여지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사내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뭐라 말하려는데 사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검지를 입에 대었다.

“쉿. ……생각보다 내상이 있어. 백제성에서 고생이 많았군. 그런데 고작 이 정도에 무너지려고 천산에 다녀온 건 아닐 텐데?”

“……물론입니다.”

혁무술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내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쪽팔려 미칠 지경이었다.

사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안효철을 쳐다보았다가 동쪽 멀리 시선을 던졌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성도 동부에 벽을 치고 있는 산자락 가운데 그곳을 가로지르는 긴 강 유역 부근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안효철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진도건이 오거든 전해줘. 나 지운천이 청성산에 무덤을 파고 기다리겠노라고. 아하하하!”

자신을 밝힌 사내, 지운천이 호탕하게 웃었다.

너무나 여유롭게 웃는 모습에 안효철은 이상한 허무한 감정을 느꼈다. 묘하게 긴장이 살짝 탁! 하고 풀어지는 그런 느낌이 뒤따랐다.

그 순간, 지운천의 모습이 그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운천의 손바닥이 안효철의 천자철갑 가슴부에 얹어졌다.

위험을 인지하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타앙!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

묵직하면서도 폭발적인 충격이 안효철의 가슴을 강타했다.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그의 표정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입가로는 검은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천자철갑을 뚫고 들어올 충격이라니!’

안효철은 기연으로 천자철갑을 입수한 이후로 내상이라는 걸 잊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강한 충격에 천자철갑의 편갑들이 비늘 서듯 일어나 파르르 떨어대는데 안효철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쿨럭, 쿨럭!”

안효철이 기침을 토해내면서 싸울 자세를 취하자 지운천은 오히려 혁무술의 옆으로 크게 한 발 뛰어 물러났다.

“이 정도면 균형이 맞겠지. 그런데 그거참, 귀물(鬼物)이 따로 없군. 꽤 탐나는 물건이야, 후후후!”

지운천은 그 말을 남기곤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경공을 펼치며 전장을 훌쩍 떠나버렸다.

빠르게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안효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화경의 경지를 이루고 천하오절의 명성을 거머쥔 이후로, 어디 열 살짜리 애 다루듯 다뤄져 버린 이 상황이 꿈에라도 나온 적이 있었던가?

“멍청히 있지 마라, 아가야! 네놈은 운이 좋았어!”

슈욱, 쾅!

혁무술이 무서운 기세로 덮쳐와 휘두른 주먹을 막아내고 거리를 벌린 안효철이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저자는 대체 누구냐?”

“크크크……!”

혁무술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는지 비릿한 조소만 머금었다.

비작은 옆에 말 한 마리를 더 두고 고삐를 챙긴 채 가만히 자신의 말 안장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환도작안술(幻道雀眼術)은 그가 자랑하는 술법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천 리 밖도 내다볼 수 있는 술법이었다. 두 눈에 그려진 날개와 근처 기형적 문양에 푸르스름한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그 광택에 눈에도 번졌는지 눈동자뿐만 아니라 흰자위까지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의 작안은 먼 초원을 넘어 광혈종과 중천, 성도성 기병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그곳을 나와 이곳으로 경공을 펼쳐 달려오는 지운천의 모습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흡……!’

비작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급히 눈을 감았다. 곧장 다시 눈을 떴을 땐 얼굴을 감싸던 푸르스름한 기운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가 환술을 거둔 건 지운천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아직 수백 리나 떨어져 있었기에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음에도 그는 자신이 받은 그 느낌을 부정하지 않았다.

얼마간 기다리자 지운천이 빠르게 날아와 비작이 붙잡고 있던 말 위에 올라탔다.

“기다리기 심심했느냐?”

“아닙니다.”

비작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가자, 노우를 더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이럇!”

지운천이 말에 박차를 가해 달리기 시작하자 비작도 바로 그 뒤를 따라붙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그들의 좌측 남쪽으로는 환도강마대진계에 둘러싸인 성도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정면 방향엔 서부고원의 드높은 산지가 있었다.

두 사람의 목적지는 바로 성도의 북서쪽, 그리고 서부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민강 상류에 설치된 수리 관개 시설인 도강언(都江堰)의 남쪽에 높이 솟은 사천 도교의 성지.

바로 청성산이었다.

그 시점에 진도건 일행은 이화림을 빠져나와 강가에 고삐를 걸어두었던 말을 타고 광혈종과 중천이 맞붙은 전쟁터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중에 안효철의 쩌렁쩌렁한 외침까지 자그맣게나마 들을 수 있어서 중천이 전장에 합류했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저것인가……!”

전장과 함께 시야에 들어오던 성도가 자색 빛깔의 반구형 환진에 둘러싸이는 모습을 발견한 진도건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 뭐, 뭐야 저건?”

“눈에 훤히 보이는 환진이라니……. 이화림과는 다른 목적으로 만든 것이군요.”

“노리는 건 당문이겠지.”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요?”

“……힘들 것 같아. 저런 빛깔이나 형태가 천무방이 당했던 환진과 비슷한 것 같은데 내가 본 기록상으로는 외부에서는 진입할 수 없다고 했었어.”

3년 전, 장로전의 백두기와 장태환이 당시 천혼당과 지혼당 등을 이끌고 화산에 지원하기 위해 가던 중에 환도신마와 환도종이 펼친 환진에 당해 제대로 발이 묶였었다.

그때 행진 중 가장 후열 또는 외곽에서 움직이던 일부 당원들이 환진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보고를 후일 내놓은 적이 있었다.

천서은이 얘기한 건 바로 그 내용이었다.

세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도건이 입을 열었다.

“성도로는 내가 갈게. 세 사람은 중천을 도와 광혈종을 물리쳐줘. 서은이라면 안효철을 돕기에 무리가 없을 테니 광혈신마만 꺾는다면 퇴각을 유도할 수도 있을 거야.”

“괜찮겠어요?”

천서은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도건을 보며 물었다.

이화림에서 그녀의 부름에도 달려오지 않고 숲 한가운데서 멍하니 있던 진도건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마. 오히려 날 따라오는 게 위험할지도 몰라.”

그 대답에서 천서은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진도건의 표정은 진중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대답과 함께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이 아무래도 결전의 날인 것 같아. 모두 꼭 다시 보자고. 이럇!”

진도건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성도성을 향해 힘껏 달렸다.

“대형, 조심하시오!”

최현걸이 그의 등을 바라보며 힘껏 소리쳐 격려했다.

영은성은 진도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서은을 돌아보았는데 그녀의 불안정한 눈빛과 시선이 마주쳤다.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인 거야?”

“예?”

최현걸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반문하였을 때, 영은성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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