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 제42장.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번번이 겹쳐 온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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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얀 것들! 예가 어디라고 감히!”
올해 망백(望百:91세)에 이른 정화사태의 늙은 체구는 작고 가녀렸다. 하지만, 아미파 장문 방장으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수십 년간 참선으로 쌓아 올린 공력을 토대로 휘두르는 선장(禪杖)의 위력은 바위 정도는 손쉽게 쪼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빠각!
불경스러운 침입자를 향한 무자비한 징벌에 머리가 부서지며 뇌수가 튀었지만, 정화사태의 노기로 물든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을 계집 승(僧)이 기력 하나는 좋구나! 어디 밤 자리에 숨겨둔 양물(陽物)이라도 있는 게냐? 킬킬킬!”
킬킬대며 나타난 자는 비늘처럼 딱딱하게 변질된 피부와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도 듬성듬성 덥수룩한 털들에 덮여있어 매우 흉측스럽게 생긴 자였다.
그는 바로 사혈주 녹주팔지의 수괴 괴흉독마(怪凶毒魔) 올돌괴(兀突魁)였다.
올돌괴의 조롱은 아미파에 속한 그 누구라도 듣기에 매우 끔찍하고 무례한 막말이었다.
아미파는 다른 어느 사찰이나 불교구(佛敎區) 무림 문파들 가운데서도 비구니가 유독 많다는 게 특징이었다. 세상에 두루 빛을 비추고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행을 몸소 실천하는 보현보살의 가르침은 여승들이 숭배하기에 적합한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비구니가 많은 사찰은 종종 속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색을 탐하는 비구들로 인해 간혹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이는 아미파라고 다르지 않았는데 그런 진통은 자연스럽게 비구니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장문 방장의 자리도 비구니에게 승계하는 게 규율처럼 남게 된 곳이기도 했다.
비구니가 장문 방장이고 아미파라는 명문정파의 상징성 때문에 규율은 단단하게 잡혔으나 그렇다고 사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색욕을 입에 올리는 건 매우 모욕적이고 불경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아미파도 당문 못지않게 사혈주와 많이 다퉜고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단순히 살행의 문제가 아니라 아미파의 비구니들을 납치하여 매음(賣淫)하기도 했으니 철천지원수나 다를 바 없었다.
“아미타불!”
이런 자들 앞에선 일단 냉정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에 정화사태가 불호를 외우며 심신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고막을 통과하는 제자들의 비명 등과 같이 죽음을 의미하는 여러 소음이 그녀의 마음을 연신 뒤흔들어놓았다.
“회개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아귀(餓鬼) 같은 자로다!”
정화사태가 무상대정신공(無想大靜神功)을 운용하자 웅혼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의 신형이 지면을 미끄러지듯 나아가 순식간에 올돌괴와 거리를 좁히더니 적갈색 선장이 벼락같이 떨어졌다.
따앙!
마치 단단한 물건끼리 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선장이 올돌괴의 머리 위에서 그의 두 팔에 막혀 멈춘 걸 보고 정화사태가 적잖이 놀랐다. 그의 비늘 피부가 온몸 전체를 덮은 건 아니었으나 그렇게 굳어진 부분만큼은 도검불침(刀劍不侵) 수준이라 내공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방호력을 자랑할 수 있게 했다.
“묵직하구만!”
올돌괴가 혀를 내두르며 선장을 뿌리쳤다. 상대적으로 큰 그의 체구가 정화사태를 덮치며 단단한 두 손으로 할퀴어대니 정화사태의 선장이 황망히 움직였다.
소현사태(昭顯師太)는 정화사태와 같은 스승을 두었던 아미파의 장로였다. 그녀도 정화사태와 마찬가지로 복호사(伏虎寺)의 경내 침입을 허용하지 않도록 최후방에서 방어하고 있다가 올돌괴에게 밀리는 정화사태를 발견했다.
“방장 사자(師姉)!”
정화사태의 위급함을 본 소현사태가 달려와 올돌괴의 등을 노리고 장법을 쳐냈다.
퍽!
“윽!”
소현사태의 접근을 알았지만, 올돌괴가 자신의 방어력을 믿고 얻어맞았다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휘청거렸다.
정화사태의 노련함이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지팡이는 벼락 맞은 백동백(白冬柏)나무로 만든 것으로 표면이 붉고 매우 단단했다. 또 가지들을 잘라낸 흔적이 있는 장두(杖頭)는 구부러져 있어 뭔가를 걸어 넘기기에 적합했다.
비스듬히 보법을 밟으며 선장을 휘두르니 장두에 올돌괴의 두 팔이 걸려 딸려왔다. 올돌괴의 신체 중심이 재차 무너지는 사이, 어느새 낮게 공중제비를 도는 정화사태의 두 발이 올돌괴의 두 팔을 재차 쳐내면서 선장을 매섭게 휘둘렀다.
복마장법(伏魔杖法) 마부운멸(魔浮雲滅).
마귀란 뜬구름처럼 결국 허망하게 사라질 것.
선장에 담긴 파사현정의 경력이 그대로 올돌괴의 관자놀이에 적중했다.
빠악!
‘됐다!’
올돌괴의 목이 옆으로 크게 꺾이면서 그를 바로 뒤에서 기습했던 소현사태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관자놀이는 얼굴의 급소이니 일반인끼리의 싸움에서도 제대로 적중하면 기절, 무림인의 경력에 실린 공격에 적중하면 즉사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쾌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홱 돌아갔던 올돌괴의 머리가 그녀에게 얼굴이 보일 정도로 돌아갔는데, 그 얼굴에 흉악한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었기 때문입니다.
“너부터다, 이 육시랄 년!”
올돌괴의 욕지거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휘날리는 봉두난발 아래 관자놀이가 경화된 비늘 피부로 덮인 걸 봤기 때문이었다.
‘위험!’
순간 시야를 덮을 정도로 커지는 올돌괴의 장력에 맞서 소현사태도 쌍장을 펼쳤다.
금정면장(金頂綿掌).
쩌엉!
두 사람의 펼쳐낸 장력의 충돌에 공압이 터져나갔다. 두 발로 우뚝 선 올돌괴와 달리 소현사태는 뒤로 주르륵 밀려났으니 누가 한 수 위의 실력자인지 설명해주는 구도였다.
울컥!
“우웩!”
소현사태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검은 피를 게워냈다.
무상대정신공이 뒷받침하는 금정면장은 무당면장의 부드러움과는 다른 부동의 강력함을 담고 있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올돌괴의 장력에 담긴 독기는 그조차 쉽게 허물어버릴 만큼 매우 치명적인 침투력을 갖고 있었다.
“사매!”
정화사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독인.
이젠 둘밖에 남지 않은 녹주팔지 중에서 그나마 사혈신마에 가장 근접한 독인이 있다면 바로 괴흉독마 올돌괴일 것이다.
“네 이놈!”
정화사태가 선장을 휘두르며 올돌괴의 뒤를 덮치는 순간, 올돌괴가 빙글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정화사태를 쳐다보는 그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푸훗!
“윽!”
삐죽 내민 입술 사이로 누런 분말이 튀어나왔다. 침에 공력을 담아 입김과 함께 허공에 흩뿌리니 단숨에 넓게 퍼져 정화사태의 얼굴을 덮쳤다.
정화사태가 당황하여 두 팔로 얼굴 앞을 휘저을 때, 올돌괴가 그녀의 복부로 일퇴를 내질렀다.
퍽!
“크윽!”
올돌괴의 발끝이 제대로 명치에 꽂혔다.
정화사태가 뒤로 크게 날아가 땅바닥을 굴렀다가 바로 섰지만, 눈은 바로 뜨지 못했다.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눈과 코, 입안의 점막으로부터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콧속으로는 악취조차 맴돌아 고통과 불쾌함이 동시에 그녀의 감각을 유린해댔다.
“킬킬킬! 그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이년아!”
올돌괴가 정화사태를 한껏 비웃으며 달려들었다. 손톱을 세워 그대로 주름진 얼굴을 할퀴려 하는 순간, 선장이 옆에서 날아들었다.
부웅!
“이크!”
올돌괴가 깜짝 놀라 뒤로 풀쩍 물러났다. 이번엔 그냥 맞고 버틸 수 없었던 것이 선명한 금광의 강기가 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복마장법 무상전변(無常轉變).
정화사태의 두 손이 선장의 중간과 끝부분을 번갈아 잡고 또한 보법을 통해 신체를 회전시키거나 무게중심을 옮겨가니 그녀를 중심으로 휘둘러지는 선장의 공격이란 그야말로 천변만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눈도 안 보이는 년이 이런 절초를……!’
오감 중 네 개가 그 기능이 마비되었으나 정화사태에겐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십 년 정성으로 불공(佛供)을 쌓은 결과가 금강의 부동심으로 화한다.
휘몰아치고 굽이치는 선장의 격풍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막던 올돌괴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지면을 스치는 선장을 뛰어올라 피하고 짓쳐 드는 격풍을 막아내면서 더욱 파고든다.
간신히 좁힌 한걸음의 거리로도 충분하다.
“후웁!”
꾸륵!
단전까지 깊이 한 호흡 들이마시자 목부터 폐부, 복부까지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땅으로 떨어지는 두 발이 다시 강하게 박차며 밀었을 때, 다시 쪼그라든 그의 두 손엔 섬뜩한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합마공(蛤蟆功).
신체가 부풀어 오르는 건 전신 기혈을 통제하여 공력을 증폭하는 반작용이요, 다시 수축하는 것은 그 증폭된 힘이 마침내 발원점(發源點)에 모였다는 의미다.
퍼엉!
움켜쥘 듯 손가락을 세운 쌍장이 정화사태의 명치와 복부에 정확히 적중했다.
제대로 적중했으니 이 일격으로 단전이 크게 손상되고 기혈이 뒤틀리는 극심한 내상을 입을 것이다. 독기가 온몸으로 퍼져 회복을 방해하고 신체조직을 괴사시키니 가만히 놔둬도 오래 살지도 못할 것이다.
그 기대치는 단 한 번도 실망시켰던 적이 없었거늘.
일격에 나가떨어져야 할 정화사태의 작은 체구가 한치의 밀려남도 없이 굳건하게 버티고 서있다. 영문 모를 상황에 올돌괴가 고개를 들어 살피려 할 때,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헉!”
올돌괴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땅을 박찬다. 정화사태와의 거리가 벌어지며 그의 눈에도 마침내 정화사태 뒤에 서서 그녀의 등을 받치고 서 있는 초로의 노인을 발견했다.
올돌괴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 노인은 바로 천수기륭 당혁수였다.
당혁수가 최대한 서두르긴 했지만, 그가 금정에 올랐을 때는 이미 싸움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복호승들이 중심이 되어 항마복룡진(降魔伏龍陣)을 펼쳐 대항하고 있었으나 사혈주의 용독술에 당해 벌써 여럿이 무너져내린 모습이었다.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다른 장로들은 바로 보지 못했으나 검은 피를 쏟아낸 채 바닥에 널브러진 소현사태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서 정화사태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복마장법의 절초를 휘두르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선장이 일으키는 경력의 바람 속에서 그 안에 있는 자가 올돌괴인 걸 보았을 때, 당혁수는 정화사태가 눈을 감고 있는 게 그의 독수에 당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올돌괴의 몸이 부풀자 지체하지 않고 정화사태에게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했다.
반 박자 늦긴 했지만, 손이 정화사태의 등에 닿자마자 빠르게 내공을 불어넣어 뒤틀려가는 기혈을 다시 바로 잡았다. 침투한 독기는 까다로운 것이었지만, 품에서 해독약을 꺼내 정화사태의 입에 넣을 때까지 그는 두 눈을 올돌괴에게서 한 번도 떼지 않았다.
“쳇!”
올돌괴가 당혁수와 정화사태를 번갈아 보면서 아쉬움에 혀를 찼다.
단신으론 당혁수에게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화사태와 소현사태를 상대로 했던 것처럼 기꺼이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올돌괴가 몸을 돌리자 당장 정화사태에게서 손을 뗄 수 없었던 당혁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문질은 어디 있지?”
올돌괴는 부하들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 했으나 당혁수의 물음에 잠깐 멈추고 몸을 돌렸다.
당혁수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글쎄, 주령(州令)께서 네놈을 벼르고 있으니. 뭐, 잘 찾아보시던가. 킬킬킬킬!”
올돌괴가 비웃음을 남기며 뒤로 멀찍이 경공을 펼쳤다. 그리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수하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당가주께서 납시었다! 자, 이광혈독진(以狂血毒陣)을 펼쳐라!”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도 이미 아미파 비구와 비구니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올돌괴의 명령에 이광혈독무의 잿빛 분진이 연달아 공기 중에 터져나갔다. 그 분진들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금정 일대를 독무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독무 속에서 사혈주 독인들의 눈빛이 붉은 흉광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