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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25화 (225/432)

225화 - 제41장. 먹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5)

정확히 당문이 위치한 성도 남동쪽을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좌중을 한번 돌아보고 다시 진윤지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뗐다.

“어머니, 아무래도 오늘 쉴 생각은 버려야겠습니다. 어쩌면 이곳 상황도 긴박하게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무슨 의미니?”

“저도 뭐라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환도종이 단순히 흔적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조차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감추는데 능하다면…… 이미 당문에 대한 포위망이 완성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원의 기관을 발동시키고 외원도 백성들이 다치지 않도록 미리 보내서 정리해야 합니다.”

“아직 나타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리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당환이 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한솔은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당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혈주의 행동은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으나 환도종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조치를 미리 취하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이 어미도 그건 너무 갑작스럽구나.”

면주에서 폭우를 뚫고 성도에 도착했을 땐, 하루 충분히 쉬면서 다음 일을 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번공이 이야기한 내용을 듣자마자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서둘러 결정을 내리는 당한솔의 행동엔 맥락이 없어 보였다.

아미파 이야기에 잠시 긴장했던 번공마저도 고개를 갸웃하며 당한솔을 쳐다보고 있을 정도였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당한솔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었다.

“환도종은 구주마종 가운데서도 가장 예측하기 힘든 마종. 창천맹의 제갈 군사도 사천의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으니 미리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게 어떻습니까?”

야율균은의 말에 당한솔을 제외한 당가 사람들이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대로 당한솔의 말을 따를지 말지 모두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끼익!

당향청 문이 열리면서 한 중년인이 다급하게 들어왔는데 당문 사람이 아니었다. 문밖에서 당이연의 긴장 어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거로 보아 그녀가 안내한 모양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본방의 제자요. 광아, 무슨 일이냐?”

당주형이 경계하며 묻자 번공이 나서서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당이연 못지않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유광(劉光)을 붙잡고 물었다.

“그, 급보! 구, 구룡문이 백제성에서 괴멸되었고, 금태하도 광혈신마와 염황신마의 합공에 패퇴하여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소상히 말해보아라!”

번공이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번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광이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붙들며 입을 열었다.

“금태하가 구룡문 전력을 이끌고 백제성에 있는 광혈종을 쳤는데 거기에 염황종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구룡문은 두 마종의 합공에 괴멸당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금태하도 현재 생사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그다음 날 광혈신마와 광혈종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목적지가 아무래도 이곳 성도인 것 같다고 합니다.”

“염황종은 어디로 갔습니까?”

당한솔이 급히 륜의 바퀴를 밀어 유광에게 다가가 물었다.

“염황종은 백제산 북쪽으로 사라졌는데 어디로 향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광혈종이 떠난 날은?”

“이틀 전입니다.”

“……맙소사.”

당부순이 탄식하는 소리가 당향청 안에 울려 퍼졌다. 광혈종이 출발한 시차와 무림인들의 경공술까지 고려했을 때, 적어도 오늘 밤 안에는 성도에 당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두 마종이 구룡문을 합공으로 괴멸시켰다면 전력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겠어.”

“이젠 환도종뿐만 아니라 광혈종도 걱정해야 하게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몰린다면 내원에 들어가 농성한다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청성파가 가까우니 그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게 어떻습니까? 가주님도 돌아오시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당환이 다급한 표정으로 진윤지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진윤지도 어찌 결정해야 할지 몰라 바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갑작스레 터진 급보에 그야말로 모두 공황 상태에 빠졌다.

사파삼강 중 하나인 구룡문의 괴멸도, 천하오절 흑사왕 금태하의 패퇴도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마교의 칼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극도로 긴장하게 되었다.

당한솔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여전히 륜의의 팔걸이를 으스러질 듯 쥐던 손을 풀지 못한 채 부르르 떨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야율균은이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당한솔이 그녀를 향해 올려다보니 야율균은의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진도건을 포함해 그들이 전해준 얘기들이 있잖아요. 벼랑 끝에 몰린 느낌이 들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떨어진 건 아니죠. 할 수 있는 게 뭔지 판단해봐요. 똑똑하니까.”

야율균은이 툭툭 던지듯 말하는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가 의아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지적에 깨닫는 바가 있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 사천의 일만 다루던 관성 때문인가? 너무 당황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당한솔의 눈빛이 변한 걸 보자 야율균은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당한솔이 미처 고려하지 않은 상황들이 있었다. 그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그녀의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가능한 적절한 판단을 풀어놓을 거라는 믿음은 갖고 있었다.

당한솔이 사천지형도를 바라보다가 표지석들을 막대 집게로 집어 차례대로 지형도에 붙여 놓았다.

그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저긴 무엇이니?”

진윤지가 백제성이 있는 장강삼협 아래쪽에 둔 세 개의 표지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창천맹의 제갈 군사는 계획의 핵심을 백제성이 아니라 이곳 사천 성도에 두고 있었습니다. 구룡문이 패퇴한 건 분명 예상 밖의 일이었겠지만, 가장 큰 목표가 여전히 여기인 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진도건 대협이 전한 얘기에 따르면 이곳 남쪽의 운귀산계(雲歸山系)엔 세 조직이 있습니다.”

“검림, 중천, 녹림.”

“제갈 군사가 어떻게 대처를 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도 분명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소문에 검림 총수가 염황종에 대한 원한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염황종이 백제성에 나타났다는 걸 강정학이 알았다면 검림이 이곳에 오겠는가?”

번공이 당한솔의 말에 지적하고 나섰다. 당환도 할 말이 있었는지 이어서 손을 들었다.

“중천이 백제성 쪽과 가까운 지점에서 움직였다는 건 그쪽으로의 지원을 계획한 것일 텐데 그들도 백제성으로 빠졌으면 지금 여기로 달려오는 광혈종보다 한발 늦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당한솔이 빠르게 생각을 회전시켰다. 그가 곧 고개를 저으면서도 유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요. 저분이 전한 백제성 소식엔 구룡문, 광혈종, 염황종 외 어떤 조직의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세 조직이 모두 빠져나가고 난 후의 뒷정리하려는 게 아니라면 중천이 거기로 향할 리 없습니다.”

당한솔이 번공을 보며 이어 입을 열었다.

“분타주님, 즉시 정보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중천과 검림, 녹림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주십시오. 적어도 중천이나 검림 둘 중 하나라도 앞서서 이곳으로 향하고 있어야 이 선에서 광혈종의 개입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당한솔이 광혈종 이야기를 하면서 막대 집게로 성도 동쪽을 가리켰다. 가급적이면 백성들이 모인 이곳과 먼 곳에 광혈종을 상대하는 전장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는데 그걸 보던 야율균은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화림으로 간 진도건 일행이 그들을 볼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한솔도 야율균은이 얘기한 상황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중요한 상황은 아니야. 전적으로 진 대협이 판단해서 움직일 일이라 이쪽에서는 그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유리한 선택을 해주길 바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것보다는…….’

당한솔이 고개를 돌려 번공과 진윤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은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는 게 더 급선무입니다. 분타주님, 아까 얘기했던 것과 함께 사태의 위급함을 가까이에 있는 청성파부터 남쪽에 계신 아버님과 아미파까지 모두 신속하게 전파해주십시오. 성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전력도 끌어모아야 합니다. 또 적들이 노리는 방향을 고려해본다면 아미파와 이곳 당문이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크니 청성파에 지원 요청을 같이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지금 바로 가겠네.”

번공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한솔은 그와 유광이 내원을 빠져나가도록 안내를 부탁하려고 당주형을 쳐다보았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당향청 문이 열리며 당이연이 안에 들어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밖으로 모실게요, 소가주님!”

“그래, 부탁하마.”

번공과 유광이 씩씩하게 앞장서는 당이연의 뒤를 따라 당향청을 나가는 사이, 당한솔은 쉴 틈도 없이 당환과 당주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즉시 성도 내에 순찰하고 있는 본가인들을 모두 이곳으로 집결시켜주십시오. 외원에 있는 백성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결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원에서의 농성은?”

“바깥에서 대응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굴에 숨을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남아 있는 고수들이 제법 있으니 외원에 결집해서 의촌을 장애물로 삼아 당기전술(唐奇戰術)을 펼친다면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윤지가 당한솔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넌 내원 안에 있거라.”

“저도 싸울 것입니다, 어머니. 이 구기륜의가 있으니 제 한몫 해내기엔 문제없습니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으냐?”

진윤지가 강조하는 게 무엇인지 당한솔도 알고 있었다.

당문이 오랜 역사 속에서 쌓아 올린 갖가지 연구자료와 보물들이 보관된 당성기곡관. 그 열쇠가 바로 구기륜의에 숨겨져 있었다. 그 당문의 최대 보물들이 마교의 손에 떨어진다면 무림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당한솔이 그 중요도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곧 닥쳐올 싸움이 얼마나 위험할지 직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진윤지에게 있어서 당성기곡관의 열쇠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母性)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당한솔이 떨리는 어미의 손을 꼭 잡았다.

“전 다리가 이러니 기관진을 능숙하게 작동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어머니께서 기관진을 잘 다루시니 응당 내원을 지키셔서 다른 가솔들을 이끄셔야지요. 게다가 지금의 결정들은 제게서 나왔으니 외원에 남아 상황을 살피는 게 맞습니다.”

“네가 고집을 부리는구나! 기관진이 한번 작동되기 시작하면 네 륜의로는 그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울 텐데 어쩌려고 그러느냐?”

당한솔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진윤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한솔은 팔걸이를 쥔 두 손에 힘을 줘서 몸을 살짝 들었다가 좌석 끝부분에 엉덩이를 걸쳐놓았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두 다리가 무릎이 모인 채 비스듬히 축 늘어졌다. 당한솔은 몸을 틀어 왼손을 좌석의 엉덩이 부분으로 가져갔다.

거기엔 구멍 네 개가 뚫려있었는데 당한솔의 손가락이 쏙 박힐 정도의 크기였다.

“한솔아!”

진윤지가 놀라 소리쳤지만, 당한솔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네 손가락이 구멍 안에 들어가 안에서 구부러졌다. 약간의 여유로운 공간 속에서 그의 손끝에 걸린 건 누름 장치였으니 당한솔은 네 손가락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장치를 누르곤 손목을 살짝 틀었다.

찰칵.

쨍그랑!

무언가 열리고 떨어지는 소리가 번갈아 울려 퍼졌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륜의를 뒤로 움직이고 나니 원래 있던 자리에 금색 열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바로 당성기곡관을 여는 금장건(金裝鍵)이었다.

당환이 고개 숙여 금장건을 들고 당한솔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당한솔은 그 금장건을 다시 진윤지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당한솔이 차분히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들의 별호가 불비기룡입니다. 날지 못하더라도 용은 용인 법입니다. 사천 최고수인 사람의 아들로서 이런 때가 아니라면 어찌 용의 용맹함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소자가 내원의 수문장이 될 것입니다. 소자를 믿지 못하시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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