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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21화 (221/432)

221화 - 제41장. 먹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1)

천리전음(千里傳音).

[“들어라, 제자야. 우리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니 넌 즉시 거기 싸우고 있는 부하들을 이끌고 백제산을 떠나라. 방향은 북동쪽, 거기에 활로가 있다. 너를 비롯해 거기 남아있는 자들이 다음 구룡문을 이끌게 될 것이다. 모든 전권을 네게 넘기겠다. 네가 차기 구룡문주다. 흑사전 용상에 네게 전할 비전(祕傳)이 있으니 취하거라. ……구룡문은 패했으나 백제성에 지는 별은 구룡문이 아니라 이 금태하가 될 것이니, 나의 마지막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여라.”]

오규가 쌍부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광풍이 일어났지만, 장이풍과 탁민효 두 사람의 검기가 바람결 사이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사패련에서 금태하를 꾸준히 수행하면서 여러 제자나 조직의 수하들과 대련을 하며 단련된 실력과 경험은 다른 어떤 계수들보다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우위에 있다고 보기엔 오규의 무공이 너무 고강했지만, 오규도 제 실력을 발휘하여 두 사람을 꺾어내기엔 또 다른 위협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백호군왕도 호환참화(虎患慘禍).

장이풍과 탁민효가 만들어낸 빈틈을 노리고 황사열이 검게 빛나는 도강을 호패도에 담아 오규를 덮쳤다.

쿠쿠쿵!

일격에 세 줄기의 강기, 6연속으로 이어지는 도격을 쫓아 휘몰아치면서 오규를 향해 쏟아졌다.

호신강기로 방어를 하더라도 그 충격의 여파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공격자의 기예가 출중할수록 그 충격의 형태와 작용은 다양한 구조로 일어난다.

오규의 호신강기는 단단했지만, 첫 일격은 쌍부로 차단하지 못하고 맨몸으로 버텨야만 했으니 각각 일격들이 호신강기를 파고들어 자상을 남겼다. 급히 쌍부로 앞을 막았지만, 황사열의 도격은 더욱 예리하게 그의 두 팔까지 공격했다.

쩌엉!

도강이 실린 호패도가 지면에서 위로, 겹쳐진 오규의 쌍부에 충돌했다.

요란한 금속성을 터뜨릴 만한 충격에 의해 오규의 거구가 떠올라 멀리 떠밀려갔다.

“가자!”

일순 거리가 벌어지자 황사열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분루(憤淚)를 삼키고 있었다.

백제성 안에서 벌어진 싸움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으나 때때로 격전의 파장이 성 위로 드러냈을 때, 황사열은 이 싸움의 끝이 쉽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금태하의 천리전음을 들었을 때 그는 감히 스승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스승을 구출하겠다는 알량한 판단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룡문의 멸문을 앞당기는 꼴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황사열은 미리 장이풍과 탁민효에게 전음을 보냈었다. 그리하여 그가 소리쳤을 때, 두 사람도 즉각 반응하여 수하들의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한다!”

모두 이 싸움의 끝이 얼마나 참담할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일까.

명령을 따르는 움직임은 신속했지만, 하나같이 표정엔 분함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뭐, 뭐야?”

밀어붙일 때도, 수세에 몰렸을 때도 그리고 황사열의 초식에 몸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는 순간에도 오규는 이 진심인 싸움에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이는 게 달아나는 적들의 뒷모습이자 처음엔 당황하다가도 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겁쟁이들이 도망을 쳐?”

오규가 먼저 경공을 펼쳐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쌍부가 퇴각하는 구룡문의 후미를 휩쓸려 할 때, 무리 사이에서 황사열과 장이풍, 탁민효가 동시에 튀어나와 그를 공격했다.

오규가 이렇게 돌출 행동을 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세 사람의 합공에 오규는 또다시 패퇴하듯 뒤로 물러났다. 오규가 적들의 머릿수라도 줄여보기 위해 부강(斧罡)을 여러 방향으로 쏘아 보냈지만, 황사열과 장이풍이 폭넓게 움직이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뭣하냐? 놈들을 추격해라!”

오규가 길길이 날뛸 때, 광혈종 마교도도 때마침 근처에 이르렀다.

이번엔 오규도 섣불리 앞서 나가지 않았다. 또 혼자 뛰쳐나갔다간 삼인합공에 쫓겨 되돌아올 게 뻔했다. 다른 사수인이 지금 여기에 없는 게 아쉬웠다.

구룡문이 거리를 벌리고 도망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퇴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규의 광혈종은 그들의 꽁무니를 집요하게 뒤쫓았는데, 상대적으로 싸움에서의 열세를 오래 견디면서 지쳤던 탓에 압박감이 매우 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시계가 매우 어두워서 심리의 저변에 깔린 공포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높지 않은 세 개의 산등성이를 넘고 내리막길을 따라 숲을 빠져나왔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멈춰 섰다.

그들 앞엔 폭우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이 격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강폭도 바로 넘기에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고 싶어? 어서 건너!”

탁민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퇴각하라는 금태하의 명령 때문이 아니더라도 오규 무리 뒤에는 광혈신마와 염황신마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마교도가 더 쫓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수진은 곧 죽음이라는 의미를 황사열이나 장이풍도 알고 있었기에 급히 도하를 독촉했다.

“계곡을 건너라!”

구룡문도들이 일제히 경공을 펼치며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가장 멀리 도약한 탁민효조차도 계곡의 중간에 이르렀을 뿐 이후론 격류에 맞서서 헤엄을 쳐야만 했다.

“서둘러라!”

가장 후열에 남은 황사열이 소리치며 독려하면서도 온 신경은 자신들이 지나온 언덕 쪽에 향해 있다.

‘빨라!’

적들의 기세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그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특히 이젠 익숙해진 한 사람의 기척이 무섭게 홀로 치고 나오고 있었다.

‘오규!’

황사열이 전력을 다해 내공을 끌어올리며 오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암연소혼신공의 암흑기가 그를 아울러 일렁거리며 쏟아지는 폭우마저 튕겨냈다.

긴장감 가득한 눈으로 숲속을 바라보고 있을 때.

퍼엉!

나무들의 이파리가 빗속에서 터져나가며 그 속을 뚫고 오규의 거구가 떠올라 황사열의 눈앞에 나타났다.

“크하하하! 어딜 도망가느냐?”

공중에 뜬 오규가 이미 활처럼 한껏 당긴 전신의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 황사열도 준비한 일격을 쏟아낸다.

백호군왕도 백호진천후(白虎震天吼).

참격의 호를 그리는 호패도의 궤적을 좇아 한껏 응축된 도기가 세(勢)로서 응집하여 분출한다. 소용돌이치며 쏘아지는 기운이 공간과 폭우를 찢어발기니 사자후와 같은 굉음이 앞서 터져나간다.

그 굉음을 뚫고 날아드는 도기를 향해 오규의 쌍부가 내리꽂혔다.

꽈꽈앙!

광풍 같은 속도로 휘두르는 쌍부에 황사열의 도세가 사분오열 쪼개진다.

눈 앞을 가리던 도기를 뚫고 나왔을 때, 황사열의 호패도가 어지러이 쏟아졌다. 그리고 오규는 그것을 우습게 쳐내버렸다.

쩌엉!

“푸읍!”

오규의 일격에 황사열이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두 손으로 도신을 받쳐서 공력을 집중했지만, 정면으로 오규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분명 무리수였다.

첨벙!

황사열이 계곡물에 빠지자 헤엄치며 건너던 자들이 그를 급히 수습했다. 그러는 사이 때마침 도착한 광혈종 마교도들도 숲을 나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규와 광혈종도 일제히 격류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능숙하게 수영하며 빠르게 구룡문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끔찍한 수중 참극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원래도 훈련되어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갖춘 광혈종 마교도들이었지만, 홍문단 복용으로 한층 더 예민해진 감각 속에서 굽이치는 격류는 큰 장애가 안 되었다. 반면에 구룡문도들은 허겁지겁 헤엄치기 바빴으니 등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들을 돌아서서 방어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끄악!”

“커헙……!”

“윽! ……꾸르륵!”

물속에서의 일방적인 학살 속에서 도주와 추격은 계속 이어졌다.

먼저 계곡물에 뛰어든 자들이 뭍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으나 이내 혼란에 빠졌다.

돌아서서 동료들이 밖으로 나오는 걸 돕고 적들을 저지하느냐, 돌아보지 않고 도주를 해야 하느냐 선택하기 힘든 기로를 맞닥뜨린 것이었다.

“진형을 갖추면서 후퇴한다! 옆 사람 챙겨!”

장이풍이 바로 옆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부하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쫓아오는 죽음과 격류 속을 뚫고 오며 생긴 공포감에 쫓겨 정신 차리지 못하는 자들의 뺨을 후려치기도 했지만, 함께 도망치는 구룡문도 모두를 그렇게 살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빌어먹을……!’

장이풍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함선을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와 기세등등하게 백제성에 돌격할 때까진 뭐든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영웅인 금태하의 생사는 불분명한 데다가 구룡문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게 패퇴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중이었어도 계곡의 급류는 왠지 모르게 그들이 흘린 피로 더욱 거무튀튀하게 보였다. 지켜보고 있는 지금도 오규의 쌍부 아래, 마교도들의 칼 아래 구룡문의 생명은 하나둘씩 급류 속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지금의 그들은 물에 젖은 생쥐 꼴에 진배없었다.

장이풍은 계속 뭍으로 올라오는 자들을 수습하면서 간신히 진용을 갖추고 뒤로 물렸다. 황사열도 부축을 받고 올라왔으나 오규의 큰 머리통도 가까운 수면 위에 있었다.

“후퇴하라!”

이젠 다시 도주해야 할 때.

이미 거리가 많이 좁혀졌지만, 더 지체하다간 구룡문 전체가 전멸할 판이었다. 아직 마교도의 칼이 바로 등 뒤에 있는 구룡문도까지 수습하는 건 스스로 덜미를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구룡문의 상황을 오규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기다리던 형세를 취하고 있던 구룡문도들이 다시 도주하는 것처럼 보이자 오규는 바로 앞에 있던 구룡문도의 어깨를 도끼로 찍었다.

“끄악!”

오규는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그대로 도끼를 끌어당기면서 자신의 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덩달아 물속으로 끌어 내려지는 적의 머리통에 한 발을 올려놓는 순간, 용천혈에 공력이 실었다.

투웅!

밟혔던 자는 머리가 함몰되어 즉사, 격류에 수장되고 오규의 신형이 높이 솟구쳐올랐다.

그 기척을 느끼고 다급히 고개를 쳐든 황사열과 장이풍의 시야에 오규의 거체와 높이 치켜든 쌍부가 보인다.

‘끝인가……!’

속마음을 지나는 탄식과 함께 올려다보는 그들의 시선에 절망이 서려 있다.

그와 반대로 살의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규.

바로 그때.

뭔가를 느낀 오규가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하던 고개를 쳐들었다.

폭우 속으로 시야가 좋지 못한 가운데 반대편 너머에 보이는 숲이 흔들리며 뭔가의 여파가 있음이 보였다. 쏟아지는 빗방울들에 본능적으로 집중하게 됐는데 일순간 빗방울들의 궤적이 비틀리면서 하늘로 역류하는 듯한 광경까지 보였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서 섬광이 번뜩였다.

슈욱!

오규가 정말 본능적으로 내려치려던 쌍부를 당겨 얼굴 앞을 막았다.

카앙!

곧바로 이어진 충격에 뒤로 밀리면서 앞을 가로막은 도끼가 열렸다. 그 사이로 폭우를 뚫고 백발노인이 한 손에 칼을 쥔 채 날아오고 있었다.

“파군유성도(破軍流星刀)!”

귓가로 꽂히는 초식명.

떨어지는 빗방울들까지 선회하는 칼날의 궤적 속에 품은 채 하나하나 강기를 입힌다. 공중에서 휘두르는 연속된 참격과 쏟아지는 강기 다발에 오규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오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새로이 등장한 노인은 그가 감히 감당하기 힘든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파군유성도.

그것은 칠성도법의 절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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