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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20화 (220/432)

220화 - 제40장. 백제성포위전(白帝城包圍戰) (6)

금태하와 염황신마, 두 사람의 혼신의 격돌, 그 몇 분의 시간 속에서 주변에 일어난 일들은 적어도 그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이 알 길은 없었다.

예측한 바도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대적을 죽이기 위하여 자신의 전력을 밑바닥까지 연소시켜가며 그 적의와 살의, 온 힘을 폭발시키는 일만이 두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염황신마에게 있어서 금태하는 일생일대의 대적이었다.

직접 상대해 본 자들 가운데 이만큼 격렬하게 부딪친 자도, 이렇게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자도 없었다.

강정학과 벌인 대결의 성격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삐이이…….

실제로는 거대한 폭음과 열풍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뒤섞여 끔찍한 소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 인해 오히려 두 사람의 귀에는 날카로운 소리가 일정한 음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이 경적이 귀로 들리는 것인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인지는 지금 판단할 상황이 아니었다.

‘끝이다!’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모든 공력을 쏟아붓는 와중에도 일말의 여유를 품을 수 있던 쪽은 금태하였다.

암연소혼신공 암왕공멸수(暗汪攻滅手).

시전자의 그릇만큼 충격을 품을 수 있는 암흑의 기운.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 이 힘은 때로는 어떤 기의 장벽도 저항을 받지 않은 채 통과할 수 있다.

걸음을 전진시키며 뻗어내는 검은 손이 격렬하게 타오르는 붉고 검은 불길 속을 통과하며 염황신마에게 접근했다.

그 움직임을 마주한 염황신마의 힘겨운 표정 위로 더 큰 두려움이 덧씌워지는 그때였다.

“크와와왕!”

머릿속을 울리는 경적 때문에 둘 중 누구도 듣지 못한 울부짖음이 불길 속에 터져 나왔고, 염황신마는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척은 그대로 금태하를 덮쳤다.

‘광혈신마!’

화광 속에서 혁무술의 거대한 그림자가 눈앞을 덮치자 금태하가 앞으로 뻗던 손을 위로 틀었다. 그러나 혁무술의 팔이 더 두껍고 길었다. 상대 손에 막히기도 전에 혁무술의 손은 금태하의 목줄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밀어붙였다.

“윽!”

콰드드!

혁무술의 완력에 의해 그대로 땅에 처박히고도 한 번 더 지면이 부서질 정도로 밀어붙여 졌다. 암왕공멸수의 대상을 혁무술에게 돌려 그의 가슴을 때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의 왼손에 붙잡혔다.

일순 혁무술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붉은 흉광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화광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는데 그 속에는 오직 살의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쾅!

“끄으……!”

혁무술의 이마가 그대로 금태하의 이마에 내리꽂혔다.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암연소혼신공을 유지하던 집중력마저 흔들렸다.

힘에 밀려 그 위세가 움츠러들었던 염황신마의 홍염이 그 틈을 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흑염을 밀어붙였다.

혼신이 닿지 않는 기공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었다.

염황신마의 홍염이 줄곧 뚫어내지 못했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혁무술의 전신을 휘감더니 이내 금태하까지 덮쳤다.

꽝! 꽝! 꽝!

“죽어-!”

혁무술은 널브러진 금태하의 몸 위를 깔아뭉갠 채 그대로 연방 주먹을 내리꽂았다.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타고 진동했다.

“크하악-!”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던 금태하도 결국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금태하가 펼쳐낸 암흑기의 상질화는 염황신마의 기에 맞춰 물리력보다 화속성에 특화된 상태였다. 그 공세를 유지하면서 혁무술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힘을 다시 재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홍염에 저항하던 흑염이 금태하를 중심으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두 사람을 덮쳤으나 금태하는 이미 더 강한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한 뒤였다.

파바방!

혁무술의 주먹이 금태하의 손에 막혔다.

공방이 부딪칠 때 강렬한 기파가 둘 사이에 터져나가며 육중한 혁무술의 몸이 들썩거렸다.

“크앗!”

파앙!

금태하의 허리가 들리며 단전으로 직접 기를 분출시켜 혁무술의 몸을 띄웠다. 그러나 혁무술도 그 기척을 감지하고 두 손으로 지면을 할퀴듯 당기니 금태하가 의도한 것보다 몸이 높게 뜨지 않았다.

텅!

두 발을 내리찍는 혁무술과 무릎을 올려 방어하는 금태하.

상위를 점하고 있는 혁무술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태하의 강력한 공력은 혁무술을 더 위로 밀어냄과 동시에 반발력을 이용해서 땅을 굴러 자리를 피했다.

금태하가 뒤로 몸을 띄웠다.

두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정황을 살폈다.

한껏 웅크렸던 혁무술이 그를 향해 돌격한다. 사위를 가득 채웠던 화염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리 위로 흐르는 한줄기 염운(炎雲)만이 남아 염황신마의 기척을 드러냈다.

혁무술이 가세한 이상, 염황신마도 전방위적으로 방출하는 기공보다 집중된 도강을 이용해 합을 맞추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한 것이다.

금태하를 사이에 두고 앞에는 혁무술의 거대한 손아귀가, 뒤로는 염황신마의 화룡도가 목숨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체력도, 기력도 크게 떨어졌다. 찰나 온몸을 뒤덮었던 홍염에 의한 열상으로 피부가 타는 듯했으며, 혁무술의 공격에 의한 내상도 이미 온몸으로 떠안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오절이라는 위명이 허명이 아님을 드러내듯 금태하는 두 절대 고수들의 합공에 대하여 격렬하게 부딪쳤다.

금태하를 상대로 염황신마와 혁무술이 번갈아 붙었다 떨어졌다. 철벽이라 여겨질 만한 방어 속에서 혁무술의 초인적인 완력이 금태하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 틈을 노려 염황신마의 화룡도가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크윽!”

질세라 혁무술의 일퇴도 그의 복부로 파고들자 금태하가 두 팔을 교차시켜 급히 사이를 가로막았다.

쩌엉!

“큭!”

금태하의 신형이 충격에 떠밀려 공중에 높이 떠올랐다. 저릿한 두 팔에 주먹을 말아쥐는 때에 높아진 위치에 머문 그의 시야에 백제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크크……!’

발아래 펼쳐진 것은 그와 염황신마의 충돌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구룡문도들을 상대로 한, 일방적인 학살과 백제성 안팎을 휘감은 대화재(大火災).

그 참상의 현실 속에서 금태하는 자신의 의도도, 반금파의 야욕도 모두 무너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 끝에 따라오는 단상(斷想)이란 분노도, 좌절도 아닌 무상(無常)함뿐이었다.

허공에서 금태하가 차분히 호흡하자 그의 신형이 더 높게 떠올랐다.

막 그를 쫓아서 도약하려던 염황신마와 혁무술도 그걸 보고 멈칫했다.

“설마 능공허도(凌空虛道)……? 미친 괴물새끼, 저만한 기력이 아직도 남았단 말인가?”

염황신마가 경악하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금태하의 귀에도 들렸다.

“후욱……, 후욱……!”

광혈신마가 호흡을 거칠게 내뱉었다.

더 높이 멀어지는 금태하 때문에 싸움의 흐름이 끊어지자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천산에서 광마(狂魔)의 마성을 각성한 이후로 그의 힘, 속도, 반응 능력 등은 3년 전보다 한층 더 강해졌지만, 육신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야만 하는 이 힘은 돌아오는 피로가 매우 극심했다.

기절했던 그가 깨어난 것은 광마의 영향이 컸기 때문인데 금태하와 싸우는 염황신마에게 보조를 맞추기 위해선 더더욱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혁무술, 정신 차려라.”

염황신마도 광혈신마의 그것이, 다른 구주마종보다 육체에 대한 실질적 부담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혁무술의 현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금태하란 강적이 아직 살아있는 상황에서 혁무술이 버텨내지 못한다면 이 싸움의 끝엔 원하지 않는 결과가 도래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강정학도 그랬지…….’

3년 전, 혼란 속에 밀어붙일 수 있었긴 했으나 결국 백령신검의 검기는 그에게 치명상을 안겼었다.

차가운 검의 감촉은 기억 속에 남아있다가 다시금 염황신마를 일깨우고 있었다.

염황신마가 고개를 든 채 금태하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어둠을 품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한가운데서,

백제성을 휘감은 불길의 화광이 비추는 밤하늘 한가운데서,

넝마가 되어버린 장포와 피칠갑을 한 육신, 풀어헤친 사자 갈기 같은 반백의 머리카락은 마치 천신이 이 땅에 재앙을 몰고 강림한 듯 착각할 만한 금태하의 모습이었다.

백제성에 가득했던 폭력의 소음은 이젠 꽤 잦아든 상태에서 세 절대고수의 격돌이 잠시 멈추자 상대적인 고요가 찾아왔다. 그 속에서 상대할 적들을 잃은 염황종과 광혈종의 마교도는 아직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북쪽의 백제산지로 상당수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금태하의 목소리가 성내 그리고 백제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구원(舊怨)의 한을 끊기 위해 구룡이 여기 백제성에 왔으나 끝내 풀지 못한 한은 불길과 죽음 속에 묻어 영원히 풀지 못하게 되었는가! 구룡이 반목하여 서로를 물어뜯게 생겼으니 이 또한 어찌 가만두고 볼 수 있으랴! 구원의 한은 끊지 못했으나 썩은 살은 도려내었으니 구룡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이제 백제성에 떨어질 남은 별은 이 금태하 하나만으로 족하리라!”

이 백제산에 모인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펼쳐내는 일장 연설 속에서 염황신마는 설마 하는 짧은 생각을 품는다.

‘……동귀어진(同歸於盡)?’

그 생각이 스쳤을 때, 차가운 감촉이 이마를 때렸다.

툭툭-!

반복되는 감촉은 저 하늘에서 화광에 비쳐 붉은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의 것.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이 마침내 백제산에 비를 쏟아내기 시작할 때, 일순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빗방울이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며 나선의 궤적을 그려냈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금태하.

“이런!”

염황신마가 즉각 반응하여 염룡마공을 운기하며 화룡을 끄집어냈다.

광혈신마도 뒤이어 투기와 혼재된 마기를 전신으로 뿜어냈다.

두 절대고수가 금태하를 노리고 하늘로 도약하는 순간, 거대한 암흑의 기운이 일순간 일대를 아울러 지배한다.

살기, 공포 그리고 미증유의 끈적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서 오감이 모두 어둠에 지배당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순간,

암연소혼신공 암흑제멸소혼뇌정(暗黑制滅燒魂雷霆).

끝내 상질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먼 과거의 기억 속에 자리한 천무경과의 대결.

파천신공 벽력의 기운을 본떠서 창안하였으나 그 자체로 치욕적인 기분에 휘말려 한 번도 밖으로 꺼내 본 적도 없어 완성 여부도 미지수인 절초.

질투와 시샘으로 연성해 내었으나 그것조차 어찌 됐든 오롯이 그의 것이 분명할 암흑의 뇌정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콰르르르-! 쩌쩌쩡!

쏴아아아아!

한 번 물꼬를 튼 빗줄기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백제성과 백제산 일대를 휘감아서 걸리는 모든 걸 태워 버릴 것만 같았던 대화재가 곧바로 기세를 죽일 정도의 엄청난 폭우였다. 백제성이 세워진 반도의 남쪽 연안에서 불타며 침몰하던 함선도 이젠 불타서 침몰하는지, 빗물이 무거워 침몰하는지 모를 정도가 될 정도였다.

백제성을 휘감았던 어둠은 뇌정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 속에 갇혔던 마교도와 마인들은 모두 적잖이 내상을 입은 뒤였다.

일시적인 의식의 정지 상태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놀랍게도 그 어둠은 같은 구룡문도는 피해 갔는지 정신을 차린 뒤엔 북쪽으로 달아나는 뒷꽁무니를 먼저 보게 되었다.

마치 염황신마의 불길이 광혈종과 같은 마교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던 것과 같은 꼴이었다.

내공이 고강했던 염황신마와 광혈신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의도적이었는지 금태하의 힘은 두 사람에게 가장 집중적으로 뻗어 나갔고 광혈신마 혁무술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한도에 달한 피로에 무너져 바로 기절하였다. 그래도 염황신마는 버텨낼 수 있었지만, 이미 내상과 더불어 그의 의식을 관통한 ‘어둠’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아 한동안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금태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두 신마보다 피해를 덜 받아서 금방 운신할 수 있었던 성내의 사수인, 삼화룡 등의 다섯 사람이 즉각 금태하를 찾았지만, 난전으로 어지러운 장내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요원했다.

금태하를 찾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백제산 북쪽 산지의 싸움이 잦아드는 기색을 느낀 염황신마는 곧장 두 마종의 간부들에게 즉시 구룡문 잔당의 척결을 명령했다.

부하들이 가는 모습을 잠깐 지켜본 염황신마는 곧 시선을 거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삼화룡 무량과 사수인 태량이 염황신마와 혁무술 두 사람의 주변을 호위했다.

운기조식에 몰두하기 시작한 염황신마는 의식 속에서 금태하와 강정학 두 사람을 떠올렸다.

‘천하오절이라……, 중원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더니 과연 진정한 괴물들이로다!’

구주마종의 수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천하오절 중 두 사람을 직접 경험한 염황신마는 가슴 속 깊은 한구석에 그들을 향한 공포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다스려지지 않은 공포.

‘천산의 태상교주 이후로도 둘이나 있다니……, 이 염마(炎魔)의 체면이 말이 아니로구나! 크흐흐흐…….’

의식 속에서 흘리는 웃음소리가 구슬프다.

마치 이 폭우 속에서 사그라드는 백제산의 화재가 딱 제 신세처럼 느껴져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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