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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19화 (219/432)

219화 - 제40장. 백제성포위전(白帝城包圍戰) (5)

오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쌍부를 번갈아 바라보는 의아한 표정에서 황사열이 그의 공격으로부터 빠져나갈 줄 몰랐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오규는 호도광멸의 강기를 호신강기로만 이용하여 정면으로 받아냈다. 아무리 호신강기라 하더라도 힘의 격차가 압도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직격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강기라면 그 충격을 회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규는 무식하게 정면에서 받아냈으니 그 결과를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얼굴 전체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 세로로 새겨진 자상에선 피가 흘러내려 얼굴을 적셨다. 턱에 고였다가 똑똑 떨어지는 핏방울이 이미 덕지덕지 묻은 도끼날 위 핏자국에 더해지고 있었다.

그런 희생을 감수한 채 황사열의 허리를 끊어놓을 시도를 했고, 그 결과를 얻어낼 확신이 들었음에도 실패했으니 의아해하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오규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크카카캇! 너 제법이군. 3년 전, 내 도끼에 고깃덩이가 된 놈들보다 더 나아. 이름이 무엇이냐?”

금태하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천천히 호흡하면서 누그러뜨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진중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사열. 구룡문 백호계파의 계수이며 흑사왕 금태하의 제자다.”

천천히 호패도를 들어 그 칼끝을 오규에게 겨눈다. 자세를 낮게 유지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 싸움에 대한 각오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암연소혼신공의 암흑기가 그를 두르며 호패도를 감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규의 만면엔 웃음이 가득했다.

“크크크크! 금태하의 제자라, 훌륭한 먹잇감이구나. 널 죽이면 네 사지를 자르고 머리는 따로 떼어 나의 허리띠에 매달고 다녀주마.”

“와라.”

오규가 쌍부를 휘두르며 덮치자 황사열이 백호군왕도의 초식을 펼치며 반격했다.

광혈신마 혁무술이 오규를 탈옥시키면서까지 영입한 이유는 그의 싸움 방식이 압도적인 힘을 이용한 본능적 움직임에 충실하다는 점이 자신과 닮아서였다.

강하고 빠르며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

피아를 가리지 않을 법한 폭력적인 돌진에 황사열이 수세에 몰렸다. 거대한 쌍부를 광풍처럼 휘두르는데 지칠 기색을 기다리기도 전에 휩쓸려서 뼈째로 쪼개질 판이었다.

쉬익!

“나도 돕겠다!”

황사열이 극복하지 못할 듯하자 장이풍이 검을 휘두르면서 오규에게 덤벼들었다.

싸움의 구도가 곧장 협공 구도로 바뀌면서 수세로만 몰리던 상황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규에게 마냥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오히려 신난 표정으로 종횡무진 쌍부를 휘둘러댔다.

백제성을 둘러싼 전투들.

저마다 집단을 대표하는 고수들의 결전은 팽팽하게 흘러갔지만, 광혈종과 염황종이 구룡문에게 갖는 상대적인 전력 우위는 점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두 마종은 궁합이 좋았지만, 반금파와 친금파의 전투력은 서로가 이 싸움에 대한 자세가 다른 만큼 격차가 있었다. 저변에 깔린 불손한 마음가짐 자체는 여전히 존재했기에 제아무리 유종화가 결전을 신호했다고 하더라도 조직 전체에 그 의지가 퍼질 수 없었다.

한편으로 탁민효가 이끌던 추응계파도 염황문의 개입을 확인하고 뒤늦게 백제산 북쪽의 황사열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백제성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싸움의 정황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가 정말 천하오절 중 세 번째란 말인가……!’

염황신마가 떨리는 눈으로 금태하와 그가 일으킨 거대한 흑염을 바라보았다. 일대를 휘감아 감히 누구도 근접할 수 없게끔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데 염황신마가 일으킨 홍염보다 두 배는 더 커져 있어 그 위세가 대단했다.

기공으로써 수차례 격렬히 부딪힌 결과, 염황신마는 금태하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리고 금태하란 사람과 그가 가진 무공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충돌을 거듭할수록 공력의 성질이 나의 염룡마공과 비슷해지는 것도 놀라운데, 공력이 서로 충돌하여 상쇄되면 분출된 기운도 사라져야 함에도 오히려 반발력을 품고 증식을 하다니? 흑사왕이라는 별명이 그 때문인가? 이런 상식을 벗어난 힘, 마치 본교의 마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다.

지금 염황신마는 금태하를 마치 구주마종의 한 자리를 차지한 또 하나의 신마처럼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 암흑신마(暗黑神魔)라는 별칭을 붙여서 당장이라도 그렇게 부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고작 작은 부분이었다.

염황신마가 금태하를 적으로 인지함은 명백했다.

‘음……?’

일순간 염황신마는 불리한 이 전세를 뒤집을만한 변수를 감지했다.

“이제 끝을 내자꾸나.”

금태하가 서슬 퍼런 눈빛을 빛내며 두 손을 단전 앞에 모았다.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엄청난 공력과 천지간을 뒤덮은 채 모든 걸 재로 돌려버릴 듯한 암흑의 불길이 사위를 아울렀다.

염황신마도 바로 이 순간이 결전을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그도 온몸으로 홍염을 지피며 흡사 불꽃과 신체가 동화되는 듯한 착각이 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라던 바다.”

씨익.

둘 다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짓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입가에 머금은 핏물, 여기저기 터지고 그슬린 옷가지들과 화상과 출혈로 겉보기에 엉망이 된 서로의 모습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만한 싸움은 천무경과의 대결 이후 오랜만이었던 금태하.

강정학과는 다른, 그래서 어쩌면 금태하가 자신의 상극인 상대로 느끼고 있는 염황신마.

오직 이 순간 하나에 집중하며 각자 승부를 자신한다.

암연소혼신공 암천소혼멸겁(暗天燒魂滅劫).

염룡마공 염제영멸계(炎帝永滅界).

콰아아아-!

두 거대한 공력이 그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걸 소멸시켜버릴 듯 충돌한다.

각개 사투를 벌이던 다른 이들도 그 순간만큼은 싸움을 멈춘 채 촉각을 곤두세운다. 가까이 있던 자들은 휘말릴까 두려워 도망쳤고, 멀리 있던 자들은 설마 자신들에게까지 여파가 다가올까 걱정했다. 그리고 두 힘의 충돌과 그 파괴적인 여파는 그런 거리에 따른 입장 차마저 잡아먹을 정도로 백제성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터져나갔다.

마치 억겁의 혼돈을 한순간으로 압축해놓은 듯한 몇 분간의 시간 속에서 전세도 완전히 기울어버린다.

금태하의 힘은 피아를 가리지 않으나 염황신마의 힘은 여전히 영역 내의 광혈종과 염황종 마인들을 오히려 보호했다.

그 작은 차이로 인해 금태하가 등지고 있던 북동부 방향은 일대가 초토화되었고, 염황신마가 등지고 있던 서남부 방향의 구룡문도는 위기를 맞이했다.

집단의 전쟁 한가운데서 절대 고수들의 이런 기공 대결은 부하나 제자들이 휘말릴 우려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이미 대결이 극에 치달은 두 사람에게 그것은 하등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금태하와 구룡문이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불과 1, 2분여 시간 동안.

치열했던 몇 대결들도 결판이 났다.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는 속에서 남조양은 자신을 덮치는 불길 속에서 내력을 집중하며 버티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직전까지 상대했던 광혈종 사수인 광구쌍조(狂狗雙爪) 막손(莫損)의 두 손등에 장착된 날 선 칼날에 심장이 꿰뚫려 절명했다.

금벽계파 계수 옥진철과 녹주계파 계수 노독문도 사수인에 속하는 기형귀수(奇形鬼手) 채모조(蔡謨嘲)와 주귀웅(酒鬼熊) 태량(太諒)을 상대로 싸우다 죽고 말았다. 애초에 사수인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 패색이 짙었는데 때마침 들이닥친 화염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고만 그런 허무한 죽음이었다.

염황문 삼화룡 중 한 사람인 나찰화승(羅刹火僧) 무량(無量)은 전토계파 지부강을 갖고 놀 듯 상대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화염의 폭풍에 급히 도망쳐 버렸다. 지부강이 있던 자리엔 불을 뒤집어쓰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는 자들로 즐비했으니 도망치던 무량이 뒤로 흘깃 보고는 그 죽음을 확실시했다.

그렇게 구룡문 반금파의 전력이 순식간에 절반 넘게 쓸려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유종화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금태하와 염황신마가 충돌하는 순간, 유종화는 꽤 영리하게 행동했다.

나무와 수풀을 태우는 불꽃, 시체를 태우는 불꽃, 산 사람에게 붙어 죽음으로 몰아가는 불꽃까지 사방에 즐비한 불꽃들이 유종화의 의지에 반응한다.

화무신공 오의. 염주율(炎主律).

그것은 술법에 가까운 이능(異能), 구룡문의 일부 계파의 무공은 그 극의에 이를 때 이와 같은 능력을 드러낸다. 불꽃에 공명하는 중단전의 정혼(精魂)은 주인 잃은 불꽃뿐만 아니라 이제 막 지근거리까지 들이닥치는 염황신마의 염제영멸계 공력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본래라면 창윤을 비롯한 근처의 마인, 마교도들을 지나쳤어야 할 염황신마의 화염이 되려 유종화를 지나친다. 동시에 유종화의 공력이 염황신마의 공력에 떠밀리듯 기세를 더해 창윤을 덮쳤다.

화르르르!

“크악!”

순식간에 사방을 가득 채우는 화염 속에서 창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유종화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큭! 나도 버티기 힘들다……!’

유종화는 화무신공 염주율로써 이 정도로 강력한 화염공을 조종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 반작용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두 눈은 충혈되다 못해 피눈물이 맺혔고 입가와 코로도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서둘러 이 거대한 화염지옥의 바깥쪽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곧 그도 버티지 못하고 비명에 갈 것이 틀림없었다. 화무신공을 연성한 이후로 살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화형(火刑)에 의한 죽음이라니, 끔찍한 일이었다.

염주율을 유지하며 유종화의 신형이 창윤이 있던 자리 근처를 지나쳤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었지만, 마치 등 떠밀듯 몰아치는 염풍(炎風)에 힘입어 그나마 속도를 보탤 수 있었다.

‘서둘러야……, 응?’

다급함이 감정을 지배하던 중, 이 열화(熱火) 속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챠르륵!

“컥!”

차가운 금속성이 들렸다 싶은 순간 절편도의 칼날이 뒤에서부터 날아와 그의 목을 휘감았다. 급히 호신강기를 운용하며 손으로 목을 보호했지만, 이미 절편도의 늘어난 칼날은 그의 손과 목을 동시에 휘감은 채 옥죄었다.

‘……아, 안 돼!’

“끄으……!”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가 칼날을 세운 채 목에 들이밀어 졌다.

절체절명에 이르렀다는 생각과 신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사위를 가득 채운 열화의 광휘가 주마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죽어라.”

열풍 속 목소리의 주인은 창윤의 것.

화염 속에 가려진 유종화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목을 옥죄는 칼날의 압력이 거세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서컥!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그를 보호하던 호신강기도, 염주율의 이능도, 구룡문을 장악하겠다는 야심도 모두 불길 속에 그렇게 소각되어 갔다.

한 줌의 재가 되어, 한 구의 숯덩이가 되어.

말년의 야심은 백제산의 거름에 그칠 뿐인 허망한 신세, 허망한 죽음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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