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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18화 (218/432)

218화 - 제40장. 백제성포위전(白帝城包圍戰) (4)

화르륵!

창윤이 중얼거릴 때, 유종화가 몸을 날리며 덤벼들었다. 칼을 든 상대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 싸움의 흐름을 쥘 참이었다.

화무신공 총화연환박(摠火連環搏)

두 사람의 신형이 딱 붙은 채 순식간에 공수가 오갔다. 화염의 경력을 몰고 다니면서 타격을 가하려는 유종화의 연격을 방어하는데 그 충격의 묵직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종화가 연속된 초식을 펼치면서 거리를 벌리려는 창윤을 서둘러 쫓았다.

화릉무도라는 별호는 경력의 불길을 자유자재로 일으킬 수 있는 그의 극양공에 대한 깊이를 향한 찬사와 같았다. 화염은 산봉우리처럼 연신 치솟았으며 그 무력의 거침없음에 길을 따지지 않았다.

마치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잿더미로 부숴버릴 것만 같은 폭력이었다.

수세에 몰린 듯한 창윤의 반격, 그의 칼이 횡으로 하반신을 휩쓸었다.

절묘한 간극을 두며 그 궤적 위로 뛰어오른 유종화의 두 손은 하늘 높이 경력을 움켜쥐고 있었다.

화무신공 염폭융격(炎爆隆格)

화르륵!

솟구치는 막대한 불길의 경력이 내려치는 두 주먹을 쫓아 창윤을 향해 내리꽂혔다.

쏟아지는 불길의 경력들이 연쇄된 폭발을 일으키면서 성벽 한편이 무너질 정도로 그 충격이 이어졌다.

유종화가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갑자기 화염 속에서 칼날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예상하지 못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신체를 휘감으려 들었다.

“큿!”

당혹스러운 반격에 신음과 함께 급히 도광의 옆면을 후려치며 벗어나는데 그 부딪치는 감각이 이상했다.

충돌과 동시에 칼날이 출렁이더니 더 큰 폭으로 그를 휘감아왔다.

찰나의 순간, 유종화는 분명히 보았다.

그를 휘감아 오는 도광을 따라 화염의 경력이 덧옷을 입는 사이, 칼날이 분절되어 서로 연결된 강사의 길이만큼 늘어난 창윤의 칼을.

그것은 절편도(切片刀), 창윤의 이명인 ‘소용돌이치는 불꽃 칼날’을 구현하는 무기다.

콰득!

다급하게 빠져나왔지만, 왼팔에 칼날들이 얽혀 붙잡혔다.

호신강기로 보호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경기도 강력했던 지라 칼날이 피부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상처에 염룡마공의 불길이 지펴졌다.

“크악!”

유종화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극심한 고통에도 왼팔을 당기면서 창윤을 걷어차기 위해 일퇴를 날렸지만, 그 얽힌 칼날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저절로 풀리면서 그의 발은 허공을 차는 데 그쳤다.

촤라락!

칼날들이 풀린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칼날이 길수록 그 칼끝은 칼을 쥔 손의 움직임을 후행(後行)하게 되어있으나 거기에 연검이나 절편도같이 유연함을 갖추게 되면 그 후행의 간극은 더 길어진다. 거기에 더해 움직임을 복합적으로 가져가면 그 궤적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난해하다.

천요활사도법(天妖猾蛇刀法) 참절난도(慘絶亂刀)

창윤이 절편도를 거두면서 몸은 물러나는 유종화를 향해 밀어 넣는다.

신형을 빙글 휘돌며 팔을 휘휘 뿌리치는 듯한 움직임에 길게 늘어난 절편도가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품으며 어지러이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

“크으으……!”

경력이 충돌하면서 여기저기 비산하는 성벽 석조물의 파편들과 불똥들 사이에서 유종화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착지하는데 두 다리까지 휩쓸고 지나간 경력의 여파로 비틀거리게 되었다.

온몸 이곳저곳에 생긴 자상뿐만 아니라 화상도 심하게 남아있었다.

화무신공을 연성한 이후 불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유종화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 화무신공을 뚫고 화상을 입히다니……!’

순수한 공력의 차이는 유종화가 다소간 앞섰지만, 창윤의 화공이 유종화의 화공보다 본질적인 화기 이상의 격렬함을 갖고 있었다.

작은 불은 큰 불에 삼켜지듯 유종화의 그것은 계속 창윤에게 있어서 잡아먹기 좋은 불씨에 불과했다.

유종화가 낭패스러운 행색으로 창윤을 쳐다보았다.

그도 방금의 공격에 상당한 공력을 실어서였는지 호흡을 고르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좋지 않다…….’

유종화가 빠르게 시선을 돌려 전황을 살폈다.

더 격렬하게 충돌하는 금태하와 염황신마로 인해 사방은 이미 접근할 수 없는 화염 지대가 되어있었다.

구룡문은 점점 광혈종과 염황종의 협공에 밀리고 있었다.

초기의 기세와 다르게 광혈종은 쉬이 쓰러지지 않았고, 바닥엔 구룡문도들의 시체가 더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패색이 짙게 나타날 것 같았다.

창윤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다음을 모색할 수 있는데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니 유종화로선 눈앞이 암담했다.

아아아……!

북쪽으로 멀리서 소란이 들려왔다.

홍염에 물든 붉은 밤하늘 아래로 숲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왔는가! 저것으로 전황이 바뀌어야 하는데……. 흡!’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유종화가 다시 자신을 노리는 창윤의 공격에 급히 반응해 움직였다.

“쳐라!”

황사열의 호령과 함께 백제산을 돌아온 구룡문이 북쪽 산길을 봉쇄하고 있던 광혈종 마교도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넘어오면서 금방 불바다에 쌓여버린 백제성을 보면서 황사열, 장이풍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차례 산등성이를 넘다가 바라본 불바다가 된 백제성은 그들이 예측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대화재 수준인데 광혈종과의 전투 과정에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짐작 가는 바가 없던 중에 백제성에 먼저 도착한 금태하의 구룡문이 마주한 상대가 광혈종 외에 염황종까지 개입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백제성 한가운데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을 때였다. 불기둥과 더불어 맞부딪친 채 솟구친 검은 기운은 흡사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으니 그 광경을 본 황사열은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암흑기의 상질화(相質化)……. 저 정도라면 분명 염황신마까지 상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암연소혼신공.

구룡문 흑사계파의 상징과 같은 무공이지만, 사실은 금태하만의 무공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본래 흑사계파가 익히는 무공은 암연기혼공(暗燃氣魂功)이었다.

무공을 연성하면 자연적으로 중단전까지 개발되는 신공이었지만, 금태하는 그 타고난 천재적 재능과 깨달음으로 상단전 개방에 성공하면서 자신이 수련한 무공을 다시 관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재정립한 것이 암연소혼신공이었다.

암연기혼공은 사실 부작용이 상당히 큰 무공이었다. 하단전과 중단전을 자연 개방하면서 막대한 내공을 빠르게 축기할 수 있었으나 공력을 소진하는 행위 속에서 기혈의 내성을 깎아내는 부작용이 있어서 어느 시점에 급격한 내공 소실과 더불어 생명에까지 위협을 가져다주는 사태를 야기하곤 했다.

암연기혼공으로 분출할 수 있는, 당시에는 암연기(暗燃氣)로 불렸던 이 기운이 갖는 파괴적인 성질은 시전자까지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지금의 암연소혼신공은 암연기혼공과 달랐다.

기혈을 통과하면서 시전자의 생명을 갉아먹던 암연기는 이제는 그 파괴적인 성질을 온전히 밖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암흑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단전 수련이 경지에 이르면 이 암흑기에 상질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 대상은 적의 기운이 될 수도 있고, 원래 과거에 그랬듯 자기 자신일 수도 있었다.

그것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천차만별, 물론 후자라면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소문으로만 듣던 상질화를 목격하고 염황신마와 염황종의 등장도 기정사실이 되자 반금파에 둘러싸인 금태하의 처지를 생각하면 황사열은 한시라도 빨리 가까이 접근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전투가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백제산으로 돌아온 친금파는 백제성 내의 반금파와는 달리 목적이 뚜렷했기에 조직력에서도 당연히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염황종의 지원을 받는 성내의 광혈종 마교도들과 달리 북쪽 지역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적들은 광혈종뿐이었다.

난전 속에서 황사열과 장이풍 두 사람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광혈종도 그에 맞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린 새끼가 무공이 상당하구나!”

황사열이 느닷없이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기척이 지척에 이르렀다.

콰쾅!

급히 몸을 굴러 피하면서 적의 모습을 확인하니 상당히 큰 체격에 어두운 색채의 옷과 흰 하의를 입고 있었고 팔다리를 모두 걷어붙인 모습이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고리눈이 인상적이었는데 몸을 일으키는 상대의 두 손에 들린 쌍부(雙斧)를 본 황사열은 적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광혈종의 사수인(四囚人) 오규(吳逵)로군.”

“크하하! 날 알아보다니. 천살광부(千殺狂斧) 오규가 바로 나다!”

3년 전 광혈종에게 당했던 기습.

여유를 부리던 광혈신마보다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른 미치광이가 바로 그였다.

감숙 지역 끝자락의 명사산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서하국 군사 천명을 아무 이유 없이 도륙한 죄로 수형(受刑) 생활을 하다가 그를 눈독 들인 광혈신마에 의해 탈옥하여 마교에 가입한 자였다.

홍문단까지 복용하면서 더 큰 광기를 품은 그는 ‘폭력(暴力)’, 그 자체였다.

사수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를 퇴로에 배치하였으니 그 굶주림이 오죽했을까?

싸움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면서 끼어들 여지가 없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던 그의 앞에 황사열이 이끄는 구룡문 친금파 문도들이 나타났으니 그에게 대환영인 일이었다.

“어디 네 대가리는 쪼개는 맛이 있는지 함 보자!”

소리친 건 오규였지만, 먼저 달려든 건 황사열이었다.

상대는 강자.

단숨에 오규의 머리 위로 몸을 날리고선 암연소혼신공의 암흑기를 호패도에 두른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세 그대로 오규를 향하여 전력을 다해 호패도를 휘둘렀다.

백호군왕도 호도광멸.

흑호(黑虎)가 먹이를 덮치듯 파괴적인 도강이 뿜어져 나가며 오규를 덮쳤다.

암흑기를 품은 호도광멸의 파괴력은 실로 대단했다.

꽈앙!

일대 대기를 뒤흔들 정도의 폭발이 터졌다. 경지에 이르지 못해 상질화를 구현할 수는 없어도 암연소혼신공의 암흑기만으로도 그 파괴력은 배가 되니 일격을 날린 황사열로서도 자신의 힘에 흡족한 기분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지구름 속에서 두 자루 쌍부가 좌우로 튀어나와 황사열을 덮친다.

찰나의 순간 황사열은 죽음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내려쳤던 호패도를 당겼다.

무서운 속도로 짓쳐 드는 쌍부를 감히 두 눈으로 좇을 틈도 가질 수 없었다. 허리 위치에서 눕힌 호패도 칼끝에 도끼날이 닿는 순간 그대로 호패도에 몸을 맡기면서 왼손으론 도신을 쳐올리고 도병을 쥔 오른손은 파고드는 도끼날을 노리고 짓눌렀다.

카강!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지고 두 자루 도끼가 허공을 교차했다. 먼지를 뚫고 솟아오른 오규의 얼굴엔 뜻밖의 상황을 마주한 표정을 한 채 두 눈으로 땅바닥을 구르는 황사열의 모습을 좇았다.

“크윽……!”

온몸을 찌르르 울리는 진동에 황사열이 깊은 신음을 흘렸다.

생사를 가르는 순간이었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임기응변을 발휘한 것이 쌍부에 허리가 두 동강이 나지 않고 이렇게 내팽개치듯 추락하여 흙먼지를 뒤집어쓴 꼬락서니 수준으로 죽음을 면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을 다시 되새겨봐도 정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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