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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16화 (216/432)

216화 - 제40장. 백제성포위전(白帝城包圍戰) (2)

염황신마는 자신의 화룡도로 혁무술을 가리켰다. 그의 팔에서 시작된 불길이 도신을 따라 혁무술을 뒤덮는 듯하더니 주변으로 불기둥을 형성했다. 일렁이는 불길 사이로 혁무술의 몸에는 전혀 닿지 않는 거로 보아서 금태하의 접근에서 보호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였다.

주변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같은 편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다니.’

사방에선 염황마종의 마인들이 뿜어내는 불길이 연방 휘몰아쳤지만, 광혈마종의 마인들에겐 닿지 않았다. 시각적 혼란은 어쩔 수 없이 공유하지만, 적어도 작열하는 불길의 방향이나 뜨거움은 구룡문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가 본 대로 염황마종의 염룡마공은 마기를 뿜어내는 자에겐 닿지 않았다. 물론 적개심을 가지면 염룡마공의 불꽃은 그것에 맞게 반응할 것이지만, 지금 그러한 부분은 구룡문이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쿠쿠쿠쿠……!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금태하로부터 비롯된 어마어마한 패기가 사위의 공간을 두들기자 멀찍이서 싸우는 자들조차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끼고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뭐 좋아. 어디 신검을 애먹인 실력을 한 번 볼까?”

검은 기운이 금태하에게서 돌풍을 일으키며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보며 염황신마는 흑풍신마를 떠올렸지만, 금태하의 그것은 먹물을 바람결에 흩뿌리는 듯한 선명한 흑기(黑氣)보단 빛을 빨아들이는 이 밤의 어둠을 더 닮아 있었다.

화르르르……!

폭발적으로 어둠을 불사르려는 듯한 불길이 염황신마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화룡도 도신을 따라 불길이 휘감기자 마치 호수용두(護手龍頭)가 직접 그 불꽃의 숨결을 뱉는 듯하다.

“천하오절을 두 명이나 차례로 상대하는 영광을 마다하지 않으리라.”

염황신마의 강렬한 눈빛이 그의 불꽃처럼 일렁였다.

화르륵!

염황신마로부터 엄청난 불기둥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금태하의 머리 위까지 뻗어갔다.

어떤 화공인지 경계하는데 갑자기 앞에서 느껴졌던 염황신마의 기척이 머리 위 불길에 나타났다.

‘뭣?’

마치 불길을 타고 흘러간 듯하면서도 불길에 몸을 숨긴 채 펼치는 이형환위를 연상시키는 듯한 경신술.

퐈아아!

머리 위 화염이 폭발하며 그 가운데서 염황신마가 나타나 화룡도를 내리꽂았다. 동시에 함께 쫓아온 화염의 기둥들도 일제히 금태하를 향해 쏟아져 내려갔다.

염룡마공(炎龍魔功) 신위(身位). 화룡권(火龍捲)

불기둥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길의 흐름에 몸을 실어 신체를 이동시킨다.

화룡도법(火龍刀法) 염쇄소천(炎碎燒天).

내려치는 도격보다 힘이 실리는 것은 끌고 다니던 화기(火氣)를 폭파시켜 적을 불사르는 일.

‘완전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군.’

금태하가 염황신마의 초식을 마주하자마자 잠깐 광혈신마의 전투방식을 떠올리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몸을 낮추면서 두 손으로 머리 위를 향해 크고 빠르게 원을 그렸다. 그의 손짓을 따라 암흑을 품은 기류가 넓게 소용돌이치며 장벽을 펼쳐냈다.

퐈르르르!

쩌엉!

쌍방의 강력한 기운들이 충돌하며 돌풍이 일어나는 가운데 염강기(焰罡氣)를 두른 화룡도가 장벽을 찢고 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 금태하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가듯 떠오르며 거리를 벌렸다.

화룡도를 휘두르며 돌풍을 뚫고 나온 염황신마가 금태하를 쫓았다.

“어디 실력을 보여봐라!”

호기로운 외침, 동시에 그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이는 듯하더니 여섯 줄기의 불기둥이 육방위(六方位)로 나뉘어 솟구쳤다. 불기둥 각각이 입을 벌리며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데 마치 화룡들을 부리는 사술 같은 착각이 들었다.

화룡도법 육룡어염도(六龍御焰刀).

염황신마의 화룡도가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기공에 의존한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허실을 유도하는 완성된 초식.

날카로운 횡 베기를 허리로 몸을 당겨 피해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손목을 돌려 수직으로 떨어지는 참격으로 전환한다.

금태하도 충분히 대비했는지 바로 반응하여 기를 응집시킨 양손을 바로 뻗어냈다.

파앙!

금태하의 공력이 불길과 닿으며 터졌고 그의 두 손은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못하고 맞부딪친다.

불길을 통해 몸을 이동시켰듯 불길에 잔상을 남긴 채 어느새 화룡도를 당기는 허초인 셈.

염강기를 싫은 화룡도의 칼끝은 정확히 금태하의 단전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파고 들어오며 위협하던 화룡들이 동시에 서로 다른 틈을 노리고 아가리를 벌려 덮쳐왔다.

‘닿는다!’

화룡도의 칼끝이 금태하의 복부에 닿으려는 순간에 염황신마의 얼굴엔 득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부하들의 피해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고고한 검의 경지를 뽐내던 백령신검 강정학의 검세를 뚫고 그의 오른쪽 얼굴과 몸에 화상을 남겼던 바로 그 절초였다.

그때보다 지금 한층 더 강해진 염황신마였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넘치는 자신감과 더불어 강정학보다 아래로 취급되는 금태하가 이를 어찌 막겠냐는 상대적 비하가 그의 심리 저변에 깔려 있었다.

찰나의 순간, 3년 전의 그 기억부터 이 순간 눈앞의 풍경까지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텅!

묵직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전해지며 염황신마는 앞으로 끌려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염황신마는 분명 정신적으로 깨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잠에서 번쩍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느새 그의 화룡도 칼등을 왼손으로 내리치고 오른손을 펼쳐 그의 얼굴을 노리고 있는 금태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손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것.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는 백발노인의 얼굴에는 패자(霸者)만이 가질 수 있는 광의(廣義)의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암연소혼신공 암연공야성(暗燃空夜星)

염황신마는 여섯 마리 화룡의 불꽃이 금태하를 불태워 버릴 것이라 여겼으나 그에게서 일어난 일렁이는 어둠에 허무하게 막혀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충돌하는 현상의 상세한 광경까지 인지하여 다음을 대비해야 했지만, 거기까지 신경이 미치지 못한다.

고개를 젖혀 피하려 했으나 금태하의 오른손에 왼쪽 승모근 부위를 붙잡히는 건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콰득!

붙잡히자마자 강한 악력으로 쥐어뜯을 듯 움켜쥐자 염황신마의 어깨도 같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면서 고통에 찬 표정이 얼굴에 떠오르는 사이 그의 눈에 조소를 머금은 금태하의 표정이 보였다.

“실력을 보여봐라.”

그가 내뱉었던 조소 어린 말이 다시 금태하의 입에서 그에게 되돌아오자 머릿속에 처져 있던 어떤 얇은 막이 톡 터져나갔다.

이를 까득 물며, 화룡도를 당겨 찔렀다. 그러나 좁은 간격에서 뻔히 보였던 움직임이기에 금태하의 왼손에 칼등을 붙잡히고 오히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어딜 감히!”

염황신마가 버럭 소리쳤다.

염룡마공 염옥발화(炎獄發火).

본래는 적의 주변부터 아울러 불지옥에 가두는 무공을 자신에게 사용했다. 쉽게 끌 수 없는 마경(魔境)의 불꽃은 시전자를 완벽하게 배제한 채 목표만을 불사른다.

염황신마의 전신에서 일어난 불꽃이 순식간에 금태하까지 뒤덮었다.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지만, 혹시 몸에 닿는다면 틀림없이 극심한 고통을 안겨 줄 터.

강정학이 당했던 전철을 그대로 맛보여 줄 셈이었는데,

암연소혼신공 암연공야성.

이 절초의 공력은 여전히 유지된 채, 염황신마의 불꽃에 반응하여 다시금 일렁인다.

거대한 불길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어둠.

오히려 붙잡힌 어깨에서 강한 악력에 의한 고통 외에도 타는듯한 고통까지 느껴지기 시작하자 염황신마가 두 눈을 부릅떴다.

콰아아아!

엄청난 크기의 불기둥이 염황신마로부터 솟구쳐 올랐으나 금태하의 기운으로 인해 반쪽짜리로 보였다.

두 기운이 격렬하게 출렁이고 또 휘몰아쳤다. 사방으로 불꽃이 난사되어 피해를 본 자들도 속출할 정도였다. 극양이라는 한쪽으로 치우친 기운이 갖는 파괴력과 살상력, 그리고 불꽃으로서의 연소 능력은 상식을 벗어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끝을 측정할 수 없는 어둠은 오히려 불길을 집어삼키더니 되레 흑염(黑炎)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뭣……!?’

순간 흡성대법이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근본적으로 다른 현상.

마치 그의 불꽃에 먹물을 덧씌운 듯 또는 끝없는 어둠에 덮여 일렁이던 열화가 소멸하고 간신히 그을음만 피는 듯.

어둠을 짊어진 밤의 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작은 모닥불.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

“불태워라!”

일갈과 함께 단전과 마정에서 막대한 극양기를 표출한다.

콰아아아아-!

한층 더 선명한 홍염의 일렁이는 불꽃의 끝자락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열기를 품은 강기로 구현된다. 훨씬 선명한 홍염을 뿜어내자 마침내 금태하가 뒤로 몸을 날리며 물러났다.

‘이것인가? 훗!’

손에 남은 불티와 그로 인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강정학이 고통을 받았던 그것.

암흑의 기운이 빠르게 덮어버리자 불티와 고통은 함께 사라졌다.

강력한 화염을 뿜어내며 달려드는 염황신마를 향해 금태하 또한 두 손을 뻗으며 흡사 화염처럼 일렁이는 흑염을 뿜어냈다.

암연소혼신공 소천암화(燒天暗花)

불살라진 하늘재 속에 꽃이 핀다.

불꽃을 집어삼킨 어둠은 흑염이라는 불꽃으로 거듭나니 이것은 상식을 부수는 다른 차원의 힘.

화르르르!

불지옥 속에서 두 신형이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화룡도를 들고 홍염 속에서 칼춤을 추는 염황신마와 흑염 속에서 주먹 쥔 두 손을 내지르는 금태하가 격돌하는 그 모습은 현장에 있으면서도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치열한 것은 비단 금태하와 염황신마 사이의 싸움뿐만이 아니었다.

광혈종과 구룡문이 전력을 다해 다투는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든 염황종 마인들이 가져온 전투의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백제성으로 뛰어든 구룡문은 환진 속에 숨은 광혈종 마교도들로 인하여 역포위당한 형국이었다. 그런데도 높은 사기와 실력을 바탕으로 모두가 해볼 만하다고 느끼는 전투의 분위기 속에서 염황문이 난입한 상황은 알게 모르게 전투의 향방을 조금씩 위태로운 쪽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백제성 전투에 난입한 염황문 마인들의 숫자는 400여 명에 달했는데, 전투를 치르는 총인원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그들의 마공이 갖는 특수성은 전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피아를 식별하는 화염은 한번 방어가 뚫려 신체에 닿으면 쉽게 꺼지지 않아 몹시 고통스러웠다. 특별히 공력으로 이를 떨쳐내도 한번 남은 화상은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제정신으로 싸움을 지속해 나갈 수 없는 불리함을 강제하고 있었다.

염황문의 마공에 대한 위협은 이미 그들과 검림이 치렀던 전투에 대한 기록으로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실전에 대한 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병장기가 충돌하는 소리, 기합과 비명이 뒤섞인 육성들.

투지를 불태우는 구룡문 여섯 계파의 무사들.

홍문단 복용으로 인해 두 눈에 광기의 흉광이 번들거리는 광혈종의 마인들.

지옥의 불길을 휘두르며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는 염황종의 마인들.

죽음을 각오하는 치열함과 잔인한 손속으로 승기를 붙잡으려는 악독함이 다투는 전장이었다.

이 속에서 가장 당황해하는 것은 바로 금태하와 함께 백제성으로 진입한 반금파 수장 5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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