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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215화 (215/432)

215화 - 제40장. 백제성포위전(白帝城包圍戰) (1)

혁무술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금태하를 중심으로 패도적인 기운이 소용돌이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섬뜩한 느낌은 혁무술에게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이어서 감각의 모순을 인지하면서도 날카로워진 본능에 경종을 세게 울리고 있었다.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쿠웅!

지반이 부서져 눌릴 정도로 두 발에 공력을 싣고 강하게 밀어내니 그 거구가 화살처럼 날아가 금태하를 덮쳤다.

광무혈폭마공(狂武血暴魔功) 파암폭격(破巖爆擊).

가지처럼 뻗는 적황(赤黃)의 기류가 혁무술의 피부를 타고 두 팔, 두 주먹에서부터 산파(散播)되었다. 번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류의 폭주로 요동치는 듯한 모양이었는데 그것이 또 다른 권강(拳罡)들까지 형성하면서 금태하를 향해 쏟아졌다.

“흥!”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사이로 금태하의 코웃음이 들려왔다. 그 순간 그의 시계가 암흑으로 뒤덮였다.

‘……어?’

돌격 일념이었던 심리가 그로 인해 멈칫했다.

금태하가 서 있었을 자리를 그의 주먹들이 쏟아졌지만, 어떤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각뿐만 아니라 여러 감각마저 차단해버린 이 암흑 속에 삼켜진 것만 같았다.

오히려 두려워할 만한 거대한 위협감이 그의 품으로 그리고 뒤로 엄습해왔다.

암연소혼신공 암계연옥장(暗界煉獄掌).

콰콰쾅!

거대한 경력이 혁무술의 전신에 그대로 꽂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커헉!”

전신을 때리는 충격에 절로 벌려진 입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동시에 그를 집어삼켰던 암흑도 걷혔다.

내가중수법의 강력한 장력은 그의 두꺼운 근육과 호체진기를 꿰뚫어버리니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윽!”

하지만, 역시 구주마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광혈신마답게 혁무술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살짝 비틀거리긴 했으나 이내 자신에게 일격을 가하고 떨어지려는 금태하를 쫓아가 주먹을 연거푸 쏟아냈다.

‘맷집이 상당하군.’

싸움을 일찍 끝내기 위해 금태하는 본래 더 강한 무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찰나의 차이라고는 하나 혁무술이 상태를 회복하고 다시 그에게 달려 들어간 시점은 그가 상정한 기준보다 빨랐다.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잠깐 놀아줘 볼까?’

암연소혼신공 암옥공(暗玉功).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검은 기운이 그의 양손을 감쌌다. 면전으로 쏟아지는 혁무술의 주먹들을 보면서 금태하가 검은 손을 뻗었다.

파파파팡!

순식간에 십여 합이 두 사람 사이를 교차했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외공과 마치 화약이 폭발하듯 반응하는 공수의 전환 속도.

광혈신마 혁무술의 무력의 근간은 바로 압도적인 근접전에 있었다. 그리고 광혈종 마인들의 전투도 모두 그러한 것들이었다. 일반적인 도검의 형태를 다루는 자들은 거의 없고 모두 다루기 까다로운 기형적인 병기들을 사용하는데 모두 예민한 감각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위협적이었던 것은 환진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복용한 홍문단으로 인해 하나같이 두 눈으로 뿜어내는 차가운 적황색의 흉광에 단서가 있으리라.

광무혈폭마공 쇄인흉조(碎刃凶爪)

“크와아앙!”

그것은 사자의 포효인가?

손톱을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세우며 달려드는 혁무술을 보면서 금태하는 적잖이 감탄했다.

거체(巨體)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색의 날카로운 기류는 마치 사자의 야성과 닮아 있었으며, 그 속에 섞여 휘몰아치듯 뻗대는 적색의 기류는 그 흉포함을 드러내는 듯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찌르르 떨게 했다.

광무혈폭마공의 광무(狂武)란 광기로 점철된 압도적인 힘이요, 혈폭(血暴)이란 흥분에 휩싸여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혈류를 뜻함이다.

거리 안으로 들어선 순간 결코 받아낼 수 없는 속도와 힘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리라.

광무혈폭마공 단강참사(斷剛慘死).

형혜화된 초식이 아닌 기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힘 앞에 강철과 같은 강건한 힘도 쪼개질 것이요, 그리하여 참혹한 죽음으로 끌어내고야 마는 초식이다.

공간을 아우르는 공격으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손아귀 안에 적을 두어 요리하는 수법.

칼날처럼 휘몰아치던 조공 뒤에 찾아오는 것은 우악스러운 악력을 이용한 금나수와 내지르는 파괴적인 권경이다.

콰콰콰콱-!

파파팡-!

거리 안에 두었음에도 거권을 막아 세우는 노인의 검은 손.

예측할 수 없는 궤적과 반응으로 날아오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초감각으로 예측하는 힘의 흐름에 따라 적절한 방어와 회피를 가미한다.

쩌엉!

주먹 한 치 앞에 집중시킨 경력이 그대로 혁무술의 턱에 직격한다.

“끄으……!”

강력한 일격에 턱이 쳐들리고 몸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일격에 뇌가 흔들리는 충격 속에서 혁무술은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를 상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냐? 이 터무니없는 강함은……?’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요자의 정순한 공력과 태극혜검의 위력은 그에게 패배를 선사한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강한 위축을 불러일으켰다. 홍문단을 다섯 알이나 입에 털어 넣고 그 광폭화를 몸소 선보였지만, 정순하기 그지없는 공력의 파도는 그가 품고 있던 마성과 마기를 뒤흔들어놨다.

서둘러 도망쳤고 천산의 태상교주를 찾아가 미뤄두었던 마정의 힘을 각성시켰다. 다시 홍문단에 의존하지 않아도 폭주혈(暴注血)을 제어할 수 있게 되고 힘도 더욱 강해졌다. 다시는 그 빛에 현혹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소요자와 같은 사술같은 빛이 아닌 그를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자가 나타났다.

공중에 붕 떠오른 거구를 중심으로 어둠의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전체로 보면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지만, 아홉 개의 근원으로 기운이 밀집하며 기세를 흩뿌리는 것이다. 그 거대한 기운체들을 힘을 피부로 느끼며 도대체 언제 이만한 기운을 짧은 시간에 끌어모았는지 의문이었다.

암연소혼신공 구천암룡폭(九天暗龍爆).

콰콰콰콰콰-!

“크아아아……!”

어둠을 가득 머금은 공력의 소용돌이가 마치 용상(龍狀)을 이루는 듯한 착각 속에서 일제히 쏟아졌다. 뿌리치듯 팔다리를 휘두르며 다급히 방어를 해보려 하지만, 금태하의 기공이 더 빠르다. 호신강기가 단단하게 피부를 보호하고 있어도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토해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

간신히 붙들어 매며 서둘러 금태하의 위치를 찾기 위해 혁무술의 시선이 돌아갔다.

“너, 맷집이 강했지?”

금태하는 어디에 가 있지 않고 여전히 그의 앞에 있었다.

혁무술을 쫓아 이미 공중으로 몸을 띄운 채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상대적으로 작은 금태하의 손이 혁무술의 얼굴을 덮었다.

혁무술이 금태하의 손을 떼어내기 위하여 황급히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고 밀어냈으나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금태하의 두 손을 덮은 채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

정확히는 어둠이라 해야 할 만한 그것은 막대한 인력으로 그의 얼굴을 빨아들이듯 붙잡고 있었다.

“큭……!”

“암흑경파장(暗黑勁破掌).”

쩌엉-!

막대한 경력이 혁무술의 안면에 작렬하며 굉음이 터져 나온다. 그 충격파로 먼지를 꼬리에 물고 금태하의 신형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고 혁무술은 그대로 머리부터 바닥에 내려꽂혔다.

본래대로라면 그의 신형이 이리 튀어 올라올 리 없었다.

암연소혼신공 암흑경파장은 강력한 인력으로 상대의 신체를 붙들어 맨 채 그대로 내장부터 부숴버리는 무공이다. 이는 혁무술이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기를 끌어 올린 탓에 생긴 반발력 때문이었고 금태하는 금방 이를 알아차렸다.

바닥에 처박힌 혁무술의 눈엔 빛이 꺼져 있고 팔다리도 힘없이 바닥에 늘어지고 있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상당한 각혈이 가시 수염을 뒤덮고 있었다.

일시적이나 분명 충격 때문에 기절한 것일 터.

“지난 빚은 목숨으로 거둬가마.”

금태하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금 쌍장에 막대한 공력을 끌어모았다.

바로 그때.

화르르륵-!

한 순간 어둠이 걷혔다.

사위 그 넓은 권역을 모두 휘감는 거대한 불길이 일제히 일어나며 밤 아래 싸우던 사람들의 모습들까지 금태하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감각 안에 잡히는 새로운 거대한 존재감, 어쩌면 광혈신마 혁무술보다 좀 더 큰 기운이 발광체처럼 마기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남쪽에서 그것이 금태하를 향해 쏘아져 왔다.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강렬한 인상의 백발노인이 적룡포를 휘날리며, 타오르는 불길을 전신과 용두(龍頭)를 호수(護手)에 덮은 패도에 휘감은 채 그를 노리고 휘둘렀다. 그리고 날아드는 그 화염의 극양기에 맞서 금태하는 쌍수에 모아둔 기운의 방향을 돌렸다.

푸아아앙!

화륵-!

일시 응축되었던 공압이 터져나가고 불꽃의 바람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두 사람의 신형이 붙었다 다시 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혼절한 혁무술의 숨통을 끊어놓기엔 금태하는 염황신마보다 가깝지 않았다.

치이이…….

손안에 남아 있는 불꽃의 열기가 느껴졌다.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새로이 인지할 정도로 마기로 형성된 불꽃은 금태하의 손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암연소혼신공을 운기하면서 두 손에 기를 집중하자 어둠의 안개가 일렁였고 이내 불꽃을 덮어 집어삼켰다.

주변을 잠깐 둘러보았다.

어둠 속 치열하게 싸우던 광혈마종 마인들과 구룡문도들은 새로이 개입한 염황마종 마인들에 의해 더는 한밤의 어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염황마종 마인들이 일으키는 불꽃들이 춤을 추면서 제멋대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니 원근감 등의 공간감각을 현혹하는 효과를 낳게 됐다. 거기에 자유로운 자들은 염황마종의 마인들 밖에 없었으니 광혈마종보다 숫자가 적기는 했으나 구룡문도들이 끌어올리던 기세를 꺾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흑사왕 금태하를 상대하게 되어 영광이군.”

“네가 강정학에게 도망쳤다던 염황신마로군.”

“껄껄껄! 이 몸이 도망쳤다라? 뭐 정황상 그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군. 그러나 이 노부의 화염에 백령신검은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걸 아는데 말이야. 노부를 결국 죽이지 못했고 고통에 시달리는 건 백령신검이니 이 정도면 무승부로 쳐주지 그러나? 껄껄껄!”

“풋! 고작 화상을 어찌 한쪽 팔의 상실과 비교할 수 있느냐?”

금태하가 염황신마를 보며 비웃었다.

염황신마의 적룡포는 화려했지만, 왼팔 부분은 바람에 힘없이 나부꼈다.

염황신마는 이제는 어깨와 상완 일부만 남아있는 허전한 왼팔을 흘끔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껄! 이거 왼팔을 잃은 지 3년 차가 되어버리니 노부도 모르게 적응이 되어서 깜박 잊고 있었는데 이걸 또 상기시켜 주는구먼.”

염황신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람에 시큰거리던 통증도 이제는 거의 사라져 외팔이 신세에 꽤 적응한 터였다. 그래도 무공을 다루면 여전히 없는 왼팔에 허전함을 느끼지만, 그 대신 다시 싸울 대적에 대비해 스스로 정련하고 미뤄둔 마정마저 온전히 수용하였으니 힘은 예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광혈신마 혁무술이든, 염황신마든 3년 전 중원과 사천에서 벌어졌던 일시적이나 격렬했던 충돌 이후로 천마신교는 중원 무림의 저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주마종의 여덟 신마는 저마다 시기는 달랐으나 모두 천산 박격달봉 아래 용암비동의 태상교주 단원진을 찾아갔다.

각자에게 마련된 비동에 설계된 술진 아래 혼돈의 형태로 내재하던 마정과 마성을 깨우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지금 여덟 신마는 모두 한 단계 더 각성하며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뜬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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