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98화 (198/432)

198화 - 제37장. 비가 오기 시작한 날 (2)

계유각은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다리 병신이 뭔 수로…….”

“놈이 타고 다니는 륜의에 뭔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냐?”

“……아아?”

그제야 계유각이 뭔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을 짓자 옹견이 한숨과 함께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아아? 하아! 이 빡대가리야. 머리가 안 돌아가면 닥치고 내 말대로 하면 된다. 괜히 주령께서 날 이 작전의 책임자로 지명했겠냐?”

계유각은 기분이 나빴지만, 옹견의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쳇. 알았다. 그런데 그 륜의에 뭐가 있을 거 같은데?”

“글쎄, 온갖 암기나 지랄 맞은 무기들이 튀어나오거나 하겠지. 일단 부하들을 제물로 좀 바치고 있으면 틈이 만들어질 거야. 만약 륜의가 그만한 가공할 병기라면 가장 적절하게 보조할 수 있는 사람은 당혁수의 여편네일 테니 네가 잘 놀아주고 있어. 죽일 수 있으면 더 좋고.”

“만만치 않은 년인데.”

“독무라도 넉넉히 챙겨가. 클클클! 시간을 끌수록 그년은 쇠약해지고 넌 세지고. 이러면 얘기 끝이지.”

옹견이 엄지를 들어 목에 대고 긋자 계유각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유각은 또 생각나는 게 있어 입을 열었다.

“당한솔을 죽이고 나면 다음은?”

“혼란에 빠졌을 테니 끌고 온 부하들을 모두 동원해서 재습격을 하던가 하면 되겠지. 소가주가 죽는다면 당혁수나 진윤지나 정신 못 차릴 거다. 게다가 앞으론 이곳에 폭풍이 몰아치듯이 공세가 이어질 텐데 놈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당문의 자리에 사혈주의 간판이 걸릴 날이 머지않았다. 클클클!”

독구도는 옹견의 별호이자 성명병기였다.

칼날 자체에 운남 늪지의 백사독(白蛇毒)을 바르기도 해놨지만, 마치 낫처럼 크게 구부러진 료(了)자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낫칼(鉤刀)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이미 마비혈에 이화침이 꽂혀 꼼짝도 못 하는 부하를 방패 겸 발판 삼아 떨어지는 옹견의 구부러진 칼끝엔 가죽 주머니가 꽂혀 있었다. 거기엔 이광혈독무의 분진 뭉치가 담겨 있었다.

‘그 얄팍한 가슴에 독구도를 꽂아 독무가 직접 주입되도록 해 주마!’

혹시 피해내더라도 도기를 뿜어내 터뜨리면 그 자체로도 효과적인 창살 없는 감옥 역할을 할 터였다.

옹견이 그 계산을 실현하기 위하여 마침내 부하를 옆으로 밀어내며 당한솔의 가슴을 노리고 독구도를 내리찍으려 휘둘렀다.

“안 돼!”

그 광경을 목격한 당환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파공성에 파묻혔다.

파아아-!

순간 거센 돌풍이 옹견의 뺨을 때렸다.

옹견이 섬뜩한 느낌에 본능적으로 눈을 돌렸을 때, 검은 기운의 파도가 그를 덮쳤다.

‘뭐, 뭐야!?’

옹견이 놀라 급히 독구도를 그 검은 기운 쪽으로 휘둘렀다.

콰콰콱!

반사적으로 뽑아낸 도기가 검은 돌풍과 충돌했다. 칼끝에 걸려 있던 이광혈독무 주머니가 터지며 분진이 터져 나왔지만,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떠밀려 흩어졌다.

“흐읍……, 감히 어떤 쳐죽일 새끼가……!”

옹견이 근처에 남은 독무를 흡입하고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분노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바닥에 누운 당한솔의 옆에 선 야율균은의 모습이 들어왔다.

북방계처럼 보이면서도 그 혈통의 특색이 과하지 않아 취향에 맞기도 한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딱 보기에도 당문 사람은 아니었다.

“네년은 뭐야?”

옹견이 버럭 소리를 쳤다.

야율균은은 옹견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막 뽑아 든 한 자루 만곡도를 바닥에 잠시 꽂고는 구기륜의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당한솔을 안아서 번쩍 들어 륜의에 다시 앉혔다. 당한솔은 엉겁결에 모친인 진윤지가 아닌 외간여자에게 안긴 처지가 되자 부끄러워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특히 야율균은에게서 풍긴 체취가 그의 감각을 자극하는 게 컸다.

“저, 전혀 안 도와줄 것처럼 서 있더니. 왜 도와준 것이오?”

야율균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당한솔을 쳐다보다가 픽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뭔가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발끈하려는 그때 이어진 그녀의 말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신 강하네. 마음에 들었어.”

당한솔이 당황하여 그녀를 멀뚱히 쳐다볼 때, 야율균은이 다시 그를 흘끔 쳐다보고는 나머지 한 자루 만곡도를 왼손으로 마저 뽑으며 얘기한다.

“이젠 내가 지켜줄게.”

야율균은은 정말 오랜만에 내공을 한껏 끌어올렸다. 단전에서부터 치솟은 마기가 골고루 온몸에 뻗어 나가면서 몸에 축적된 피로를 일거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아래로 늘어뜨린 두 자루 만곡도를 감싸며 검은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옹견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북방계 여자, 만곡도……, 검은 바람(黑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야율균은의 모습이 주는 인상은 매우 강렬해서 옹견으로서는 당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흑풍마종은 전쟁에서 패해 절멸됐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네년은 왜 같은 편인 나를……?”

“배신자거든.”

“뭐라?”

옹견은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야율균은이 근처에 모여 있던 사혈주 녹의인들을 노리고 쌍곡도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흑풍명천마공 흑풍소공(黑風掃空).

휘두른 도의 궤적을 따라서 지면 가까이 낮게 깔아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은 그 자체로 실체적 도기면서 기세를 추종하는 선에서 자유롭게 펼치는 발톱과도 같다.

흑풍대를 이끌었던 장수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공력은 보통의 사혈주 녹의마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콰콰콰콰!

일격에 다섯 명이 휩쓸려 절명했다.

당환과 다투던 녹의인도 그 기세에 휘말려 휘청였다. 당환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다리를 걷어차 자빠뜨렸다. 그리고 그대로 오른손을 녹의인의 얼굴에 덮었다.

적련장(赤蓮掌).

삼양귀원신공(三陽歸元神功)의 중후한 양강기가 그의 오른손 장심까지 전해져 녹의인 면전 위로 퍼부어졌다.

콰앙-!

일격에 얼굴이 함몰되면서 절명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보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야율균은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마교도를 들여놓았다니……!’

경악과 자책이 동시에 들면서도 옹견을 향해 몸을 날리는 야율균은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바로 감이 서지 않았다.

“숙부!”

당환이 당한솔에게 달려갔다.

“괜찮으냐?”

“지금 바로 나가서 청성파를 불러오십시오.”

“너는?”

“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녹주팔비 정도가 아니라면 절 어쩌지 못합니다. 청성파의 지원을 받아서 어머니를 도와 바깥의 적을 몰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저 여자도 마교도다. 어찌 믿을 수 있느냐?”

“적이라면 제가 죽는 걸 그대로 두고 봤겠죠.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가십시오. 제가 볼 땐 여기보다 어머니가 더 위험하실 겁니다.”

“……알았다. 금방 오마.”

당환은 즉시 몸을 날려 서쪽 담장을 넘어갔다. 그는 발을 떼면서도 마공을 사용하는 야율균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당한솔의 말처럼 그녀가 아니었으면 조금 전 당문은 소가주를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당환이 자리를 뜨자마자 당한솔은 사주를 경계하면서도 야율균은이 옹견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꿀꺽.

휘몰아치는 검은 바람은 거리를 벌린 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는 없으나 그녀가 자신의 편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 묘한 긴장과 떨림의 경계선에서 그는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구음독천마공(九陰毒泉魔功).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내공의 독성이 더욱 높아지고 침투력도 높아진다. 천마신교 구주마종의 말단의 서열에 있었음에도 사혈마종이 가장 껄끄러운 집단으로 손꼽히는 것은 이들의 독공이 그만큼 지독하기 때문이었다.

무공에 있어서 기라는 것은 응집할수록 더 큰 위력을 발하게 되는데 이때 독공은 마치 역효과처럼 침투하여 해악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근접전을 펼칠수록 이런 영향을 더 자주 받게 되어 자연스럽게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흑풍명천마공은 철저하게 기운의 발산만이 존재했다. 응집도 있었으나 바람과 같은 흐름 속에 갇혀 끝없이 흘러나갔기 때문에 독기가 시전자를 노리고 침투하기 쉽지 않았다.

옹견이 독구도를 휘두르면서 펼쳐내는 도기 속에는 구음독천마공의 독기가 함께 서려 있었으나 야율균은이 일으킨 흑풍의 기류에 모두 휩쓸려 나가 쉬이 닿질 않았다.

“크아아!”

비명일까, 기합일까.

피맺힌 절규에 가까운 함성과 함께 휘두르는 독구도와 흔들리는 옹견의 눈빛을 바라보는 야율균은의 눈빛이 차갑게 흘렀다.

옹견에게 있어서 독구도의 기형적 형태는 상대의 고통을 끌어내는 잔인함의 발로였다면 야율균은에게 만곡도의 휘어진 형태는 초원 전투의 기술과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옹견이 물러서며 독구도를 휘둘렀지만, 야율균은은 왼손의 만곡도의 휘어진 부분을 이용해 걸어 버렸다. 오른손의 만곡도엔 여지없이 검은 칼날의 바람이 휘몰아치며 떨어지니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끄아아악……! 이 쳐죽일 배신자년……!”

칼이 떨어지기 전에 손목을 붙잡았지만, 흑풍의 도기가 어깨를 할퀴는 건 막지 못했다.

옹견은 고통과 분노로 뒤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힐난했지만, 야율균은은 냉소는 그의 분노를 얼어붙게 했다.

“죽을 준비는 됐겠지?”

“크악!”

독구도에 걸린 만곡도를 거칠게 뿌리치며 옹견이 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도 자존심이 있었기에 이름도 모르는 배신자에게 얕보이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좌수의 손톱을 세워 독구도와 함께 휘둘렀다. 왼손도 마기를 두르고 싸우니 야율균은의 쌍곡도와 합을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옹견이 과감하게 접근하면서 곡도를 허초로 휘두르고는 아래로 파고들며 연환퇴를 펼쳤다.

야율균은이 뛰어오르면서 옹견의 연환퇴는 허공을 때리는 데 그쳤지만, 아래로 늘어진 만곡도를 노리고 재차 휘두른 독구도는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콰콱!

독구도로 만곡도를 콱 잡아당기자 공중에서 야율균은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굽은 칼을 네년만 잘 쓰는 게 아니다!’

아래로 파고들어 바닥에 가깝게 누웠던 옹견이 벌떡 일어나며 뛰어오르기 위해 다리로 땅을 찼다. 동시에 독조공(毒爪功)으로 할퀴기 위해 야율균은을 노리고 왼팔을 뻗었다.

‘윽!’

그 순간 무릎이 따끔거렸다.

의지로는 벌써 뛰어올랐어야 했는데 되레 오른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왼발로만 가까스로 몸을 세우는 데 그쳤다.

찰나 눈을 돌린 곳에서 자신 쪽을 향하여 손을 뻗은 당한솔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무릎에 꽂힌 은침이 반짝이는 것도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당한솔의 존재를 잊고 있었음을 후회할 시간도 없이 야율균은이 공중에서 몸을 휘두르며 두 자루 만곡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의 좌우로 흑풍의 기류가 칼로 찌르듯 파고 들어왔다.

카카카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