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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94화 (194/432)

194화 - 제36장.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야 (4)

백성들은 최근 청성파를 정파의 가면을 쓴 속물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최현걸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다섯 명을 동시에 개 패듯 두들기고 있으니 이제는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잘한다!”

“더 두들겨 패라!”

“속 시원하다!”

반면 군중들의 연호에 힘입어 더 날뛰는 최현걸의 모습을 보면서 진도건 등은 그가 혹시 청성파 제자들을 죽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들이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멈춰라!”

군중들 머리 위쪽으로 한 사내가 경공을 펼치며 나타났다. 행색은 이들 속가제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검세가 더 날카롭고 빨라서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 사내도 두 명의 속가제자와 함께 나타났으나 최현걸 한 사람에 의해 동기들이 쓰러진 것을 보고 섣불리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귀하는 누구길래 본파 제자들을 이리 핍박하는가?”

“내 정체를 묻기 전에 본인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니냐?”

“본인은 청성파의 제자 여문위다.”

최현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표개 어른이 얘기한 사람이구나.’

과연 외모가 남자답게 잘생긴 편이고 체격도 준수한 편이었다. 여문위의 용모를 유심히 뜯어보던 최현걸이 무심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율 누이가 좋아할 만한 얼굴은 아니네.”

“뭐?”

여문위가 웅얼거리는 소리에 반응했다.

“신경 쓸 거 없고, 난 개방 용두방주 홍두형의 제자 소개 최현걸이다.”

“개방?”

여문위는 개방이라는 이름에 움찔했다. 교류할 일은 적었지만, 사천에도 물론 개방도가 있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처럼 딱 봐도 거지 같은 행색은 아니어서 그대로 믿어야 할지 의뭉스러웠다.

다만 속가제자 동지들을 짧은 목봉 하나로 가지고 놀듯 두들겨 패는 솜씨는 개방의 타구봉법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듯도 했다.

“끄으……, 분명 마교도가 틀림없어…….”

그때 서종혁이 여문위에게 엉금엉금 기어가서 신음과 함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최현걸이 못 듣고 넘어가기엔 충분히 컸다.

최현걸이 콧방귀를 뀌며 오 숙수 등이 간신히 부축하며 상태를 살펴주고 있는 위군보를 손으로 가리켰다.

“흥! 어린 청년을 물증도 없이 마교 끄나풀로 몰아서 구타한 네놈들의 행간이 아직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나 보지?”

최현걸의 말을 듣고 여문위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최근 일부 속가제자들과 도가제자들이 백성들을 상대로 벌인 강압적인 행각을 알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서 그도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지금 상황이 여러 가지로 결코 가벼이 넘길 상황은 아니었다.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면 조사는 당연히 해야 하오. 마교와 연루되었다면 이는 사천 무림과 치안에 중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내 동료들이 강압적이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사과하겠소.”

그 말을 들은 최현걸은 심기가 뒤틀려 입을 열었다.

“조사는 해야겠고, 사과도 해야겠고. 뭐 말장난인가?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사안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물증도 없이 조사를 강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 있다고 느끼지 못하나 봐?”

최현걸이 스스로 개방의 소개라고 밝힌 상황에서 여문위는 아직 온전히 믿기 어렵다고 생각함에도 존대로 일단 대응했다. 그러나 최현걸이 여전히 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그의 심기도 매우 불편해졌다.

“귀하가 정녕 개방의 소개라면 말에 예의를 갖춰 주시오.”

“난 병신들에게 존대해 줄 만큼 아량이 넓은 놈이 아니야. 미친개는 말보다 몽둥이가 약이거든.”

그 말에 여문위가 크게 노하며 검 끝을 최현걸을 향해 겨눴다.

“지금 그 말 당장 사과하시오!”

“내가 이놈들을 두들겨 팰 때 여기 있는 군중들의 환호성을 듣지 못했냐? 너희들 같은 새끼들 때문에 대청성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이 새끼야.”

최현걸의 거친 말은 최소한의 현실을 인지할 양심이 조금은 남았던 여문위에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일침처럼 다가왔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최현걸의 일침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민중의 따가운 눈초리도 느껴졌다. 기꺼이 싸운다면 무너진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검을 내려놔라.”

이중적인 속마음이 치열한 갈등을 부르며 번뇌의 낙인이 새겨지려 할 때, 스승의 목소리는 그가 느꼈던 부담의 크기를 덜어주는 듯했다.

군중들을 해치며 남색 도포를 걸친 반백의 노도사가 다른 중년의 도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여문위는 그를 보자마자 검을 역수로 쥐고 포권을 취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물러서서 아이들을 수습해라.”

노도사는 여문위의 포권을 손으로 눌러 거두게 했다. 그리고 최현걸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스스로 먼저 고개를 숙였다.

“빈도는 청성파의 정평자(靜平子)라고 하네.”

“흥! 관심없소.”

최현걸은 홧김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직후 바로 후회했다. 그래도 연배로 보면 그의 사숙이나 스승뻘로 보였으니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가 너무 많이 났었기 때문에 사과할 마음도 도통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평자는 감정의 기복이 적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리를 알고 옳고 그름에 칼같이 선을 긋고는 하니 그의 단호함을 빌어 단심자(斷心子)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그는 이 자리에 나타날 때부터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최근 본파의 속가제자 녀석들부터 도가제자 할 것 없이 백성들을 상대로 강제하는 행위들이 잦아지고 있다는 탄원들을 받고 있네. 마교와의 싸움 때문에 예민해졌다고 해서 엉뚱한 데에 화살을 돌려 화풀이하는 셈이니 지탄받아 마땅하지. 이 자리에서의 일도 맥락이 그와 같아 보이니 청성파의 일곱 스승 중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네. 자네와 저 점소이, 면양객잔 점원들과 여기 계신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오.”

정평자가 눈을 감고 합장을 하며 깊이 허리를 숙이자 따라온 중년 도사들도 모두 정평자와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사죄의 인사를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여문위는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역시…… 백성들의 탄원이 빈번해지면서 그간의 행동에 대해 칠자가 모두 감찰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여문위를 비롯한 속가제자들도 사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깊이 허리를 숙이자 서종혁 일행도 엉거주춤 엎드려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청성칠자(淸城七子)는 청성파 장문인 하송진인(夏松眞人) 서광윤(徐光閏)의 제자들로 청성파의 일곱 스승이라고 불리었다. 정평자 주윤(周倫)은 바로 여문위의 스승이었는데 그가 평소의 행간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런 사안에 대해서 무척 단호하고 가차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문으로 돌아가면 지엄한 문초를 겪을 걸 예상했고 이는 다른 속가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일곱 명의 스승들 가운데 가장 걸려선 안 될 사람에게 못된 짓 하다 걸린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최현걸은 정평자가 변명 하나 늘어놓지 않고 사과부터 하자 조금은 민망해졌다.

군중들 사이에서 야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청성칠자의 민심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그저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현걸은 자신의 분노만을 챙기려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방의 소개 최현걸입니다. 홧김이라기엔 무례를 저질렀으니 부디 용서를 구합니다.”

정평자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창도는 저 아이의 상태를 살펴 주어라.”

“예, 스승님.”

정평자의 도가제자인 안창도(安愴渡)는 대답을 하면서 위군보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여문위를 슬쩍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눈이 마주친 여문위는 심정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안창도가 위군도의 내상을 돌보는 동안, 정평자가 최현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의심하고 싶진 않네만, 그래도 신분에 대한 신뢰는 필요할 터이니. 자네 복장을 봐선 개방 제자로 보이진 않아서 말이네. 신분을 입증해 줄 만한 것이 있는가?”

“흐음, 그게…….”

최현걸은 자신의 타구봉을 만지작거렸다. 기실 수련용일 뿐이라 개방의 신물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거지 옷을 입고 마대 자루를 짊어진 것도 아니어서 설명하기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진도건 등에게로 옮겨갔다.

“저들이 함께 온 동료들입니다. 우린 창천맹의 지령을 받고 이곳을 돕기 위해 온 것입니다.”

최현걸의 폭주 아닌 폭주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영은성은 조금 안정되어가는 상황에 안심하면서 앞으로 나서서 정평자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화산파 제자 영은성이라고 합니다.”

같은 도가 문파인 화산파가 나오자 정평자는 조금 반가운 얼굴이 되긴 했으나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마교가 사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모두 감시하고 있는 마당에 자네들의 말이 말뿐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알 길은 없다네. 거기 두 사람은 그럼 어느 쪽 사람인가? 무당파, 소림사인가?”

정평자의 시선이 영은성 뒤의 두 사람에게 향하자 그 둘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천서은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다른 손으로는 방갓을 벗었다. 아름다운 용모가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는 착각이 드는 사이, 그녀는 품에서 꺼낸 옥패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제 이름은 천서은. 이건 창천맹의 천옥패(天玉佩)예요. 아버지께서 중요 인사들은 알아볼 거라고 하셨는데, 알아보시겠는지요?”

창천맹 창설 초기 천무경은 창천맹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천옥패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전국 각지에 전파한 바가 있었다. 이 작은 옥패는 직인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천가의 여인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 자네가 맹주의 딸인가?”

“그렇습니다.”

단발머리가 의외이긴 했으나 소문대로 아름다운 용모에 굳이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분명한 천옥패의 형상에 정평자는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인적 구성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으니 그것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전, 죽은 줄 알았던 화산혈마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을 접한 적이 있었네. 그 사람의 외견에 특징이 있다고 하던데 자네 옆 사람이 혹시 그 사람이라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네만.”

천서은이 옆을 쳐다보았다.

방립 아래 그림자 속 눈을 마주 보면서 천서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진도건은 조심스럽게 방립 벗어 가슴 앞으로 내렸다.

“으음……! 확실하군.”

진도건의 적안을 확인한 순간, 정평자는 이들의 신분이 확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천의 세 정파에서 중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중원에서부터 간간이 전해지는 소식들을 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들 가운데 진도건과 천서은의 관계에 관한 내용도 있었고 거기에 연이어 화산파와 개방 제자가 동행하여 몽골 초원의 전쟁에 참전했다는 기록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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