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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93화 (193/432)

193화 - 제36장.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야 (3)

심부름을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객잔을 나갔을 때, 석연찮은 표정으로 나가다가 눈이 마주쳤던 남자를 네 건물 너머 길 한가운데서 다시 발견했다. 그자는 그때와 같은 표정을 하며 면양객잔쪽을 바라보다가 위군보와 눈이 마주쳤는데, 즉시 위군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옆에 있던 자들에게 뭐라고 떠들었다.

자연스럽게 위군보는 그자의 옆에 선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허리춤의 청색 검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에 곧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 청성파의 속가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주춤거리며 위군보가 물러설 때, 한 사내가 경공을 펼치며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왔다.

“히익!”

위군보는 서둘러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일순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한 사내가 눈앞에 뚝 떨어지며 그의 배를 걷어찼다.

퍽!

“으악!”

위군보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소리는 어찌나 크게 질렀는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끄으으…….”

위군보는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뻐끔거리는 입에선 침이 늘어지도록 나왔고 하얗게 질린 안색 위로 식은땀이 축축하게 맺혔다. 호흡조차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신음을 끝없이 흘리는 위군보에게 사내가 다가오더니 등을 후려쳤다.

짝!

“커헉!”

그 한방에 다행인지 호흡이 트였지만, 앞뒤로 느껴지는 고통은 평범한 일반 백성이 감내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고, 나으리! 제게 어찌 이러십니까요?”

사내가 위군보의 멱살을 잡은 채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위군보의 발이 땅에 떨어질 정도로 대단한 완력이었으니 위압감이 크게 느껴졌다.

“넌 우리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감히 겁도 없이 마교의 하수인 노릇을 한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찌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힘없는 백성을 이리 핍박한다는 말입니까?”

“핍박? 네가 수상한 자들에게 당문 소가주의 위치를 팔았다고 들은 증인이 있는데 발뺌할 셈이냐?”

“면주 길거리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금방 아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중에 당문 소가주께서 면주에 계신다는 걸 모르는 분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위군보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의 논리적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이미 면주의 백성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벌써 며칠째 조금이라도 진료를 받아보고 싶어 방문한 사람도 군중들 사이에서 존재할 정도였다.

위군보의 타당한 논박은 금방 백성들의 야유로 돌아왔다. 사내를 비롯해 어느새 그의 동료들도 가까이 와있었는데, 백성들의 야유가 쏟아지자 금방 얼굴이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이 맹랑한 것이!”

짜짝!

순식간에 위군보의 두 뺨을 번갈아 올려쳤다.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인 것 같은 착각이 든 순간 화끈거리는 통증이 두 뺨을 통해 전해져 왔다. 입안이 다 터지면서 입술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고 두 뺨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금방 부풀어 올랐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때 오 숙수를 비롯한 다른 점소이, 점원들이 객잔 밖으로 나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쳤다. 위군보는 그가 가장 아끼는 점원이었는데 벌써 험한 꼴을 당했으니 금방이라도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마교의 끄나풀이다. 조사해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돌려보낼 것이다.”

“끄나풀은 얼어 죽을! 이제 스무 살 된 녀석을 겁박하면 태상도군이 네놈들을 칭찬이라도 해 준다더냐?”

“네놈, 입이 험하구나.”

사내가 검을 뽑아 겨누자 오 숙수는 금방 위축되었다. 다른 자들도 검을 뽑으니 이를 구경하던 백성들도 깜짝 놀라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되레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점소이를 놔줘라.”

사내가 고개를 돌리니 검은 무복 차림에 방립을 쓴 자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뒤의 세 사람은 허리에 검을 차고 가장 앞에 선 사람은 울퉁불퉁한 나무의 굴곡을 그대로 가지면서도 곧게 뻗은 목봉이 매달려 있었다.

“네놈들이구나. 이놈이 정보를 판 마교도가.”

“꼬락서니를 보니 청성파의 속가제자들인가 본데 사문의 도사님들이 백성들을 핍박하라 가르치디?”

“마교도 주제에 죽을 자리를 찾아…….”

“마교도가 아니라 개방의 소개 최현걸이다, 이 새끼야.”

최현걸은 방립을 들어 등 뒤로 넘기고 허리에 걸었던 매듭을 풀어 목봉을 들었다.

면양객잔에서 요리를 잔뜩 주문해서 배불리 한 끼 식사하던 이들은 바로 야율균은이 빠진 진도건 일행이었고, 위군보에게 은냥을 쥐여 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던 사람은 바로 최현걸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왔는데 바로 눈앞에서 위군보가 뺨을 얻어맞으며 마교 끄나풀 취급을 받자 크게 화가 난 것이었다.

최현걸의 얼굴은 성난 빛이 가득하였는데 이 상황을 간단히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청성파 사내는 깜짝 놀랐다.

“……뭐, 개방의 소개? 하, 이놈이 어디서 약을 팔아? 거지꼴도 아니면서…… 마교도답게 흑의를 입어 놓고서…….”

“사천 촌구석에서 왕초 노릇 하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이 가여운 새끼야, 개방엔 정의개와 오의개가 있다는 것도 모르면 아는 척하지 말고 아갈머리 닥치고 있어. 너 이름 뭐야?”

“흥! 민룡검(岷龍劍) 서종혁(西終赫)이다. 간악한 마교도는 이 몸이 본때를 보여 주지.”

서종혁이 멱살을 잡고 있던 위군보를 내동댕이쳤다. 위군보가 그대로 건물 바깥에 쌓인 기물들 위로 떨어지며 요란하게 나동그라지자 최현걸은 다시 한번 심기가 뒤틀렸다.

“대형도, 형수도 나서지 마시오. 너도 나서지 마라.”

“……죽이진 마라.”

최현걸이 으르렁거리자 걱정이 된 영은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앞으로 나서는 최현걸을 바라보며 서종혁이 자세를 취했다.

청풍검법(淸風劍法)은 속가제자부터 도가제자까지 모두 수련하는 청성파의 기초검법이었다. 그리고 기초검법이어도 수련자의 경지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 달라지는 근본이 뚜렷한 무공이었다. 거기에 서종혁은 청성파의 속가제자로서 사천무림에서 별호를 얻어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어디 네 잘난 마공 구경이나 해 보자. 일검에 찔러 죽여주마!”

호기롭게 외치는 서종혁의 모습을 보고 최현걸이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이 동네는 허풍이 태세에 깔려 있나?”

그는 왼손을 앞으로 펼치더니 손바닥을 위로 뒤집고는 네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지랄하지 말고 드루와. 개방 거지들만큼 미친개 잘 패는 도당이 없다는 걸 보여 줄게.”

“문답무용(問答無用)!”

청풍검법 풍행초언(風行草偃).

서종혁이 보법을 좌우로 밟으면서 검을 연속해서 휘둘렀다. 연달아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상단을 쓸어버릴 듯한 검세 속에 어느새 최현걸이 갇혀 버렸다. 마치 강풍을 마주한 위태로운 잡초 같은 형국으로 서종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상대를 첫수부터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현걸은 서종혁보다 몇 단계 위의 고수였다.

특히 초식의 수읽기에서 그는 대단한 경지에 올라와 있었는데 지난 검림 검객들과의 비무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대부분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기예를 보여주며 놀라게 할 정도였었다.

풍행초언은 다섯 차례의 연격으로 이뤄지며 일격마다 상대의 자세를 점점 궁지에 몰아넣어 종국에는 완전히 무너뜨리게 만드는 절초였다. 따라서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여 검의 궤적을 짧게 가져갈수록 경지가 높다 할 수 있었고 그런 면에서 서종혁의 궤적은 꽤 짧은 편이었다.

최현걸은 그의 뜻대로 피해내면서 점점 자세가 뒤로 누울 듯 넘어가고 있었고 서종혁은 머릿속에 다음 일격에 끝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슷!

옷깃이 아슬아슬하게 스칠 정도로 세 번째 참격을 피해낸 순간 최현걸의 왼손이 서종혁의 검을 쥔 손등을 결대로 툭! 밀었다.

타구봉법 오구탈장(獒口奪杖).

초식에 작은 균열을 만들면서 틈을 더 벌린 최현걸은 그대로 뒤로 누울 듯한 자세 그대로 좌보를 뻗어 서종혁의 앞발을 밟고 동시에 서종혁의 얼굴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주먹 쥔 손에 유일하게 길이를 세운 식지와 중지는 그대로 서종혁의 눈을 찔렀다.

“악!”

실명될 정도로 깊이 찌르진 않았으나 눈꺼풀이 감기기도 전에 눈동자를 건드렸다. 큰 고통이 뒤따르진 않으나 눈이 예민한 기관인 만큼 비명이 절로 튀어나오며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사지에 들어간 힘도 빠질 수밖에 없으니 어느새 위로 쳐올리는 최현걸의 발차기에 손목을 얻어맞고 검을 놓치고 말았다.

서종혁은 스스로 검을 놓쳤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두 손으로 황망히 두 눈을 싸매며 웅크렸다.

최현걸은 떨어지는 서종혁의 검을 자신의 타구봉으로 휘리릭 휘감아 청성파 속가제자 무리에게 던졌다. 그들은 화들짝 놀라 받아내지도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이밀었다가 팔을 베이기도 했다.

빡!

“으악! 악!”

이후로 끔찍한 비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최현걸은 서종혁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그를 말 그대로 매타작하기 시작했다. 공력은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도록 적당히 실으면서도 충분히 고통이 전달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타점에서 터뜨릴 수 있도록 했다.

두 눈을 뜨지도 못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도망 다니다 나자빠지길 반복하는 서종혁의 머리, 배, 엉덩이, 등, 종아리, 손등 등 맥락 없이 마구잡이로 휘둘러 두들겨 팼다.

빡! 퍽! 딱! 팡!

“악! 그만! 윽! 악!”

“정파의 감투를 썼으면 힘없는 백성을 긍휼(矜恤)이 여겨 지켜주려 하지 못할망정. 이제 갓 약관에 이를만한 청년을 괴롭혀? 이 개만도 못한 새끼! 넌 좀 처맞아야 해.”

최현걸의 매타작에 서종혁이 엉망진창이 되자 다른 속가제자들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저놈을 죽여!”

“없애 버려!”

속가제자 네 명이 검을 뽑고 서종혁을 매타작하는 최현걸을 일제히 덮쳤다. 그러나 이는 최현걸이 오히려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이미 일방적으로 서종혁을 두들겨 패는 상황에서 그의 신경은 다른 속가제자에게 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기다렸다가 몸을 붕 띄우니 그의 몸이 팽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타구봉이 불쑥 솟아올라 머리를 후려쳤다.

빡!

“으악!”

당두봉갈(當頭棒喝)의 일초부터 시작해서 타구봉법 초식이 현란하게 펼쳐졌다.

타구봉법 압견구배(壓肩狗背).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잡으며 잇달아 오는 자의 어깨를 봉 끝으로 누르듯 찔렀다. 고통과 압박에 못 이겨 금방 자세가 무너지며 검을 든 팔이 높이 들렸다.

타구봉법 발구조천(撥狗朝天).

딱!

빙글 돌아가는 몸이 바닥으로 착지하면서도 타구봉은 위로 휘두르니 그대로 검 끝을 올려쳐 하늘로 날려 버렸다. 어느새 속가제자들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최현걸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리며 타구봉을 거세게 휘둘렀다.

타구봉법 봉타쌍견(棒打雙犬).

빠빡!

“끅!”

“컥!”

일격에 두 명의 뒤통수를 후리니 단말마 신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자빠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휘두른 기세 그대로 자세를 낮추면서 다시 몸을 날리니 마지막 달려오는 자의 근처로 미끄러지듯 땅을 쓸고 지나치면서 타구봉을 휘둘렀다.

타구봉법 절골구족(折骨狗足)의 일초다.

빡!

타구봉이 발목에 직격하면서 시원스러운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서종혁을 제외한 나머지 넷도 자빠트렸는데 타구봉을 휘두르는 모양새나 청성파 속가제자들이 얻어맞는 꼴이 매우 우스워서 여기저기서 탄성과 웃음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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