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제36장.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야 (2)
“그게 정말이냐?”
“제 말 믿으십시오, 숙수님. 지난번에는 변복(變服)한 자들도 제가 눈치채고 입조심하시라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청색 칼집을 보고 이 두 눈으로 예의주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집 가게는 뒷말하다 그 자에게 걸려서 결국 혼쭐이 나고 말았지요.”
위군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하는 말에 오 숙수가 킬킬대면서 양념 묻은 고기를 주무르다 말고 팔꿈치로 툭 쳤다.
“킬킬킬! 그래, 네 눈썰미는 언제나 옳지.”
오 숙수와의 인연은 위군보가 16세 때 객잔 밖에 내놨던 취피과괴(脆皮鍋魁) 간식을 훔쳐먹다 걸린 것이 인연이었다.
취피과괴는 밀가루 반죽에 견과와 꿀, 팥 등의 소를 넣어 냄비에 납작하게 튀겨낸 전통의 과자였다. 위군보는 도둑질이 걸린 일에 대해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너스레를 떨면서 면양객잔의 단순한 취피과괴의 맛 평가와 새롭게 시도할 거리를 제시하면서 그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었다.
특히 마침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어린 위군보의 연설에 혹했을 정도로 호응을 보내주는 모습을 보고 오 숙수는 아이를 혼내는 대신에 점소이로 기용한 것이었다.
오 숙수 요리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면양객잔이 면주 내에서 명성이 올라간 부분도 있지만, 위군보가 호객과 접객을 재기발랄하게 잘했기 때문이라는 손님들 평도 있었다. 그는 면양객잔 내에서 오 숙수의 눈과 귀가 되어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리를 놓았으며 이렇게 무림인이나 관의 눈치를 봐야 할 땐 또 그만큼 적절한 역할을 해주었다.
뱃살 가죽에 양념 된 고기와 채소를 모두 넣고 이미 뜨겁게 달궈진 자갈들을 넣은 다음 가죽을 묶자 안의 열기로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사이에 마침 삶아진 면을 육수 담은 그릇에 담아내고 고기, 파 고명을 얹어 쟁반에 담아냈다.
위군보가 쌀국수 담은 쟁반을 갖고 나가는 사이에 새롭게 넓은 쟁반을 준비한 오 숙수는 익숙하게 홍탕과 백탕을 담은 그릇을 놓고 소고기를 썰어 놓았다. 쌀국수를 내놓고 돌아온 위군보도 곁들일 채소들을 준비했다.
“저자들은 성격이 어때 보이냐?”
“중원인 같은데 괜찮아 보여요. 쌀국수 국물을 바로 마셔 보더니 개운하고 좋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사천 무림인보다 덜 깐깐한 거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구나. 예전에 사파 놈들도 가끔 못되게 굴 때는 정말 짜증 났었는데 요샌 마교니 뭐니 해서 정파가 더 지랄 맞게 구니. 이것들이 말코도사인지 깡패인지 분간이 안 돼, 젠장.”
그의 말에 피식 웃은 위군보는 면양화과를 담은 큰 쟁반도 가지고 7호 자리로 다가갔다.
“오, 금방 나오네.”
“헤헤, 쌀국수로 허기 좀 달래셨습니까? 맛을 아시는 손님들이 이곳에 오면 항상 찾는 면양화과입니다. 다른 자리 보시면 절반이 이걸 드시고, 또 절반이 제가 말씀드린 석팽양육을 먹고 있지요.”
면양화과의 차림을 놓기 시작하자 상이 제법 풍성해졌다.
손님들은 위군보가 알려줬던 대로 요리를 맛보기 시작했다. 사천의 매운맛을 느끼고 깜짝 놀라면서도 중원인들 입맛에 맞춰 강도 조절을 해놨기에 다들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어떻습니까?”
“크으, 최고!”
역시 반응은 목봉 든 사내가 직접적이었다. 그는 고기를 홍탕에 잘 적셔 한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도 다시 자리를 뜨려는 위군보를 붙잡았다.
“뭐 좀 물어봐도 되는가?”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와서 보니 마을이 활력은 있는데 경계도 많아. 요새 치안이 흉흉한가 봐?”
“말도 마십시오. 사천 각지에서 정파 무림인들에 대한 마교 놈들 습격이 가끔 발생했는데 피해가 쌓이고 쌓이니까 많이들 예민해져 있습니다. 사혈주라는 악명 높은 것들은 심심하면 우물에 독을 풀기도 하니 백성들은 배앓이를 하는 일이 잦고, 청성파 도사들은 숨은 끄나풀들 찾아내겠다고 성도부터 이곳 면주까지 번갈아 들쑤시고 있으니 칼 찬 무림인이라면 경계하는 것이지요.”
“허허…… 민가도 건드린단 말인가?”
“저희 같은 무지렁이야, 피아가 어디 구분이 되겠습니까? 너무 들쑤셔대니까 다 안 좋게 보이는 것이지요. 저야 어려서 세상 돌아가는 일 잘 모르지만, 3년 전엔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정말 벌벌 떨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1, 2년 잠잠해져서 이제 좀 살만하겠구나… 했는데, 근 몇 달 동안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니 다들 불안해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흉흉한 민심치고 여기에 이리 손님이 가득한 것은 이 맛있는 요리를 하는 숙수 때문인가, 아니면 자네의 수완 때문인가?”
“하하하! 당연히 오 숙수님 때문이죠.”
사내도 따라 웃으면서 위군보의 손에 은냥을 더 쥐여 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자네 친절에 보답도 할 겸, 소비(小費)로 챙겨주는 걸세. 대신 혹시 우리가 흥미를 느낄 만한 흘러가는 소식이 있는가?”
위군보는 손에 들어온 은냥을 보고 잠깐 고민했다.
무림인들 상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고 다니다가 크게 다친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이들은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긴 했으나 애초에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인 데다가 어쨌든 저들만의 정의를 위해 사람도 죽이는 자들임을 생각하면 쉽게 믿어도 될지 의뭉스러웠다.
“대인, 이건 부담스러워서 받을 수 없습니다요.”
위군보가 멋쩍게 웃으면서 사내에게 은냥을 돌려주었다. 사내도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에 드러났는데 다행히 강요하지 않고 은냥을 돌려받으면서 오히려 위군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네가 눈치를 보는 건 다 이유가 있겠지. 알겠다. 무리해서 물어보지 않으마.”
“고맙습니다.”
위군보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오 숙수가 사람 머리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른 양 뱃살 가죽을 담은 그릇을 가져왔다.
“주문하신 요리 석팽양육 나왔습니다.”
“오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양 뱃살은 흡사 거대한 알 모형 같았는데 오 숙수가 겉면을 건드리자 살짝 출렁거렸다. 곧 칼을 들고 한가운데를 푹 찌르니 뜨거운 김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치솟아 오르는데 그 광경이 장관이었다. 그대로 가죽을 갈라내자 힘없이 허물어지면서 안에 푹 삶아진 고기와 채소가 아주 농밀한 육향과 함께 후각을 자극했다.
한창 위군보와 얘기하던 사내가 고기를 한 점 집어먹는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한점씩 먹어보고는 차분한 감탄을 보이면서 바라보는 오 숙수를 흡족하게 했다.
“쌀국수도 그렇고 이 화과도 그렇고, 양고기도 참 맛있습니다. 면주 요리는 면양객잔이라고 해서 왔는데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아하하, 고맙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또 말씀해 주십시오.”
“네 사람이 먹는 것이니 이 정도면 풍족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다른 것인데 이 친구가 별로 협조를 안 해줘서 그거 하나가 조금 아쉽지요.”
“윽…….”
“뭘 물으셨길래?”
“그냥 저희가 관심을 가질만한 거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지요. 수완이 좋아서 할 말 못 할 말 가리면서 뭐라도 하나 던져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요새 민심이 흉흉하니 많이 조심하나 봅니다.”
“흐음……, 뭐 아는 거 있으면 얘기해드려.”
“숙수님?”
“뭘 조심하면 좋을지는 네가 잘 알지 않느냐?”
오 숙수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물러가자 위군보는 난감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너무하십니다.”
“하하하, 대신 은냥은 좀 더 쳐주마.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궁금한 게 많네. 자네가 얘기해 주는 게 내용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민심 청취도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으니 말이야.”
사내가 주머니를 뒤져 다시 손에 쥐고 보여준 은냥은 이전의 두 배였다. 그가 위군보의 손을 잡고 직접 손에 쥐여 주니 위군보도 못 이기는 척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위군보는 입맛을 다시면서 옆에 빈자리의 의자를 하나 끌어와서 곁에 앉으며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요새 눈치 볼 일이 많아서 귀 기울이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때라 아는 건 많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것만 얘기해 드리면 가끔 마교도가 누굴 습격했더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그 대상을 보면 사천의 정파들이 많습니다. 이 일이 빈번하니 3년 전처럼 다시 무림 전쟁 같은 게 벌어지는 게 아니냐 하는 흉흉한 소문도 있습니다. 자칫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도 피해를 보니까요.”
“또.”
“으음, 근데 정말 저 같은 놈이 알려드릴 건 별로 없네요.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요새 사천 아닌 외지에서 온 사람이 정말 없는 거 같아요. 근래에 외지인이라고 느낀 사람은 여기 계신 분들이에요.”
“그것도 정보가 될 수 있지. 면주가 사천에서 얼마나 큰 곳이지?”
“글쎄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마을일 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까 당문 대공자께서 면주에 아픈 사람들 의료봉사하러 오신 거 같던데요?”
“……당한솔?”
“예, 아시는군요? 그래도 그나마 무림에 대해 평판이 좋은 문파가 있다면 당문 뿐이죠. 거기는 백성들을 상대로 수탈하려 들지 않으니까요.”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는가?”
“그리 멀진 않습니다. 여기 남서쪽에 면주에서 제일 큰 공명의원(孔明醫院)이 있는데 거기서 진료를 보고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요. 듣기로 아마 오늘내일 중엔 일을 마치고 돌아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병치레가 있어서 어제 거기 다녀왔다는 손님분께 들었으니 대충 맞을 겁니다.”
“좀 쉬었다가 거기로 가면 되겠습니다.”
사내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한솔 공자를 만나러 온 건가……? 하아, 말조심한다고 했는데 내가 잘한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근래에 무림인 치고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어서 주의를 기울인 것 치고는 말이 술술 나와버린 편이었다. 위군보는 조금은 난감하지만, 별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웃음 지었다.
끼익.
그때 면양객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위군보는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안에 있던 손님이 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위군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손님의 표정에서 뭔가 불편한 감정 같은 게 있음을 느꼈다.
떠나는 손님이 그를 흘끔거리고는 마침내 문밖으로 사라지자 위군보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 더 있는가?”
“아, 아니요. 더 없습니다.”
“고맙네. 요리 참 맛있다고 숙수님께 다시 전해주게나.”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위군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이 자꾸 문 쪽에 머물렀다. 조금 전 나간 손님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이윽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몇몇 손님들이 더 나갔다. 떠나는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모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포만감에 나른하거나 한껏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하이, 씨…….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위군보는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힐끔 시선을 돌렸다. 외지에서 온 무림인 네 사람도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모양새였다. 위군보는 그들이 좀 더 얘기도 나누면서 쉬다가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군보야. 이리 좀 와봐라.”
“예!”
전대 옆에서 객잔 안을 살피다가 오 숙수가 부르는 목소리에 부엌으로 갔다. 이제 점심 시간대가 마무리되면서 저녁때 음식들을 팔기 위한 재료 손질을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밖에 일 없지? 전대야 상일(常日)이가 지키고 있으니까, 넌 저 무 좀 썰어서 대야에 담아라.”
“알겠어요.”
위군보는 오 숙수가 시키는 대로 무를 썰기 시작했다. 10개나 쌓여있었지만, 이미 재작년부터 손재주도 인정받아서 오 숙수의 일까지 거들어왔기 때문에 능숙하게 썰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차 한 잔 마실 때쯤 지나서 무가 마지막 하나 남았을 때, 오 숙수가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위군보를 불렀다.
“군보야, 양고기가 좀 부족하네. 가서 고기 다섯 근만 좀 사 오너라.”
“알겠습니다.”
위군보는 쓰던 칼과 장갑을 벗어 놓고 부엌을 나섰다. 전대에서 고기 살 돈을 받으면서 객잔 안을 둘러보는데 외지에서 온 무림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 계산하고 나간 모양이었다.
‘쩝.’
위군보는 무의식적으로 입맛을 다시면서 문밖으로 나갔다. 정육점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