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64화 (164/432)

164화 - 제31장. 검을 벼리다 (4)

굉음들과 함께 요란법석 떨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검총궁의 높은 천장을 만들어내도록 길쭉하게 솟아오른 전각의 상부가 통째로 미끄러지며 내려와 격돌을 구경하던 사람들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그 소란들 속에서 강정학을 포함한 고작 몇 사람만이 간신히 이 사태의 진실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천하제일검이라는 평가를 받는 화경 고수의 검강을 뚫고 검과 더불어 건물까지 날려 버린 참격이 전개되었음을.

“허허……!”

강정학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정말로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이지 않았다면 내 목은 잘렸을까?’

엉거주춤하며 몸을 세우는 진도건이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흑검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강정학은 다시 한번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허허허…! 내 참…….”

“……제가 실례를 범….”

“됐다! 이만하면 됐어.”

강정학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동강 난 검을 원주인인 강도혁에게 던져 돌려주었다. 강도혁은 잘려나간 검의 단면을 만지작거리면서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강정학은 검총궁을 바라보았다. 전각의 상부가 무너지면서 그 내부의 골격이 드러나 있었다. 그 무너진 상부는 땅에 떨어지면서 폭삭 주저앉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풍경을 바라보던 강정학이 진도건을 흘끔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그 검기는 혈마의 힘이라고 보긴 어려워. 그것만큼은 어쩌면 내가 이룬 경지보다 한 차원 이상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운기조식보다 명상을 많이 하여라. 인간의 잠재력이 한계를 넘어설 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오직 여기밖에 없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강정학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치고는 진도건을 가리켰다. 정확하겐 그의 머리를 가리킨 것이다.

“예…….”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진도건이 바로 대답했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던 진도건은 지금의 일격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창무대에서 청명과 비무하다가 어느새 빠져든 무의식 가운데 목검으로 목검을 베어버렸던 일이었다. 그대로 멈춰 있을 때, 천무경이 던진 목검까지 닿자마자 잘렸다고 했으니 지금의 일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시 폭주하면서 혈마의 무의식에 잠기기 직전 맹주전의 벽 일부를 날려 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되었다.

짝짝짝짝-!

힘차게 손뼉 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검객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인이 치는 소리였는데 학사복을 입은 채 철선(鐵扇)을 옆구리에 낀 채 손뼉 치는 걸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다른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아아! 머리카락 때문에 한눈에 알아보겠습니다. 사천으로 가실 때는 역시 가리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튼, 총수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합격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흥! 뭐, 그렇지.”

강정학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자 중년인이 씩 웃었다.

중년인이 진도건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차분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눈에 현기가 감돌아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중년인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제갈무문이네. 자네가 진도건이지? 반갑네.”

악수를 청하는 손길에 포권이 더 익숙했던 진도건이 어색하게 손을 맞잡았다. 제갈무문은 웃으면서 맞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진도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천서은을 바라보았다. 그 뒤의 최현걸과 야율균은까지 둘러본 그는 연신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우리 마을로 내려가서 얘기하지 않겠습니까? 총수님.”

“그러지.”

제갈무문은 진도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그를 이끌었다. 그리고 천서은과 최현걸, 야율균은 모두에게 다가와 악수로 인사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강정학과 강도혁을 필두로 검객들과 진도건의 일행들까지 모두 마을로 내려갔다. 검총궁은 수리하기 전까진 사용하기 어려우니 당분간은 팔공산 정상을 밟을 일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바로 진도건 때문에.

* * * *

검림은 초기엔 의도하고 만든 조직이 아니었다.

다만 일찍이 무림에서 천하제일검의 명성을 얻은 강정학의 위세가 워낙 대단했기에 절로 그에게 많은 검객이 몰려왔다.

도전자도 있었고, 가르침을 구하는 자도 있었으며, 죽음을 각오한 복수자도 있었다.

강정학은 외지에 나가 적을 상대하면서 손속에 사정을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팔공산 자신의 거처에서 싸울 때면 거처가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했기에 쉽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이런 지극히 사소한 이기심은 오히려 강정학을 포용력이 있는 인상으로 탈바꿈시켜 주었으니 그에게 감복하여 따르는 자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그리고 쉽게 받아주지 않는 강정학을 설득하기 위해 저들끼리 마을을 꾸리기 시작하고 가족마저 이루기 시작하니 팔공산 정상으로 쫓겨나듯 올라와 살던 강정학은 정말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래도 이들의 진심이 통했는지 결국 강정학은 검림을 조직하게 되었고 다만 일정 실력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자는 모두 쫓아내면서 그 수를 조절하게 되었다. 굳이 마을이 북적거릴 이유도 없었고 험악한 검객들만 잔뜩 채우고 있는 광경이라면 평민들이 편하게 살만한 마을일 수 없는 것이다.

강정학도 천하에 존재하는 다양한 검법을 견식할 기회로 여겼으니 상당히 만족했다. 아들을 키우고, 제자들까지 기르면서 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염황종과의 충돌로 많은 검객과 둘째, 셋째 제자들을 잃었다. 그들이 사라진 공백은 강정학에게 심리적 긴장감을 안겼다.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의식이라……. 그렇다면 너의 그 일격이 보여 준 날카로움의 원천도 거기에 있을 터. 노부가 명상하라 얘기한 진단은 분명 도움 될 것이다.”

진도건이 창천맹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해주자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한 강정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내공을 얻었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해야 할 거로 생각했는데. 숙제가 많아져서 뭐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뜻대로 발휘할 수 없고 제어도 할 수 없다면 양날의 칼 아닙니까?”

진도건은 자신이 뜻하지 않게 발휘한 이 힘이 혹여 천서은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있었다.

“내 걱정하는 거예요?”

천서은이 근처에서 듣고 있다가 다가와 물었다.

“그렇지. 내가 걱정할 게 또 뭐가 있겠어?”

“흥! 이제 절 얕잡아보는 거예요?”

천서은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지 토라진 표정을 하면서 진도건 맞은 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흘기는 눈으로 진도건을 쏘아보았다.

“두 분이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네요. 총수께선 도건을 갑자기 데려가서 한참 쑥덕거리고 말이에요.”

“껄껄껄!”

천서은의 지적에 강정학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마을로 내려와선 제갈무문의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 다들 생각했었다. 그런데 무언가 골몰하던 강정학이 진도건을 끌고 가선 이것저것 물어보며 오랫동안 대화하고 있으니 다들 맥이 끊겨서 제 할 일 하러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최현걸이야 강도혁의 인도 아래 다른 검객들과 목검, 목봉을 들고 비무를 하기 시작했고, 제갈무문은 야율균은에게 알아낼 만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영은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천서은은 뭔가 자신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아닌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별로 토라질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천무경의 딸이었기에 언제나 관심의 중심이었다가 강정학이 진도건만 붙들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럴 일은 아니나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고 할까?

연륜이 깊은 강정학은 그런 그녀의 심기를 쉽게 읽어내었으니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천무경의 모든 것을 이었으니 내 조언이야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온 김에 옆에서 들어보아라. 아마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게다.”

“뭐, 들어보죠.”

“후후! …아무튼, 네가 강한 내공을 손에 넣었으니 여러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건 아까 말했듯이 이 머리에 있다. 보통 무공의 작명에 있어서 일부 무공엔 왜 신공(神功)이라는 말이 붙을까?”

“한 차원 높은 무공이기 때문 아닌가요?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입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천서은이 바로 대답했는데 강정학은 의외라는 표정이 지었다.

“천무경이 제대로 안 가르쳤군.”

“설마요.”

천서은이 인상을 찌푸리자 강정학은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름지기 어떤 공부든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그렇게 얘기하던 강정학의 머릿속에 천무경의 인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재능과 능력에 있어서 완전무결한 남자, 파천무봉이라는 별호까지 천무경은 젊었을 때부터 위세를 떨치며 강정학보다 빠른 나이에 화경이라는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천서은은 여자의 몸에도 불구하고 마치 천무경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무골이 변변찮거나 재능이 부족하면 타고난 조건들을 모두 흡수하기에 버겁기 마련이었는데 천무경이 걸어온 길이나 지금 천서은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성장에 막힘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으하하하핫!”

강정학이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진도건과 천서은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쳐다보는데 그는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뭔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이놈의 천씨 일가는 정말 그 성(姓)대로 하늘이 내려준 핏줄이었구나.’

강정학은 천서은과 진도건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심으로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다. 하던 얘기나 마저 하마.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근원은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삼단전을 논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이 삼단전은 정기신으로 대변되는데 으레 신공이라 명명된 무공은 하단전의 축기와 더불어 기의 운용방법을 다루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단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다양한 관점이 녹아있는 것이다.”

“상단전이 곧 정기신 중 신(神)이니까요?”

“그렇다. 운기(運氣)라는 것은 정에서 비롯되는 의지와 신을 통해 그려내는 경로와 흐름이 한데 어우러져 만드는 것. 따라서 모든 운기법은 상단전을 자극하기 마련이지만, 이 신공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은 더 많은 자극과 더 넓은 공간을 열어젖힐 수 있기에 이 길을 올바로 따른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경지에 오를 수 있거나 혹은 새로운 영역에까지 닿게 된다.”

“새로운 영역이…… 무엇입니까?”

“기라는 본디 오감(五感)이 아닌 제6의 감각, 기감으로밖에 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명료한 의지와 많은 내공의 집약을 통해 희미하든 선명하든 간에 유형화(有形化)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일반적인 형상이 아닌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변질(變質)을 보곤 하지. 자네의 파천신공이 보여주는 벽력 성질의 기운이나, 자네의 혈마진기나. 그런 것들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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