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 제30장. 마성본색(魔性本色) (5)
퍼퍼퍽!
“커헉!”
유변이 피를 뿜으며 뒤로 쭈욱 밀려났다.
직전과 달라진 상황에 모두가 깜짝 놀랐을 때, 구마진은 멈추지 않고 재차 거리를 좁히면서 두 손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백귀혈마공 귀접복사(鬼接腹死)
좌우로 펼쳐져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들.
떨어뜨릴 수 없는 귀신의 교접(交接) 사이에서 죽음을 끌어내려는 듯 순식간에 유변을 휘감으면서 얽혀든다. 숨 쉴 공간조차 주지 않을 듯 전방위를 둘러싸 전신에 압박을 가하면서 그 마기를 침투시켜 정신을 부수는 사술성(邪術性) 마공이었다.
마치 귀신들을 조종하는 듯한 백귀마공에 혈마의 기운이 덧입혀져 더욱 끔찍한 마공으로 변모해있었다.
“이놈!”
그 상황을 보자마자 사마월이 곧장 구마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변이 위기에 봉착한 이상, 그의 신호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구음도법 단양음도(斷陽陰刀)
칼날에 실린 도강이 정교하게 집약되니 불길마저 잘라낼 예기와 음기를 동시에 품는다.
슈아악!
콰앙!
사마월이 휘두른 순간 도강이 거대해지면서 구마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구마진의 발밑에서부터 솟아오른 혈기와 충돌하면서 그대로 막혀버렸다. 칼날이라는 일선집약(一線集約)의 공격인 만큼 허무하게 막히자 사마월의 얼굴에 잠깐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파앙!
“흐아아!”
유변을 휘감았던 혈기가 쪼개지듯 터져 나가고 그 사이로 유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해방에 사마월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구마진의 눈동자는 이미 두 사람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었다.
백귀혈마공 팔귀문수라도(八鬼門修羅道).
백귀혈마공 귀접복사의 끔찍한 고통에서 이제 막 벗어난 유변도, 다시 구음마도의 절초로 견제하려던 사마월도 일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구마진에게서 시작되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는 여덟 줄기의 혈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사방을 그물처럼 가두었다. 그 교차하는 혈기들 너머로 보이는 구마진이 머리 위로 든 두 손에 각각 응축된 혈기를 쥔 채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이죽거리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이 땅으로 떨어졌다.
쿠콰콰콰콱!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호신강기 뿐.
전신을 휘감고 또 휘몰아치는 기류의 파열(破裂) 속에서 사마월이 먼저 쓰러졌다.
“끄아악……!”
사마월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공격이었다. 사지의 살가죽과 근육 등이 찢어지고 터지며 순식간에 피보라가 몰아쳤다. 일격을 가하고 혈기는 사라졌지만, 그는 고통에 땅을 뒹굴며 몸부림쳐야만 했다.
유변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무공의 재주나 초식의 운영에서는 부족했지만, 그의 내공은 강대했다. 사지를 꼼짝하기는 힘들었으나 구마진의 공력이 그의 피부에 닿는 것을 막아낼 정도로 호신강기는 버텨내고 있었다. 다만 어려운 것은 그를 휘감은 다섯 줄기의 혈기가 충돌로써 사라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그를 압박한다는 것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유변의 눈에 구마진으로부터 피어난 붉은 안개가 마치 연결을 짓는 듯 기류들을 쫓고 있었다.
“흡성대법으로 수백, 수천의 목숨을 거뒀고 그들의 영혼까지 집어삼켰다. 나의 백귀들은 적의 목숨을 취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지. 내가 거두거나 적이 부수지 않는 이상 말이야.”
구마진의 중얼거림을 유변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2년 전 백귀마공의 위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백귀마공은 단용후가 흡성대법을 연구하면서 특별히 창안한 마공이지만, 흡성대법 특유의 부작용으로 인해 함께 사장될 뻔한 마공이었다. 사실상 구마진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날 일 없었던 마공이 홍천환의 혈마기까지 만나 상승마공으로 진화한 것이다.
분출된 기는 소모되어 사라지는 법이다. 이기어검과 같은 사물에 기운을 연결하여 다루는 초상승의 무학이 있었으나 기운에 기운을 연결하여 그 힘을 유지해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구마진이 다시 손에 붉은 기운을 담았다. 그리고 지면을 내리치는 순간, 유변 주위의 땅에서 혈강기가 솟구쳐 올라 충돌했다.
파파파팡-!
“크윽…, 이것은……!”
유변은 이 기이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의 호신강기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팔귀문수라도’로 마치 ‘소환(召喚)’된 것 같은 기류에 결박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땅에서 솟구친 핏빛 강기들이 비록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으나 그대로 꺾여나가 결박된 공간 안에서 움직일만한 남은 공간을 모두 점유해버렸다.
그조차 붉은 안개로 구마진과 연결되어 그 힘을 유지하고 있으니 누구의 내공이 더 빨리 소진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참이었다.
저벅저벅…….
구마진이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두려웠다.
혈마 원건의 끝없는 강함에도 공포를 느끼긴 했었으나 구마진이 주는 공포감은 그것과 또 달랐다. 그의 제자가 파괴만을 바라는 존재가 되었었다면, 구마진은 그가 흡성대법을 선택한 것과 같은 ‘탐욕’의 대명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마진은 가까이 다가와 오만한 얼굴로 유변을 보았다.
“본교 대마의 영감, 당신의 소감을 듣고 싶었어. 최초의 홍천환 복용자. 그리고 두 번째 홍천환을 복용한 자의 스승인 당신이 네 번째 홍천환 복용자인 나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지 말이야.”
“크윽…, 악취미로군……!”
“크하하하!”
그가 일으킨 기운들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내력이 소진될 것임에도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구마진의 표정엔 여유가 넘쳐흘렀다.
“크, 네놈이 얼마나 많은…으윽, 목숨을 취했는지… 흡, 알겠구나…….”
신음을 흘리면서도 할 말을 하고야 하는 유변을 보며 구마진이 연신 키득대며 웃었다.
구마진은 신교 내에서도 알아주는 살인광(殺人狂)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러댔다. 물론 그 죽음의 직전은 반드시 흡성대법으로 정기를 흡수하는 일이었다. 그가 바닥을 가늠키 어려울 정도의 깊은 내공을 보유하게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행보를 뒤따르는 끔찍한 죽음들로 인해 누구도 그와 시비를 붙고 싶지 않아 했고 구주마종 모두가 그러했다. 분쟁의 씨앗 그 자체인 셈이므로 광혈신마와 염황신마는 그를 죽이려 한 적도 있었으나 태상교주 단원진은 왜인지 오히려 신마들을 말렸다.
그도 선친인 단용후만큼 끝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니 어쩌면 구마진이 지금 보여 준 무력의 가치를 예견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강함이니……!’
두려움에 휩싸인 유변의 눈길을 구마진이 조소를 흘리며 즐겼다.
“영감, 이제 오래 살았잖아. 영감 친구 중 하나는 죽은 게 확실하고 남은 하나는 모르겠지만, 뭐 이제 저승 가는 길 순서 따질 필요는 없는 나이 아냐? 게다가 같은 홍천환을 복용한 영감이니 내겐 좋은 자양분이 될 테고 말이야.”
구마진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고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으윽! 네놈이 난동을 피운 목적이 결국 이 나를……!”
“큭큭큭! 혈마가 된 이상 당신만큼 최고의 영약이 또 어디 있을까? 거기다 진도건이란 놈까지 잡아먹는다면…… 아아!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두근거려 미칠 지경이라고. 크하하핫!”
구마진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 끔찍한 저의를 드러냈다. 그는 움직임이 봉쇄당한 채 내밀어져 있던 유변의 두 팔을 보았다. 그리고 씩 웃더니 두 손으로 유변의 손목을 꽉 쥐었다.
“구마진! 감히 누굴 위해하려 드느냐!”
사마월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구마진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흘려들었다. 이미 사마월은 처참할 정도의 상태여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마진이 반달눈을 그리며 혓바닥으로 입술을 축였다.
눈빛만큼은 마치 식인이라도 할 것처럼.
마침내 두 손을 통해 흡성대법을 전개하였다.
“끄으으으……!”
끊어지지 않는 비명과 함께 유변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호신강기가 점점 약해지면서 구마진의 혈기가 점점 살갗을 파고들었고 핏대가 선 두 팔에는 하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의 흐름이 구마진을 향해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유변은 구마진의 마성을 엿보았다.
유변은 마성을 품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홍천환으로 품은 옅은 혈마의 기운으로 인해 구마진의 마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흡성대법으로 갈취한 끝없는 사념이 그의 몸속에 잔재한 채로 혈마의 마성이 들어선 모습.
네 번째 홍천환은 짧은 세월 속 개량된 천혼제정대진으로 인해 유변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념을 품었다. 그리고 구마진의 몸에 들어감으로써 그가 흡성대법으로 갈취한 수백, 수천의 정기와 원념이 함께 혼재되었다.
이로써 마치 수십 년 숙성된 홍천환을 삼킨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켰으니 강한 혈마의 마성이 구마진의 본성과 결합하여 유변이 경험한 혈마와는 또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제 막 유변의 내공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구마진은 잠깐 흡수한 것만으로도 그의 방대한 내공에 감탄하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서 지속해야 8, 9할은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끝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그 사실만으로도 절로 희열이 느껴졌다.
“대마의 어르신!”
설매화와 흑각수들을 막아서던 혈마종 무사들이 급변한 사태를 목격하고 놀라 수십 명이 구마진의 뒤를 노리고 달려왔다. 그러나 구마진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 무릎을 살짝 들었다.
백귀혈마공 혈귀옥(血鬼獄)
쿵!
진각과 함께 반구(半球) 형태를 이룬 혈색 강기의 장벽이 일어나 주변을 둘러쳤다. 그리고 그 위로 혈마종 무사들의 강기들이 쏟아졌다.
꽈과과광!
온갖 폭음들이 울려 퍼졌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혈마 구마진.
그의 무위는 경악스러울 정도지만, 혈마종 무사들에게는 이런 식으로의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과 공포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마의께 무슨 짓이냐, 이놈!”
“멈춰라!”
“널 따를 테니 제발 손을 떼거라!”
구마진은 혈마종 무사들의 절규를 들었다.
그럴수록 희열감이 더욱 가슴에 차올랐다.
구주마종 제일좌 혈마종.
마도 태생이 아님에도 혈마종이 제일좌로 거론되는 것은 천마조사 단용후와 유변, 그리고 혈마 원건 사이의 특별한 인연들이 모두 고려되었기 때문이었다. 혈마 원건의 무력은 분명 전설적이었으니 천마신교가 그 가능성을 중히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4천여 명의 막강한 전력은 충분히 구주마종의 한 자리를 차지할만한 힘이었다.
사실 구마진에게 그들은 다 죽여도 상관없는 자들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혈마종이란 신교전쟁에 사용될 장기 말에 불과한 존재들일 뿐이지 진실로 탐나는 건 오직 ‘혈마’라는 지위와 그걸 상징하는 힘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유변이 품은 최초의 홍천환의 기운과 그의 막대한 내공은 탐날 수밖에 없다.
신강 우루무치에서 청해 서녕 북쪽 대통현에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그가 줄곧 고민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유변을 꺾어서 그가 가진 내공을 흡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여부였다. 대통현에 먼저 온 건 바로 자신의 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영감! 그 하단전에 흐르는 하해와 같은 기운을 정기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흡수해 줄게. 크크크크……!’
탐욕이 가득한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구마진.
혈귀옥의 시전으로 다소 속도가 늦춰지긴 했으나 그런데도 두 손을 통해 용솟음치듯 들어오는 기운의 격류에 전율하는 그때.
콰앙!
뒤에서 들려온 폭음과 함께 혈귀옥이 터져 나가 사라져 버렸다. 그 폭발 여파로 기운들이 공기와 응집해 핏물 같은 운무로 가라앉았다.
혈귀옥의 소멸로 충격을 받은 구마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인지하고 신경이 곤두세웠다. 그리고 바로 그때 수천 명이 일제히 부복하는 소리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외침이 등골에 소름 끼치게 했다.
“광명대천(光明戴天)! 천마군림(天魔君臨)! 신교의 종자들이 교주님께 무릎 꿇어 예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