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제30장. 마성본색(魔性本色) (4)
구마진이 섬뜩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웃음을 터뜨리자 사마월과 유변이 자기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강렬함이란, 마치 다른 여덟 신마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마월.”
유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마월이 도를 뽑아 들며 구마진을 덮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표정만큼 이미 이 사태를 준비하고 있었는지 순식간에 도강을 뽑아냈다. 망설임 없는 내리침에 그 예리한 칼날이 눈 깜짝할 새에 구마진의 목에 근접했다.
슉!
도강의 구마진의 잔상을 베고 지나갔다.
잔상을 남길 정도의 빠른 움직임으로 물러섰던 구마진이 도강이 지나가자마자 사마월의 품으로 파고들며 붉게 물든 두 손을 뿌렸다.
애초에 구마진이 실력 우위임을 감수하고 덤볐다. 헛칼질을 인식하는 순간 빠르게 회수하면서 짓쳐 드는 주먹들을 막았다.
콰콰쾅!
“큭!”
충격이 그의 호체진기를 뚫고 전해졌다.
주르륵 밀려나는 그의 신형을 쫓아 구마진이 다시금 두 손을 뿌렸다.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이 크게 일어나 사마월의 전신을 덮쳤다.
사마월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구마진의 공력이 전개되는 순간을 노려 일보 더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신체의 중심은 앞으로, 칼을 땅에 박아 그걸 중심으로 빙글 다시 거리를 좁히면서 그의 전력을 다한 참격이 연달아 분출했다.
구음마도(九陰魔刀) 귀아참살(鬼牙慘殺)
사마월을 덮쳤던 붉은 기운들 사이로 도강들이 솟구치면서 역으로 구마진을 향해 내려꽂혔다.
“크하!”
구마진이 광소를 터뜨렸다.
쏟아지는 송곳니들에 감탄하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려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콰콰콰쾅!
굉음과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시계가 가려지며 구마진의 신형이 보이지 않아 사마월이 주춤거리는 순간, 휘몰아치는 돌풍에 먼지가 일거에 걷혀 버렸다.
그 한 가운데서 구마진이 더욱더 핏빛으로 일렁이는 기운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사마월의 절초를 온몸으로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털끝 하나 다친 모양이 없었고 되려 섬뜩한 기운이 더욱 폭주하며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분노를 더 자극한 것처럼.
구마진의 두 눈에서 흉광이 번쩍였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완전히 붉게 물들어버려 눈이 마주치자 절로 소름이 끼쳤다. 한발 물러서서 잠시 지켜보는 유변도 드러난 적안에 놀라고 있었다.
‘저 눈……!’
그가 받은 정보에 적힌 내용이 문득 떠오를 때, 구마진이 오만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순간 섬뜩한 귀곡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육성으로는 들리지 않는, 정신을 잠식하는 마기의 파장이 육신의 장막을 뚫고 정신을 직접 때리는 것이었다.
그 위협은 대상마저 특정하니 설매화와 11인 흑각수를 제외한 모든 혈마종 무사들과 사마월, 유변에게까지 닿았다.
“윽!”
사마월이 침음성을 삼키면서 비틀거렸다.
그 순간 눈앞에서 구마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어느새 구마진의 붉은 손아귀가 거대해진 채로 그의 코앞에까지 이르렀다.
후욱!
그 순간 사마월의 신형이 뒤로 쑥 당겨지면서 구마진의 살수를 피했다.
어느새 유변이 다가와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던진 것이다.
콰앙!
사마월과 맞붙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구마진과 유변의 충돌 끝에 밀려난 것은 구마진이었다.
“크크, 이 영감탱이가!”
구마진이 웃으며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유변을 보면서 두 손에 기운을 모았다.
백귀혈마공(百鬼血魔功) 혈마악령장(血魔惡靈掌)
거대하고 파괴적인 경력을 품은 쌍장이 유변의 두 손바닥과 마주쳤다.
꽈꽝!
두 사람의 장심이 맞부딪치는 순간, 유변은 구마진이 정말 혈마의 기운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이 파괴적이고 섬뜩한, 또 짙은 탐닉의 욕망에 찌든 붉은 기운은 먼 옛날 그들의 손으로 처치한 혈마 원건에게서 보았던 것과 유사했다. 다만 흡성대법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내공을 쌓은 만큼 그것에 오염되어 더 꺼림칙하고 혼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쨌든 홍천환을 복용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충돌 순간의 충격파로 인해 마치 탈피하듯 구마진의 머리카락에서 우수수 가루가 흩날렸는데 그 아래 감춰졌던 붉은 머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희번덕거리는 붉은 눈동자를 본 순간, 유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구마진은 그 얼굴을 보며 유변에게 충격을 입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욱 몰아붙이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유변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구마진에게 입은 충격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제자 원건의 얼굴이 일시 겹쳐졌다는 사실이 기분을 더럽게 했기 때문이었다.
퉁!
두 손바닥이 미세하게 떨어진 순간, 유변의 왼손이 구마진의 두 팔 사이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왼팔을 옆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오른팔도 어깨를 이용해 반대로 밀어냈다. 순간적인 움직임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구마진의 품이 그대로 열려 버렸다.
유변은 오랜 시간 주백자와 동고동락하면서 그가 원건에게 전수하던 무공의 원리를 곁에서 지켜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무당파 면장공의 정점 십단금이 유변이 가진 홍천환의 마기를 품고 마의 고리를 열어젖혔다.
마도면장(魔道綿掌) 마환십단금(魔環十段錦)
유변의 오른손이 구마진의 명치에 가 닿았다.
눈 깜짝할 새 파고들어 살포시 건드린 것만으로 바위를 뚫어 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한다.
퍽!
“커헉!”
경력이 명치를 뚫고 등 뒤로 빠져나와 거대한 고리를 뿜어내었다. 입으로 피를 뿜으며 멀찍이 나가떨어지는 구마진의 모습을 보고 놀란 설매화와 흑각수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구마진!”
유변의 무공에 깜짝 놀라지 않은 자가 없었다.
사마월은 오랜 시간 정자에서 차를 마시면서 신선놀음으로 시간을 보낸 유변이 작은 노구(老軀)로 아직도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혈마종 무사들 안에서도 어린 자들은 유변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부모나 스승의 지시에 따라 따르는 편에 가까웠다. 그런데 자신들을 휩쓸고 다녔던 구마진을 일격에 쓰러뜨리자 경악과 함께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그들이 숭상하는 혈마 원건의 세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상징으로써 그 존재감이 뚜렷하게 부상한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마월이 다가와 유변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유변은 마음을 놓지 않은 채 자신의 기색을 살피려는 사마월을 제지하면서 구마진 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환십단금이 분명 중단전을 꿰뚫었는데, 어째 헛손질한 느낌이 강하구나.’
유변은 본인의 신분이 의원이기에 무공의 조예가 깊지 않았다. 사술로써 생명을 연장하면서 그 긴 세월 덕에 분명 경지를 이룬 것은 맞지만, 진정 무를 추구하는 자들에 비한다면 재주가 얕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구마진이 거만할 때를 노려 기습을 시도한 것이었으니 이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역시…….”
유변의 입에서 아쉬운 심경이 흘러나왔다.
구마진이 꿈틀거리면서 바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워!”
구마진은 자신을 부축하는 흑각수들의 손을 뿌리치면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몸도 바로 일으키지 않은 채, 피로 젖은 입을 벌려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유변을 노려보는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영감, 무공을 속였네?”
“흥, 정신 못 차렸군.”
“크크크! 가르치려 드는 꼴이라니. 왜 바로 들어오지 않았어? 그러면 숨통을 끊을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넌 이미 충분히 패악질을 저질렀다. 혈마종의 저 많은 수를 깨부수면서 전력에 상처를 냈어. 방금은 그 벌로써 충분할 것이다. 교주령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교주님과 얘기하여 마무리 지을 것이니 넌 이만 돌아가 다시 기다려라.”
“크크크…… 크하하하!”
구마진이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봐, 영감. 난 혈마종을 쥐러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왔던 길을 영감이 다시 돌아가서 교주와 얘기를 하겠다고? 왕복하면 족히 한 달 넘는 시간을 허비하겠다는…… 미친 소리 아냐?”
“노부는 혈마종의 대리자로서 교주와 단 태상에게 따질 권한이 있네. 단 태상까지 자넬 부탁한다면 내 거절할 수 없을 터이니 그만 돌아가 있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거야, 대마의 영감.”
구마진은 몸을 일으키면서 가까이 다가왔던 수하들을 물렸다. 그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대면서 깊이 응어리진 탁기를 수차례 훅훅 내뱉었다.
“후우……! 영감. 미안하지만, 난 혈마로서 권한을 틀어쥐는 것 외의 명령은 들을 생각이 없거든.”
구마진의 거절.
유변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구마진의 기를 꺾어서 그의 의지를 관철할 필요가 있었다.
‘무리를 해야 하나……?’
아직은 괜찮았지만, 격렬한 사투는 부담스러웠다. 구질구질하게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회의감과 환멸이 스민 상태였다. 다만 혈마종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에 따라 그들이 불현듯 찾아올 갈림길을 마주쳤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부담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노골적으로 투기와 붉은 귀기(鬼氣)를 뿜어내는 구마진의 모습을 흘겨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마월, 기회를 보아 날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유변은 부양호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내가 구마진과 다시 싸우면 남은 자들의 발을 묶어주게.]
그의 전음에 부양호도 무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구마진은 유변이 전음을 보내고 있음을 눈치채고 버럭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영감탱이가!”
거리가 여전히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오른손이 곧바로 허공을 할퀴었다. 그러자 붉은 기운의 발톱들이 그에게서 일거에 일어나며 일제히 유변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유변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혈강기를 슬쩍 보고는 되려 구마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등 뒤로 쏟아지는 강기의 충격파에 밀려나듯 몸을 던지면서 그도 전력으로 경력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홍천공(紅天功) 격파(激波)
붉은 기류가 유변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구마진의 것에 비해서 옅었으나 섬뜩한 느낌은 유사했다. 그렇게 뿜어내는 장력의 파고가 구마진을 일거에 휩쓸어갔다.
‘이것이 백 년의 세월을 품은 공력의 파도인가!’
구마진은 거대한 해일처럼 밀고 오는 유변의 공력에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에서도 그는 어느새 흡성대법으로 쌓은 거대한 내공을 끌어올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귀혈마공 혈귀도천(血鬼渡天)
순간 그의 온몸이 붉은 기운에 물들었다. 밖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색이 변하듯 피부도 피에 젖은 듯 물들었다. 혈무(血霧)가 피부를 타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도만이 밖으로 드러나는 기운들이었다.
카카칵!
찢어 발겨졌다.
유변이 일으킨 기운이 구마진이 휘두르는 손톱에 찢겨 지며 사방에 후폭풍을 남겼다. 그렇게 비워낸 공간을 구마진의 권각이 파고들며 유변의 노구를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