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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48화 (148/432)

148화 - 제28장. 태극검(太極劍) (6)

충격에 떠밀린 목검과 더불어 청명까지 옆으로 붕 떠올랐다가 비틀거리면서 착지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진도건의 목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것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신을 퍼뜩 차렸다.

목검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에 손아귀가 벌어져 목검이 흔들릴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힘이!’

천무방에서 천서은에게 제압당했을 때도 두 사람 모두 내력을 일정 수준 끌어올렸다. 다만 천서은의 쾌검이 예상보다 훨씬 빨라 놀라웠다.

지금도 청명의 눈에 진도건의 상태는 매우 차분했다.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바람이 떠밀려 불고 있는 걸 제외하면 인위적인 기운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청명 자신의 내부로는 태극신공의 정순한 내공이 그의 육신을 본능적으로 떠받치고 있었다.

평소보다 날카로워진 감각, 선명한 시야, 잠시 흔들린 긴장감을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지금의 몸 상태가 그걸 설명하고 있었다.

‘온다……!’

탕!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타격음을 쫓아서 들려오며 진도건의 검격을 받아낸 청명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진도건은 재차 삼격, 사격째를 휘둘렀다.

탕! 탕!

내공을 운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에서 받아내는 청명의 모습에 제법 놀라긴 했다.

천서은은 천무방에서 청명을 제압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그때 보였던 검격을 그에게 선보였었다. 진도건은 딱 그 정도 속도에 맞춰 휘두른 것이었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놀랄 만했다. 그리고 그것은 창무대 아래에서 바라보던 천서은의 시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렇게 창무대에 와서까지 거창하게 일을 치르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러면서 청명을 상대로 일종의 자격시험을 치러보기 위해서 진도건에게 그때의 일검을 선보였던 것인데 벌써 네 번을 모두 간신히나마 막아내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과연.’

천서은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진도건의 목검이 직선 일변도에서 곡선을 그리며 횡 베기를 전개했다.

탕!

보통의 고수들에겐 그 빠르기가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궤적이 길어지는 것으로 생기는 찰나만큼의 차이로 청명은 조금 더 안정된 자세로 검격을 막아냈다.

“흐읍!”

청명은 호흡을 더욱 깊이 마시면서 내공을 충분히 끌어올렸다. 그 내력이 사지 곳곳으로 뻗어 나가며 육신의 기능을 한층 높였다.

두 사람의 목검이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것이 십수논검이 아니라 비무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창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초식의 다양한 운영법을 탐구하고자 만든 십수논검의 취지와 실력의 우위를 겨루는 비무는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군중들 사이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달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진도건과 청명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소요자가 보기에 진도건이란 인물은 무척 독특했다.

천무경의 제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 일찍부터 파천신공을 잇는 인연은 없어서 내공은 낮았으나 조강선의 진전을 이으면서 선천진기가 발달하고 육신은 극한으로 단련되었다.

진도건이 가진 극한에 이른 육신이란 것은 천무경이나 소요자, 구치상 등 화경의 고수들에게조차 상식적 한계치를 뒤집어엎을 정도였다.

거기에 홍천환을 복용하여 그 속의 비원(秘原)인 혈마를 품게 되었고, 죽음의 고비를 반복해 넘으면서 삼단전이 강제적으로 연결되는 기연을 얻었다. 작금에는 마침내 삼화취정의 경지에 올라 그 반쪽짜리 기연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었다.

보통 설화(說話)로 전해오는 기연이라고 하는 것은 전설 속 영약을 복용하게 되었다거나 그 은둔 고수가 자신이 쌓은 무공의 진전을 모두 전수하는 등이 보통이었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진도건은 참 이상했다.

홍천환을 복용하였으나 천무경의 내력에 의해 그 기운을 모두 잃은 채, 혈마만을 품게 되는 악연으로 남았다. 조강선도 진도건을 훈련 시켰을 뿐이지 자신의 공력 전부를 전수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천무경의 파천신공조차도 이제 호흡과 기본적인 운기조식 이상의 것을 전수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의 결과물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마치 한 사람의 완성된 무인을 빚어내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었다.

정파의 것으로 볼 수 있는 원류검결, 사파 정점의 무공 파천신공에 더해서 이제는 혈마단을 형성하여 체내의 내공을 마기로 치환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결과 강력해진 선천진기는 마기로부터 신(神)이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하게 되었고, 중단전으로 혈마단을 형성함으로써 정(精)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완벽한 육신까지 더해져 정기신이 삼단전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인간의 본원마저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었으니 그 잠재력이란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소요자의 시선에선 마치 주백자를 연상시킬 정도인데 그조차 경험과 인지의 한계일 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런 인물이 신검합일을 이루어 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하니 유검의 정수가 녹아 있는 태극검을 제대로 시험해 보고 싶은 욕심이 강하게 들었다.

직접 시험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나 무림에서의 지위나 연배에서 차이가 크니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기에 마침 십수논검을 한다는 청명을 대리인으로 삼기로 한 것이었다.

굳이 작은 연무장이 아니라 하늘이 뚫린 창무대로 위치를 변경한 것은 청명이 거리낄 것 없이 뜻이 머무는 선까지 무공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의도였다.

‘이치와 논법이 없는 검술이 어디에 있을꼬? 그저 그 이치와 논법을 십수 가지 초식이 아닌 하나의 철학으로 융화시켜서 담아낸 유검극치(柔劍極致)가 바로 태극검이거늘. 청명아, 해 보아라. 태상노군께서 인도하는 데로. 그리하여 저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 같이 구경해 보자꾸나.’

그런 소요자의 기대를 읽은 것일까?

청명 도사는 더더욱 태극신공의 심결로써 육신을 충만케 함으로써 진도건의 위력적인 검격을 비로소 제대로 받아내기 시작했다.

타탕! 탁!

연달아 검격을 막아냈다.

특별한 초식처럼 보이지 않는 진도건의 검격은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었다.

예측 가능한 범주의 동작들이면서도 그 속도와 힘이 대단하여 생각의 속도로 감히 쫓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청명도 다른 수를 내 볼 여유가 없었다.

‘좀 더……!’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육신을 충만하게 채우고도 모자라서 넘쳐흐른 기운이 청명의 주위로 청량한 바람이 되어 불었다. 그리고 진도건은 그 바람을 맞아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으로 청명의 상태를 느끼고 있었다.

청명으로서는 진도건을 상대로 실력을 저울질해볼 욕심 따윈 없다.

십수논검으로 여러 사람의 초식들을 견식 해볼 기회가 있었으나 지평을 넓혀줄 만한 사람들은 없었다.

청명은 진도건에게 묻고 있었다.

‘무초식, 쾌검, 신검합일……. 같은 이름의 경지에서도 남들과 다른 수준에 있다는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마침내 청명의 눈에 진도건의 검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다.

탕!

신체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짐 없이 검을 제대로 받아내었다.

급급함 없는 진지한 마음 상태에 이르니 무당검파의 위상이 깃드는 듯하다.

그와는 다르게 진도건이 여전히 큰 내공의 운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쯤은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로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무당파가 이겼다고 할 수 있으리라.

통!

격렬하게 오가는 검격 사이에서 이전의 격렬한 타격음과는 다른 가벼운 타격음이 흘러나왔다.

진도건이 대각선으로 베어 들어오는 걸 청명은 막아내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 방향을 바꾸면서 진도건의 목검을 꾹 눌렀다.

베고 찌르기 위해 검을 출수하였다면 회수하는 동작이 따르는 것은 인지상정.

진도건이 목검을 빠르게 당겨 다음 수를 준비하려는데 청명의 목검이 그의 것을 그대로 타고 들어와 쇄골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음?’

진도건은 손목을 비틀어 검은 회수하되 검신은 올려쳤다. 청명의 찌르기를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마치 자석에 달라붙은 것처럼 청명의 목검이 따라 올라가는 듯하더니, 일보 접근함과 동시에 검날끼리 맞닿은 상태로 회전하면서 오히려 청명의 목검이 진도건의 목검을 받쳐 올리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슉!

거기에 청명은 호수로 위협을 차단하면서 오히려 얼굴을 노리고 내려치자 진도건도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날렸다.

놓칠세라 청명도 바로 한 걸음 따라붙으며 목검을 휘두르니 진도건도 반사적으로 목검을 휘둘러 막아내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격렬한 충돌도 없이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더니 진도건이 휘두른 궤적을 비틀어 당기는 것이었다.

“아!”

어딘가에서 들려온 단말마의 탄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탄식과 동시에 청명이 보법을 밟으면서 비스듬히 접근하여 기울어진 진도건의 옆구리를 베었다.

슈악!

청명의 목검이 허공을 베면서 도포에 밀린 바람이 크게 일어났다.

진도건이 거의 바닥에 눕다시피 무릎을 주저앉히면서 피해낸 것이었다. 그가 굽힌 무릎의 탄성으로 튀어 오르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리고 바로 신형을 바로 세우는 찰나 청명은 침착하게 따라붙으며 다시 검을 뿌렸다.

진도건은 바로 반격했으나 목검끼리 또다시 엉겨 붙으면서 진도건의 중심을 흔들어댔다.

청명의 목검 끝이 이리저리 빙글 돌 때마다 진도건이 뿌리는 검력의 방향을 예측하여 제멋대로 휘두르는데 쉬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급히 발을 바쁘게 딛고 몸을 크게 써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청명의 목검은 그의 목검을 옭아매었고 연달아 타격을 주기 위한 빈틈까지 노려댔다.

청명이 십수논검에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태극검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탄식은 바로 그것을 인지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무당파의 태극권과 태극권에서 파생하여 발전된 태극검은 유권유검의 극치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체득할 경우 한 수 위의 고수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이 바로 태극권과 태극검이었다.

작은 힘으로 상대방의 큰 힘을 제압한다는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의 기법을 온전히 담아낸 무공이며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가치를 상징하는 무공이었다.

특히 직선의 검으로 펼치는 태극검은 손으로 만드는 다양한 변화를 활용할 수 있는 태극권보다 한 차원 높은 무공이었기에 이를 제대로 수련한 사람은 무당파 내에서도 한정적이었다.

검을 든 무당파 도사들이 펼치는 검법이란 양의검법(兩儀劍法), 구궁검법(九宮劍法) 등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상승검법을 소요자의 제자가 직접 펼쳐내는 것이니 그 위력이 과연 어떠하랴?

진도건이 검을 휘두르면서 몸부림치는 모양새가 마치 청명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같았다. 군중들 대부분은 태극검의 현묘함에 감탄하면서 진도건의 몸에 청명의 목검이 닿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태극검인가……!’

진도건의 감탄은 창무대 위를 지켜보는 군중들의 감탄과 함께 동시에 일어난 것이었다.

한 번 걸려들면 힘으로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수를 내보려고 해도 청명이 펼치는 현천보(玄天步)의 신묘함은 마치 갇혀있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드득!

그의 목검을 긁으면서 타 넘어오는 청명의 목검 첨봉을 노려보던 중 머릿속으로 문득 어제저녁에 소요자와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자네만 괜찮다면 왜 무당파가 천하제일검종이라는 명성을 가졌었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네만. 어디 스스로 시험에 들게 할 용기가 있는가?”]

칭찬을 기분 좋게 듣던 중 소요자가 말미에 던진 도발에 기꺼이 응했던 것이 조금 후회스러웠다.

‘늙으면 도사라도 능구렁이구나!’

전에 겪어 보지 못한 골탕을 제대로 먹고 있는 진도건이 이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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