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43화 (143/432)

143화 - 제28장. 태극검(太極劍) (1)

진도건과 천무경, 소요자는 다시 뭉쳐서 신공을 연성하고 있었다.

진도건의 삼단전 합일화는 과거 혈마 폭주로 인한 강제적 연성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물론 그마저도 범인의 기준에서는 크나큰 기연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진정한 상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발목을 붙잡고 있는 족쇄와도 같았다.

하지만, 진도건의 운기에 관한 깨달음과 정상적인 진기 흐름 속에서, 혈마가 일으킨 역류로 인한 백회에서 천문으로의 타통은 진도건에게 새로운 영역을 열어 주었다.

삼화취정의 현상은 곧 오기조원(五氣朝元)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대자연을 이루는 오행(五行)의 기운이 거스름 없이 하단전에 모이고 중단전을 거쳐 상단전까지 쉽게 이르니 근원에 닿을 수 있고, 삼단전이 하나가 되어 운행이 자유로워져 마침내 천문에 닿으니, 정수리로 피어오른 세 가닥 꽃잎은 진정한 의미의 삼단전 합일을 이루었다는 소리였다.

보통은 천문에 닿아도 그 문이 열리지 않아, 삼단전 합일의 길이 열린 것만으로도 화경에 도달하기 위한 벽을 허물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진도건은 천문과의 직접 연결이 이뤄졌으니 화경을 넘어 도가에서는 선인의 길에 이를 수 있는 자격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필 열린 천문이 도가선경(道家仙境)이 아닌 마도의 암흑이라는 점이 불가사의했다.

어쨌든 본래 가지고 있던 삼단전의 합일 상태와 더불어 삼화취정을 이룬 이상 진도건은 이 기회를 붙잡기 위한 연단(鍊丹)을 수행해야만 했다.

연단은 직접 단약을 조제하여 그 효험을 보기 위한 외단(外丹)이 있고, 정기신을 다스려 체내에 금단(金丹)을 이루는 내단(內丹)이 있는데 진도건이 하려는 것은 바로 후자였다.

소요자가 태극혜검이라는 깨달음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던 건 바로 이 내단 형성을 거쳤기 때문이며, 천무경이 파괴적인 벽력의 폭풍을 쏟아낼 수 있던 것 또한 바로 이 내단 덕분이다.

두 사람의 형성 과정은 상이한 부분이 있으나 진도건은 파천신공과 혈마의 기운을 품은 채 삼화취정이라는 도가의 깨달음이 나타난 경우라 두 사람 모두 집중해서 그를 살펴주고 있었다.

“도가의 공부란 참으로 놀랍군.”

천무경이 감탄하면서 운기조식 중인 진도건을 내려다보았다.

천무경은 자신의 하단전에 축기된 내공 말고도 어느 순간 중단전을 중심으로 밀집된 기운이 무언가를 형성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걸 내단이라고 연결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파의 봉문으로 교류가 막혔고, 수양이 부족했던 젊었을 때는 적으로만 싸웠었기 때문에 견식을 넓힐 기회가 없었던 이유가 컸었다.

“원시천존. 스스로 이루신 맹주 같은 분들이야말로 대단한 겁니다.”

그런 의미로 소요자는 천무경의 그런 능력과 재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근의 역사를 제외하면 왜 지난 무림의 역사에서 정파가 사파들에 비해 상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무학의 깊이에서 오는 차이가 컸었다.

물론 혈마지란 이후로 정파 안에서는 전승의 단절이 이뤄지고 사파 쪽에서는 천무경이나 강정학과 같은 불세출의 기재들이 등장하였으니 소요자의 입장에선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셈이었다.

“하물며 저 청년이 얻은 기연이란…….”

소요자가 천무경을 경외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는데 그 심경을 진도건에게도 돌리는 중이었다.

“어떨 것 같소?”

“역흐름은 더 만들어지지 않고 대신 독자적인 흐름을 구축하였으니 이젠 안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이제 시간만 잘 보내면 될 것입니다.”

“정말 특이한 현상이오. 원류검결로 도가의 공부를 계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에 내공의 성장을 위하여 파천신공을 전수하였으니 정사(正邪) 공부의 정수가 저 아이에게 모두 모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런데 하필 홍천환을 복용하여 혈마를 받아들이게 되어 기의 성질이 마기와 같아졌으니 정사마(正邪魔) 모두 한 몸에 있는 것과 같지 않소?”

“빈도 또한 지금도 놀라고 있을 따름입니다.”

소요자가 답하면서 자신의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살폈다.

내단 형성의 흐름을 살피기 위하여 운기조식을 도왔을 때, 어쩔 수 없이 태극신공의 진기를 흘려보냈었다. 당연히 마기를 품고 있는 진도건의 체내에서 강한 반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미 광혈신마를 상대하면서 마기가 갖는 포악한 성질을 느껴 봤었기 때문에 진도건이 가진 마기의 무반응은 너무 낯설었다.

“그거 아시오? 마공을 익힌 자들은 내단 형성 없이도 익힌 마공이 무엇이냐에 따라 신체 특정 부위에 조직의 결정화가 이뤄진다고 하오. 염황종은 발, 환도종은 명치, 흑풍종은 척추…….”

“……그걸 마공의 내단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겉으로 드러나니 그렇게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흑풍신마 최후의 순간에 일어났던 현상의 보고를 들어보면 거기에 특이점이 있다는 건 분명할 것이오.”

“무슨 현상입니까?”

“흑풍신마의 척추쪽에서 검은 기운이 발산하더니 진도건을 잡아먹으려는 듯 휘어 감았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묘사를 했으니 괴이한 일이지요.”

“그럼 어떻게 빠져나온 겁니까?”

“진도건의 손이 흑풍신마의 가슴을 관통하여 척추를 부수고 나서야 끝났다고 하오. 아마 혈마가 본능적으로 나선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

“같은 마공이라도 비교 우위에 있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천무경이 소요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진도건도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떴다. 좀 더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만족하고 있던 그는 운기조식을 마무리하는 사이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혈마가 반응했던 것이 맞습니다. 흑풍신마의 것을 먹어치웠다고 하더군요.”

진도건은 몸을 털고 일어났다.

혈마의 무의식 속에서 그들이 본 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뭐라 명료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그 성질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마공들은 저마다의 성질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혈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식마(食魔).”

“식마라……. 허허, 참.”

진도건도 추정에 가까운 대답이긴 했으나 그 말을 들은 천무경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었긴 했지만, 왠지 그가 받았던 느낌과 닮아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됐고, 운기는 어떠냐? 내단도 자리 잡았느냐?”

“작게 느껴지는 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파천신공과는 운행이 다른데…….”

미심쩍어하는 진도건을 보며 천무경이 피식 웃었다.

“혈마가 만든 역흐름으로 인해 운행하는 경로가 바뀌었다. 파천신공 특유의 파괴적인 면모는 다를 바 없지만, 마기의 성질로 인해서 완성되면 어떤 힘을 보여줄지 예측이 되지 않는구나. 차라리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게 어떠냐?”

“뭐라고 말입니까?”

천무경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기를 갖게 되었다면 파천혈마공(破天血魔功)은 어떠냐?”

“하하, 하…… 정말 그거로 괜찮은 겁니까?”

“혈마를 지울 수 없어 받아들인 거라면 차라리 이독제독처럼 이마제마(以魔制魔)하는 것이 좋겠구나.”

진도건은 왠지 일월신마나 흑풍신마에 대입해서 생각하게 되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천혈마공…….”

하지만, 그 다섯 글자를 직접 중얼거리자 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혈마, 네 마음에는 드는 것이냐?’

* * * *

진도건이 하루 대부분을 운기조식으로 보내는 사이에 소요자도 잠시 자리를 비운 후에 다른 개별 연무장을 빌려 태극신공의 운기에 들어갔다.

혈마의 의식 공간에서 펼쳤던 ‘태극혜검 상청검’의 단계를 붙잡아 보기 위해서였다.

혈마의 기대와는 달리 소요자는 혼자의 힘으로만 펼친 게 아니라 진도건의 의지와 공명을 이루어 펼쳐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기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기본이나 그 발현의 조건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혈마의 의식 공간은 기(氣)가 조건으로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억과 느낌은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명상을 하다가 결국 실마리를 찾지 못한 소요자는 바람을 쐬기 위해 연무장을 나왔다.

밖에는 청명이 그가 운기 중인 연무장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소요자가 나오자 바로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

“창천단 임무는 뭐하고 여기에 있느냐?”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해서 단주께 양해를 구하고 여기에 왔습니다.”

“걱정은 날 걱정한 것이냐?”

“한나절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깨어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또 하루가 지나서야 이리 나오셨으니 괜찮으신지 제자로서 걱정하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럼 괜찮은 걸 보았으니 궁금한 것은 무엇이냐?”

“……진도건, 그자가 폭주할 뻔했다고 들었는데 스승님께서 구해내신 것입니까?”

“그러려고 했으나 실은 운이 좋았다 할 수 있겠구나. 원시천존!”

“그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안정되었다. 삶에 고난이 겹겹이 닥쳐오는데 그때마다 기연도 함께 쌓이고 있으니 작금의 시대에 큰 운명을 짊어진 자인 것 같구나.”

“스승님께서는 그를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글쎄다. 그자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겠냐 만은…… 작금의 마교 발호에 대비하여 주백자 사숙조께서 정파의 부흥을 선택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지음이었던 조강선 선사(先師)께서 직접 선택한 자이니 평가를 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구나.”

청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요자를 가장 존경하고 그 이상으로 주백자에 대한 존경심도 갖고 있었다. 조강선이란 사람의 존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만큼 소요자가 한 말이 갖는 무게가 어떤 정도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청명으로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제자가 그자와 대결을 하고 싶습니다.”

소요자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청명을 보았다.

‘호승심? ……아니, 그것과는 다르게 묘한 속세의 감정이 느껴지는군.’

소요자는 청명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새로우면서도 왜 진도건에게 이런 감정을 갖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와 대결을 하고 싶으냐?”

소요자의 물음에 청명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한 감정을 얘기할지, 다른 치장된 말로 설명할지.

아니, 감정은 솔직하지 않고 애매하다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었다.

호승심도 있었고, 질투도 있었으며,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왜 도가의 제자인 자신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신을 향한 의문도 품고 있었다.

“……이번 일로 아쉽게 그를 상대로 한 십수논검이라는 간소화된 비무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듣기에 그의 검술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니 저의 무당검이 어느 수준인지 견주어 보고 싶습니다.”

“그는 너보다 높은 곳에 도달한 자다.”

청명은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소요자를 보았다. 스승의 입에서 그런 단호한 말이 흘러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소요자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네가 장차 무당검종(武當劍宗)의 계보를 이을 책무가 있으니 부끄러워져선 안 되겠지. 따라 들어오너라. 오랜만에 너의 태극검을 보아야겠구나.”

소요자가 다시 연무상으로 돌아 들어가자 청명도 오랜만에 떨리는 감정을 품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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