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제25장. 창천쌍검(蒼天雙劍)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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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무림맹은 낙양(洛陽)에 있었고, 사패련은 허창에 그 본진을 두었다.
천무경은 정사영수회동을 통해 창천맹 창설을 논의하면서 낙양과 허창 사이의 영천(潁川)에 있는 고성(古城)에 본진을 두기로 하였다. 회수(淮水)로 흘러가는 강줄기가 관통하는 지역이어서 백성들을 독려하고 대신 식량을 얻기에 좋았다. 또 대도시들과 가까이 있어서 물자 교역에 원활한 곳이었다.
서쪽과 북쪽 2, 300여 리(理) 바깥으로 나가면 산지가 있어서 마교의 본진이 쳐들어올 상황을 대비해 봉화를 피울 수 있고, 서쪽으로 더 나가면 섬서지역 남단을 동서로 가르는 진령산맥이 있어서 거대한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천마신교의 세력은 중원에도 침투해 있었기 때문에 서쪽만 방비해서는 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쪽은 평야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어서 대규모 접근은 모를 수가 없었다.
천무경은 창천맹의 조직을 복잡하게 구성하지 않았다.
무력단체로 창천단(蒼天團)만을 두어 정사 어떤 성향을 지녔든 간에 자유롭게 가입하고 떠날 수 있도록 하였다. 창천단에 많은 무공비급을 풀어 기회의 문을 열어젖히고 대신 통솔권은 비상시에만 발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입한 무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여 명 이상의 무인들이 창천맹에 머물면서 실력을 키워 나갔다.
각 파의 수장들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되 맹주인 천무경은 상시거주하며 두 부맹주 소림 범굉대사와 개방 홍두형은 최소 한 사람이 맹 내에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조직을 단출하게 꾸리니 사실상 영천성으로 마교의 끄나풀들이 침투한 상황에도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 간단했다.
마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언제든 덤벼보라는 천무경의 배포가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감히 암수를 꾸밀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영천성은 주변 대도시만큼이나 많은 백성이 거주하면서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하남 개봉에 금나라의 황궁이 있다면, 하남 영천의 창천맹은 무림정부로서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
정무청(政武廳)은 바로 그런 역할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곳이었다.
천무경이 맹주전에 있는 시간은 새벽 수면시간 때나 개인 수련할 때밖에 없었다. 대부분 시간은 바로 이 정무청에서 사무를 보면서 창천맹에 찾아오거나 초청한 강호의 유력 인사들과 회의를 수행했다.
정무청에는 다섯 사람이 회의 탁자에 모여 앉아 있었다.
맹주 천무경과 두 명의 부맹주 범굉대사, 홍두형이 모두 함께 자리했고, 칠성파의 천하오절 가운데 한 사람인 칠성도존 구치상도 창천단주로서 동석하였다.
그들과 대담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았다.
한 사람은 비혈단의 수장 천잔귀검 좌영각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구룡문 추응계파(追鷹系派)의 수장 탁민효(卓敏梟)였다.
좌영각은 부슬거리는 턱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등받이에 몸을 묻은 채 편안하게 보였지만 탁민효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읽은 천무경이 입을 떼었다.
“탁 계수께서 오신 날 하필 좌 단주가 오신 것이니 불편하더라도 양해해 주시오. 우리는 논의사항에 대해 일 처리를 빠르게 할 필요가 있으니.”
“크흠. 알겠습니다.”
탁민효가 좌영각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이전에 비혈단이 검림과 구룡문 사이에서 줄타기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비혈단이 구룡문에 협력을 해 주긴 했으나 그들 단주인 좌영각은 한 번도 금태하를 독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보 수집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금태하가 직접 비혈단주를 찾았을 때, 그가 검림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금태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혈단원들에게 살수를 쓰고 말았으니, 두 문파의 사이가 단단히 틀어져 회복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구룡문은 창천맹에 그동안 협조적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금태하 본인이나 다른 여덟 계수를 회의에 보낸 적이 없었고 또 창천단에 무인들을 보낸 적도 없었다. 대신 하오문의 힘을 빌려 한 곳의 정보 수집을 지원받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지난날 구룡문에 큰 피해를 줬던 광혈종이었고, 구룡문은 바로 광혈종과 단독으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계수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구려.”
천무경은 탁민효가 왜 창천맹을 찾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구룡문과 광혈종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나 실상 그 성과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광혈신마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핵심 수족인 사수인 누구도 처치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창천맹에서 확보한 정보가 있으면 공유를 해달라 요청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마교는 무림공적이니 우리가 광혈종을 무너뜨리면 창천맹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금 문주는 아직 생각이 없소이까?”
“크흠. 두 부맹주께는 죄송하지만, 문주님께서는 정파와 엮이는 걸 극도로 거부하시는 양반이라…….”
“아미타불.”
“그런데도 협력을 구하는 건 모순된 일이 아니오?”
범굉대사가 착잡한 마음에 불호를 외었다. 반면 홍두형은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창천맹은 정사가 서로의 극렬한 입장 차는 중화하면서 협력하기 위해 만든 기구로 어떤 문파든 저마다의 입장 안에서 불편한 사항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천무경은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었고 두 정파의 부맹주들에게 언제나 비밀 없이 터놓고 얘기하였기에 많은 문파가 창천맹의 중재를 따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구룡문은 사파 3강 중 한 곳으로써 창천맹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큰 전력 손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사실 금태하는 사패련에 있던 자원 중 많은 것들을 구룡문으로 빼돌렸다. 그렇기에 사실상 천무경이 사패련주직을 이어받은 시점에선 껍데기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홍천환 사태에서 발발한 각지 전투 가운데 중원에선 천무경과 천무방만이 돋보였으니 그렇게 얻은 상징성으로 창천맹 설립까지 이끌어온 셈이었다.
“금 문주께서는 광혈종의 멸망만을 바라시니 저희를 이용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탁민효가 송구해 하며 홍두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천무경이 씩 웃었다.
“금태하는 잘 지내고 있소이까?”
“예, 황사열과 함께 신공을 연성 중에 있는데 성과를 보이는 중입니다. 광혈종에 대한 정보만 주시면 마교의 일익을 꺾는 데 저희도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탁!
천무경이 탁자를 탁 치며 좌영각을 보았다.
“사실 좌 단주께서 여기에 온 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해 주기 위함이었는데, 마침 광혈종 소식도 있는 거로 알고 있소. 좌 단주, 부탁해도 되겠소?”
“안 될 건 없지요.”
좌영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탁민효를 흘끔 쳐다보았다.
“최근 섬서 한중(漢中) 근처로 마교인들이 자주 포착되었는데 특히 광혈종의 마인들이 다수 확인되었소. 그들은 사천지역으로 남하하는 방향에 있는 산중에 일종의 거점들을 두고 오고 가는 걸 확인했는데 그 경로까지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소. 다만 최근 사천지역을 마교의 제 2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데 첩보에 따르면 중원에서 사천으로 진입하는 길목을 한 집단이 차단할 거라고 들었소. 우리는 그걸 광혈종으로 보고 있소이다.”
“거기가 어디요?”
“무산협(巫山峽).”
“크흠.”
탁민효가 침음성을 삼켰다.
사천을 비롯한 서남쪽 지방은 사방이 울창한 숲과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실상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바로 한중을 통한 북로와 장강삼협을 따라 이동하는 동로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무산협은 장강삼협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이외에는 첩첩산중을 뚫고 가는 수밖에 없는데 지형이 험하고 그 면적이 장대하여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고, 무림인들이라도 쉬이 시도하지 못했다.
“사천은 청성, 아미, 당문이 다행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출구를 틀어막힌 채 마종들의 협공을 당한다면 위태로울 것이오. 이보시오, 탁 계수. 무산협을 비롯한 장강삼협의 격류나 그 일대 산지의 험세를 생각한다면 구룡문으로서도 분명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오. 금 문주에게 창천맹과 협력해서 움직일 것을 다시 한번 권해 보는 게 어떻겠소?”
천무경의 부탁에 탁민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구룡문이 아홉 개의 계파가 공동으로 설립한 문파이기는 하나 현시점에서 금태하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그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보고 있던 범굉대사가 불호를 외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탁 계수가 개별로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우리가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문제가 생겨 그 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들 금 문주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클! 금태하의 고집이 여간 센 게 아니군.”
홍두형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직접 마주 본 적은 없었지만,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진 금태하가 정파인을 극도로 싫어하고 하찮은 존재처럼 여기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였다.
탁민효는 고뇌에 찬 얼굴을 한 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사의 제안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좌 단주의 성의에도 감사를 표하오.”
“과거 협력관계이긴 했으니 우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오. 맹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비혈단을 찾으시오. 의사 전달 정도는 해드리리다.”
“고맙소.”
좌영각의 말에 탁민효가 포권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다시 천무경과 부맹주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오. 나가진 않겠소.”
“그럼.”
탁민효가 정무청을 떠나자 좌영각은 자세를 고쳐 앉고 품에서 서신들 몇 개를 꺼내 천무경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홍두형과 잠시 시선을 주고받았다.
창천맹은 정보를 담당하는 문파로 개방과 하오문의 협력을 받았다. 비혈단은 검림의 편에 서서 일을 하였지만, 기실 개방과 하오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들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다행히 금태하와는 다르게 천무경과 강정학의 사이는 원만했으니 비혈단에게도 기회가 열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는 비혈단이 그간 노력해 온 부분과 개방, 하오문과의 정보 공유를 통해 세부 분석까지 마친 결과를 논하는 자리였다.
“사천삼파(四川三派)가 건재하긴 하지만, 사실 그들의 세가 크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운남(雲南)에 있는 사혈종의 북상을 막고 있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앞서 탁 계수에게 얘기해 주었듯이 광혈종이 산림에 숨은 채 반대편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여기에 염황종까지 움직일 가능성이 포착되었으니 심상치 않은 건 사실입니다.”
“지원을 보내야 하는데 광혈종이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형국이로군요, 아미타불!”
“구룡문을 이용하시면 장강삼협을 뚫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쉽지 않을 걸세. 그들이 우리가 필요한 적시에 움직인다고 볼 수 없으니 먼저 손을 써야 하네.”
좌영각의 물음에 홍두형이 대답하면서 천무경을 슬쩍 보았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좌영각은 거기에 대한 복안이 그들에게 있음을 짐작했다. 그는 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야 구룡문이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매정하군.”
“저희 신분이 하오문과 비교하면 나은 편이긴 해도 하층 계급들이 많은 건 틀림없습니다. 제가 부하들이 어디 가서 죽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만,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자에게 부하들이 죽었다면 그건 ……여기가 뒤틀릴 만한 일입니다.”
좌영각은 말끝에 가서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쿡쿡 찔렀다.
천무경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왜 탁 계수에게는 비혈단을 이용하라고 한 겐가?”
“그래야 맹주께 전달될 소식을 제 선에서 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크흠, 아미타불!”
“허허……, 거 참.”
좌영각의 냉담한 대답에 범굉대사와 홍두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이 정사 간에 사안을 달리 보는 시각이겠지만, 아무래도 사고방식의 틀이 일정한 정파 입장에서는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천무경이 두 부맹주를 슬쩍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좌영각은 할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당문주가 오절에 버금갈 만한 절대 고수급으로 파악되지만, 세 마종이 협공하면 금방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구룡문이 광혈종에 이를 갈고 있듯이 검림도 염황종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네는 강 총수에게도 이 얘기를 전해 주겠지?”
“제자로서 도리를 할 뿐입니다.”
좌영각이 무공이 크게 늘어 비혈단의 단주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정학에게서 무공을 사사하는 은덕을 입은 것이 컸다. 물론 강정학도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택이었겠으나 좌영각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다. 금태하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검림 단일 노선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러했다.
천무경은 좌영각이 준 서신들을 펼치면서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제 이 비혈단의 보고서를 홍두형이 가진 것과 다시 비교 분석하면서 대응 계획을 짜야만 했다.
“그럼 저도 나가 보겠습니다.”
“……잠시만.”
좌영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천무경이 그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 총수도 고집이 있으니 독단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없잖아 있을 걸세. 좌 단주가 창천맹과 검림 사이로 소식들을 잘 연결해 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텐데 어디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봐달라고 전해주게나.”
천무경이 좌영각을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