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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28화 (128/432)

128화 - 제25장. 창천쌍검(蒼天雙劍) (4)

진도건의 복귀는 천무방 전체에 큰 화젯거리였다. 특히 방내 그의 명성은 호위무사 때부터 독특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시선을 끌었다.

그렇기에 적멸당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은 장태환과 진도건이 맞붙는 너무나 생경한 광경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태환의 별호는 일월쌍인.

공교롭게도 일월신마가 연상되는 별호였는데, 그는 마도인이 아닌 일월쌍고검법(日月雙古劍法)이라는 비전의 고대검법을 계승한 전승자였다. 일고검(日古劍), 월고검(月古劍)은 그의 성명병기로 각각 특징적인 형상이 있었다.

일고검은 검 끝이 뭉툭하고 네모지며 검신이 넓었다. 검 끝을 직접 보면 날 일(日)처럼 묵직했다. 월고검은 왜도를 닮았는데 검신이 얇고 검 끝이 휘어 있으며 날이 한쪽으로만 세워져 있었다.

카카캉! 카캉!

장태환은 그 성정처럼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진도건을 연신 몰아쳤다. 거한이라 할 수 있는 백두기나 과거 노지신과는 다르게 장태환은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는데 큰 신장과 긴 팔을 십분 활용하여 쏟아내는 검격은 가히 폭풍과도 같았다.

그것을 상대하는 진도건의 검도 정말 빨랐다.

만약 장태환의 손에 검 한 자루만 쥐여 주었다면 오히려 진도건이 우위에 있을 수 있겠으나, 두 자루를 들고 있으니 오히려 압도하는 것 같았다.

그와 본격적으로 비무해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진도건으로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연무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혁성도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진도건이 없었던 시점에서 천무방 내 쾌검으로써는 단연 이혁성을 으뜸으로 쳤다. 하지만, 그는 장태환과의 비무에서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해 본 적이 없었다. 남궁평도 언제나 한 수 접어준다는 눈치를 보이지만, 실제로 비무를 해 보면 ‘강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얘기하고 있었다.

내외공의 균형, 경험, 재능, 성실함 등 복합적인 기준에 상대와의 상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혁성이 보기에 장태환의 쌍검술은 어찌 보면 쾌검객들에게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일월쌍고검법 절명풍우(絶明風雨).

쌍검격이 폭풍처럼 몰아쳐서 해와 달의 밝음마저 가릴 정도라는 뜻이었다.

카카카카-!

금속성 소음마저 겹겹이 부딪쳐 귀에 제대로 들려오는 것이 없었다. 세 자루 검이 허공에서 얽히며 촘촘한 검광의 그물을 만들었다.

‘마치 두 사람의 합격을 상대하는 것 같다.’

보통의 쌍검술은 공수를 번갈아 하는 편이 짙은데 장태환의 쌍검은 거의 공격 일변도였다. 거기다 마치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듯하면서도 전혀 얽히는 거 없이 날아들고 있으니 마음과 머리가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는 보여 줄 수 없는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더 보여 줄 게 없다면 여기서 끝내자.”

싸늘한 목소리에 진도건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일월쌍고검법 수라팔비(修羅八臂).

폭풍같이 몰아치던 검격이 일순 사라지더니 일고검이 비스듬히 횡으로, 월고검이 하단에서 위로 동시에 짓쳐들어왔다. 게다가 두 검엔 어느새 검강을 두르고 있었으니 정말로 죽일 태세였다.

진도건의 붉은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단숨에 검강을 뽑아 낸 장태환의 내공 운용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진도건도 순식간에 붉은 검기를 군자검과 왼손으로 동시에 뿜어내며 장태환의 검강을 막아 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형상화되지 않은 검기로 검강을 막은 힘은 놀랍지만, 고작 그뿐이라면 정말 끝이다.’

막아 낸 순간, 진도건의 사방을 여섯 가닥의 검강이 점유하면서 나타나 곧장 짓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태환의 쌍고검이 진도건이 검을 쉽게 회수하지 못하도록 그 길을 노리고 비틀었다.

일격필살의 절초.

“정말-!”

장태환이 정말로 진도건을 죽이려고 하자 천서은이 놀라며 금방이라도 몸을 던지려고 했다.

파파팡-!

일순 파열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며 장태환이 펼쳐 낸 검강들이 터져 나가고, 진도건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장태환의 머리 위에 동그랗게 말아 묶어 놓은 머리카락이 잘리며 동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호오!”

지켜보고 있었던 백두기는 적잖이 감탄했다.

‘검을 놓고 몸을 선회하여 두 손으로 모두 쳐 냈다. 저 붉은 기운의 파괴력이 상당하군. 말로만 듣던 혈마의 그것인가…? 하지만, 그것보다는 상단전이 제대로 개방되어 있나 보구나…….’

장태환의 머리 위로 핑그르르 돌다가 진도건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흑검에는 어떤 경력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위력 자체는 이기어검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의지만으로 검을 띄워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는 상대를 기습에 무방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진도건이 다른 검강들을 쳐내기 위해선 틈이 필요했는데, 백두기는 여섯 가닥 검강이 아주 찰나의 순간 멈췄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인간이 태어나 상단전을 제대로 개방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정도라면 정말 반선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저런 강력한 염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네 이놈……!”

장태환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급변했다. 반응도 못 하고 머리카락이 잘려버렸으니 그 수치심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만 하세요!”

천서은이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장태환은 진도건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결국 천서은의 노한 얼굴을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실력을 보이라고 했더니 요사스러운 술법만 늘어서 돌아왔구나.”

장태환이라고 백두기가 느낀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백두기가 진도건의 몸 상태에 대해 진지한 평가를 하고 있지만, 장태환은 진도건이 가진 무공이나 본래 장기였던 검술을 더 발전시키지 않았다고 평하는 것이었다.

진도건도 장태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목숨에 위협을 받았으면서도 여유가 있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장로님이 제 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라팔비가 장로님의 고검법 초식 가운데 절초인데 막아 낸 것만으로 넘어가 주십시오.”

“말에 씨가 많아도 너무 많구나. 내 머리카락을 날렸다고 기고만장하는 게냐?”

“그건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의 반격에 불과했습니다. 저도 아직 힘을 다듬지 못한 상태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장로님께 시험당한 게 어디 이번 한 번뿐입니까? 예전에도 방주님과 짜고 절 사지로 던져 놓으신 적 몇 번 있으셨지 않습니까?”

“푸하하하!”

장태환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진도건을 보았고, 백두기는 그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옛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말이었다. 세 장로가 천무경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호위무사를 맡은 진도건에게 임무를 주고 강자들을 상대하러 내보낸 일이 숱하게 있었으니 그 가운데 위기의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하하하, 네가 진도건이 맞긴 맞는구나. 장 장로가 노 장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크니 네가 이해해라. 장로께서도 그만합시다.”

백두기도 연무대 위에 올라가 장태환 옆으로 다가가 그를 다독였다.

“백 장로는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으시오? 저딴 녀석 지키느라 노지신이가 죽었는데.”

“강적을 만나 명을 달리한 걸 어찌 도건의 탓을 하겠소? 그리고 저놈은 충분한 실력을 보여 주었소. 장 장로님이 사생결단을 내려 했다면 승부를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내가 질 거라고 보시오?”

장태환이 발끈하면서 자신의 어깨에 올린 백두기의 손을 쳐 냈다.

원래 거친 성정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백두기는 크게 개의치 않고 웃었다.

“하하하! 지금이라면 장로께서 이길 것이오. 하지만, 팔 하나는 내줘야 할 것이오. 그건 이 백모도 마찬가지. 우리 중 누구도 삼단전이 모두 열려 있는 자를 상대해 본 경험이 없소이다.”

백두기는 장태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진도건을 흘끔 바라보았다.

“도건아, 창천맹으로 떠나기 전에 천무전 뒤 절벽 위에 그들의 묘소가 있다. 꼭 절하고 가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장로님.”

“그리고 더 날카롭게 검을 벼리거라. 강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결국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했다. 네겐 검이 근본이 아니더냐? 한계를 두지 말고 정진하거라. 장 장로께서 틀린 말씀을 한 게 아니다.”

“두 분 장로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천서은 너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제 걱정은 마시고 이장로님 좀 데려가서 혼내 주세요, 할아버지.”

“푸하하! 미안하지만, 난 장 형님 편이다.”

천서은의 투정에 백두기가 웃으면서 장태환을 끌고 내려갔다. 장태환은 여전히 툴툴거리면서 내려갔다. 그는 내려가면서 이번엔 천서은을 쏘아보았다.

“넌 어째 버르장머리가 더 심해졌느냐? 쯧쯧!”

“형님, 어서 갑시다.”

백두기가 서둘러 장태환을 데려나가자 천서은이 심통이 난 표정으로 그 뒤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두 사람의 모습이 곧 사라지자 뒤돌아서서는 진도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창천맹으로 가면 아버지께 장 할아버지 심통 부린 거 다 이를 거예요.”

진도건이 피식 웃었다.

“내가 더 걱정이오. 맹주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제가 지켜줄 테니 걱정 말아요.”

두 사람도 연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이 맞이해주었다. 모두가 장태환과의 비무를 놀라워하며 진도건의 실력을 칭찬해 주었다. 특히 이혁성도 그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수라팔비를 막아 낼 수 없다. 쌍검을 쓰지 않는 이상 이장로님의 쌍검격을 앞지를 순 없어.”

“저로서는 요행을 부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 또한 자네의 무기임은 틀림없지. 그러나 난 백 장로님의 말씀에 십분 공감한다. 검객은 검으로 얘기할 수 있어야지.”

“도건과 이 당주는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거 같군. 하지만, 내 생각도 다르지 않네. 진도건 자네의 진가는 검술에 있네. 원류검결이라 했던가? 절대 게을리하지 말게나. 그것이 자네를 만든 것이고, 수라팔비를 막은 것도 한낱 작은 요행보다 그 검결로 성장한 자네였기에 가능한 것이라네.”

남궁평이 씩 웃으며 진도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이혁성과 함께 돌아갔다. 그러나 뒷모습을 진도건은 조금은 멍해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구나…….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뭘 그렇게 고민했었던 거지? 멍청하다. 멍청해. 쉬운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을 허비했어.’

흑체를 만들어 낸 흑풍신마와의 대결에서 진도건은 분명 염력의 덕을 보았다. 그 휘몰아치는 경력의 소용돌이를 검으로 갈라낼 수 있었던 것도 염력으로 미세한 틈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미세한 틈을 가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극한으로 단련된 그의 육체 덕이 컸다. 단지 이미 갖고 있던 상시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하기 여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길에서 진도건이 가장 고민한 것은 염력을 어떻게 하면 더욱 정교하게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흑응채를 제압하면서 기백의 무림인들 기를 죽여 놓은 것은 염력을 이용하여 허공섭물 흉내를 내면서 화려함을 과시한 덕이었다.

“하하…….”

진도건은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그는 천서은을 보았고, 다시 영은성과 최현걸 등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길에 내가 검을 들고 수련한 적이 몇 번 되지 않았구나. 정말 한심해. 그렇지?”

영은성과 최현걸은 영문을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진도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에서 진도건의 검술은 여전히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진도건은 어느새 자신의 검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자평하면서 선을 그어 놓고 있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진도건은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스로 한심하다 되뇌는 그의 모습을 천서은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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