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제25장. 창천쌍검(蒼天雙劍) (1)
꽈과광!
폭발과 함께 경력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뒤로 몸을 날린 주백자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빠져나가야……!’
공중에서 눈빛마저 반쯤 풀려 있었던 주백자는 스스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온몸을 헤집어 놓기 시작하는 마기의 흐름을 서둘러 억제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 같았다. 다행히 단원진과 일월신마 모두 큰 내상을 입을 만큼 충격을 주었으니 서둘러 도망친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골이 울릴 정도로 받은 충격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 주백자는 급히 고개를 틀어 자신이 들어왔던 물가의 위치를 찾았다.
그 순간 그의 앞에 양자성이 나타났다.
그 존재를 눈치챈 주백자가 급히 앞을 보자 양자성과 눈이 마주쳤다. 곧장 절초를 펼치면서 검기로써 사방을 에워싸는 그의 모습을 보며 주백자는 한탄을 금치 못하였다.
“한심한……!”
백령검법 백화요리.
휘몰아치는 꽃잎이 검기들 사이로 양자성의 검광이 변화를 일으키며 주백자를 공격했다. 정상적이었다면 그것을 막는 건 우스운 일이었으나 깊은 내상과 운기를 방해하는 마기의 영향력은 그를 더욱 둔하게 만들었다.
어렵사리 손을 휘둘러 검기와 검광을 쳐 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일퇴가 주백자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퍽!
“큭!”
치명타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기엔 충분했다. 뒤쪽 아래 지면으로 밀려 날아가던 주백자는 문득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류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양자성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불안한 표정 속에 간악한 의도가 숨어 있음을 느꼈다.
‘이건……!’
지면과 가까워짐에 따라 그 섬뜩한 기류는 점점 강력하게 주백자의 온몸을 휘감았다.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등이 땅을 향한 채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는데 급히 고개를 틀어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어둠뿐이었다.
그제야 양자성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양자성이 필사적으로 그를 발로 차 버린 것은, 권영서에게서 들었던 무저갱의 지옥문으로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휘류류류-!
주백자의 신형이 마치 땅으로 꺼지듯 하강기류에 빨려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땅 위로 착지하는 양자성이 만면에 희열을 담으며 웃음 지었다.
주백자의 무공이 워낙 고강하여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의 내상이 심각했던 것이 양자성에겐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거물을 직접 해치웠다는 희열이 컸기에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파아아-!
그때였다.
무저갱 지옥문에서 무수한 돌무더기들이 하강기류를 뚫고 튀어 올랐다. 그 기류의 세기를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흐아아아-!”
희미하게 시작되어 결국 점점 크게 들려오는 주백자의 외침에 양자성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의 불안감처럼 주백자는 분명 암벽을 타고 빠르게 기어오르며 솟구치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백여 장 이상의 거리로 빨려들어 가 버렸다. 그러나 이내 공력을 쏟아부으며 가까운 암벽을 할퀴었다.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바위들에 일순 기류가 어지러워지자 빠르게 바위 하나를 밟고 뛰어 올라가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작업을 걸음마다 반복하니까 기류가 어지러워졌고 그 사이사이에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니 순식간에 많은 거리를 솟구쳐오를 수 있었다.
“흐아아아아-!”
양자성이 들은 그 외치는 소리는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다시 빨려 들어갈 위기의식 속에서 주백자가 다급한 나머지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손과 두 발끝을 바위에 꽂았다가 빼면서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며 다섯 걸음마다 바위들을 부숴 떨어뜨렸다. 여전히 하강기류가 그를 붙잡고 있었지만, 떨치고 달릴 정도의 난기류를 만들 수는 있었다.
‘드디어……!’
어둠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검붉은 일렁임이 눈에 들어오자 황망했던 주백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위로 거뭇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자 그 작은 희미한 미소조차 이내 사라져 버렸다.
“어딜 올라오느냐? 클클클!”
아래에서 일으키는 주백자의 소리는 위로 쉽게 퍼지지 않았지만, 지옥문 입구에서 사악한 웃음을 터뜨리는 단원진의 육성은 주백자의 귀에 너무나 쉽게 박혀 버렸다.
“……빌어먹을!”
주백자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강기의 폭풍들을 주백자는 이 휩싸인 어둠 속에서 도저히 피해 낼 수 없었다.
콰쾅!
바위를 패어 내는 동작들이 늦어지자 주백자는 떨어지는 기운들을 방어하면서도 또다시 강력한 하강기류가 온몸을 휘감는 걸 느꼈다.
‘이곳이 내 무덤인 건가…….’
전신세맥을 시작으로 경맥들을 따라 파고들어 오는 마기는 분명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고 있었다. 그러나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수직 낙하하는 주백자의 얼굴엔 어느새 평온한 미소가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크하하핫!”
단원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강한 안력을 가졌지만, 무저갱의 바닥은 헤아릴 수 없었다. 또 아래는 끌어당기는 하강기류는 그도 섬찟할 만큼 강력했다. 그런 곳임에도 그의 눈에 잠깐이나마 희끗하게 주백자의 모습이 보일 정도였으니 그의 무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방금의 일격 이후로 기척이 잠잠하고 순탄해진 하강기류가 마치 그마저도 집어삼킬 듯이 계속 몸을 휘감아오자 마침내 그를 제대로 무저갱에 떨어뜨렸음을 직감하였다.
그러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단원진은 너덜너덜해진 장포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 양자성을 내려다보았다.
“잘했다. 나의 제자여! 나의 천마신공을 잇기에 자격이 충분하다!”
단원진은 양자성을 지나쳐 공동 한가운데에 서서 팔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아, 비로소 천하에 나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사라졌구나……! 모든 것은 천마의 뜻대로!’
그가 아들 단지운에게 교주직을 물려주고 나서 천산산맥 박격달봉 아래의 이 용암공동과 인근 산자락 주변에서 거의 떠나지 않은 채 십여 년을 지내온 건 모두 이때를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중요한 열쇠 또한 같은 날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크하하하하-!”
뒤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양자성의 존재를 느끼면서 단원진은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월신마는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단원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최대 적수라 할만한 존재를 무저갱으로 빠뜨린 것은 그로서도 아주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무저갱 바닥은 아마도 용암지대겠지…….’
단원진은 모르고 있었으나 일월신마는 산맥 일대의 다른 지점을 탐색하다가 용암동굴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삼십여 년 전에 일대에서 딱 한 번 큰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원주민인 회골족들도 역사적으로 그런 지진을 겪어본 적이 없다 할 정도로 거의 가능성이 없던 일이었다.
그때 그가 발견했던 용암동굴에도 무저갱과 같은 작은 바닥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잠깐 넘쳐흘렀던 용암으로 인해 내부 지형이 바뀌어 버렸음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적이 있었다.
만약 이곳의 무저갱도 같은 식이라면 주백자도 절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일월신마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단원진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승리로 기뻐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주백자와 내력 대결을 펼치면서 간신히 버티던 즈음에 단원진이 더 큰 기운을 일으키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의 동공에 비친 단원진의 기척과 동시에 단원진을 심안으로 관조하려는 주백자와 내력이 미약하게 연결된 통에 엿볼 수 있었던 그의 ‘본질’.
일월신마는 갈피를 잡기 어려우면서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 때문에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아 적지 않은 혼란만을 느끼고 있었다.
“후.”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었다. 미처 신경 쓰지 않은 거적때기가 되어 버린 의복이 눈에 들어오자 다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몰매를 맞은 듯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물가 쪽으로 걸어갔다.
“냉소평, 어디 가는가? 혼마동(混魔洞)에서 운기조식하는 게 회복이 더 빠를 텐데.”
단원진의 부름에 일월신마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격전을 치르느라 먼지를 너무 마셨네. 큰 적이 사라져 우환도 없어졌으니 나는 이만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회복하겠네.”
“그럼 편한 대로 하시게.”
일월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곁의 양자성을 쳐다보았다.
“양자성이라고 했지? 천하제일의 마공을 전수 받게 된 걸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클클클!”
양자성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자 일월신마가 웃음을 흘렸다. 그는 천천히 몸을 끌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단원진은 권영서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권 각주.”
“예. 명현단을 찾아 양자성에게 주어라. 그리고 주변에 나가 있는 감시자들을 불러 이 안을 정리하라 일러라. 부서진 것들은 무저갱에 던져 버리고. 양자성, 넌 나와 함께 천마동으로 들어가자.”
“예, 태상교주.”
“예, 스승님.”
단원진이 지시를 내리며 4층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국, 연은 일월신마의 뒤를 쫓아서 출입수(出入水)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권영서와 양자성은 서둘러 단원진의 뒤를 따라갔다.
펑!
통로 입구를 막고 있는 돌무더기들을 장력으로 박살 내어 흩어버린 단원진과 그 뒤를 가까이 쫓아가는 양자성과 권영서는 이내 통로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용암 공동 안에는 곧 다가올 적막에 앞서 양자성에게 얘기하는 단원진의 희미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오늘 천마신공의 기초 내력을 닦아 줄 것이다. 권 각주가 명현단을 주면 복용하고 나서 운기조식에 몰두하도록 하여라.”
* * * *
꽤 길었던 전쟁과 몽골족 흑응대의 약탈로 혼란스러웠던 화북지방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출병했던 군사들이 돌아오면서 치안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었고, 각 지역 관청에선 황명으로 곳간을 개방하여 구휼미(救恤米)를 풀어 백성들의 원성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전란으로 피폐해진 지역들은 으레 도적 같은 무법자들이 활개를 치기 일쑤였다. 군사들도 소수만 관할 지방에 남고 대부분은 황궁이 있는 개봉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치안 수요를 관청이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북 지방은 하북팽가에게, 산서지방은 천무방에게 치안 안정의 역할을 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산서하북의 경계지역의 중앙쯤엔 선태산(仙台山)이라는 산지가 있었는데 이곳에 많은 수의 도적들이 산채를 이루고 몰려들고 있었다. 여기엔 굶주림을 못 참고 칼을 든 백성들도 기백이 되었는데, 이들의 중심은 엄연히 무림인들이었다.
흑응채(黑鷹寨).
일대를 공포로 떨게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몽골족 흑응대의 이름을 따지어진 산채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약 이백여 명의 무림인들과 사백여 명의 일반 백성들이 모인 군집으로 발달해 있었다.
아직 화북지방에 이들을 토벌할 여력이 없었던 절도사 조태상은 창천맹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창천맹에서도 마침내 창천맹주의 직인이 찍힌 서신이 천무방과 하북팽가에 하달되었다.
“천무방에서 30명, 하북팽가에서 10명을 선발하여 토벌대를 구성하고 기주성에서 출병한 100명의 병사들과 선태산 남단의 석불사(石佛寺)에서 합류하라. 백성들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며 신속하게 흑응채주 전위(全危)와 핵심 인사들을 제압하라. 반항하는 자는 목을 베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