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제24장. 역천마제(逆天魔帝) 단원진(段源辰) (5)
상청검.
영보천존(靈寶天尊)을 상징하며 육신을 베는 것이 아닌 영과 신을 배는 검.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자가 없으니 그 일격이면 일거에 육신과 영신을 분리하거나 오염된 일부를 태워 그 급격한 공허함으로 적게는 몇 분에서 많게는 몇 년까지 그 영향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일시적 식물인간 수준이 되는데 눈에 보이면서도 완전한 무형의 검기라 막을 수도 없고 먼 거리가 아니면 피할 수도 없었다. 그 검기의 광휘에 영혼이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 인격이 마기로 혼탁해지는 지경이라면 평생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야 하니 치명적인 위협에 완전 무방비가 되는 셈이었다.
주백자가 단원진과 일월신마를 상대하면서 자신하고 있던 것은 입신의 경지에 이른 무공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제한된 용암 공동 내의 공간 때문이었다. 게다가 단원진은 전투의 여파로부터 이 공동을 보호하기 위해 기문진을 발동시켰으니 이 반선의 권능을 꺼내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 셈이었다.
주백자는 자신의 계획과 행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기에 상청검이 두 마두에게 닿고 나서는 드디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다.
‘기문진이 왜 아직도……?’
그것을 인지한 시점에서 주백자는 자신이 너무 자만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이곳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구주마종 중 하나라도 처치하려 했었다면 이런 방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월신마에게선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 안으로 보이는 마기는 여전히 융성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백자가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은 단원진 때문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채 상청검에 관통당한 단원진은 일시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단원진이 ‘그’를 통제하기 위해 자신에게 걸었던 금단의 술법이 마침내 깨어졌다.
역천봉마술(逆天封魔術).
정확히는 깨어졌다는 표현보다 닫힌 문이 열리며 해방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터.
역천봉마술은 마성을 지탱하는 이른바 무의식 속 또 하나의 체(體). 즉, 일종의 그릇을 의미하는 마정을 형성하기 위한 술법으로 이것은 오로지 모든 마도의 무공을 창안하고 설파한 단용후 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금단의 비술이었다.
그것이 육신을 무시하고 령신을 직접 공격하는 상청검이 열쇠가 되어 마침내 그 문이 완전히 개방된 것이었다.
쿠아아아아아!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청검이 관통하고 나서 불과 1, 2초 정도 흘렀을까, 단원진의 축 늘어진 신체가 그대로 허공에 머무른 채 갑작스레 칠흑의 마기가 흘러나오더니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광휘에 휩싸여 있는 주백자의 그것처럼 단원진의 피부 가까이 따라서 은은한 검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백자는 본능적으로 다시 손에 태청검을 형성하였다.
그 순간,
크하하하하-!
사악한 느낌이 그득한 웃음소리가 공동 내에 가득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로 사방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거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속에서 주백자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다.
공포.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정이 흐트러져 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영유아 시절에서나 느꼈을 법한 그 원초적 감정에 휩싸였다.
주백자의 얼굴에 진심을 담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 강렬한 자극으로 인해 전에 없던 투기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단원진은 어느새 미증유의 존재로 변모해 있었으니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싹오싹했다.
지면에 발을 딛고 선 사람은 성스러운 백광에 휩싸인 채, 하늘에 비스듬히 선 사람은 섬뜩한 흑광에 휩싸인 채 이 싸움터가 마치 성전(聖戰)의 무대가 된 듯했다.
샤아아앙!
주백자 주변으로 흑기류들이 휘몰아쳤다. 갑작스레 나타난 현상에 경각심을 가질 때, 십여 개의 검은 강기들이 기류들을 중심으로 주백자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콰콰콰콰!
그때부터 거대한 기의 폭풍이 쉬지 않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끝없는 강기 다발들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주백자를 덮쳤다.
주백자의 신형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면서 강기를 피하고 쳐 냈다. 검은 파도가 휘몰아칠 때마다 하얀 검이 번쩍거리고 있는데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격렬한 충돌이 지속하고 있을 때, 드디어 일월신마도 깨어났다.
“끄어어……. 하아!”
동공에 빛을 잃은 채 석상처럼 굳어 버렸던 일월신마가 고통스러운 신음 끝에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깨어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명료한 눈빛으로 두 존재의 격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것인가……!’
일월신마는 그 어느 때보다 기운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구주마종의 수장이 되면 반드시 이곳에 들어와 태상교주의 손을 거친 역천봉마술진 안에서 마성과 마정의 성장을 위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것은 잠재 한계를 성장시키기 위한 운기조식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마기를 끝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단전과는 또 다른 그릇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공을 수련하면서 경지에 이르면 마성을 인지하게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단전과 마정의 이중 내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동화(同化)’의 단계라 할 수 있었다.
마성은 좀 더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 주인과 닮기 마련이지만, 이것의 실체인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기 위해선 역천봉마술의 개문이 필요한 일이었다.
주백자의 상청검은 단원진에게도 그러했듯 일월신마에게 같은 작용을 하였다.
진도건이 혈마의 마성을 마주하고 강한 저항을 일으켰던 것과는 달리, 일월신마는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기꺼이 받아들이고 ‘입마(入魔)’에 이르렀으니 자신의 마공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고 마정을 오롯이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일월혼극마공 일월붕천굉(日月崩天轟)
이전이라면 양손에 음양의 파장을 만들 수 있었다면 이젠 단전과 마정 두 근원을 모두 활용하여 양손에 나눠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음양마기가 그의 의지를 읽기라도 하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듯이 주백자를 향해 폭격을 퍼붓는 단원진의 모습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공적을 해치우는 것이 급선무일 터였다.
“크아압!”
기합과 함께 주백자를 향해 쌍장을 퍼붓자 두 줄기의 거대한 압력포가 쏘아져 나갔다.
쿠와아앙!
주백자도 일월신마가 심상치 않은 기세를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대비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조차 아꼈어야 했었나……!’
일원신마의 일월붕천굉은 단원진이 뿜어내는 강기다발보다도 집약적이어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일월신마의 목을 먼저 베지 않은 것에 후회하며 태청검으로써 새하얀 광휘의 검막을 쳤다.
콰과과광!
단원진이 쏘아 보낸 강기 다발과 일월신마의 음양압력포가 검막을 일제히 때렸다. 그 폭발의 기세를 본다면 그 속에서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주백자의 무공도 한 차원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강기의 검막이 아닌 모든 충격에 대해 태극권의 묘리를 담아 흘려버리고 있으니 기실 공세의 절반밖에 안 되는 충격만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말로 강력한 힘이 필요해……!’
단전 내 웅대한 내력이 꿈틀거리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한 호흡에 대주천을 이루며 막대한 진력이 태청검에 모이고, 이는 또다시 검막과 일체가 되더니 주백자를 중심으로 막대한 권역을 이루었다.
투앙!
강기 다발의 틈으로 주백자의 신형이 검막을 뚫고 뛰쳐나왔다.
새하얀 빛의 검을 이루는 태청검이 절로 시선을 끄는데 그 검 끝에 모인 주먹만 한 구체(具體)가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아앙-!
그를 쫓아 재차 몰아치는 강기의 파도 사이로 주백자는 단원진과 일월신마를 시야 속에 동시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검극에 실려있던 구체를 날려 보냈다.
십단금(十段錦) 검결(劍訣).
면장에서 발전된 무당파 최고의 강장(剛掌). 그것이 검 끝에서 피어나 단원진과 일월신마가 방출한 기운과 충돌했다.
쿠콰콰콰콰-!
힘으로 찍어 눌러 보겠다는 의지의 발현과 그것에 대항하는 두 마두의 공력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용암공동 안을 가득 메웠다. 마치 이곳을 쓸고 지나가던 용암의 열기와 같이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의 폭발이었다.
“이, 이건 뭡니까?”
통로의 그늘 아래서 숨어 지켜보던 양자성은 갑자기 눈앞에 뿌연 안개와 같은 막이 펼쳐지자 당황스러웠다. 그의 손은 까맣게 변한 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인상을 찌푸린 양자성의 얼굴엔 지나간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환도종의 기문진이네. 절대고수를 가두기 위한 술진인데 술자가 죽지 않으면 해제할 방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네.”
권영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양자성의 손을 힐끗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함부로 건들지 말게나. 술자이신 태상께서 안에 계신 만큼 밖에서 어찌할 방법은 더더욱 없다네. 자네 손만 태울 뿐이야.”
“아아……!”
양자성은 진심으로 아쉬워서 탄식했다.
천마신교의 태상교주와 일월신마, 그리고 과거 혈마지란을 일으켰던 혈마의 스승이자 정파의 살아 있는 전설 주백자의 대결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라 하더라도 그 격전의 인상만을 몸소 체감할 수 있다면, 그 휘몰아치는 기운들의 흔적을 쫓아 명상 속에 담아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얻는게 크다 할 수 있었다.
“보지 못해서 아쉬운가 보군.”
“당연한 소리 아니오?”
“저 정도의 절대고수들끼리 싸운다면 이 넓은 공동도 결국 비좁게 되어 버리지 않겠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 버린다면 자네가 원하는 힘도 얻지 못할 걸세.”
“그렇긴 하겠소만…….”
쓴웃음과 함께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하던 양자성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마공의 강력함에 취하여 이 먼 타지까지 와서 결국 그 길이 열렸건만, 천마신교의 태상교주와 일월신마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정파의 무림인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압도적인 힘을 원하는 그의 입장에서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잠깐이라도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사의 어떤 무공도 마공과 같은 위력을 보여 줄 수는 없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양자성은 속으로 다시 생각을 다잡았지만, 잠깐이나마 흔들렸던 심정에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권 각주께서는 누가 이길 것 같소?”
“질문이 잘못되신 것 같네만.”
권영서의 대답에 양자성은 아차 싶었다.
“소, 송구하오. 당연히 태상교주께서 이기시겠지요?”
“주백자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한들 일월신마까지 계시니 반드시 이길 것이네. 다른 마종은 모두 단용후 조사님에게서 갈래가 시작된 마도의 지류이지만, 일월교만큼은 조사님과 함께 시작된 마도의 본류라 할 수 있지. 황제가 아무리 토목공사를 크게 벌인다고 하여도 장강의 본류를 바꿀 수는 없듯이 두 분께서는 고작 정파의 늙은 도사에게 절대 무너지실 분들이 아니라네. 그게 설령 주백자라는 전설의 인물일지라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