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제24장. 역천마제(逆天魔帝) 단원진(段源辰) (4)
푸서석!
암벽들이 부서지면서 거기에 처박혔던 단원진과 일월신마가 몸을 빼냈다. 면장 일격에 온몸이 찌르르 울리는 충격을 느끼면서 두 사람은 이 싸움이 결단코 쉽게 끝나지 않을 걸 직감했다.
텅!
일월신마가 먼저 몸을 날렸다.
응축된 음양기를 양손에 거머쥔 채 단숨에 짓쳐 들어가 쌍장을 퍼부었다.
슈악!
두 기운을 상대에게 근접하여 충돌시킴으로써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으로 공격하는 주된 수법인데, 오히려 일월신마의 두 손 사이를 파고든 주백자의 손이 방향을 틀어 버리면서 헛손질을 했다.
‘이런……!’
일월신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두 기운이 가까워지면 인력(引力)도 작용하기에 그렇게 엇갈리도록 하기는 힘든 일이었는데 주백자의 태극권은 그런 것조차 무력하게 할 만큼 강력했다. 마치 그의 수단을 훤히 내다보는 듯한 대응이었다.
단원진도 즉각적으로 주백자의 등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칠흑의 검기들이 그의 주변으로 휘몰아치더니 허공에 대고 퍼붓는 장력을 따라 주백자를 향해 날아갔다.
주백자는 일월신마를 상대하면서 이미 단원진의 공격까지 예상하며 어떤 반응을 취할지 준비해 둘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의 두 손이 이끄는 대로 일월신마의 쌍장은 주백자에게서 방향을 틀었고, 바로 오른손을 빼내어 빙글 원을 그리니 강력한 인력의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일월신마와 단원진의 공격이 충돌했다.
콰앙!
주백자의 한 차원 높은 예측력은 일월신마와 단원진이 반응할 기회조차 앗아 갔다. 어김없이 폭발하는 마기의 폭풍 속에서 또다시 주백자가 일월신마의 등 뒤에서 이형환위로 나타나고는 곧장 면장을 때렸다.
파앙!
“커억!”
졸지에 전면에선 단원진의 장력을 상대하고 등 뒤에서 일격을 얻어맞은 일월신마가 결국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튕겨 들어오는 일월신마의 신형을 몸을 돌리며 피해 낸 단원진의 시야 아래로 뭔가 검은 것이 불쑥 솟았다.
퍽!
어느새 접근한 주백자가 턱을 제대로 걷어차면서 단원진의 몸이 불쑥 튀어 올랐다. 길게 늘어난 그의 복부에 어느새 주백자의 두 손이 얹어지더니 일순 태극의 문양처럼 옷자락이 일그러졌다.
파앙-! 콰쾅!
천마신교의 두 마두가 다시 한번 암벽에 처박히며 돌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그걸 두 눈으로 지켜본 양자성의 얼굴엔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강정학과 비견될, 혹은 그 이상으로 점쳐지는 마제 단원진과 일월신마가 박투로 다투는데 무기력하게 휘둘리는 이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정은 단원진과 일월신마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클클클! 내 꼴이 이리 한심해질 줄이야.”
일월신마가 웃음을 터뜨리며 바위 속에서 몸을 빼냈다. 단원진도 근처 바로 위에서 몸을 빼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입가에 검은 피를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방금의 일격들로 모두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냉소평(冷素平).”
단원진의 부름에 일월신마가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냉소평은 일월신마의 본명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본명에 일월신마는 조금 이상하게 느꼈지만, 이내 단원진이 지금의 작태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원진이 심기가 거스르는 일이 있으면 호칭보다 이름을 부를 때가 있다는 걸 마침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다하게. 여기 무너질 걱정은 하지 말고.”
“남아나질 않을 텐데?”
“내가 뭘 준비하는지 궁금했었지? 내 일부 보여 줌세.”
“클클! 좋아, 책임은 단 태상께서 지라고.”
일월신마의 투기가 엄청나게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주백자도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느껴졌다.
‘마공이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것. 그 어긋남의 표상이 저자에게 있구나.’
기라는 게 본래 음양이 분리되지 않는 법인데 일월신마는 능히 이를 둘로 나눠 좌우로 엄청난 공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근간에는 눈을 뜬 마성이 양분된 기운의 하나를 도맡음으로 인해서 육신이 부서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고 있음을 주백자는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도의 무공이란 올바른 호흡, 깊은 명상, 자아의 관조를 통해 하단전에 축기를 하고 중단전과 상단전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자신 안의 우주를 깨우침에 있었다.
이 확장에 성공하면 이른바 화경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곤 하지만, 얼마나 마음을 넓게 품고 머릿속을 비우느냐에 따라 그 위의 경지도 넘볼 수 있게 된다. 상상과 인지의 영역을 무한을 향해 이르는지 그리고 자아의 강고한 존립 또는 유연한 동화를 이루는지에 따라 무공이 ‘무(武)’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권능(權能)이 되기도 하고 무위(無爲)가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주백자는 기실 신(神)이 우주와 통하여 세상의 본질을 관조할 수 있는, 더는 끝을 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하의 이치가 손에 잡힐 듯 훤할 지경이기에 일월신마나 단원진에게서 느껴지는 마공과 마성의 그것이 얼마나 진리에 역행하는 존재인지 경각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투로 압도하는 것은 자신하고 있으나 저 마도의 본질을 부수기 위해선 좀 더 본질적인 충돌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기공의 대결로 확대할 필요가 있었고 일월신마 냉소평은 그의 뜻대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원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월신마의 뒤에 숨어서 칠흑 같은 검은 속을 꿈틀대고 있으니 그도 분명 무언가 패를 꺼내 들 것이 분명했다.
태극신공(太極神功) 무량허도(無量虛道).
주백자에게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정순한 기운은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그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거칠고 장황하게 표출되지 않으나 횃불 몇 개로 어둠을 힘들게 들어 올리는 이 동굴 속에서 그의 존재는 고고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태극혜검(太極慧劍) 태청검(太淸劍).
가볍게 말아쥐는 손에 새하얀 검의 형상이 나타나니 그것을 목도하는 일월신마나 단원진 모두 내심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매개체(媒介體)도 없이 검강을……! 아니, 검강이 맞긴 한 것인가? 저것 또한 무검유승검(無劍有勝劍)의 한 가닥이로구나!’
일월신마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조강선을 만나 몇 수 겨뤄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와도 끝까지 싸워선 안된다는 경각심이 있었으나 그에겐 자신을 죽이기 위한 목적의식이 없었기에 쉬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선 주백자는 그들이 갖는 살의와 같이 마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했다.
“단원진, 날 죽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일월신마는 본능적으로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의 등 뒤에서 단원진은 내심 그의 말에 놀라면서도 그 심정을 이해했다.
“흐아압!”
일월신마가 기합 일성을 토해 내면서 주백자를 향해 돌진했다. 신체 좌우로 나눠진 음양기가 얼어붙는 서리와 일렁이는 열기를 뿜어내며 단숨에 주백자를 집어삼켰다.
일월반전수 지옥무도(地獄無倒).
단순한 음양기의 성질별 폭주가 끝이 아니었다. 마치 허공을 쥐어뜯는 듯 움켜쥐는 손아귀와 이를 각기 위아래로 버겁게 당기는 일월신마의 몸짓 끝에는 음양기의 연쇄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콰콰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공동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여파가 암벽과 천장을 두들기기 시작할 때, 단원진이 손에 든 단도로 베어 피에 젖은 손바닥을 그대로 무릎 꿇고 지면을 눌렀다. 차분히 눈을 감고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하니 그 순간 칠흑 같은 마기가 단원진을 중심으로 불길처럼 화륵 일어나는 듯하더니 지면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붉은빛의 선이 공동 내부 벽면을 따라 수십 갈래 뻗어 나가기 시작하더니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슈앙!
폭발 속을 비집고 하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칼에 역장을 베어내는 주백자의 태청검이었다.
마치 어둠을 걷어내는 선인의 강림처럼 그렇게 나타난 주백자가 단원진이 공동의 암벽을 따라 펼쳐 낸 기문진(奇門陣)을 발견했다.
‘시공간의 분리……! 역천의 술진이로다!’
암벽을 따라 나타난 문양을 해석할 능력은 주백자에게 없었지만, 그에게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안이 있었으니 이를 간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백자는 이미 감숙 지역에서 암약하는 환도종을 살피고 온 터라 단원진이 펼쳐 낸 기문진이 환도종의 것과 닮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백자는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단원진을 반드시 처치해야 함을 인지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만마본원(萬魔本原), 역천마제(逆天魔帝)!”
주백자가 단원진을 보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단원진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드리워졌다.
음양기가 혼돈 상태에서 주백자의 태극혜검에 다시 양단되었지만, 일월신마에게 있어서 이미 분출된 외기(外氣)도 내기(內氣)처럼 다루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일월반전수 음양역장.
서리와 열기가 강력하게 응축하면서 음양의 압력을 형성하고, 이내 빠르게 주백자를 다시 휘감았다. 거대한 압력이 증폭되는 순간, 주백자가 반응하기에 앞서서 일월신마가 양손을 손뼉 치며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비틀었다.
일월혼극마공 역반공멸뢰.
쿠쿠쿠쿠-!
천무경을 상대로 전개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
겹겹이 중첩되는 거대한 압력의 파고가 공중에 떠올랐던 주백자를 그대로 땅에 처박아 버리며 주저앉히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백자를 감싼 은은한 광휘는 여전히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천무경에게 전개했을 때보다 더 강해졌지만, 저자도 역시 뚫고 나오겠지……!’
일월신마는 주백자가 천무경이 보여 준 파괴적인 공력의 방출과는 또 다른 신기를 분명 보여 줄 거라고 기대 반, 걱정 반을 품고 있었다. 거기엔 그의 뒤로 날아오른 단원진의 공격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백자의 운신을 묶어 두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백자의 머리 위로 떠 오른 단원진의 두 손엔 칠흑의 마기가 이미 격렬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침투경(天魔浸透輕).
자연기에 대항한 마경의 침식(浸蝕).
그것은 같은 마공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내뻗는 쌍장을 통해 백여 개의 바늘 같은 마기가 역장을 뚫고 주백자를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콰쾈!
일격에 전신을 꿰뚫어 버릴 듯 내려꽂히는 마기를 보며 그 주인인 단원진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이내 그 웃음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무공에 상극이라고 자부하는 천마신공의 마기가 주백자를 둘러싼 광휘로 인해 왜곡되더니 그 주변으로 꺾여서 땅에 틀어 박혀버린 것이었다. 일월신마의 역반공멸뢰로 펼쳐진 일월역장도 왜곡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극혜검 상청검(上淸劍).
비할 데 없는 존재의 영험(靈驗)함은 사특한 마기의 침투를 거부하니 우주적 진리가 주백자를 비호하여 한 자루 보검(寶劍)을 이룬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검합일(神劍合一)이며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신위였다.
슈캉-!
주백자를 중심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열십자(十)의 검기.
마치 천존의 강림을 목도한 듯 두 눈을 부릅뜬 단원진과 일월신마를 찰나의 순간 덮쳐 버렸다.
‘죽음……!’
반응할 틈도 없었고, 당연히 피할 수도 없었다.
그 광휘의 검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순간에 일월신마는 마치 정화되고 치유되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