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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21화 (121/432)

121화 - 제24장. 역천마제(逆天魔帝) 단원진(段源辰) (3)

구배를 모두 올린 양자성은 조심스럽게 단원진을 올려다보았다. 단원진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몸을 돌리며 손짓했다.

“따라오게.”

“예, 스승님.”

단원진이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고 양자성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난 가 보겠네.”

그런 두 사람을 잠깐 바라보던 일월신마가 말했다. 단원진이 잠깐 멈춰 일월신마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만족할 만큼 얻고 가는 건가?”

“크크크! 자네가 너무 키워놔서 욕심을 부렸다가는 내가 먹힐 지경이라 말이지.”

양자성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사람 손길이 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이만큼 폐쇄적인 공간도 없었다. 희박하나마 어디선가 공기가 통하고 있어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차차 알게 되겠지.’

뭐가 됐든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신교 태상교주의 제자가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자성은 벌써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감정적 희열에 휩싸였다.

“일월교로 돌아갈 건가?”

“글쎄다. 교주의 지시가 있을지도 모르고. 자네도 너무 욕심부리지 말게. 내가 보기에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어.”

“허허허! 염려 마시게.”

단원진이 웃으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4층 통로 끝에 있는 그의 마정동(魔情洞)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일월신마는 잠시 단원진과 양자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권영서와 국, 연을 바라보았다.

‘……응?’

시야의 움직임 속에서 일월신마는 이상한 그림자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쫓아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영감은 여기 어떻게 들어왔나?”

일월신마는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동굴 안이 충분히 울릴 정도로 분명하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단원진과 양자성, 권영서 등은 모두 ‘구주마종 수장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영서 등이 들어온 수중동굴 입구 근처에서 벽에 기대어 선 백발의 풍채 좋은 노인의 모습은 모두 처음 보는 자였다. 그 노인을 알아본 사람은 양자성이 유일했다.

“주인백?”

그 노인은 바로 주백자였다.

단원진, 일월신마, 권영서 등은 그 노인이 이곳에 있어선 안 될 불청객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단원진은 어느새 양자성을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는 노인인가?”

“아, 아…… 그 여정 중에 한 이틀 같은 객실에서 지냈을 뿐, 저 노인네의 신분은 제자도 모릅니다.”

“흐음.”

단원진은 양자성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주백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자성은 이 잠깐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는 기분을 경험하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이 주인백이 맞는가?”

“흘흘! 그 친구에게 그렇게 알려 주긴 했지.”

“거짓 이름을 알려 주었나 보군.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정체를 드러내는 게 어떠신가?”

“이름을 갖지 않는지는 오래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름 대신 주백자라는 도호로 불리고는 있다네.”

주백자는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을 하였으나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양자성을 제외한 모두가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단원진은 대마의 유변을 통해 그와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던 두 인물에 대해 이미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게다가 일월신마는 조강선과 잠깐이나마 직접 맞부딪쳐 보기도 했고, 또 유변 앞에 나타남으로 인해서 그 곁을 호위하는 사마월의 보고도 있었다.

파사검창 조강선의 무공이 반선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그 경지에 올랐음이 분명한 주백자가 다른 곳도 아닌 이 비밀 장소에 나타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곳을 찾기 위해 양자성을 미끼로 삼은 것이란 말인가?”

주백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단원진의 표정은 이미 노기로 점점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양자성의 얼굴은 창백해질 정도로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오해라고 해명하기에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너무나 공교로웠기 때문이었다.

주백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헐헐헐! 미끼는 무슨. 둔한 놈들 꽁무니 따라 몰래 쫓아온 것뿐이지.”

일월신마가 권영서를 돌아보았다.

“자네 이곳에 들어오면서 몰랐는가?”

“분명 살피면서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헤엄치는 걸 어찌 보지 못하겠습니까?”

권영서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급히 저었다.

주백자는 실제로 권영서와 양자성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쫓았는데 호수로 잠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주백자는 반선지경으로서 ‘자연 뒤에 숨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환술이나 잠행술과 같은 인위적인 조작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신선이 내려와 조화를 부린다.’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뭐 어찌 되었든 간에 이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으니 용건이 궁금하군.”

단원진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

“용건이라…… 얘기하기에 앞서서 옆에 있는 싸가지에게 할 얘기가 있는데, 해도 되겠는가?”

단원진은 양자성을 흘낏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와 일월신마 옆에 섰다. 그러자 양자성은 좌불안석이 되어 당황한 눈으로 주백자를 바라보았다.

“내, 내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이오?”

“싸가지야, 아무리 마공에 현혹되었다 한들 사제의 연을 어찌 그리 쉽게 끊을 수 있느냐? 강정학은 천하의 기인인데 그 제자라는 녀석이 어찌 처신이 가벼워? 정신 차리고 돌아간다면 이 노도도 이 일을 불문에 부쳐 주마.”

“나에 대해서 대체 뭘 안다고 지껄이시오?”

“이놈아. 아무리 사파라 할지라도 검림의 위치라면 기본적인 법도 정도는 엄하게 지킬 터인데. 그렇게 인생 막살면 남는 건 후회밖에 없는 법이란다. 강정학이 제 아들만큼 아끼는 제자가 셋째라고 들었는데 헛소문이더냐? 지금이라도 사제의 연을 저버리는 망나니짓을 그만둔다면 이 노도가 네 한 몸 정도는 무탈하게 빼내 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느니라.”

주백자가 양자성을 딱한 표정으로 보며 훈계하였다. 강정학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양자성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으니 그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 나의 스승은 ……오직 태상교주님 한 분뿐이오!”

마치 절규처럼 내뱉는 양자성의 목소리에 단원진은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회심의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주백자는 그 웃음을 전면에서 보고야 말았다.

“아아, 딱한지고!”

주백자는 살아온 세월만큼 사람의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본 단원진의 웃음 속에서 양자성이 이용 대상이라는 의도를 파악하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그의 탄식은 정말로 진실한 것이었다.

주백자는 양자성이 마음을 돌리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을 정말로 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이곳까지 온 중요한 목적이 그에게 있었으니까.

“내 물속에서 들어보니 그대들이 천마신교의 태상교주 단원진과 일월신마로군. 그대들은 나를 아는가?”

“알고 있지.”

단원진의 대답에 주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단원진 자네는 빈도를 알아야 하지. 우리의 공동제자였던 원건이 주화입마하여 마인이 되어 버린 근본적인 이유가 자네의 선친인 단용후에게 있었으니까.”

“그 증오심 때문에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인가?”

“증오심이라. 그런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은 애초에 접어 두었네만, 자네들이 벌이는 일이 세상에 큰 혼돈을 가져올 게 뻔하기에 우화등선할 수 없었느니라. 세상의 어린 중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짊어져야 함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어찌 무책임하게 속세를 그냥 떠날 수 있겠느냐?”

“속세가 아니라 이곳에서도 떠날 생각이 없는 거 같군.”

“빈도는 오랫동안 자네들을 추적해 왔네. 그리고 과연 어디를 도려내야 앞으로 벌어질 혼돈을 막아낼 수 있을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네. 한때는 단지운 교주를 처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영 찝찝하더군. 바로 단원진, 그대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네.”

단원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 몸을 높게 평가해 주다니 기분이 나쁘진 않군.”

주백자는 씨익 웃으며 단원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단원진은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느낌은 이어지는 주백자의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자네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단용후의 핏줄로서 그의 힘과 정신을 모두 이어받았을 텐데. 자네가 그의 혼을 잇고 여기에 그 뜻을 펼쳐 놓았으니 이리 악취가 심한 게 아니겠냐?”

단원진도 주백자의 얼굴을 거울삼아 똑같이 씨익 웃었다. 그러나 정곡을 찔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으니 주백자는 그의 심리마저 훤히 엿보고 있었다.

“영감, 자신 있나 보군. 너무 당당하게 떠들어서 마음에 안 들어.”

복잡한 심경의 단원진과 달리 일월신마는 외부인이 이곳에 멋대로 들어와 거드름을 피워대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내뱉으면서 노골적으로 투기를 뿜어내니 주백자도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무경에게 입은 부상도 모두 털어내면서 그의 무공은 한층 진일보했다. 객관적인 무력이라면 신교 내 서열 2위를 주장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주백자 선배. 예우는 바라지 마시구려.”

일월신마의 태세를 신호로 받았는지 단원진도 온몸으로 투기를 뿜어냈다. 그러면서 매우 사악한 느낌마저 드는 농도 짙은 마기가 함께 피어올랐다.

“물러나자.”

권영서는 즉각 국, 연과 함께 3층 통로 쪽으로 몸을 대피했다. 양자성도 강정학과 염황신마의 대결로 절대고수들의 충돌이 어떤 끔찍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잘 알기에 서둘러 권영서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통로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야 속에서 주백자와 단원진, 일월신마가 충돌했다.

2대1이라는 유리한 구도를 이용해서 막강한 강기공을 쏟아붓기엔 장소가 좋지 않았다. 산이 통째로 주저앉을 리는 없겠지만, 이 공동이 파묻혀 버리는 상황은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단원진과 일월신마는 내력을 자신의 신체에 강화한 채로 박투에 먼저 돌입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상대가 누구든 찢어발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단원진이나 일월신마 모두 스스로 지고의 경지에 올랐다 자부하는 자들이었다.

콰콱!

이리저리 자리를 선회하며 공격들을 피해내던 주백자의 두 손이 불쑥 튀어 나가며 각각 단원진과 일월신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파괴적인 마기도, 접근을 불허하는 역장도 주백자의 손을 거부하지 못했다.

태극권(太極拳).

무슨 무공인지가 중요한가.

어떤 초식인지가 중요한가.

요체를 완전히 깨닫는다면 평이한 초식부터 심오한 오의까지 가벼운 손짓 안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법.

천하제일검문이자 도문무공의 정점, 무당파의 정수를 품은 살아 있는 현신이 바로 주백자였다.

미증유의 기력은 보이지도, 감지되지도 않은 채 마제 단원진과 일월신마라는 두 절대고수의 권공을 마음대로 휘저으니 한쪽 팔을 제압한 것만으로도 온몸을 제압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쾅!

“으음!”

“큭!”

분명 주백자의 머리와 복부를 겨냥해 쳐 낸 두 사람의 장력이 아차 싶은 순간에 서로 맞부딪쳤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주백자는 두 사람을 더 가까이 붙이기 위해 당겨 버리고 동시에 그들 사이에서 두 손바닥을 펼쳐 그들의 명치 앞 옷자락에 대었다.

무당 면장(綿掌).

면장의 정수는 이유극강(以柔克剛)에 있으니 감지하기도 어려운 실낱같은 기력이 그들의 옷자락을 건드렸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조화를 부리듯 정순하고 강대한 내력이 단원진과 일월신마의 복부를 강타했다.

퐈앙!

몸통을 꿰뚫는 듯한 강력한 충격이 터져 나가며 단원진과 일월신마가 동시에 반대 방향의 벽으로 튕겨 나갔다.

콰쾅!

숨어 지켜보던 양자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는 용암공동(鎔巖空洞) 한가운데서 주백자는 양팔을 천천히 휘둘러 태극을 그리니 그의 여유로운 자태는 마공의 화려하고 파괴적인 위력 앞에 받았던 느낌과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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