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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20화 (120/432)

120화 - 제24장. 역천마제(逆天魔帝) 단원진(段源辰) (2)

양자성은 한층 더 내공을 끌어올려 검강을 뽑아내었다. 강철조차 썰어 버릴 예기를 만들어 무자비한 심정으로 일월신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발현된 검광이 일월신마를 집어삼킬 것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퉁! 투퉁!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만약 두 팔에 강기를 두른 것이라면 당연히 들어오는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일월신마는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허공을 쥐고 흔들고 당기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그때마다 양자성의 검격은 검강까지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화된 채 튕겨 나가거나 미증유의 힘에 이끌려 엉뚱한 지점을 베게 되곤 했다.

퍼펑!

품으로 파고드는 권장의 경력을 급히 쳐 내면서 양자성은 다시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번엔 역으로 일월신마가 양손에 음양기를 나눠 보내며 경력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렇게 일어난 기운들이 일제히 양자성을 덮쳤다.

일월혼극마공 일월탐식(日月貪食).

양자성도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급히 검을 역수로 쥐면서 검강을 지면에 박았다. 그러자 강기가 땅에 주입됨과 동시에 그의 바닥이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강기와 분쇄된 바위들이 터져 나갔다.

백령검법 백강염쇄(白罡焰灑).

콰쾅!

굉음과 함께 서로 다른 성질의 기운들이 얽혔다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 폭발 속을 양자성이 뚫고 나가며 일월신마를 향해 검을 찔렀다.

양자성은 공력으로 승부를 볼 수 없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검격으로 전환하여 공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의 검은 일월신마의 두 손이 일으키는 역장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합시다.”

중후한 음성이 공동 내를 진동시킬 정도로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일월신마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양자성의 검격을 피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허억, 헉…….”

양자성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잠깐 일월신마의 조소 어린 표정을 보았다. 목소리로 인해 일월신마가 물러나긴 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미증유의 힘은 긴장을 최고조로 하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만약 적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가장 끔찍한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상황이 정리되는 것 같아 양자성도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창백하다 느껴질 정도의 하얗게 주름진 얼굴이 일렁이는 횃불 아래에서 유독 돋보였는데 눈빛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잿빛 머리카락과 수염과 얼굴의 인상이 마치 강정학을 보는 듯이 벼려진 날카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태상교주님을 뵙습니다.”

권영서가 공손히 예의를 갖추었고 일월신마는 흘끔 보면서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옆으로 슬쩍 물러났다.

단원진.

천마신교 교주 단지운의 부친이자 태상교주직을 맡은 자.

단지운이 신교 내 서열 1위라면 단원진은 서열 내 포함되지 않는 독보적이면서 독자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단지운이 자신을 ‘천마’라 지칭한다면 단원진은 신교 내에서 ‘마제(摩帝)’라 호칭하는 자였다.

단지운의 강함은 너무나 명확하기에 구주마종 위에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다면 단원진은 오히려 미지수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그래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였다.

“명상은 끝났나?”

“자네 때문에 깨지 않았는가?”

단원진의 반문에 일월신마가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자네가 찍은 저놈 실력이 쓸만한지 궁금해서야 말이지.”

단원진은 피식 웃으면서 일월신마를 지나쳐 양자성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양자성은 그가 일월신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거인임을 깨달았다.

신장이야 그와 비슷했지만, 그 존재감 자체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양자성이라고 했던가?”

“그, 그렇소이다.”

“긴장할 것 없네. 노부는 천마신교의 태상교주 단원진이라고 하네.”

탁기가 섞여 있는 중후한 음성에 양자성은 절로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스승님에게서도 받지 못한 위압감이…….’

강정학은 양자성에게 언제나 인자했고 또 자유롭게 풀어 주었지만, 검법을 수련함에서는 양자성으로 하여금 칼날 위를 걷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만큼 추상같은 위엄이 있었다. 이는 반대로 절대자들을 마주 보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내성을 갖게 된 원인이기도 하였는데 단원진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천하오절 가운데 수좌를 다툰다는 백령신검 강정학의 제자다운 검법이었네. 훌륭한 무공이었어.”

“……고맙소이다.”

단원진이 피식 웃으며 일월신마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래서 자네는 직접 시험해 보니 어떤가?”

“클클클! 뭐 나이를 생각한다면 최상이네. 가진 내공도 높고, 검법에 대한 이해도 충분해 보이고, 싹수도 있어 보이고. 물론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야.”

단원진은 일월신마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하긴 자네로선 그럴 수밖에 없겠군.”

“용이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는 어떤 시대건 나타나기 마련이지. 그러나 상식도, 상상도 깨 버리는 잠재력을 가진 자는 과연 몇 세대를 걸쳐야 나올 수 있을지.”

“그걸 자네가 죽이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크크……, 그렇다고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닐세. 크하하하!”

일월신마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단원진과 일월신마는 나이가 단원진이 5세가 어렸으나 친우(親友)로서 편하게 지내는 관계였다. 그들의 인연은 그들 스승과 부친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 천마신교의 핵심 인사들 가운데 이들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없었다.

유일하게 단지운 앞에서 단원진을 가리켜 ‘단 태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일월신마였다.

일월신마가 설명하는 자는 바로 진도건이었다.

일월신마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진도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뒤로 그는 젊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자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단원진의 명에 의해서 권영서가 직접 데려온 양자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한편 일월신마는 진도건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진도건을 혈마로 만든 만큼 사망했을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폭주의 후유증으로 이어지는 반동은 생명력을 모두 소진할 지경에 이를 것이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천무경의 손에 죽었을 가능성도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무경과 혈마가 된 진도건이 격렬하게 맞붙었고, 지난 3년간 천무경은 멀쩡한 모습으로 창천맹을 설립하여 무림을 정비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진도건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으니 생존의 가능성을 낮게 점칠 수밖에 없었다.

단원진으로서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떤 인물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일월신마가 그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굳이 그런 특별함까지는 필요 없지.’

궁금할 정도는 되었지만, 미련을 갖지 않는 이유는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원진이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니 양자성은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권 각주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면 힘을 원해서겠지?”

“그렇소.”

“강정학의 백령검법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가?”

“스승님과 염황신마가 대결하는 것을 보았소. 그 싸움은 내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소. 상식을 뛰어넘는 힘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것을 갖고 싶은 것은 무인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

공교롭게도 일월신마가 진도건을 떠올렸듯 양자성도 잠시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힘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그것을 촉발한 것은 진도건에게 비무제에서 패배한 일이었다. 그때의 대결이 승리로 이어졌더라면, 어쩌면 사막을 넘어 이 먼 외지까지 고생하며 올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염황신마라, 강한 인상을 받을만하군. 그의 염룡마공은 흑풍신마의 흑풍명천마공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무공이니까. 그래서 그의 마공을 배우고 싶은가?”

“그것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소만…….”

“자네는 내 마공을 배우게 될 걸세. 그리고 자네 정도라면 수개월 내에 충분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야.”

양자성은 깜짝 놀랐다.

‘선관자 권영서가 내게 말한 태상교주를 만날 것이라는 얘기가 이런 뜻이었나?’

토로번에서 박격달봉 아래 이곳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양자성은 천마신교의 조직 구조에 대해 대략 설명을 들은 내용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수장은 천마 단지운이며, 그 아래에는 주인이 없는 혈마종을 포함한 구주마종이 신교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각 종파를 이끌고 있었다. 구주마종이 각각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단지운은 큰 세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며 기실 그 휘하도 각 마종에서 파견된 소수만이 그를 호위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양자성은 선관자가 알려 준 이런 조직 구조에 따라서 구주마종 중에 한 종파에 소속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헌데 단지운의 부친이면서 스승이기도 한 단원진의 마공을 배운다는 건 달리 말하면 현재 천마신교 교주와 같은 항렬이 되는 셈이기도 한 것이었다.

“다, 당신의 마공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하였소?”

“그렇네. 천마신교의 태상교주로서 내가 할 일은 내 부친이신 마도종사이자 천마신교의 조사(祖師)이기도 한 단용후의 업을 이어 새로운 마도를 개발하는 것이네. 그러니 내 아들 외에도 제자를 두어 내 마공의 계보를 잇게 하여 소실될 염려를 줄일 필요가 있지.”

양자성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그간의 여정 속 고행이 오늘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직전까지 느꼈던 긴장감은 사라진 채 흥분감이 조금씩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져가고 있었다.

단원진은 손으로 가만히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보다 진중한 눈빛으로 양자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자네도 내게 이제 경어를 쓰면서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이 어떠한가?”

단원진의 근엄한 목소리에 양자성은 잠시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곧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하고 결정했다.

“제자 양자성, 천마신교의 태상교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감히 예를 올립니다.”

결심은 곧바로 제자가 스승을 모시기 위한 구배지례(九拜之禮)로 이어졌다. 침착하면서도 성급함이 느껴지는 모순된 절을 이어가는 걸 내려다보며 단원진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품었다.

그 모습을 일월신마는 혀를 끌끌 차며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도 단원진과 가까웠으나 그가 왜 제자를 또 들이는지는 잘 몰랐다.

일월신마는 그의 생애 통틀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몇 명 없다고 생각했다.

단원진과 단지운 부자가 그러했고, 화산에서 다툰 천무경도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었다. 또 진도건을 구하기 위해 나타났었던 조강선도 어렴풋이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했었으니 따진다면 이들 넷이 전부였다.

단씨 부자가 누군가의 손에 죽는다는 상황을 감히 가정해 볼 수 없을 정도였기에 그들 마공이 소실될 염려를 한다는 말 자체는 사실 일월신마의 귀에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단원진에게 어쩌면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다만 일월신마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한 번도 단원진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의문이 드는 것과 그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안위와 상관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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