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18화 (118/432)

118화 - 제23장. 천마신교(天魔神敎)로의 여정 (6)

* * * *

출발은 하루 뒤에 이뤄졌다.

교하성주는 선관자와 양자성을 위하여 훈련된 말과 여정에 필요한 물자를 준비해 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낙타를 타고 오기에 적합한 사막이었다면 앞으로 지나야 할 곳은 천산산맥의 만년설로부터 흘러내린 수많은 지류와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열 명의 호위가 붙었다.

대불사의 승려도 있었고 교하성의 병사도 있었는데 양자성이 보기에 모두 상당한 무공을 갖추고 있었다.

‘냄새가 난다더니.’

문득 주인백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뒤를 따라 둘러보았을 때는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실내에 머무르고 있어서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12명의 행렬은 교하토성 가장 깊은 곳의 병영까지 지나 그곳에 있는 북문(北門)을 통해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높은 절벽을 성벽 삼아 웅장하게 서 있는 교하토성의 모습을 보며 새삼 그 위용에 다시 혀를 내둘렀다. 토성 하늘 위로 거대한 매가 날개를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사막을 통과하면서 종종 보긴 했지만, 높은 고도를 날고 있음에도 눈에 확연히 뜨일 정도로 큰 매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선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것이오?”

“일단 강을 따라 이동해야지.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서 북쪽으로 비스듬히 이동하다 보면 산맥의 허리를 관통할 수 있는 길이 협로(峽路)가 나온다네. 거길 지나면 천산산맥의 동쪽 지맥(支脈)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구경할 수 있다네. 박격달봉(博格達峰), 하늘을 붙잡고 때릴 수 있을 정도로 높게 솟은 봉우리라는 뜻이지.”

“그곳이 목적지요?”

“일단 그 근처라고 해 두지.”

지나온 사막이 무색하게 그들이 가는 길엔 작은 지류가 무수히 많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초원도 모래보다 수초(水草)나 작은 초목들이 자라는 광경을 자주 마주했다.

지면을 따라 생기가 흐르니 뙤약볕이 여전히 강하게 내리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제법 시원하게 불었다. 하천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어서 식량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늘도 충분하니 이전과 다르게 여정에 고됨은 없었다.

이틀 뒤에는 선관자의 얘기처럼 협로에 이르렀다.

산맥을 관통하는 하천은 거친 물길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는데 그 강가를 따라 움직여야 했다. 가는 행보의 중간에 비가 쏟아지면서 하천의 물이 크게 불기도 했었지만, 사막의 불지옥보다는 한결 편한 여정이었다.

그렇게 또 이틀쯤 흘러 산맥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무렵이 되자 경계심은 많이 허물어지고 호위들과도 제법 말을 트고 지내면서 이 여정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들을 따라나서는가?’

마공이라는 새로운 힘.

천마신교라는 새로운 조직.

낯선 것을 향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고, 동행자들의 친절함은 어느새 그의 경계심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머릿속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순순히 어울리고 발을 맞추어 가고 있는 건 이 여정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웃음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양자성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천마신교를 자신의 소속처럼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잠깐 경계심을 다시 가졌을 때는 산맥의 협로를 거의 다 빠져나갔을 무렵이었다.

늦은 밤.

협로를 따라 흐르던 강은 출구 즈음에서 평야로 흘러가는 십여 갈래의 물줄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길들이 넓게 펼쳐져 가는 곳 사이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보였다.

합수진(合水鎭)이라 부르는 곳이었는데 회골족 소가구(小家口)들이 비옥한 초원에 밭을 일궈 농작물을 재배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양자성이 경계심을 품은 곳은 이들 사이사이로 병장기를 패용한 채 순찰하는 자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선 마공을 익힌 자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끈적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을 촌(村)이라 쓰지 않고 진영을 뜻하는 진(鎭)이란 글자를 쓰는 이유를 할 법한 대목이었다.

합수진에 이르러서 그들은 여관을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호위로서 따라왔던 10명은 모두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 뒤로 선관자와 양자성 단 두 사람만이 북쪽으로 다시 여정을 시작하였다.

합수진에 들어설 무렵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해가 떠오른 환한 아침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하늘을 붙잡을 듯, 때릴 수 있을 듯 치솟아 만년설의 백의를 입은 거대한 봉우리.

앞을 가로막은 산자락들도 꽤 높았지만, 그것으로 차마 가리지 못할 정도로 그 뒤로 높이 솟은 새하얀 봉우리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산산맥의 박격달봉을 지표로 삼고, 작은 도랑을 길벗으로 삼아 두 사람은 북쪽 맞은 편의 산자락으로 다시 나아갔다.

부지런히 도랑을 따라 나아가니 산자락이 끊어져 평지가 이어진 부분이 나타났다. 계속해서 말을 몰아 그곳을 지나가자 거대한 천산산맥의 위용이 비로소 눈앞에 드러났다. 그리고 함께 달려온 작은 도랑은 점점 강폭을 넓히니 흑구하(黑沟河)로 발전하여 박격달봉을 향하고 있었다.

강폭이 크게 확장되었던 흑구하는 천산산맥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강폭을 좁혀갔다. 잔잔하게 흐르던 물살도 점점 더 거칠어지면서 마침내 경사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세찬 물살 소리가 쉬지 않고 고막을 간질였다.

산맥에 진입한 시점에서 흑구하는 점점 지류 수준으로 작아졌다. 달리 말하면 경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상류로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다행히 흑구하로 이어지는 이 상류 물길의 좌우로는 지대가 거칠지 않아 말을 타고 가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말을 몰아 산 깊숙한 곳까지 나아갔다.

바람이 점점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협곡을 따라 달리다 보니 산봉우리들 사이사이로 휘몰아치는 바람의 기세가 대단했다. 초목이 무성한 산속에서 점점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들이 가까워짐을 느끼면서 양자성도 서서히 추위를 느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말에서 내린 것은 지류가 크게 둘로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러서였다.

그곳엔 목조 가옥 한 채가 있었고 한 건장한 체격의 털북숭이 사내가 두껍게 옷을 껴입은 채 사냥한 사슴의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투기장에서 죽인 털북숭이 거한이 생각나긴 했지만, 그자보다는 좀 더 외모가 앳되고 순둥순둥한 느낌이 드는 편이었다. 저만한 무성한 수염 속에서 그런 인상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털북숭이 사내는 손질을 멈추고 일어서서 선관자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각주(閣主)님.”

“사(桫)아야, 오랜만이구나.”

양자성의 눈빛이 빛났다.

사라고 불린 자가 선관자라고 호칭하지 않고 각주라고 호칭했기 때문이었다.

“각주라는 지위도 있소이까?”

양자성의 물음에 사와 선관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선관자는 다시 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식사 준비 좀 해다오.”

“예, 각주님.”

선관자는 근처 피워진 모닥불 쪽을 향해 손으로 가리키면서 양자성을 돌아보았다.

“앉으시게. 얘기해 주지.”

모닥불 가까이 두꺼운 통나무가 누워있었으니 두 사람이 그 위에 앉아 불을 쬈다.

“나는 특별한 인재를 찾는 선관자의 직을 맡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신교 내에서 교주와 구주마종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무영각을 이끌고 있다네. 내 이름은 권영서(權詠緖), 이젠 자네도 선관자라 부르지 말고 편하게 권노(權老)라고 부르시게.”

“권 각주라 부르는 게 예의에 맞지 않겠소?”

“껄껄껄! 나는 있는 듯 없이 지내는 사람이라네. 내 아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각주로서 높여서 부를 필요가 없지.”

“흐음, 알겠소.”

사는 모닥불에 바로 사슴고기를 나뭇가지에 꽂아 굽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노릇노릇하게 구워졌고 세 사람 모두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권영서와 양자성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떠났다.

여기서부터는 산비탈이 점점 심해지고 지형도 거칠어지기에 말은 오두막에 맡겨 두었다. 그리고 여태껏 비축해 둔 체력을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경공을 펼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양자성은 내심 매우 놀라고 있었다.

권영서의 무공을 얕잡아 보고 있었는데 경공에서는 마치 그에게 보조를 맞춰 주듯이 여유롭게 앞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속에 더 깊이 들어가면서 점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름이 별로 없음에도 만년설에 덮인 봉우리들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함에 따라 바람에 흩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눈바람을 맞으면서 얼마간 달리자 그들 앞으로 거대한 호수와 앞을 가로막는 절벽, 그 위로 보이는 눈 덮인 봉우리들을 마주하였다.

권영서는 호수 앞에 서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양자성을 힐끗 돌아보면서 손짓하였다.

“이리 가까이 오시게.”

“하아, 하아…….”

양자성으로서는 이런 환경에서 달려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가 공기도 많이 희박해져 있어서 호흡이 제법 거칠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권영서는 경공 실력만큼이나 이런 환경에도 잘 적응이 되어 있었는지 호흡이 매우 안정적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오?”

“우리는 이 호수로 들어갈 걸세.”

“호수는 왜……?”

“헤엄은 칠 수 있는가?”

“할 수는 있소.”

“그럼 들어가지.”

첨벙!

양자성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권영서가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씨!”

양자성은 잠깐 망설였지만, 곧 뒤를 따라서 호수로 몸을 던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옷이 빠르게 젖으면서 차가운 수온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어왔다. 열심히 손과 다리를 휘젓는 게 체온을 유지할 길이었기에 서둘러 권영서의 뒤를 쫓아서 잠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권영서의 뒤를 금방 쫓을 수 있었는데 그가 손에 아주 밝은 야광주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영서의 인도로 양자성은 호수 바닥까지 깊이 들어갔고 그곳에 작은 수중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곧 그곳을 통해 굽이친 길을 헤엄치면서 올라가고 나니 마침내 한 동굴 속의 수면 위로 떠 오를 수 있었다.

“푸하!”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내며 지면 위로 올라온 양자성은 호흡을 고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동굴 속에 천장과 바닥에 종유석이 솟아 있었고 작은 물길이 지면을 타고 갈라져 흐르고 있어서 걸음마다 잠깐씩 첨벙대기도 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내부 동굴 벽을 따라 횃불이 설치되어 불을 밝히고 있었으니 사람 손길이 닿아 있는 동굴이라는 점이었다.

“가지.”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양자성은 권영서의 부름에 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두 사람은 횃불에 의지하여 동굴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동굴 길 위에서 양자성은 점점 음습한 바람이 안을 휘도는 걸 느꼈다. 그에 따라 미처 말리지 못하여 젖은 의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꺼림칙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불길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네.”

권영서의 목소리야 양자성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감이 점점 올라왔다. 그들의 앞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권영서의 어깨너머로 그들이 걸어온 비좁은 동굴길이 끝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양자성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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