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116화 (116/432)

116화 - 제23장. 천마신교(天魔神敎)로의 여정 (4)

양자성의 시선에 주백자는 이상한 노인네였다.

그의 느낌에 분명 특별한 정체가 있을 거 같았는데, 하는 행동은 영락없이 꼰대 기질이 다분한 노인네처럼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를 상대할 때만 그런 것이긴 했다.

날이 밝으면 주백자는 성내를 산책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음식점에서 밥을 사 먹고는 공방에서 만드는 농기구나 병장기를 구경하기도 했다. 중앙대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전날 보고 왔던 관청과 투기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양자성은 주백자를 쫓아다닌 덕분에 그 뒤로 더 깊이 들어갔을 때, 거대한 사찰(寺刹)도 볼 수 있었다.

흙벽돌을 쌓아 외벽을 올려 관청보다 더 큰 규모로 지어진 이 사찰의 중문(中門) 위에는 대불사(大佛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주백자가 지나가는 승려들을 향해 합장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니 양자성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백자는 대불사 경내 한가운데 서서 바로 앞에 불상(佛像)을 모시는 금당(金堂)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근처로 다가서던 양자성은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악취가 꽤 진동하는군. 그렇지 않으냐?”

양자성은 주백자의 물음이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깨달았다.

“크흠! 무슨 악취를 얘기하는 거요.”

주백자는 양자성을 신경 쓰지 않고 경내를 돌면서 금당과 불탑 등을 둘러보았다. 마치 관광을 온 듯한 행보에 양자성도 조용히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그들은 대불사를 빠져나왔다.

“넌 왜 졸졸 따라오느냐?”

“영감 정체가 궁금해서 그렇소이다.”

“주인백이 내 정체인데 뭘 또 알려 주랴?”

“흐음!”

“쯧쯧.”

주백자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양자성을 흘겨보고는 대불사의 외벽을 돌아 더 뒤편으로 향했다. 양자성도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조금 벌린 채 주백자의 뒤를 쫓아다녔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땅을 파내면서 세운 토옥들에 가려져 그늘이 많았다.

많은 민가가 있었고 중간중간마다 소규모의 병영(兵營)이 있어 병사들이 들락날락했다. 불교의 성지임을 표시하는 탑림(塔林)도 있었고 대불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작은 사찰이 두 개나 더 보였다.

‘회회교 신도도 있는 것 같지만, 이 성은 불교 숭배가 굉장하군.’

졸지에 관광하게 된 상황에 양자성은 턱을 긁적였다. 그러나 사찰 터를 지나가자 두 사람 모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으니 울타리와 함께 군사들의 삼엄한 경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군사들인가? 조금 다르다. ……무인들이구나.’

이곳에서 보았던 평범한 무사들과는 다르게 내공을 익혀 생긴 기백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곳이 천마신교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백자는 휙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쓰읍, 이 냄새가 아닌데…….”

입맛을 다시며 하는 말치고는 자꾸 냄새를 언급하는 주백자의 중얼거림이 이상하게 들렸다.

주백자를 뒤따라가던 양자성은 졸지에 사휴관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때는 다시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으니 양자성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장으로 나섰다. 그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해가 져서 다시 사휴관으로 돌아갔을 때, 주백자는 숙실에 없었다.

“이 노인네가…….”

양자성은 어차피 주백자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침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차분히 머릿속을 비우며 눈을 붙였다.

주백자는 늦은 새벽에야 돌아왔는데 그의 기척에 깨어난 양자성이 침대에 앉는 그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뭘 그리 돌아다니시오.”

“네가 쫓아와서 불편하니깐 혼자 또 나갔다가 왔지 이놈아.”

“그래서 원하는 건 찾으셨소?”

“못 찾았다.”

“뭘 찾는지 알려 줄 생각은 없으시오?”

“냄새도 못 맡는 놈에게 알려 줄 건 없다, 싸가지 없는 놈아.”

“쳇.”

양자성은 더 묻길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주백자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양자성이 잠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침상 천장에 닿고 있었지만, 심안은 양자성과 그에게서 흐르는 기혈의 흐름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었다.

‘네놈을 쫓아다니는 일만 남았느니라, 싸가지 없는 것아.’

와아아아!

수백 명이 함성이 투기장 안에 가득 울리며 심장을 압박했다. 긴장감 같은 건 없었지만, 비무제 때가 떠오르며 새삼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양자성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주백자는 이미 퇴실을 신청한 상황이었다. 그는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의 목적대로 곧장 관청을 찾아 투기장에 참가를 신청하였다.

투기장 참가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목검 등의 나무로 제작한 무기로 싸우는 오전의 난투전(亂鬪戰)과 실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검투전(劍鬪戰)이 있었다. 난투전은 이 토성을 지키기 위한 병사들의 실력 양성을 위한 판이기 때문에 외지인은 참가할 수 없었기에 양자성은 검투전에 신청하였다.

양자성은 오전 동안은 관중석에 앉아 난투전을 구경하였다.

50여 명의 병사가 방패와 목검 등을 들고 어지러이 싸우는데 생각보다 볼만했다. 무공의 수준이 높다고 할 만한 자는 없었지만, 훈련받은 움직임의 태가 나는 데다가 조를 이루어 싸우다가 결국 최종 1인의 승자만 남게 되는 과정이 꽤 재밌었다.

정오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양자성도 드디어 투기장의 대기석에 들어설 수 있었다.

검투전은 총 23명의 참가자가 무작위로 뽑은 순서에 따라 출전하여 최후의 승자를 가르는 방식이었다.

양자성의 순서는 네 번째로 불리한 위치였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기석에 차례대로 줄지어 앉아 있으면서 차분하게 검을 품에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기다렸다.

“곱상하게 생긴 것이 어디 한 번이라도 버티겠느냐?”

양자성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얘기하는 거라는 걸 느꼈다. 그의 오른쪽에는 곰 같은 덩치와 근육질을 가진 자가 큰 칼을 땅에 퉁퉁 두드리며 양자성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생사결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금방 한 사람이 죽어 나가면서 세 번째 차례의 사내가 불려 나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다음 순서가 호명되었다.

“네 번째 나와.”

양자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마자 우람한 손아귀가 그의 팔을 잡아챘다. 털북숭이 얼굴이 그를 향해 살기등등한 웃음을 지으며 노려보고 있었는데 양자성은 피식 웃고는 손을 뿌리쳤다.

털복숭이가 얼굴을 붉히는 걸 무시하며 양자성은 투기장으로 나섰다.

투기장 중앙엔 1번을 뽑은 사내가 서 있었다. 이미 근처로 두 구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내는 장발에 잘 단련된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채로 쌍검을 번쩍 들었다.

우와와와!

연속으로 승리한 덕택에 관중들의 함성을 한몸에 받는 모양이었다.

양자성은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기가 무섭게 1번이 달려들면서 쌍검을 휘둘렀다.

츄악!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검을 휘두르니 허공에 피가 흩뿌려졌다. 번쩍 든 검을 아래로 다시 휘두르니 검신에 묻은 핏물이 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허무하게 쓰러지는 1번의 모습을 보며 관중들은 놀라 침묵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양자성은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투기장 중앙까지 걸어갔다.

끼기긱!

“흐아아압!”

다시 열리는 투기장의 철문으로 털북숭이 남자가 거대한 칼을 번쩍 들며 기합을 질렀다.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관중들도 반응했다.

우와와와!

거대한 괴력을 발휘할 법한 체격과 근육, 거기에 우렁찬 기합 소리는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쿵쿵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성큼성큼 달려오는 털북숭이의 흉악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양자성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챙!

광풍을 일으키며 날아드는 칼이 양자성의 검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단숨에 양단을 낼 줄 알았던 털북숭이는 깜짝 놀랐다. 버럭 화를 내며 기세 좋게 연속으로 칼을 휘둘렀지만, 모두 양자성의 검에 막힐 뿐이었다.

“한심하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을 슬쩍 몸을 틀어 피해 내고는 그대로 우람한 팔뚝을 밟고 왼손으로 곱슬머리 머리카락을 잡아채었다. 그리고는 검을 그대로 목에 꽂아 넣었다가 베어 버렸다.

“끄윽……!”

쿵!

신음과 함께 털북숭이의 거구가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관중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한눈에 보이기에도 압도적인 체구를 자랑하던 털북숭이가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다.

양자성은 그렇게 너무 쉽게 두 사람을 더 쓰러뜨렸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스윽 관중석을 둘러보던 그는 성주석(城主席)에 앉은 부 성주와 그 옆의 남색 불꽃을 수놓은 사제복(司祭服)을 입은 자를 발견했다. 사제는 양자성을 흘겨보며 부 성주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었는데 곧 그의 손짓이 이어졌다.

뿌우우-!

뿔피리 소리. 요란하게 열리는 투기장으로 갑자기 13명의 검투전 참가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쉽게 끝나니까 난전을 하라는 건가?’

모두 투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면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양자성은 곧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들은 서로 잠깐 눈길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모두 양자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제의 속삭임과 성주의 손짓을 기억하며 의도된 상황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포위하는 13명의 무사를 돌아보았다.

양자성은 이들이 노골적으로 자신만 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빠르게 적들의 기백을 읽으며 전력을 파악했는데 다섯 명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 상당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의 기백이 상당하고 몇 명은 은연중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애매하군.”

아무리 자신이 직전 상대들을 손쉽게 쓰러뜨렸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쉽게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이는 즉, 자신의 행보가 천마신교에게 모두 감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감시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관자에게 시험을 받는 것인가?’

알 바 없다.

그저 하찮은 목숨들, 이어갈 가치가 없음을 저승에서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우와와와!

뜻밖의 구도가 다시 한번 관중들의 흥분을 들끓게 하였다.

양자성과 13인의 대결이 펼쳐지는 투기장의 하늘 위에는 사람보다 더 큰 매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선회하고 있었다. 워낙 높이 날고 있어서 이 매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놈 참…….”

그런 매의 등 위에 엎드린 채 투기장을 내려다보는 주백자의 목소리엔 한숨이 가득 섞여 있었다.

바람처럼 지나가 버릴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중원 무림의 미래 한 축을 짊어져야 할 후기지수가 가려는 길 끝에 불구덩이만 가득한 낭떠러지라는 것이 훤히 보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자성의 실력은 뛰어났다. 13인들 가운데 무공이 뛰어난 자도 있고 위협적인 마공을 구사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강정학의 총애를 받으며 그의 백령검법을 이은 양자성의 검법은 사실상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양 떼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검을 휘두르니 오히려 한 사람이 13명을 핍박하는 그림처럼 보였다. 게다가 손속이 잔인하기도 하니 일격에 끝내는 법 없이 계속해서 많은 피가 바닥에 더 뿌려지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다수의 자신감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무너져 내리니 어느덧 도망치려는 자들이 생겼다. 귀신같은 양자성의 검법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양자성은 친절하게 다가가 웃으며 목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쓰러졌다.

모두 죽이진 않았다. 그러나 전투 불능이 된 자들은 아마 주최 측에서 직접 죽음을 선사할 것이다.

마지막 직립한 사내의 머리가 목을 지나가는 검광에 의해 하늘로 튀어 올랐을 때, 교하성주 부양과 선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그것은 관중을 덮은 적막을 깨었으니 그들을 따라 모두가 따라서 손뼉치기 시작했다.

전율의 함성이 없는 묘한 박수갈채만이 투기장 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대응(大鷹)의 등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백자의 눈빛에 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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