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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14화 (114/432)

114화 - 제23장. 천마신교(天魔神敎)로의 여정 (2)

* * * *

아침이 되면서 후대선은 양자성과 작별을 고하고 화염산으로 올랐다. 출발하기 전에 그는 재능 있는 고수들과 강자를 대우해 주는 천마신교의 방침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화염을 부리는 무공에 관심이 있지 않으냐면서 현재 천마신교의 마공은 부작용까지 제어할 수 있는 환단을 개발하였다며 교하토성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오전임에도 작열하는 태양과 그 표면 열기로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듯한 화염산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분명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합장을 한 채 천천히 산비탈을 걸어 올라가는 후대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양자성은 그가 알려 준 방향으로 낙타를 몰았다.

화염산에서 토로번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이 없이 평평한 길이었기 때문에 꾸준한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 있었고 길 자체도 방향을 잡고 직진하면 되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또 토로번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여정을 뒤따라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침에 출발한 양자성은 신시(申時)쯤 되어서 토로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사막 속의 천국이군.”

오아시스라고 하는 녹주가 드넓은 평원의 곳곳에 있고 강도 흐르고 있어서 그동안 지나온 길이 사막이라면 이곳은 확실히 많은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 붉은 점토를 이용해 만든 가옥(家屋)들도 있었고 파오도 보였다. 한족이나 다른 민족도 보였지만, 대다수가 회골족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포도밭이 특히 이곳에 정말 많았으며 상심자(桑椹子)라고 하는 뽕나무 열매들도 재배하는데 손가락만 한 포도처럼 생겨서 따먹어 보면 역시 새콤달콤한 맛이 있었다.

시야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그런 녹지들을 지나가면서 계속 서쪽으로 향하니 양자성 앞에 나타난 것은 두 줄기 교차하는 강과 그 너머에 세워진 거대한 토성이었다.

교하토성.

이곳 말로는 야르호토라고 부르기도 하는 옛 차사국(車師國)이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있던 자리였다. 이후 고창국(高昌國)을 거쳐 당나라(唐國)에서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설치하여 당시 서주(西州)로 분류되었던 이곳 토로번 지역의 관리하며 교역을 도맡기도 했었다.

교차하는 강과 강가를 따라 자연 조성된 백양(白楊)나무 수림과 포도밭들이 있었다. 그리고 높게 솟은 토산 절벽에 흙을 파 내려가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성벽과 마을을 만든 곳이었다. 강가로는 병사들이 말들을 끌고 나와 물을 먹이고 있었고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토성의 남문(南門)에서 사람들이 오가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했다.

양자성은 배를 얻어타고 강을 건너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자연스레 회골족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족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다. 당나라 때 넘어온 군사들이 본토와의 연락이 끊기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한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중요시한 자들도 있었고 회골족과 한족이 결혼하여 낳은 듯한 혼혈처럼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중요한 건 이렇게 문화가 섞이다 보니까 익숙한 한어(漢語)가 쉽게 귀에 들려오고 있어 반갑기도 했다.

남문을 통해 진입하면서 양자성은 토성의 위엄에 감탄했다.

“천혜의 요새라더니. 후 형의 말이 맞군.”

높게 솟은 절벽의 방패와 그 위에 세워진 요망대(了望臺)에선 병사들이 토성 내외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느끼기에도 평범한 병사가 아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제법 많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도 오래간만에 긴장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절벽 위의 흙을 파내 세운 도시이자 토성이었기 때문에 지하와 지상이 구분되기도 했다. 지하에는 주로 하층민들이 사는 것처럼 보였고, 지상은 다소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과 무사, 병사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중원에서 보았던 다양한 일거리들이 업종별로 구획을 따라 배치되어 물자를 생산하고 있었다. 땅을 깊게 파 지하수를 끌어올린 우물도 있었고 지하의 냉기를 이용해 식자재를 보관할 창고도 갖추고 있었으니 외부의 침략에도 충분히 버티며 농성할 조건이 갖춰진 곳이었다.

생소한 주변의 환경에 자꾸 시선을 뺏기고 있음을 깨달은 양자성은 자신의 목적의식을 다시금 되새겼다.

“투기장이 어디요?”

양자성은 주변을 살피다가 한어를 쓰는 상인을 발견하고 다가가 물어보았다.

상인은 양자성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다가 허리춤의 검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출전하시게? 칼 꽤나 쓰나 보오?”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오.”

“흘흘! 중심지로 쭉 들어가시오. 이 성은 길쭉한 낙엽처럼 생겼으니 이 길 따라 계속 들어가면 되오. 그러면 관청이 있고 그 뒤에 투기장이 있소.”

“관청에서 운영하는 것이오?”

“그런 셈이긴 한데 정확히는 신교에서 운영한다고 볼 수 있소이다. 천마를 모시는 신교 말이오. 들어본 적 있소?”

“아아, 그렇소.”

“관청이야 그저 분쟁을 재판으로 풀어주는 곳이지 사실상 이곳 치안은 신교에서 제공하는 거나 마찬가지요. 우리야 공짜로 보호해 주고 마적들도 물리쳐 주니 꽤 고마운 존재들이오. 투기장의 유희도 구경할 만하고.”

“고맙소.”

“참고로 내일모레 경기가 열릴 예정이라오. 지금 가 봐야 투기장 시설 정도나 구경할 수 있을 거요. 중간 길목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여관들이 있으니 방부터 잡으시는 게 좋을 것이오.”

“친절하시구려.”

“경기가 열리면 보러 가리다. 흘흘!”

양자성은 목례로 답을 대신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잡기들을 정리하고 있던 상인의 앞으로 창을 든 병사 하나가 멈춰 섰다.

“투기장?”

“그렇습니다.”

“참가할 것 같나?”

상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그의 시선은 군중들 사이를 걸어가는 양자성의 뒷모습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병사는 관청으로 곧장 걸어갔다. 관청 안에는 문관 무관들이 고루 배치되어 각자의 사무를 보고 있었다. 일개 병사일 뿐이었지만,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에 건 명패에 거꾸로 새겨진 천(天)이라는 글자가 그의 신분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찾았는가?”

병사가 성주실에 곧장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교하성주 부양(夫壤)이 물어보았다.

“그렇습니다. 예측했던 대로인 것 같습니다.”

“투기장에 참가한다?”

“그렇습니다. 참가자들을 좀 조정을 하라 할까요?”

“그럴 필요 없네. 태상교주께서 눈여겨보는 자이니 어느 정도의 몸인지는 봐둘 필요가 있으니까. 수준 이하라면 뼈를 묻을 테고, 소문대로라면 선관자들이 알아서 데려갈 걸세. 그분들이 데려가면 우린 먹고 마시면서 놀면 끝나는 일이야.”

“알겠습니다.”

병사가 인사를 하고 물러나자 부양은 수염을 쓸어내리다가 머리에 쓴 관모를 벗었다. 그리고 손수건을 접어 민둥머리에 찬 땀을 쓱 닦으면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궁금하군. 태상교주께서 저자를 데리고 무엇을 하실지.’

양자성은 상인의 조언에 따라 투기장을 살피러 가기 전에 먼저 중간에 왼쪽 지하로 가는 길로 내려가 여관을 찾았다. 사휴관(沙休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곳이었는데 지하와 지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절벽을 파내고 그 안에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구조물들이 설치된 곳이었다.

그런 희한한 구조에 양자성은 다소 불안한 눈으로 내부를 훑어보았지만, 이미 수백 년을 버텨 온 놀라운 구조의 고대 토목건축법이었다.

입구 가까운 곳에는 점소이처럼 보이는 자가 전대(錢臺) 뒤에 앉아서 수염을 다듬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양자성이 가까이 오고 나서야 위로 흘끔 올려다보았다.

“방 필요하시오?”

“그렇소.”

점소이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양자성은 후대선에게 받은 이쪽 지역의 돈주머니를 꺼내 엽전 두 개를 꺼내 주었다.

“여긴 2인 1실이오. 아침저녁으로 씻을 물과 수건만 제공한다오. 2층 3호로 가시오.”

“알겠소.”

점소이는 냉큼 엽전을 챙기면서 다시 수염을 다듬는 일에 열중했다. 양자성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열쇠는 안 주시오?”

“거기가 유일하게 빈방인데 노인네가 먼저 쓰고 있다오. 지금도 있을 테니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될 것이오.”

양자성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점소이의 태도도 마음에 안 들었고 노인과 같이 써야 한다는 것도 묘한 불쾌감이 있었다.

지금이야 워낙 고난 속의 행군을 이어온 터라 이제는 조금 더러운 자리라도 감수하는 편이었다. 다만 원체 깔끔한 성격인 데다가 특히 노년에 이르면서 풍기는 체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같이 본래 청결한 사람 아니면 잘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흐음…….’

문득 강정학의 얼굴이 떠오르자 착잡한 심경이 금방 스쳐 지나갔다.

진도건에게 당한 비무제에서의 치욕과 천서은을 손대보려다 당한 굴욕은 그에게 속성으로 더 강해질 기회를 갈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강정학과 염황신마와의 대결은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결과 이 먼 타지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양자성은 점소이를 힐끔 노려보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점소이가 얘기한 3호실 앞에 선 양자성은 안에서 기척이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잠시 자리에서 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비좁았다.

왼쪽엔 조그마한 탁자와 그 위에 초가 하나 있었고 오른쪽에는 2층 침대가 있었는데 1층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과 넉넉한 수염을 가진 노인이었는데 손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방 안으로 들어서던 양자성과 눈이 마주쳤다.

양자성은 노인이 한족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다소 구릿빛으로 그을리긴 했지만, 지나오면서 본 회골족 노인들은 짙은 갈색으로 피부가 타고 주름도 깊고 많았는데 이 노인은 꽤 탄력적인 피부에 상당한 동안이었다. 보통의 빼빼 마른 회골족 노인들과 달리 제법 넉넉한 풍채도 있었는데 눈빛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를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한 양자성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범상치 않은 것 같은데……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고.’

잠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던 그를 보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뭔가?”

“투숙객이지 뭐겠소.”

“에잉, 못된 놈 같으니라고. 혼자 쓰겠다고 한 걸 고새 무시하다니.”

노인은 투덜거리자 양자성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그런 그를 흘겨보고는 침대 위층을 가리켰다.

“1층은 내 것이니 자네는 2층을 쓰시게.”

“흥, 그럴 것이오.”

양자성이 살짝 코웃음을 쳤는데 노인은 책장의 글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 소리를 듣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라고.”

양자성은 무시하고 벽에 나 있는 조그만 구멍의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지상으로 솟아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빛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안휘요.”

양자성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에 아차 싶었다. 정체를 숨긴 채 다니고 있었는데 실수로 진실을 토해낸 것이었다.

“이름은?”

양자성은 다행히 검림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노인을 돌아보았다.

“장성일이오.”

후대선에게 알려 준 그 이름 그대로 알려 주었다.

노인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자성은 노인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상한 불편함을 느꼈다.

“흥.”

노인도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서책을 들여다보았다.

“노인은 어디 출신이오?”

“호북.”

“이름은?”

“‘무엇이오?’ 정도도 안 붙이느냐? 존댓말도 모르느냐?”

양자성은 잠깐 작은 짜증을 느꼈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노인장의 존함은 무엇이오?”

“주인백(周人百)이다. 싸가지 없는 놈아.”

양자성은 이름 한 번 참 우습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백 명이라는 이름도 웃긴 데 실상은 백인(百人)이 어순에 맞으니 참 성의 없게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양자성은 주인백을 무시하고 다시 문으로 걸어갔다.

“싸가지, 들어왔으면 잠이나 처 잘 것이지 또 어딜 돌아다니느냐? 노부는 잘 때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싫어하느니라.”

주인백이 침상에 벌러덩 누우며 중얼거리자 양자성이 그를 쏘아보았다.

“아직 해도 안 떨어졌소이다.”

쾅!

문이 거칠게 닫히면서 양자성이 휙 나가 버리자 주인백이 고개를 살짝 들고는 그가 나간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척을 감지하며 발소리를 듣던 주인백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서책을 들고 보기 시작했다.

표지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주인백이 읽고 있던 건 평범한 도경(道經)이었다.

“구라친 건 피차일반(彼此一般)인가? 끌끌!”

주인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인백은 양자성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원 천하를 마음대로 유람하며 살피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때 천하제일검문으로 위명을 떨쳤던 무당파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검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강정학이라는 후학(後學)을 멀리서 보며 감탄한 적이 있었고, 또 그의 제자 재능이 쓸만하다는 것도 기억났다. 똘망한 눈에서 보이는 얍실한 성격과 여자께나 울릴 것만 같은 잘생긴 얼굴은 지금 얼굴에 묻힌 때만으로는 가릴 수 없는 것이었다.

주인백이란 이름은 거짓으로 알려 준 것이었다.

인(人;亻)과 백(百)을 합치면 백(佰)이 되니 그가 바로 주백자였다. 탁월한 무재로 세상 사람을 구제하라는 의미로 지어진 도호의 주인은 인세의 경계를 초월한 채 사람의 눈으로 닿지 않는 먼 곳을 헤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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