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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04화 (104/432)

104화 - 제21장. 혈마검귀(血魔劍鬼) (3)

* * * *

두두두두!

맹렬히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흑풍대였지만, 아직 야율균은의 시선은 우측에 쏠려 있었다. 말을 타고 내려와 넝마가 된 옷자락과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이제는 선명한 적발을 휘날리며 말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 묘한 분위기에 휩쓸린 채로 적을 맞이할 뻔했다.

“쳐라!”

콰지지직!

맡은 전장의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야율균은과 흑풍대의 돌격.

그 밀집된 작은 파도에 수십 기의 기병들이 한꺼번에 쓸려나가 버렸다. 다시금 이어지는 난전 속에서 일신의 자유를 얻은 야율균은의 쌍곡도가 다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영은성과 최현걸은 다시 그녀를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흑풍대의 견제로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아 피해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의 판단 때문에 생사가 엇갈리는 치열한 난전 속에서 한눈을 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하필 영은성의 시야에 진도건의 모습이 들어왔다.

영은성은 놀란 눈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싸움을 멈추었다.

바뀐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지나칠 뻔했으나 그 외의 인상착의만 봐도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 며칠간 소식이 없어서 걱정에 걱정을 거듭했던 터였다.

쉬익!

그때 흑풍대가 영은성을 향해 창을 찔렀다. 그 공격을 뒤늦게 눈치채고 당황한 영은성의 앞으로 단봉이 휙 하고 지나갔다.

타구봉법 발구조천(撥狗朝天).

단봉이 창끝을 휘감는 듯하더니 그 창끝을 쳐올렸다. 공력이 일점 집중되면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면서 적 흑풍대원이 창을 놓치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영은성이 검을 휘둘러 목을 베었다.

“뭐해? 정신 차려!”

“왼쪽을 봐라. 진 대협이다.”

“뭐?”

영은성의 말에 최현걸도 놀라서 고개를 휙 돌렸다. 당연히 그럴 거로 생각했던 영은성이 화려하게 검초를 펼치면서 적들의 기세를 눌렀다.

“역시 살아 있었구나!”

최현걸이 양손의 단봉을 휘두르며 기뻐 소리쳤다.

“저 여자를 막아야 한다. 집중하자. 반드시 대협이 야율재를 쓰러뜨릴 거야.”

“뚫어라!”

야율균은을 막을 자는 없었다.

적 기병 사이를 헤집으면서 만곡도를 휘두르니 어김없이 살수가 되어 죽음들이 늘어갔다. 병력 차이가 있었음에도 그녀 한 사람의 무용으로 그 격차를 눈에 뜨이게 줄여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야율재가 전장으로 진입하며 큰 영향력을 보여줬지만, 오래지 않아 나타난 정체불명의 고수에게 막혀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이미 야율재와 치열하게 싸우며 실력을 보여 준 진도건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승세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걱정이 증폭되고 있었다.

야율균은은 잠깐 옆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막아 세웠던 영은성과 최현걸이 기를 쓰고 접근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흩어진 흑풍대 기마병들이 그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저놈들 접근은 허용하면 안 돼…….’

칼을 휘두르면서 중군의 전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푸른 기운과 검은 기운이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용호상박으로 다투고 있었다.

야율균은은 저 싸움에 균열을 일으켜서 빠르게 야율재의 승리를 가져와야 진도건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저기에 끼어들 수 있을까? 신 오라버니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가히 입신의 경지라 할 만큼 그들이 내뿜는 기운의 파장이라는 것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수준이었다.

자신의 수준을 아는 것이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는 영은성과 최현걸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군마와 함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자신의 기마술 때문에 가능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저 승부가 빠르게 결론은 나야만 해.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흑풍대 안에서도 나밖에 없어…….’

야율균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적인 불균형은 많이 줄어들었고 적 천호대도 절반 가까이 죽어 흑풍대를 막아설 동력을 잃어버렸다. 이젠 이 전장을 돌파해서 중군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계속 돌파한다!”

뒤따르는 700여 기를 뒤에 두고 명령을 내리며 적군 사이를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한 흑풍대원이 전선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난전의 가장자리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확보되자 그녀는 그 흑풍대원이 한굴렬임을 알아보았다.

‘저자가……!’

구부정하게 말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봐도 몸 상태가 점점 악화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를 처단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전투를 피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를 보고 있으면 결코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야율재가 혼인 얘기만 꺼내지 않았어도 그가 전장을 이탈하는 걸 그냥 무시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흑풍대 병사들 앞에서 그렇게 개인적인 이유로 처단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 자신 모르게 이를 악물면서 이제 막 난전 지대의 바깥으로 튀어나온 참이었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등장했다. 2천여 명이나 되는 기병대가 속도를 높여 그녀가 나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한굴렬이 빠져나가고 있는 곳 가까이서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기병대의 돌격이었기 때문에 한굴렬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공력을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예봉의 기세를 꺾어 버리고는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선두에 선 장수가 언월도를 높이 들더니 한굴렬이 일으킨 검은 바람의 경력을 뚫고 목을 쳐 버렸다.

야율균은은 매우 놀랐다. 아무리 중독 증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무장에게 쉽게 당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선두에 선 장수가 언월도 끝에 무언가를 걸어 높이 들었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그리고 이윽고 그 장수의 외침은 그 머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흑풍대의 소적문을 나 조태번이 참수하였노라!”

조태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월도를 휘둘러 빠져나오는 야율균은의 흑풍대 쪽을 향해 소적문의 수급을 던졌다. 그의 눈으로 봐도 흑풍대가 가장 밀집된 곳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수급은 정확하게 야율균은의 머리를 넘어 뒤따라오던 흑풍대 품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외침들이 소적문의 죽음을 그녀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소 장군님!”

야율균은의 머릿속이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코앞에서 한굴렬이 죽어 버렸고, 소적문마저 적장의 손에 죽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흑풍대는 야율재와 야율균은 두 명의 통솔자들만을 남겨 둔 셈이었다.

정체불명의 고수와 치열하게 다투며 쉽게 승부를 짓지 못하는 야율재와 언제 개입할지 모르는 진도건까지.

혼란스러운 머릿속과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조태번은 이미 많은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정면으로 돌격하는 조태번의 기병대가 그대로 야율균은과 흑풍대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조태번의 언월도가 무서운 기세로 그녀의 목숨을 노렸다.

“크읏……!”

채챙! 카앙-!

야율균은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에 따라 손발도 어지러워졌다. 개인의 무공으로 본다면 그녀가 한 수 위였겠지만, 조태번도 타고난 신력을 가진 맹장이었다. 거기다가 소적문과 싸우면서 흑풍의 칼바람에 온몸에 상처를 입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그의 불꽃처럼 살아 있는 기세와 맞물려 더욱 위협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중군에 변화를 만들고 야율재의 싸움에 균열을 가할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태번군의 가세로 인해 천호대와 우군 기병대 등의 사기가 크게 오르는 등 재차 역전되었다.

조태번도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흐랴앗!”

기세를 높이며 휘두르는 언월도의 공세로 조태번이 전장의 승기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진도건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영은성과 최현걸이 싸우는 모습도 보았지만, 거기에 신경이 머물 새도 없었다. 중군 한가운데 크게 비워둔 전장의 공터 안에서 용호상박으로 다투는 야율재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에 멈칫한 것이었다.

처음엔 천무경이 직접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화산 정상, 폭주하는 혈마의 뒤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당하기만 하면서 파천무봉의 신위를 직접 목격했었다.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천무경이 왔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분을 더 지켜보면서 진도건은 야율재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 천무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서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이름이었나.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음에도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찌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진도건이 오랫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영은성과 최현걸을 돕고 자신의 무공 회복에 집중하면서 애써 생각의 뒤편으로 넘겨왔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전장에 나타나 자신을 대신해서 야율재의 적수로 싸우고 있었다.

원성을 들을까, 잘못을 빌어야 하나, 내가 한 게 아니라 한들 설명이 될까…….

해명의 논거는 3년 넘는 시간 동안에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였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이 현실이 어찌 이리 두려운 것인가.

‘서은에게 나는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진도건은 무거운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천서은과 야율재의 싸움은 철저하게 힘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팽팽한 싸움의 균형이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야율재의 생각처럼 재능으로 경지를 일찍 깨닫고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지만, 비슷한 재능으로 지나온 세월이 다르기에 내공의 총량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순하면서도 효율적이고 파괴적으로 운용되는 파천신공이라 할지라도 마공 특유의 속성으로 성장하는 성질을 쫓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수십 년을 앞서서 내공을 쌓아 왔기 때문에 팽팽한 싸움이 길어지면 당연히 야율재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네년의 무공이 놀랍지만, 나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이 말이다!’

야율재는 흑체마경을 줄곧 유지하며 월륜대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강기공을 바람의 형태로 유지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내공이 필요할 진데 거기에 더해 다른 강력한 기공들도 펼치며 천서은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었다.

카앙!

도검이 부딪칠 때마다 천서은의 표정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회전하는 경력은 때에 따라서 그녀의 검으로 엄청난 충격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 바람결에 잘못 물리면 검이 박살이 날 것만 같았다. 검강을 두텁게 형성하면서 싸우고 있었으니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야율재가 일순 뒤로 거리를 벌리더니 하늘 높이 왼손을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듯이 들었다. 막 그를 쫓으려던 천서은은 자신의 정면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마기의 흐름을 감지했다.

흑풍명천마공 흑풍팔굉(黑風八紘).

느닷없이 사위와 허공의 여덟 군데에서 검은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지속력에 우위가 있음을 깨달은 야율재가 흑체마경을 풀면서까지 준비한 회심의 절초였다.

엄청난 공력을 바탕으로 뿜어내는 마기의 검은 폭풍이 삽시간에 천서은을 덮쳤다.

콰콰콰콰콰-!

바람결 하나하나가 강철도 벨 수 있는 강기였으며 그에 더해지는 회전력의 위력은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여덟 개의 폭풍이 한점으로 돌입하며 만들어 내는 풍압은 결코 버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여덟 개의 폭풍이 하나가 되니 그 넘치는 기세의 출구를 하늘로 열었다.

구름에 닿을 것만 같이 높이 치솟는 검은 바람 속에서 푸른 빛줄기가 튀어나왔다.

쿠르르릉!

암운(暗雲) 속 번개가 흐르면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가 이러할 것이었다. 폭풍이 커지는 듯하더니 틈새도 같이 벌어지며 튀어나오는 푸른 빛줄기가 더 커졌다. 그러다 일순간 거대한 벽력의 파장이 하늘로 솟구쳤다.

파천신공 개천.

그 강력한 벽력의 힘이 천서은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검은 폭풍은 사방으로 찢어 발겨지며 흩어졌다. 그 두 기운의 반발력은 놀란 얼굴을 한 야율재마저 뒤로 밀려나게 만들 정도였다.

“크으…….”

천서은이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땅에 박아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개천’은 신체를 보호하면서 인접한 적의 공력을 모두 태워 버리는 강력한 내공 방출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공 소모가 막대하여 자칫 신체에 무리를 줄 수 있었다. 아직 그녀의 수준으로 펼치기엔 엄두를 낼 수 없는 기공술이었다.

그만큼 야율재의 흑풍팔굉 절초의 위력은 살인적이었으니 그녀의 얼굴에 급격한 피로감이 떠올라 있었다.

야율재도 어이가 없었다.

흑풍팔굉은 흑풍명천마공 최강의 공격 절초였다. 개천을 펼친 천서은처럼 그도 막대한 내공을 동원했기 때문에 하단전에서의 공허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이젠 끝내주마.”

흑체마경을 다시 전개하지는 않았다. 천서은을 죽이고 전쟁을 지속하려면 이젠 내공 소모에 대해 관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풍의 기운을 월륜대도에만 담은 채 천서은을 향해 튀어 나갔다.

카앙!

천서은도 급히 일어나 검강을 뽑아내지 못한 채 검기만을 담아 야율재의 월륜대도를 받아냈다.

야율재가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자 기력이 크게 소진된 천서은의 검이 어지러워졌다. 이제는 검속에서 우위를 점하며 승기를 잡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야율재의 회오리치는 도기는 그녀의 내공 소모를 더욱 촉진하고 있었다.

카각! 팡!

그 순간 천서은의 송문고검이 터져 나갔다. 하늘로 비산하는 검의 파편 아래로 살의 가득한 웃음과 함께 야율재가 월륜대도를 쳐올렸다.

“후웁!”

천서은이 다시 내공을 폭발시키면서 두 장심에 담아냈다. 그리고 짓쳐 드는 월륜대도를 향해 벽력장을 쳐 냈다.

꽝!

굉음과 함께 천서은의 신형이 뒤로 붕 떠올랐다. 간신히 막아냈지만, 두 손바닥에 터지면서 피로 한가득 번졌다.

야율재는 승기를 완전히 잡았음을 느꼈다.

박빙 대결의 승리, 수적 열세에서의 승전 그리고 황제의 꿈까지 그가 희망하는 모든 것들이 한순간 머릿속에 펼쳐졌다.

흥분이 폭발하여 정수리가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네년은 즉결사형이다!”

야율재가 버럭 외치면서 천서은을 향해 뛰어올랐다.

쉬익!

캉!

그 순간 마치 화살처럼 무언가가 날아들자 공중에 뜬 야율재가 급히 칼을 휘둘렀다. 금속성과 함께 팽그르르 돌며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검이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무수히 많은 칼과 창, 화살들이 검이 날아왔던 방향에서부터 쏟아져 날아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채채채챙-!

느닷없는 상황에 야율재가 당황해하며 급히 월륜대도를 휘두르고 또 몸을 틀며 피해 냈다. 거의 서른 개가 넘는 병장기들을 받아 냈다고 생각이 들 무렵에서야 더는 날아오는 것들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눈 앞을 가리던 공중의 병장기가 사라졌으니 상황파악을 위해 빠르게 눈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이 공중의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야율재의 얼굴에 불신의 표정이 드리워졌다.

“네, 네가 어떻게?”

이질적인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사내. 죽었으리라 확신했던 진도건이 노골적인 살기와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며 긴 창대 하나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창대 위의 신형이 빙글 돌며 머리가 아래로 향하였다.

퉁!

창대가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면서 동시에 진도건의 신형이 야율재를 향해 무섭게 쏘아졌다. 그리고 예의 그 빛살 같은 속도의 검광이 야율재를 덮쳤다.

채앵-!

“큭!”

일격을 주고받으며 몸을 비트는 야율재의 시선에 미끄러지듯 착지하는 진도건의 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그 광경을 천서은이 뜻밖의 상황으로서 안도감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엔 미끄러지면서 낮은 자세로 착지한 사내의 측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적인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면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사내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적발이 전장의 바람을 타고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천서은의 눈빛이 급격하게 떨렸다.

어딘가 익숙한 체형과 자세 그리고 머릿결 사이로 언뜻 비치는 옆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심장이 급격하게 뛰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그 옆모습이 그녀의 눈에 제대로 보였을 때, 그녀는 어느새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진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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