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97화 (97/432)

97화 - 제20장. 대회전(大會戰)의 전신(戰神)들 (1)

조태번이 두 발로 말의 배를 차며 달렸다. 그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출진한 3천의 기병대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위세 좋게 언월도를 빙빙 돌리면서 말고삐를 당겨 앞발을 번쩍 들기도 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이어질 때마다 병사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소적문은 흑풍대 자격도 없는 문둥병 환자다!”

“야율신의 몸통은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 겁쟁이!”

“광주리에 숨어서 통곡하는 소리에 초원의 전사들이 비웃는다!”

단합된 일성(一聲)으로 터져 나오는 조롱이 멀리 야율신의 군영. 아니, 이제는 소적문의 군영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원색적인 비난이나 풍기문란의 비방도 해댔다.

조태상군이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소적문 군영과 꽤 가까운 거리까지 진을 친 것이었다. 이는 군사를 이끌고 한 시진만 행군하면 닿을 수 있을 정도여서 소적문도 보고를 받고 당황했다. 전장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더 당황스러운 건 이렇게 조태번이 매일같이 군을 이끌고 나와 그를 도발해대는 것이었다. 소적문군 주변으로 정찰병들을 깔아놓고 눈과 귀를 가린 채 군영 앞에까지 나와 도발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런 짓을 닷새 동안 계속하고 있었으니 몽골족들도, 소적문을 비롯한 장수들도 점점 분노 지수가 크게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소적문이 똑같은 3천의 기병을 끌고 방책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나 바로 돌격하는 것이 아니라 조태번군처럼 길게 횡진을 쳤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태번과 소적문이 양군의 중앙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행태가 아주 더럽기 짝이 없구나, 조태번.”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느냐?”

“수작이라니. 흑풍대 장수인 너와 단기로 싸워 보고 싶을 뿐이다.”

“크크큭!”

소적문은 조태번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언덕을 공략하면서 공손숙을 베려던 찰나에 그창을 단져서 그를 막았던 장수였다. 보기에도 무용이 상당히 뛰어난 장수일 것 같았는데 솔직히 소적문으로서는 코웃음 칠 수밖에 없었다.

“네놈들이 이렇게 가까이 진군한 것은 분명 전쟁의 승리를 위함일 텐데 공성을 준비하지 않고 왜 이 지랄을 떠는지 모르겠군.”

“솔직히 너희가 저렇게 방책을 높게 쌓았을 줄 몰랐거든.”

조태번이 소적문의 뒤로 보이는 높은 방책과 장애물들을 보며 말했다. 이는 모두 야율신이 준비해 놓았던 작품들이었다.

스스로 초원에서 무적이라 여기는 야율재와 다르게 야율신은 좀 더 군재가 뛰어났는데 그도 야율재처럼 전장에서 자신감이 매우 넘쳤지만, 그것과 비례해서 현안에 대해 신중히 접근하는 습관도 갖고 있었다.

실로 농성을 위해 적절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지금 조태상, 남양군이 소적문군보다 두 배나 많음에도 섣불리 공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주된 이유는 조태상은 공성보다 회전을 유도하는 데에 있던 것이 컸다.

조태번이 군을 끌고 와 하는 도발은 부수적이었다.

현재 적 군영에 총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자가 소적문뿐이기 때문이었다. 소적문을 일찍 끌어내 잡아낼 수 있다면 지휘체계 무너진 저 높은 방책을 무너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솔직하군.”

“굳이 감출 필요 있을까.”

“그럼 다른 속셈은 뭐지? 협상할 거라도 있나? 야율 장군의 시신을 내어주는 것부터 협상 시작인데.”

“무슨 소리 하는 것이냐, 후후! 협상이라니.”

“협상…… 이 아니면 뭐냐?”

“너의 목을 베면 뒤의 군사는 자연스럽게 무너질 텐데. 이렇게 나와 주었으니 우리의 의도는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하하하!”

조태번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듣는 소적문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흑풍대를 이끄는 장수단의 일익으로서 일반군의 장수와 비교되는 건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네깟놈이 나를? 크하하하! 내가 설마 퇴각했다고 너에게서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그저 믿을 뿐이다. 혀가 긴 놈치고 실력이 뒷받침하는 놈은 없다는 걸.”

소적문이 등 뒤의 대부를 들었다. 도발의 목적이 협상이 아니라 단기접전을 치르겠다는 의도였음을 깨달은 이상 그도 말을 더 길게 할 이유가 없었다.

“도발은 좋았다. 곧 후회하게 해 주마.”

음성에서 은근한 노기가 느껴졌다. 그 말을 듣자마자 조태번이 여유 있게 웃으며 짧게 당겨 잡았던 언월도를 손안에서 미끄러뜨려 창대 중앙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말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언월도와 대부가 무서운 기세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군마가 날뛰는 가운데서도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휘두르는 두 중병기의 충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서로를 상대하는 두 사람도, 지켜보는 병사들도 꽤 놀라고 있었다.

소적문과 공손숙이 접전을 벌일 때는 사실상 소적문에게 여유가 더 많았다. 오히려 적당히 가지고 노는 측면이 더 많았는데 조태번과의 접전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태상과 남양은 군영 지휘부 쪽에 높은 재단을 만들어 두 장수의 접전을 보고 있었다. 조태상은 소적문이 출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나와 주니 내심 반갑기도 했다.

“드디어 싸우기 시작하는군요.”

“이길 수 있다고 보나? 흑풍대를 이끄는 장수인데.”

“죽일 수 있다면 앞둔 회전에서 작은 이득을 보겠지만, 이길 수만 있어도 적군의 움직임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으니 기대하고 있습니다.”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군.”

“허허허, 이겨야 저희가 준비하는 것들이 완성되겠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태상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를 따라 남양도 뒤돌아보았다.

초원 위 넓게 펼쳐진 군영 사이에서 천막이 개별적으로 세워진 곳도 있었지만, 중심부는 수백 장의 천막을 연결해서 횡으로 길게 세워 놓은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으로 병사들이 삽과 곡괭이 등의 농기구를 들고 온몸에 흙을 묻힌 채 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늘을 가린 채 무언가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

남양도 그곳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진지를 옮길 때 빠지지 않도록 잘 표시해 놔야겠어.”

“오늘 저녁쯤이면 차질 없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대화하는 시간 동안에도 조태번과 소적문은 팽팽하게 대결을 이어가고 있었다. 언월도와 대부가 어찌나 거칠게 충돌하면 그 칼날의 비명들이 이 먼 데까지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중간에 소음이라고는 뒤에서 들려오는 곡괭이질과 부장들의 지시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릴 뿐, 전방에 출진해있는 3천 기병들은 숨죽인 채 단기접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군에 이런 장수가 있었다니……!’

소적문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9할 이상 가히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태번은 잘 막아내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되려 그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자신의 대부보다 무거워 보이는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중병기의 이해도가 매우 높아서 공격 수법이 매우 위협적이었다.

‘음……?’

눈앞에 휘몰아치는 언월도와 대부의 칼날 그림자들 사이에서 때마침 시야에 자신의 군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 검은 깃발 하나가 높이 세워져 펄럭이고 있었다.

챙!

대부의 강공으로 둘 사이 붉은 불꽃이 터지면서 소적문의 말이 뛰쳐나가 거리가 생겼다. 조태번은 즉각 말고삐를 당겨 방향을 틀면서 다시 소적문을 찾았다. 그러나 소적문은 더 거리를 벌리며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이냐!?”

조태번은 더 쫓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소적문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오른손에 든 대부를 들더니 자신의 군영 쪽을 가리켰다.

조태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적 군영에 검은 깃발이 새롭게 올라왔다. 거기에는 ‘흑풍(黑風)’이라는 하얀 글씨가 써진 채 산맥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의해 격렬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명백했다.

“목 씻고 기다리거라! 다음 전투에선 직접 목을 베어 주마! 으하하하!”

소적문이 호탕하게 소리치며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중앙에 길을 트면서 그사이를 통과하여 군영으로 돌아가니 따라 나왔던 3천 기마대도 썰물처럼 전장을 빠져나갔다.

“흑풍대…… 예상보다 빠른데?”

조태번은 뒤돌아 지휘대를 바라보았다. 조태상과 남양도 소식을 전해 듣고 논의하기 위해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태번도 말을 몰아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철군한다!”

기병대 3천 기는 병영에 복귀해 빠르게 해산했고 조태번은 서둘러 지휘 막사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남양과 조태상, 마량, 공손숙, 안호필 등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동안 첩보는 없었는데 흑풍대가 벌써 돌아왔단 말입니까?”

조태번은 막사의 입구 천막을 걷어 젖히자마자 흑풍대 건부터 물었다.

“고생했다. 소적문은 상대할 만하더냐?”

“제가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소적문은 거의 전력을 다하면서 조태번의 실력에 놀라워했지만, 조태번은 사실 그 정도까지 힘을 쏟아붓지는 않았다. 적군에 지휘관이 아직 소적문밖에 없다고는 하나 어쨌든 공성전으로 이어지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실력을 가늠하는 데 집중했었다.

그는 소적문이 진땀을 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신감을 크게 얻은 상태였다.

“그럼 그자는 네가 상대하면 되겠구나.”

조태상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조태번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로 들어온 첩보는 있습니까?”

“방금 정찰병들이 도착해서 보고했다. 야율재와 흑풍대 3, 400여 기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착했다는구나.”

“……그렇다는 것은.”

“별동대가 습격전을 펼쳤고 2만 원군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야율재가 나타나면서 도주했다고 한다. 다만 진도건과 천여 기가 야율재의 추격을 받았는데 그가 돌아왔으니…….”

“진도건이 죽었답니까?”

“아직 그런 소식은 없다. 다만 야율재의 갑주가 부서지고 피를 뒤집어썼다고 하니 격전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겠지.”

남양의 마지막 말에 지휘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진도건은 야율재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사망이 현실이 된다면 앞으로의 전장 상황이 난국으로 치달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일단 우리 일부터 서둘러 마무리하고 내일 새벽에는 바로 진지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집중해주십시오. 우리가 만든 전장에서 싸우면 승산은 남아 있습니다.”

조태상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주제를 바꾸었다. 하지만, 아직 공손숙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가 전장에서 가장 애먹을 때는 야율재와 야율신이 둘로 나누어 설칠 때였는데 하나는 이미 죽었으니 남은 시간 뭔 수라도 낸다면 길이 열리지 않겠소?”

“공손 장군. 야율신도 아니고 야율재요. 천호대도 모두 별동대로 보낸 상황에서 우리에게 수단이 뭐가 있겠소?”

“그들도 합류할 것이니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야율재는 야율신의 죽음으로 이 회전에서 전쟁에 결착을 지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호대도 무용지물일 수 있습니다.”

마량의 얘기는 조태상이 환기하려 했던 의도를 뭉개 버리게 되었다. 그만큼 야율재라는 한 사람의 존재가 갖는 무게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막사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갑주를 입은 병사가 아닌 남루한 행색의 길거리 거지처럼 보였는데 조태번은 그가 무림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혹시 개방의 고수이시오?”

“개방에서 북쪽을 담당하는 광개입니다. 남양 대장군께 전해드릴 소식을 가져왔기에 이리 병영에 들어왔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무슨 소식…… 아, 설마 창천맹에서?”

“예, 500명으로 구성된 파견단이 일주일 내에 도착할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나흘 내 회전이 벌어질 수도 있소이다. 더 빠르게 올 수 없겠소?”

“속도를 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는 길에 갈아탈 군마를 준비해 주시면 쉽게 합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의견이오. 준비해 주겠소.”

광개의 말에 조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양은 그보다 더 중요한 궁금점이 있었다.

“이보시오, 광개. 혹시 창천맹주나 천하오절이라고 불리는 사람 중 한 사람쯤은 함께 오지는 않소이까?”

남양의 생각처럼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진도건과 팽무양이 있던 자리에서 심도 있게 토론한 결과 그 수준의 고수가 아니라면 야율재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었기 때문이었다.

남양은 창천맹에 두 번째 지원 요청을 하면서 재차 최고수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었기에 얼마나 반영이 되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송구하게도 천마신교의 구주마종이 중원 내에도 있어서 그분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광개가 머리 숙여 대답했다.

“하, 그러면 안 되는데…….”

남양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한숨은 다른 장수들에게도 전파되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광개는 그들의 눈치를 잠시 살피고는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의 흑풍신마도 무공이 강하겠지만, 그 전임자의 뒤를 이은 만큼 천하오절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창천맹에서 파견한 500명은 앞서 팽무양 가주께서 직접 이끌고 합류한 500명보다 더 엄선된 고수들로 구성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아, 광개는 함께 전쟁을 치러보지 않아서 내 고민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천하오절이라는 명성을 얻은 분들의 무공은 결코 시간적인 노력이나 재능만 있다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경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흑풍신마가 다른 구주마종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 하여 범접할 수 없는 무공을 가졌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또 한 가지 말씀드릴 부분은 이번 500인 단을 이끄시는 분은 창천맹주 천무경의 독녀 천서은입니다. 3년여의 폐관 수련 중이었는데 천 맹주께서 직접 성취를 확인하고 선임하셨으니 야율재의 발목을 붙잡고 적군을 쓸어버릴 환경을 만드는 데는 충분할 것입니다.”

“여자란 말이오? ……진도건이란 자도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데, 여자의 몸으로 되겠소?”

남양의 질문에 광개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가 깊이 숙였던 허리를 반쯤 들어 올리며 남양을 올려다보았다.

“진도건이…… 죽었습니까?”

“그런 건 아니오만, 진도건과 야율재가 싸운 정황이 보이고, 야율재가 적군영에 무사히 합류했다는 것은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겠소?”

광개는 다시 몸을 깊이 숙였다. 표정을 장수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부동자세로 그러고 있자 남양 등 장수들도 무거운 침묵으로 광개의 말을 기다렸다.

“……진도건의 무공은 본방에서도 이렇다 확언하기 어렵지만, 잠재력만큼은 무척 큰 인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신 게 아니라면 기다려 보시지요. 그리고…… 천 맹주는 현 중원 무림 최강의 고수이고 천서은은 그의 딸입니다. 호부견녀(虎父犬女)일 수 없습니다. 이들 부녀는… 천무경은 무림의 용(龍)이고, 그 딸인 천서은은 무림의 봉(鳳)이라 할 수 있으니 대장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광개의 조언이 그러하다면 내 기다리도록 하겠소. 부디 행보를 서둘러 주시구려.”

“가시는 길에 군마 500마리와 관리할 군사들을 함께 보내도록 하겠소이다.”

“감사합니다.”

안호필이 광개 곁으로 움직이고는 남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소장이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안호필과 광개가 지휘부를 나갔다.

공손숙이 한숨을 쉬면서 걱정을 덜어냈다.

“후우, 그나마 다행입니다. 천 맹주 딸이 제시간에 도착하기만 해 준다면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광개의 말을 믿어도 되겠지?”

“저희에게 달리 길은 없습니다, 대장군.”

조태상의 말에 남양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율재라는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어깨가 으슬으슬 떨릴 정도였으니 부디 곧 있을 전쟁에서 그의 목을 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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