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 제19장. 피로 물드는 시라무렌(潢水) 강 (2)
* * * *
촤아아아-!
멀리서 보이던 눈 덮인 산이 점점 가까워지자 구불구불 뱀처럼 이어진 시라무렌강의 물살도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2만의 군사는 강의 북단에 인접하여 줄지어 행군하고 있었고 군사의 절반은 이미 좌우 산자락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북쪽의 산세는 낮았으나 침엽수림으로 인해 녹음이 덮여 있었고, 남쪽의 산세는 일부 험한 곳이 있어 잘못 진입하면 군사를 이동시키기 곤란해 보였다.
거란족 장수 손두국(孫豆局)과 케레이트족 장수 아바카는 후군에서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손두국은 야율재 휘하의 흑풍대 장수로 검은 철갑을 입고 있어서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있었다. 아바카는 토오릴 휘하의 장수로 야율재와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큰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토오릴이 북쪽의 메그리트, 오이라트 두 부족을 공격한다고 병력을 대거 보내긴 했지만, 이는 야율재로부터 자 부족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술책이었다.
초원의 유목민족들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한족이나 거란족, 여진족 등을 바라보는 시선과 달리 서로 간엔 텡그리 신을 공유하는 초원인으로서 동질감 같은 것이 있었다.
다만 세력다툼으로 반목이 심할 뿐인데 야율재와 흑풍대라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의 등장과 그들의 강압이 유목민족 간의 반목을 더욱 키우고 말았다. 케레이트족이나 타타르족 등은 야율재의 군사 징집을 피하려고 궁리하다 보니 가장 분열이 심했던 카마크 몽골족을 주로 약탈하면서 포로들을 모으게 된 것이었다.
이들을 포로로 잡고 다시 군사로서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설득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야율재와 직접 엮여 있는 토오릴은 이 관계에 많이 지친 상황이었다.
토오릴이 아바카에게 별도로 지시한 것은 군사들을 최대한 생존시켜 복귀시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생이 전사의 부족임은 어쩔 수 없었으니 아바카는 토오릴의 기대와는 다르게 흑풍대와 함께 치르는 전쟁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흑풍대장께서는 회전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그건 어디서 들었나?”
“전령과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타타르족 병력을 재촉하시는 모양이다. 아마 그 병력과 대장께서 오셔야 남양군과 전쟁을 치르지 않을까 싶다.”
“검은 바람 옆에서 싸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흐흐흐! 초원 제일의 케레이트족 토오릴 족장이 아끼는 장수라 들었는데 마음가짐이 마음에 드는군.”
야율재의 폭거는 초원에 악영향이 컸으나 흑풍대의 기마 돌격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므로 아바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몽골족들이나 다른 유목민족들이 징집되어 전쟁에 쓰이면서도 대부분 명령을 따르는 이유는 그래도 흑풍대라는 최강의 부대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촤아아!
물살이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연방 귀를 간지럽혔다. 주로 북쪽 초원에서만 활약했던 아바카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출렁이는 누런 물결에 하얀 포말이 일렁이고 굴곡이 심한 물길에서는 소용돌이가 보이기도 했다.
“시라무렌 강 물살이 참 거칠군요.”
“들어가면 휩쓸려 가니 조심하게.”
“정말입니까?”
“강폭이 두셋으로 갈라진다면 깊이도 낮아 말을 타고 건널 만하지만, 그렇지 않고 강폭도 넓은 곳을 건너려다간 말도 버티지 못하고 휩쓸릴 거야. 그래도 좀 더 올라가면 강폭이나 깊이 모두 줄어들어서 충분히 건너면서 다닐 만하네.”
좌우를 둘러싼 산지에 비해 군사들이 행군하는 위치는 평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계속 다소 경사가 있는 오르막을 오르는 형국이었다. 행군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서 후군까지 산세에 둘러싸이자 아바카는 다소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매복 당하기 좋은 지형이군요.”
“크크! 대장군 남양은 우리에게 호되게 당해서 단단히 겁을 집어먹었는데 산맥까지 넘어서 우리 원군을 노리고 매복을 한다? 그만한 병사도 없고 배포도 없을 것이네.”
“하긴 허접한 한족 군사가 저희를 매복으로 공격하려고 해도 동수는 있어야 효과를 볼 텐데 그만한 규모면 이런 지형에 숨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봉도 아직 조용하고.”
“우측의 산은 숲이 있어 숨기기는 용이하나 면적이 작고, 좌측의 연산산맥 산자락은 넓고 높이도 있지만, 나무들이 헐벗고 있으니 산자락 뒤에 숨는다고 해도 기껏 일이천 숨길 수 있을 텐데 그 정도면 걱정도 없지.”
“정말 그 정도 병력으로 매복했다면 저희를 정말 우습게 본 것이지요. 허허허!”
자신감 넘치는 손두국의 말에 아바카도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긴장을 풀었다.
“이 속도면 내일 저녁쯤에는 군영에 도달할 걸세. 차분히 가세나.”
“손 장군이 여기 계신데도 제 걱정이 과했습니다. 허허허허!”
아바카는 웃음과 함께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쪽 산세를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거친 물살을 뽐내는 시라무렌 강에 시선을 한 번 주었다가 다시 북쪽 산림을 보았다.
“허허…… 어?”
여유로웠던 그의 웃음이 끊어지고 의문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북쪽 산림 속에서 말을 탄 한 남자가 나왔는데 갑주를 입고 있지 않아서 처음엔 잠깐 멈칫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창을 확인하자마자 또 뒤이어 숲속에서 갑주를 입은 일단의 기병대가 뛰쳐나오며 먼저 나온 남자의 뒤를 바짝 따라붙자 아바카는 바짝 긴장했다.
“매, 매복이다!”
아바카가 본능적으로 외치며 만곡도(彎曲刀)를 뽑았다. 손두국도 그의 외침을 듣자마자 곧바로 매복병을 확인했다. 줄지어 나오는 모양새가 모두 기병대로 구성된 병력이었는데 아직 숲에서 모두 빠져나온 건 아니었지만, 대략 추산해 보면 1, 2천 기 남짓할 것 같았다.
“아바카! 부대의 진형을 갖춰라! 저것들은 내가 친다! 기병대는 모두 내 뒤를 따라라!”
손두국이 함성과 함께 말을 몰고 뛰쳐나갔다. 후군의 기병대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손두국의 뒤를 쫓아 매복병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하자 그걸 보고 있는 것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흑풍대의 장수…….’
아바카는 손두국의 칼에 적군의 예봉이 꺾이며 나뒹구는 적 기마의 모습들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보병들을 독려하여 일자방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화살 공격에 대비해 원형 방패를 세우면서 만곡도나 도끼 등을 들고 전투 채비를 갖추었다.
훈련된 몽골족 병사들이 명령에 착착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타난 매복이 아직은 손두국이 맞이하러 간 부대들뿐인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바카는 흥분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리며 돌아보았다.
때마침 매복병의 선봉과 손두국이 부딪치려는 참이었다.
슈류류류!
그때 어느 좁은 절벽 틈에서 들어본 것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귓바퀴를 따라 감겨 들려왔다.
퍼버벅-!
아바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폭풍의 기둥이 손두국과 뒤따르는 기병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었다. 튀어 오르는 그것들이 사람의 것인지 말의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한 가지 직감한 것은 그들이 큰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진도건이 적성창으로 퍼부은 풍룡포의 일초는 단숨에 적의 전열을 꺾어 버렸다.
선봉의 십여 명이 초식에 휩쓸리며 갈려 나가자 뒤따르던 케레이트족, 몽골족 기마대들의 진형이 무너지며 좌우로 찢어지듯 갈라졌다.
“돌파에 집중하라!”
진도건의 외침이 일대에 쩌렁쩌렁 울렸다. 바람을 등에 업고 달리는 그의 기병대의 돌파력은 몽골족들이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선봉을 달리는 진도건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씩 썰려 나갔다.
그의 뒤를 받치는 영은성과 최현걸 그리고 병사들은 명령대로 돌파에 집중했고 가장자리를 달리는 자들은 지나치는 적들에 대한 견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진도건의 기병대는 몽골 기마대를 둘로 갈라 버렸다.
흑풍대 장수 손두국이 단 일격에 십수 명의 병사들과 함께 곤죽이 되어 죽어 버린 것은 뒤따르던 병사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순식간에 지휘관이 사라지자 우왕좌왕 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전투력이라면 좌우 협공이라도 해 볼 만했을 텐데 선봉에서 보여주는 진도건의 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다.
마치 소문으로만 듣던 흑풍대의 야율재가 적의 편에 선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형을 단단하게 갖춰라! 고작 2천의 기병일 뿐이다! 돌격해 들어오는 순간 전력을 다해 포위해야 한다!”
서둘러 병사들을 독려하며 지휘하는 아바카의 표정은 흥분에 가득 찼던 이전과 달리 차갑게 굳어 있었다.
흑풍대와 함께 초원을 질주하며 적진을 돌파하는 상상은 단숨에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극도의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이미 수천 명의 병력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다면 명령도 내리지 못했을 것 같았다.
“대, 대장!”
갑자기 병사 중 하나가 아바카를 불렀다. 그가 병사를 보자 병사는 오르막 위를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돌아본 아바카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길게 줄지은 몽골족 병사들의 행렬을 따라 시선을 옮긴 끄트머리에서 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복이 더 있었다는 소리였다. 바로 팽무양의 2천 기가 후군이 받은 기습으로 선봉이 따라 멈추자 즉각 튀어나와 들이받은 것이었다.
“칫! 경계를 늦추지 마라! 부장들도 정신 차려라!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아바카가 진도건 쪽을 똑바로 직시했다.
기어코 몽골족 기마대의 후미까지 뚫어내었기 때문이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어느 때보다 무섭게 들려왔다. 최후미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아바카의 시야에서 진도건이 이끄는 기병대의 돌진 방향이 그들에게 점차 향하고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의 목 넘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를 묻어버릴 정도로 귀에 크게 들려왔다. 극도의 긴장감이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높아지는 그때.
‘어?’
진도건의 기병대가 다시 방향을 틀더니 그들의 측면으로 향했다. 말을 탄 채로 화살을 쏘지도 않는데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기동에 아바카는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진도건의 기병대는 그대로 그들을 지나치기 시작했다.
“지, 진형을 유지하고 우전(右轉)하라!”
명령을 내리면서도 여전히 긴장 가득한 눈으로 적 기병대를, 선봉의 진도건을 보았다.
‘어?’
착각이었을까.
진도건과 눈이 마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봉을 달리는 방향과 다르게 진도건의 얼굴이 그를 향해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검붉은 안광이 하늘의 햇빛에 반사되어 그의 동공을 파고들었다.
‘널 노리고 있어.’
그를 향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착각과 서슬 퍼런 살기에 오한이 들었다.
일자방진의 병력이 서둘러 방향을 틀면서 아바카의 앞에 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진도건의 기병대가 시라무렌 강까지 건너기 전까지는.
‘뭐지? 왜 강을 건너지?’
시라무렌 강과 그와의 거리가 조금 되었기에 강 앞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돌격해 올 줄 알았던 진도건의 기병대는 그대로 강폭이 좁은 곳을 이용하여 건너가 버렸다. 그리고는 오르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기동에 아바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적군이 몽골군의 중군을 통과할 때까지 눈으로 뒤를 쫓던 아바카는 우측 길을 따라 일단의 기병들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들은 몽골족 군사들이 아니었다.
“바, 반대편이다! 모두 돌아서라!”
아바카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는 기병대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어느덧 미처 진형을 갖추지 못한 후군 앞쪽의 보병대에 돌격했다.
“쓸어버려라!”
팽무양이 우렁차게 소리 외치며 대도를 휘둘렀다. 진도건이 보여 준 예봉의 힘만은 못했으나 상대적으로 천호대가 더 많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무공이 난전에서 빛을 발했다.
진도건처럼 얇고 길게 늘어서서 돌격하는 것이 아니라 두텁게 열을 세워 돌격한 것이니 마치 창과 망치로 비교할 만했다.
진형을 갖추지 못하고 팽무양의 기병대를 맞이한 몽골족 병사들은 진형이 산산이 깨지며 큰 충격을 받았다. 사상자가 순식간에 번져갔다. 게다가 2천, 3천 단위로 편성되어 있던 부대 사이를 돌격하면서 기병대가 빠져나갈 길이 열리기도 했다.
“부장들이 보병을 지휘해서 대열 유지에 집중해라! 내가 기마대를 지휘하겠다!”
아바카는 즉시 말을 달려나갔다. 손두국이 죽고 난 이후, 아직 대오도 정렬하지 못한 기마대로 가서 목에 핏발이 서도록 외치며 몽골 기마병들을 끌어모았다.
‘적군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마대의 힘이 필요하다.’
아바카가 기마대들을 다시 집결시키는 사이, 팽무양의 기병대가 적 부대들을 뚫어내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시라무렌 강 쪽으로 굴러떨어지는 시체들을 밟고 강변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이번엔 강을 건너지 않고 다시 몽골병 후군의 측후방을 노리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고 기마대를 수습한 아바카도 돌진하기 시작했다.
“적들을 죽여라!”
한편 후군을 뚫어내고 시라무렌 강을 건너 오르막을 오르던 진도건은 빠르게 감각을 집중하여 몽골군의 늘어선 군진을 살피고 있었다. 어떤 자의 호흡이 짙고 강한지, 어떤 자가 지휘력을 가지고 군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은지 대략적인 위치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수백의 군사들의 모습과 그들의 호흡으로부터 이어진 끈을 일일이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대략 전해져오는 짙은 느낌들은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군의 진형이 무너진 선봉대들까지 도달했다.
시라무렌 강은 상류에 이를수록 더욱 큰 폭으로 구불구불한 수로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몽골군의 선봉은 북쪽으로 크게 꺾인 시라무렌 강을 건넌 바람에 진도건과 몽골군 사이를 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선봉의 병사들을 줄인다. 돌파하라!”
다시금 등을 밀어내는 바람을 받은 상태에서 진도건이 적성창을 번쩍 들며 외쳤다.
강력한 기류가 다시금 그의 적성창 창신을 따라 휘감겼다. 무거운 경력이 모인 순간,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영은성, 최현걸, 보르테 등은 자신들의 앞에 무슨 광경이 펼쳐질지 예감하고 있었다.
짙은 호흡의 끈. 남들보다 군장을 꼼꼼히 갖춘 적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진도건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튀어 나갔다. 그리고 적성창을 찔러 내며 공력을 토해 내었다.
“풍룡포!”
기합이 섞인 초식명의 외침과 함께 경력의 폭풍이 쏟아졌다.
콰콰콰!
무자비한 칼바람이 적장과 군사들을 덮치며 또다시 십수 명이 일거에 휩쓸려 나갔다. 단기(單騎)로 뛰어들어 퍼붓는 신위에 놀라 허둥대는 몽골병들에게 진도건의 기병대가 연이어 충돌했다.
팽무양에게 일격을 얻어맞고 그들이 빠져나간 이후, 잠시 어지러이 전장을 수습하던 병사들에게 격류로써 쏟아지는 진도건의 기병대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돌격하는 기병 한 기, 한 기의 힘은 진형을 갖추지 못한 보병들에겐 재앙이었다.
몇 분 동안은 갑주와 살가죽을 가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윽고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난전이 시작하면서 돌진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싸우는 기병대들에게 보병들이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도건은 망설이지 않았다.
“도하하라!”
적성창을 휘둘러 몽골병들을 휩쓸면서 북쪽으로 길을 열었다. 기병들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진도건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애초에 넓게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모여들었다. 먼저 도하하는 진도건을 따라 기병대들이 줄지어 빠져나갔다.
“다시 도하하라!”
대부분 적장의 위치를 헤아린 상태였기에 진도건은 오래 밖에 머물지 않았다. 말들에 추진력을 실을 잠깐의 공간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저 다시 돌파하여 적장들을 찾아 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