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 제18장. 종전계략(終戰計略) (1)
눈에 덮여 하얀 세상이었어야 할 초원과 산자락들은 시체들과 붉은 피로 오염되었다. 그 음울한 기운은 이미 주변에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원군의 도착과 승리의 환희가 아니었다면 병사들은 두 발로 설 기운도 없었을 것이다. 땅에 널브러진 동료, 적군의 시체들과 다를 바 없는 산송장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하급 졸병들이나 공유하는 것일 뿐이었다.
일군의 지휘관이라면 오늘 거둔 승리의 단초를 통해 이 전쟁을 종결시킬 실마리를 계속해서 찾아가야만 했다.
대장군 남양과 마량은 진도건에게 병사를 먼저 보내면서 오는 길에 야율신의 시신 근처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시신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남양은 인상을 찌푸렸다. 목에서 따로 떨어진 머리통을 보는 건 아무리 전장에 익숙한 자라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눈 속 깊이 얼굴을 묻은 머리를 돌렸다. 차갑게 굳은 얼굴의 눈을 털어내니 과연 야율신의 얼굴이 맞았다.
“야율신이 맞습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기분이군요.”
남양은 마량의 기분에 동조하기 어려웠다. 그는 야율신의 머리를 들고서는 야율신의 육신을 바로 누이고 그 머리를 목에 맞춰 바로 놓았다.
“야율신의 시신을 수습해 놓아라.”
남양은 함께 온 병사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자신의 말에 올랐다. 그리곤 마량을 쳐다보며 입을 다시 떼었다.
“고작 야율신이다. 적군의 중요한 장수를 처치했지만, 어쨌든 흑풍대장 야율재의 분노를 사게 되었어. 우린 그 분노를 감당해야만 하는데 자네는 자신 있는가?”
“으흠……!”
마량은 핀잔에 침음성을 삼켰다.
남양은 승전이 기쁘긴 했지만, 오늘의 승리를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몽골군이 초원을 가득 메우고 그사이를 흑풍대가 돌격하여 그의 병력이 박살 나는 그림이 벌써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니 절로 오한이 드는 느낌이었다.
남양의 시선은 좌군 쪽으로 향했다.
“가자. 그자가 야율재를 처리할 살수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지.”
몽골군이 퇴각하고 잔적까지 모두 격퇴한 진도건은 병사들 사이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지친 말에서 내려와 고삐를 끌고 걸으면서 좌군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멀리 언덕에서 내려오는 조태번의 병력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병사들 사이에서 영은성과 최현걸이 진도건처럼 말을 끌고 걸어 나오기도 했다.
두 사람을 본 진도건이 피식 웃었다.
“모두 무사하구나.”
최현걸이 진도건을 반기면서도 거칠게 투레질하는 말의 목을 툭툭 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니, 형님이 빠지자마자 적토마에서 조랑말 되어 버리는데 이거 실화요?”
착착!
최현걸의 손바닥에 축축하게 젖은 땀이 고대로 묻어나 왔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바지에 손을 닦으며 연방 투덜거렸다.
“싸워 보니 어떠냐?”
진도건은 영은성을 보며 물었다.
“사방이 적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협이 하신 말씀처럼 눈먼 칼이 제일 무섭더군요.”
“대협 말고 차라리 형이라고 하라니까.”
“……입에 잘 안 붙습니다.”
“몇 년을 더 기다릴까.”
“하하…….”
어색해하는 영은성의 어깨를 최현걸이 툭 치며 말했지만, 영은성은 멋쩍게 웃을 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진도건은 미소를 지으며 멀리 조태번이 있는 쪽을 보고 있었다. 조태번은 자신들이 이끌고 온 기병대를 불러 모아 집결시키고 있었다. 기세 좋게 승리의 역할을 해낸 기병들은 상대적으로 남양군에 비해서 사기가 매우 올라 있었다. 집결하던 병사 중 일부는 진도건 쪽을 보며 환호성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와 참전할 수 있었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도건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사람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있는 사람의 갑주가 꽤 화려했다. 진도건은 그가 전장의 지휘관 남양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남양 등이 다가오는 동안 진도건과 영은성, 최현걸은 가만히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남양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세 사람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진도건에게로 시선이 닿았다. 복색을 보고 야율신을 처치한 자가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야율신을 처치한 자인가?”
“그렇소만.”
마량이 옆에서 성을 버럭 내었다.
“말투가 무례하구나. 이분이 바로 북부대장군 남양님이시다. 절부터 하지 못할까?”
최현걸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황궁 근처도 다녀본 적이 있어서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영은성도 최현걸의 행동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진도건은 오히려 고개를 들고 마량을 노려보았다.
휘날리는 검붉은 긴 머리카락과 붉은 기운이 감도는 눈동자는 혈마화 이후로 계속 남아 있는 신체 변화였다. 특히 검붉은 눈동자는 살의, 적의 등 부정한 마음을 품었을 때 더욱 붉은 빛을 띠어 마치 보는 이로 하여금 피에 물든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본 마량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벌벌 떨었다.
“됐다. 무림인들은 원래…….”
남양은 손을 들며 마량을 제지하려 했지만, 무심코 그의 안색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즉시 진도건을 쏘아보았다.
“무림인들이 원래 무례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으나 일군의 군사를 위협할 정도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줄 몰랐군. 썩 그만두지 못할까!”
남양의 호통에 진도건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옴짝달싹 못 했던 마량은 그제야 비로소 가쁘게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헉헉! 이, 이놈…….”
“마 군사는 물러서라.”
남양의 단호한 말에 마량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도 권세의 자존심 때문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을 뿐 감히 진도건을 어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목이 달아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진도건이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너의 무공이 야율신을 압도할 정도인데 창천맹에서 파견한 천호대에서도 너 같은 자는 없었다. 적의 총지휘관이자 흑풍대장인 야율재를 암살해라. 네가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남양은 원군의 등장으로 정말 오랜만에 승전의 기쁨을 맛봤지만, 솔직히 전쟁을 더 지속하고 싶진 않았다.
2군을 통솔하고 오고 있는 조태상의 위치를 묻지도 않고 진도건에게 이런 요구를 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조태상이 합류하여 다시 전쟁을 시작했을 때, 만약 토벌에 성공한다면 그 공은 오로지 조태상의 차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둘째는 그의 명령에 따라 진도건이 암살에 성공한다면 전쟁을 길게 끌 필요도 없어지며 공을 오롯이 남양 자신의 몫으로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장군의 위치로서 절도사 조태상에게 전공을 빼앗긴다는 것은 자존심상 쉬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헌신하지 않는다면 황궁으로 돌아갔을 때 문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양은 진도건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풍신마는 내 스승의 원수이므로 당연히 내 손으로 끝낼 것이오.”
진도건의 말에 남양이 반색했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은 실망감으로 번졌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를 암살할 수준이 아니오.”
“……그거 실망스러운 대답이군. 야율신은 야율재와 버금가는 적장이었는데 그를 압도하고도 고작 할 수 있는 대답이 그것뿐인가?”
“흑풍대장 야율재가 내가 생각하는 흑풍신마가 맞다면 당신의 관점은 틀렸소. 야율재 일신의 무력은 야율신과 차원이 다르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일찍이 그와 동등한 수준의 적과 싸워 본 경험이 있소. 야율재가 그와 같은 힘을 가진 자라면…… 특단의 대책도 없이는 만 명의 군사조차 그자에겐 그저 학살 대상일 뿐이오.”
“하, 만인지적(萬人之敵) 이상이라는 건가? 그럼 그자를 잡을 특단의 대책은 무엇이냐?”
“산을 무너뜨려 그 아래 묻어버릴 만한 그런…….”
“헛소리! 그자가 항우와 같은 힘을 가진 것은 인정하나 네가 말하는 것은 마치 천신이라도 상대하는 꼴이 아니냐?”
“10만의 군사를 땅에 묻을 용단이 있다면 숫자로 밀어붙여 볼 수도 있겠소. 그 전에 이미 절반이 도망칠 거 같지만 말이오.”
“궤변만 늘어놓는구나! 넌…….”
질문을 이어갈수록 오히려 남양은 오히려 화만 치밀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버럭 성을 내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진도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시선은 그를 보고 있는 한편으로 머릿속으로는 이 전에 했던 대화를 잠시 복기하고 있었다.
“야율재를 너의 손으로 끝내겠다고 했다. 그래도 너의 무공이 뛰어나니 얼마의 군사를 손에 쥐여 주면 야율재를 죽일 수 있겠느냐? 아니, ……네가 야율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남양의 달라진 질문에 진도건은 잠시 고개를 돌려서 전장 한복판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를 따라 남양도,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같은 지점을 바라보았다.
장수들의 지휘에 따라서 흩어진 병장기들과 군마를 수습하고 시체를 옮기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 전체에 깔린 무거운 우울감은 과연 이들을 이끌고 어떤 전장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는 일이었다.
진도건은 무심히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두세 달 정도의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힘을 계속 회복할 것이오. 그때가 되면 야율재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의 목을 칠 수 있을 것이오.”
“그런 뜬구름같은 이야기 때문에 전쟁을 더 지속하란 말이냐?”
“그럼 대장군은 달리 이길 계책은 있소?”
진도건이 남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양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계책의 칼로 써야 할 자가 되려 묻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지만, 더 말을 이어가는 건 구태의연할 일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예측했던 대로 조태상이 이끄는 5만의 원군은 사흘이 지나서야 포양진에 도착했다.
초기 10만이 머물렀던 곳이었기 때문에 원군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소속과 질서유지를 위해서 기존 남양군과 포양진을 좌우로 나누어 사용토록 하였다. 그렇게 나누다 보니 좌우 군대의 분위기가 같은 황군임에도 사뭇 차이가 나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남양군은 연전연패의 사슬을 마침내 끊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병력이 절반 가까이 줄어서 3만 명도 되지 않았고 부상자들로 곳곳에는 곡소리가 넘쳐흘렀다. 승리로 끌어 올려진 사기가 조태상군과의 분류로 인해 대비되는 효과로 다시 꺾이는 모양새였다.
이들을 위로하는 몫은 같이 병상에 누운 공손숙이었으니 치료받는 병사들의 병상들을 일일이 돌며 격려하느라 군사회의는 참석할 수 없었다.
조태상군이 도착한 다음 날, 지휘 막사에는 모든 장수가 모였다.
대장군 남양과 절도사 조태상, 조태번 형제가 있었고 군사 마량이 남양의 옆을 지켰다. 남양 군 측에는 심규봉과 팽무양, 부장 다섯이 군사회의에 참여하였는데 공손숙이 꺾이면서 사실상 장군급은 무너진 상황이었다. 조태상군 측으로는 안호필과 진도건, 영은성, 최현걸이 참석하고 부장 셋이 참석하고 있었다.
“조 절도사의 동생이 기병대를 끌고 먼저 달려오지 않았다면 본 군은 큰 곤경에 빠졌을 것이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공식적으로 먼저 절도사에게 감사를 표하지.”
“그저 운이 따랐을 뿐입니다. 더 일찍 도착하지 못하여 송구할 따름입니다.”
“절도사의 셈이 빠르니 오는 동안 생각한 계책이 있는지 궁금하군. 알다시피 나의 군사들은 이미 수가 3만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고 사기가 많이 꺾여 있네. 이번에 적을 패퇴시키긴 했지만, 적군의 병력은 꾸준히 공급되고 있는 게 이 북부 전장의 현실일세. 게다가 야율재가 이끄는 흑풍대는 보통의 병력으로 막을 방법이 없네. 무림인들로 구성된 천호대도 그들의 발을 간신히 묶을 뿐이었다네. 어떤가? 조 절도사의 군재가 뛰어나다는 것을 일찍이 상선의 전령을 받고 기대가 큰데. 그대에겐 절묘한 계책이라도 있는가?”
조태상은 남양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장군의 노고가 크셨음에 심심한 위로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소장은 이곳 전장의 상황을 전달받고 고민이 깊이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5만의 병력이 증원되었고 소장의 군략을 더한다 한들 결국엔 장성 안으로 도망치고 황제의 처우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시간만 늦춘 일이 될 테죠.”
“흥! 벌써부터 황명의 버거움을 얘기하며 자신의 무능을 담보로 잡을 셈이냐?”
조태상의 비관적인 말에 남양이 화가 나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조태상은 다급하지 않았다.
“고정하십시오. 소장이 보고를 받기로는 연전연승하던 10만의 병력이 다시 포양진으로 후퇴하고 절반으로 줄어든 게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 맞습니까?”
“감히 날 조롱하러 드느냐?”
남양이 으르렁거리자 조태상은 바로 대답하기에 앞서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보았다.
“저자의 이름은 진도건입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셨다고 들으셨습니다. 혹시 그날의 대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저자는 내게 궤변만 늘어놓던 자다!”
“혹시 그에게 시간에 대해 듣지 못하셨는지요?”
“무슨 시간!”
남양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진도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의 대화가 빠르게 환청처럼 머릿속에 맴돌았고 이내 조태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두세 달?”
“한 달을 넘어 그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저희는 야율재의 목을 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양은 곧바로 화를 낼까 생각했지만, 먼저 '참을 인(忍)'자를 마음속에 세 번 새기는 일부터 먼저 하였다.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조태상을 지긋이 보았다.
“절도사는 진정 저자가 두세 달 뒤에는 야율재의 목을 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후후! 우습군. 두세 달만 버티면 어디 몽골족의 텡그리(天神)가 저놈에게 벼락이라도 떨어뜨릴 힘을 준다고 하더냐? 크하하하!”
몽골 초원의 유목민족 사이에서는 유일신을 섬기는 토속신앙이 존재하는데 텡그리가 바로 천신으로 해석되는 그런 존재였다. 몽골족과 오랜 전쟁을 치러온 조상들이 남긴 자료를 공부한 바 있던 조태상은 남양이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조태상과 조태번 형제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조태상은 조태번으로부터 어떻게 3천의 기병이 사흘이라는 시간을 단축하고 포양진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상세하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도건이 몽골족이 아니라 텡그리로 힘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어쩌면 풍백(風伯)이 힘을 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어쨌든 야율재라는 흑풍대의 대장을 꺾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는 건 공통된 의견이니 그가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저희가 세울 군략의 대전제가 되어야 함을 대장군께 말씀드립니다.”
모두의 시선이 진도건에게로 쏠렸다. 남양은 불신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여기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특히 남양군의 부장들은 진도건이 야율신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아주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풍백이라…….’
특히 천호대의 대장 팽무양은 팽가의 가주로서 일찍이 면식이 있던 개방의 소개 최현걸을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들었기에 몹시 흥미로운 눈으로 진도건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