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제16장. 인연의 갈래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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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림은 본래 과거 전한(前漢) 말 형주(荊州) 당양현(當陽縣) 근처의 작은 녹림산(綠林山)에서 녹림병(綠林兵)이라는 민병의 봉기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속세에 편입되지 못하고 세를 다시 불려가며 도적질을 하는 자들을 말하였다.
여기에 사파무림의 낙오자들이 뒤섞이면서 무공을 다루기 시작했고 고수들까지 유입되면서 세력을 키운 것이 현재로 대표되는 녹림도였다.
천하에 강산(江山)이 없는 곳이 없고 그런 곳에 출몰하는 도적들은 모두 녹림도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림 세력으로서 인정받는 녹림도는 18채로 분류되는 산채들이 유일했다.
강서와 호남 경계에 산세를 펼치고 있는 정강산(井岡山)은 녹림의 성지로 삼기에 아주 적합했다. 산지와 그 일대가 나무들로 빽빽하게 들어서 울창한 산림을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산세의 높이가 절묘하여 어느 방향으로 진입하든 간에 다른 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높이 솟은 험산 지형도 있었지만, 역시나 울창한 숲에 덮여있어서 내려다보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였다.
이런 절묘한 산세가 녹림에게는 천혜의 요새를 안겨 주었고 이곳의 지리를 손바닥 꿰듯 훤히 아는 그들의 눈을 피해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런 정강산에는 녹림도의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었다.
수색보다는 감시를 위한 천라지망.
총궐령.
총표파자가 명령이 떠나가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 산에는 18인의 채주와 그 휘하 도적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산세가 모이는 중앙 분지에 세워진 정강대산채(井岡大山寨).
그 거대한 대산채 안에서 자그마치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산채 중앙의 혁명장(革命場)에 들어선 채 가운데 공간을 두고 둥그렇게 둘러서 있었다. 그들 사이에선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이 감돌았는데 오늘의 총궐령이 어떤 명확한 이유도 없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혁명장 중앙으로부터 북쪽 언덕을 향해 길을 열어두고 있었고 그 끝에는 다른 가옥들보다 두 배는 큰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앞에 큰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잠시 후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그 의자 앞에 이르러 손을 번쩍 들었다.
와아아아!
거수만으로도 모든 녹림도의 함성을 끌어내는 이 남자는 바로 정강대산채의 주인이자 녹림십팔채의 대수령 총표파자 녹건왕(綠巾王) 오경방이었다.
거대한 체격과 가슴을 모두 덮을 정도의 풍성한 곱슬 수염에, 머리는 정강산림의 색을 가져온 짙은 녹색 두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은근히 드러낸 짙은 구릿빛 피부가 어울려 마치 한 마리 갈색 곰을 연상시키는 듯한 인상이었다. 허리에는 큰 표주박 술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오경방이 손을 내리자 함성이 잦아들었다. 그는 위엄이 가득 찬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녹림칠악을 위시한 18채주는 모두 모습을 보여라!”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자 녹림을 대표하는 수령들이 무리 사이를 비집고 전면에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모두 17명.
그들 면면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좌중간에 웅성거림이 발생했다. 몇 명이 그들이 기억하는 수령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경방은 그 소란을 들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죄인을 데려와라!”
죄인이라는 소리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총궐령으로 18채주들과 주요 인물들을 모두 모이게 만든 이유가 어떤 중죄인을 심판대에 세우려고 하는지 잠깐 사이에 말들이 오고 갔다.
그 가운데 이미 오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일부 인물들은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거나 대놓고 기쁨에 취해 있는 모습도 있었다.
곧 오경방과 반대쪽 무리 사이가 갈라지면서 한 인물이 두 손을 철쇄로 봉인 당하고 머리를 검은 천으로 가린 채 오경방 휘하 친위대인 황건당(黃巾黨) 네 명의 칼에 견제를 받으며 오고 있었다.
죄인의 발걸음이 마침내 혁명당 중심에 도착했다.
좌중의 소란스러움이 착 가라앉으며 이목이 죄인에게 집중될 때, 오경방의 손짓에 황건당 한 명이 죄인의 머리를 씌운 천을 벗겼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저, 저놈이 죄인이라고……?”
순식간에 좌중에서 저마다의 목소리가 겹쳐 터져 나왔다. 그들의 반응 대부분은 모두 강한 부정에 가까웠다.
혁명당 중앙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선 자는 바로 낭아도 주태소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녹림칠악 중 한 사람이자 유일하게 산채를 지휘하지 않고 홀로 천하를 유랑하는 녹림의 낭인이다. 또 녹림칠악 가운데 아직 39세로 가장 어린 주제에 실력만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녹림의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어떤 산채를 지휘하지 않음에도 차기 총표파자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녹림에 얼마나 충성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단지 녹림의 이름으로 묶어둘 수 없는 건 그의 자유분방한 성향뿐이라는 건 공고한 사실이었다.
“안녕하신가?”
주태소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당당하게 서서 오경방에게 인사를 던지는 그 모습은 이곳에 모인 녹림도들이 모두가 아는 주태소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주태소가 죄인 맞느냐는 물음이 작은 소란으로 좌중을 휘감았다.
오경방은 냉담한 얼굴로 손가락을 아래로 까딱 움직였다.
퍼퍽!
주태소 좌우에 있는 황건당 두 사람이 주태소의 오금을 동시에 걷어찼다. 어쩔 수 없이 무릎을 떨어뜨리며 꿇었지만, 주태소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치아를 훤히 드러낸 웃음으로 오경방을 올려다보았다.
오경방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닥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좌측에 있던 황건당이 허리춤의 칼을 칼집 채로 들었다.
빡!
“큭!”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쳤다. 휘청거리자 뒤에 있던 황건당이 이번엔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퍽!
주태소는 흙바닥에 그대로 얼굴부터 처박혔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예 황건당 넷이 모두 둘러싸더니 그대로 칼집 채로 주태소를 두들겨 팼다. 점혈로 단전의 기운용이 제한된 상태였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고 이내 고통 속에서 부들부들 떨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은 상황에 녹림도들은 놀란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오경방의 지시와 황건당의 행동 모두가 워낙 단호한 탓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장내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크크큭…….”
그 가운데 주태소만이 홀로 실소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그리고 왜 이 혁명장에까지 끌려와서 저 지경으로 얻어맞고 무엇이 즐겁다고 웃기까지 하는가?
오경방의 손짓에 주태소의 등을 끌어당겨 세웠다. 조소를 머금은 채 오경방을 올려다보는 주태소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다.
“주태소. 네 죄를 네 입으로 말해 보아라.”
“글쎄, 난 모르겠는걸?”
“칠악은 앞으로 나와라.”
오경방의 부름에 앞으로 나서는 7인들.
이때 좌중의 소란이 조금 일어났다. 칠악 중 한 사람인 주태소가 그래도 죄인 신분이나마 현장에 있음에도 7명이 앞으로 나선 데다가 네 사람이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2명은 그나마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2명은 녹림도의 일원이었나 의심이 가는 얼굴이었다.
부동의 서열 1위 백사자(白獅子) 독고구(獨孤究), 주태소와 함께 2, 3위를 두고 평이 엇갈리는 금비원패(金臂猿覇) 자동수(慈動手) 그리고 기존 칠악의 서열 5위였던 거붕(巨鵬) 도판수만이 원래 알고 있던 칠악의 일원이었다.
장내 소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오경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모두 조용히!”
내공을 담은 외침이 순식간에 소란을 잠재웠다.
오경방이 좌중을 쓱 둘러보더니 주태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늘 이 자리는 칠악의 재편을 선언하는 자리이며 동시에 주태소를 심판하는 자리다. 녹림칠악은 우리 녹림십팔채의 위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주태소가 왜 이 자리에 죄인으로 잡혀 와서 무릎을 꿇고 있느냐? 저놈이 바로 칠악 중 세 사람 곽주열(郭株列), 송시경(松矢勁), 금효윤(金梟尹)을 죽였기 때문이다.”
충격의 파도가 삽시간에 장내로 퍼져 나간다. 소수의 일부는 벌써 주태소를 향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험담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히 곽주열의 섬서 태백산채(太白山寨), 송시경의 하남 천중산채(天中山寨), 금효윤의 호남 천자산채(天子山寨) 녹림도들의 원성이 엄청나게 터져 나왔다. 그들도 어느 날 자신들의 채주가 살해되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 진범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었다.
이들이 죽은 것은 불과 작년의 일이었으니 그동안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흡사 관의 견제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고 새롭게 부흥의 깃발을 올린 정파인들의 도적토벌 전 수령을 제거 계획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주태소, 내 말이 틀렸느냐?”
“아아, 녹림을 위해 기꺼이 죽일 수밖에 없었지.”
마치 할 일을 했다는 식의 답변에 비난이 맹렬하게 쏟아졌다.
오경방도 분위기를 타기 위해 맞장구치며 입을 열었다.
“하! 본색을 드러내는군! 동지들을 죽이는 네놈의 저의는 무엇이냐?”
“크크!”
주태소가 실소를 머금더니 혀를 비쭉 내밀었다. 그리곤 고개를 쳐들어 혀끝으로 오경방을 가리켰다. 말이나 행동에 모두 오경방을 조롱하는 태도가 가득하다.
“오경방, 네가 잘 알 테니 모두 앞에서 얘기해라. 내가 왜 그 셋을 죽여야 했고, 최종적으로는 널 죽이려고 하는지 말이야.”
“흥! 네 죄를 면피할 생각에 자꾸 개소리만 늘어놓는군. 네가 말했듯 어차피 총표파자 자리를 탐내던 것이 아니냐? 거기에 이러쿵저러쿵 변경 거릴 덕지덕지 갖다 붙여봐야 네 죄를 변호하기엔 부족하다!”
“야이……, 크크크! 내가 녹림에서 나고 자라 애정이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하지만, 총표파자 자리 따위가 탐이 날 것 같으냐?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라. 네놈이 마교도라는 사실을 말이다!”
주태소의 충격적인 발언들로 인해 좌중에서 또 다른 반응들이 쏟아졌다.
작금에 중원인들이 마교라 통칭하는 천마신교는 지난 삼문협에서 동지들을 대거 수장시킨 기억으로 인해 녹림도에게는 상당한 반감이 돌고 있었다.
정사가 힘을 합쳐 창천맹을 창설하는 동안, 녹림은 그동안 줄곧 자신들을 토벌대상으로 삼아온 정파인들과 손잡을 수 없었기에 오히려 사패련 때보다 관계가 멀어진 상황이었다. 새외에선 천마신교가 거병에까지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며 세력을 키우고 있고, 안에서는 창천맹이 거기에 대항해 세력을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녹림은 제3의 세력 위치에서 그 위상이 점점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녹림도의 대부분이 중원에 출신을 두고 있었기에 누구를 더 적대시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자연스럽게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놀란 눈으로 오경방에게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오경방은 주태소의 지적에 흔들리지 않았다.
“흥! 아주 영악한 놈이로구나! 녹림의 부흥이나 운영에 그동안 관심을 단 하나도 두지 않던 네놈이 평생을 녹림십팔채에 기여한 나를 그따위 말로 모함해?”
“그럼 녹림의 운영에 관심을 하나도 두지 않은 내가 무슨 욕심으로 총표파자 자리를 탐냈단 말이냐?”
“뭐? ……푸하하하! 네놈이 유랑만 하며 놀러 다니더니 는 거라고는 주둥이 놀리는 것뿐이냐? 그럼 내가 마교도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너처럼 이 몸도 녹림에서 나고 자란 몸이거늘!”
주태소의 반문에 오경방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날카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증거라…… 증거. 큭! 긴말 필요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내가 대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오경방! 너에게 적수비혁전(赤手比革戰)을 신청한다.”
주태소의 눈이 살의로 번뜩이자 오경방도 내심 흠칫 놀랐다.
적수비혁전.
녹림은 본래 혁명을 주도하려던 민병세력이 그 근간이었다.
그 혁명의 방향을 두고 현재의 모든 계급을 내려놓고 일전을 벌여 누구에게 녹림의 총지휘권을 맡길 것인지 하는 결정하는 대결로 새로운 총표파자 취임식의 전야제(前夜祭)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총표파자를 추대 형식으로 세우기 때문에 이 적수비혁전은 사실상 칼춤만 추다 끝나는 형식적인 전야제로 격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주태소가 요구하는 것은 본질적인 의미의 적수비혁전이었고 그 의중을 좌중의 모든 녹림도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오경방에게도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쯧쯧! 이런 식으로 제안하는 적수비혁전은 간부의 과반 동의를 얻어야 함을 모르느냐?”
“네가 그 뒤에 숨을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칠악 중에 내 자리를 포함하여 빈자리들을 네 하수인으로 앉혀 여기서 칠악이라고 소개한 것 아니냐? 자, 어디 한번 저놈들의 이름을 읊어 보아라. 칠악에 걸맞은 실력이 있는지도 의문이구나!”
“흥! 네놈을 잡아 온 자가 저들이거늘!”
“떼거리로 포위했으니 까짓거 잡혀준 거지.”
“칫……!”
주태소의 말은 분명 틀린 것은 없었다.
그의 칠악 중 셋을 제거한 행동은 결국 오경방에게 덜미를 잡혔고 그 수하들을 보내 주태소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여 함정을 펼친 것이었다. 본래 오경방은 주태소가 반항을 하다가 죽기를 바랐지만, 그가 순순히 사로잡히자 현장에서의 처형이 어려움을 깨달았다.
주태소가 산채를 지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천하를 떠돌면서 십팔채 모두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거나 어린 녹림도를 지도하는 등 모습을 보여왔기에 모두가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죄인의 신분으로 잡혀 온 것이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건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었다.
오경방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주저할 때, 반론은 다른 자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주태소! 네가 우리를 능멸하느냐? 감히 채주님을 죽여 놓고서……, 감히!”
“궤변 따위 늘어놓지 말고 죗값을 치러라!”
변상우(便桑牛), 장위(張威)가 소리쳤다. 그들은 주태소에게 죽임을 당한 칠악 배웅탁(拜雄卓), 서관주(西觀朱)가 채주로 있던 산채의 부채주들이었다. 오경방이 호명한 칠악으로 나섰으니 그들의 빈자리를 이어받은 셈이었다.
주태소가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내가 수령들의 목만 딴 건 그들의 책임을 동지들에게 연좌(連坐)로 묻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들의 목까지 쳤으면 두 산채에 얼마나 큰 혼란이 왔겠느냐?”
“저, 저 쳐죽일 새끼!”
변상우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장위도 흥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흥분이 영향을 미쳤을까?
다른 녹림도 사이에서도 이내 원성이 쏟아졌다. 물론 아직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원색적인 저주를 퍼붓는 자들도 나왔다. 그 정도의 적대적인 분위기에 아직 판단을 주저하는 녹림도도 조금씩 휩쓸리고 있었다.
오경방은 분위기가 전환되자 득의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흥! 자리가 탐이나 동지를 죽이고 흉계를 꾸미던 반동분자 주제에 적수비혁전이 가당키나 한 말이냐? 재판을 더 이어갈 필요도 없다! 오늘 여기 있는 일곱 명은 새로운 칠악으로서 녹림의 가치를 수호할 것이다! 그리고 주태소는 대산채 입구에 매달아 3일간 투석형(投石刑)을 치른 뒤에 그 머리를 베어 효수(梟首)함으로써 녹림의 기강을 세울 것이다!”
“크흐흐흐! 오경방아, 오경방아! 녹림십팔채를 호령하던 녹건왕의 패기는 어디 가고 허수아비 뒤에 숨어 대결을 피하려 하느냐? 네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그러는 것이냐?”
“황건당은 뭐하느냐! 저놈의 입을 틀어막고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도록 기해혈에 봉신침(封神針)을 꽂아라!”
“오경방아, 나와 붙…… 읍!”
황건당이 머리의 두건을 풀어 재빠르게 주태소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를 눕혀서 억누르고 상의를 걷어 올렸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다른 황건당이 품에서 침함을 꺼내 열여 특수하게 제작된 작은 녹침(綠針)을 꺼냈다.
그것은 본디 약재를 가공하고 압축시켜 만든 침으로써 내공을 이용해 경화(硬化)시켜서 직접 혈 자리에 꽂아 약효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봉신침은 녹림에서 주로 잔혹한 형벌을 내리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 이 녹침을 치료 목적의 약재가 아닌 독초를 섞어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기해혈에 박히면 체내에서 모두 녹는 데까지 닷새가 걸리는데 그동안 내공도 운용하지 못할뿐더러 서서히 독성도 몸에 퍼지면서 큰 고통을 안겨 주게 되어 있었다.
황건당 셋이 주태소의 신체를 억누르고 녹침을 든 한 명이 그것을 주태소의 기해혈에 침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박아 넣었다.
“끄으으……!”
곧장 신음이 흘러나오면서 주태소의 두 눈이 고통에 부릅떠지며 충혈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오경방이 살기 띤 미소를 머금었다.
“너희는 매달기 전에 데려가서 혈액순환 좀 시켜 주어라! 우리는 새롭게 결성된 칠악을 위한 축제를 벌일 것이다!”
녹침의 고통에 상당했는지 주태소의 충혈된 눈은 어느새 반쯤 까뒤집어져 있었다. 고통으로 몸도 바들바들 떨며 가누지 못하고 있었으니 황건당 둘이 주태소를 들쳐메고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자들도 있었고, 벌써 돌을 들고 던질 준비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으로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다.
새로운 칠악을 축하하는 오경방에게 답례로 인사를 하면서도 굳은 표정으로 끌려가는 주태소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도판수도 그러한 자 중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