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77화 (77/432)

77화 - 제16장. 인연의 갈래들 (1)

쿵!

어디선가 조용한 굉음이 들려왔다.

천무전의 집무실에서 서류들을 붙잡고 붓으로 내용을 기록하고 있던 총관 서일헌은 슬쩍 천준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서일헌이라고 이 굉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천준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묘하게 차이를 갖는 부분이 있었다.

서일헌이 피동적으로 이 자리에 와있는 거라면 천준은 본인 스스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천무방 방주대행.

창천맹의 창설로 천무경이 맹주가 되면서 지혼당주 천준에게 방주대행 자리를 맡겼다. 그리고 천무방의 상담 체제를 네 개 당으로 확장하여 재편하였다.

먼저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만 있던 장로전을 노지신의 죽음으로 폐지하였다.

대신 잔존한 두 장로와 두 당주에게 현역으로서의 중임을 맡겼다.

첫 번째로 적멸당(赤滅黨)을 세워 백두기로 하여금 100명의 절정고수를 모으도록 하였다, 사실상 천혼당 고수 중 다수가 이 안에 들어왔다. 적멸당의 역할은 적의 핵심 전력을 세밀하게 타격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로 장태환에게 남월당(藍越黨)을 맡겨 천혼당 일부와 지혼당 전체를 포함했으며 천하에 인재들을 두루 모아서 천 명의 전투단 결성을 목표로 하였다.

세 번째는 백무당(百武黨)은 2천 명까지 지속해서 모집하며 인재육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들은 천무방의 파천신공을 제외한 모든 무공비급을 개방하여 개개인의 개성에 맞게 수련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다양한 분야의 무공에 대해 이해가 깊은 남궁평이 담당했다.

마지막 네 번째는 황검당(黃劍黨)을 만들어 이혁성을 필두로 한 50인의 검사당(劍士黨)을 조직하게 했다. 이들은 천무방의 북천검법, 야천유운검 그리고 천뢰삼검식 3개 검법만 집중 수련하게 하여 빠른 성장을 도모, 핵심 전력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인재양성은 향후 천마신교와의 결전을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사파제일 천무방의 역할을 위해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산서 태행산맥(太行山脈)의 대협곡(大峽谷)에 수련장을 만들어 장태환과 남궁평이 직접 수련시키고 있었다. 남월당 일부 시험에 통과된 자만 태원의 천무방에 돌아와 지내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 양측을 꾸준히 오가며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역할을 서일헌이 담당하고 있었다.

“월무협(越武峽)의 상황은 어떻소? 입방을 요청하는 자들을 꾸준히 보내고 있는데 아직 숫자가 안 맞춰지는 것이오?”

“옥석(玉石)을 고르니 아무래도 남월당의 인원을 채우는 속도가 좀 늦습니다. 백무당은 오히려 초과한 상태인데 생각보다 포기하는 자가 별로 없어서 현재는 2500여 명이 훈련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봉문한 정파 문파들도 다시 문호를 활짝 여니 강호에 뜻이 있는 자들의 인원이 갈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천무방이 사파제일방으로서 위세가 드높지만, 정파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에 끌리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쿵!

“흠, 그래서 남월당 숫자는 얼마나 되오?”

“827명 수준입니다.”

“지난달과 비교하면 고작 스무 명 정도만 늘었군.”

“이장로께서 수준의 한도를 낮춰야 할지 고민하고 계십니다.”

쿵!

“수준을 낮출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성장에 대한 동기를 잃을 것이오. 이장로께는 계속 현 수준을 유지해달라고 말씀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아, 제가 데려온 소진(笑真)은 어디에 배정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시험을 위해 이혁성 당주에게 안내하였습니다만.”

“훗! 에마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소? 우리 식 발음이 이상하다고.”

“혹시 천 대행께서 그게 편하실까 봐, 허허!”

에마는 왜(倭)에서 넘어와 강호를 떠돌며 명성을 날린 여류 낭인으로, 벚꽃 수가 놓인 옷을 항상 입고 다닌다고 하여 앵화검(櫻花劍)이라는 별호가 생겼다.

알려지기로 가문에 죄를 지어 바다 건너 도망쳤다고 하였으나 사실 천무방에 있어 출신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능력만 중요했으니 그녀의 쾌검에 대한 명성이 대단하여 이혁성에게 시험을 맡겨 놓은 것이었다.

“황검당도 아직 세 자리가 비어 있으니 이 당주 판단에 맡기…….”

쿵!

굉음으로 인해 천준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서일헌이 피식 웃었다.

“아직 적응 안 되시지 않습니까?”

“쯧, 여자가 저리 거칠게 수련하니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몸 추스르자마자 무화동에서 두문불출하시니 의지가 대단하시지요.”

“쯧쯧…….”

쿵!

천서은은 복부를 꿰뚫린 중상에서 힘들게 회복하여 일어나자마자 무화동을 차지해서 단 한 번도 바깥바람을 쐰 적이 없었다. 오직 그녀를 항상 곁에서 수발을 들었던 영란만이 규칙적으로 무화동에 왕래할 뿐이었다.

이 굉음도 그녀의 수련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저 짐작하기론 무화동 안에 있는 거대한 화강암을 벽뢰장으로 두들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었다.

“차라리 매일 듣는 소리였으면 적응이라도 할 텐데, 이런 상황이 불규칙하니 참…….”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리하고 나가시지요.”

“그럽시다.”

“적멸당 상황은 어떻습니까? 100인 채우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소. 이제 90명이 딱 되었으니 지금 같은 흐름이라면 앞으로 반년 정도 뒤엔 100인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오.”

“오는 길에 곡소리가 들리더군요.”

“방에 가입하기로 한 이상 쉽게 물릴 수 없는 데다가 백 장로님이나 장 장로님 모두 혹독하게 수련시키시는 분들이니 아주 죽어 나갈 것이오. 큭큭!”

“허허허! 그래도 두 분은 천무방의 절대 고수들이니 그분들께 지도받는 영광을 더 크게 생각할 것입니다.”

무공이 상승의 경지에 오르면 육체적인 고통은 심지가 무너지는 데 작용하는 바가 적어진다. 오히려 남월당과 백무당에서 포기하는 자들이 일부 나왔다면 적멸당은 그런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높은 수준을 요구받아 통과한 자들이라면 수련이 혹독하다는 이유로 낙오하는 것은 강호의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적멸당에 추가된 명부를 작성하는 것을 마친 천준이 서일헌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갑시다, 얼른.”

쿵!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굉음이 조용히 들려왔다.

천준과 서일헌은 정리된 서적들을 책장에 꽂고 천무전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는데 마침 천무전 문을 열고 영란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란이야.”

“방주 대행님께 인사 올립니다.”

3년이 지나면서 열아홉이 된 영란은 더 성숙해지고 미모가 꽃피우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에는 천서은의 무복 한 벌을 들고 있었다.

천준은 그녀의 위아래를 슥 훑어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무화동에 가는 게냐?”

“그러하옵니다.”

“서은이에게 전해라. 조카의 소란 때문에 숙부가 환청이 들릴 지경이라고.”

“아마 두 달쯤 후에 폐관을 깨실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예, 아씨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흐음, 알았다. 가 보거라.”

영란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복도를 따라 무화동으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흘겨보는 천준의 시선이 무심코 영란의 둔부에 잠시 머물렀다.

서일헌은 그의 눈치를 살피곤 앞서 걸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천 대행께서는 부디 실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크흠!”

천준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서일헌을 앞질렀다.

“부인도 있는데 실수는 무슨. 그저 저 아이가 저렇게 컸나 새삼 느껴서 그런 것이오.”

“공녀가 아끼는 아이인데 괜히 건드렸다가 진노(震怒)를 사실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크흠, 흠! 절대 감당 못 하지! 내 그걸 설마 모를까?”

끼익!

천준이 서둘러 천무전의 문을 열면서 힘주어 말했다.

천서은은 이미 사패소룡비무전을 기점으로 당주들에 가까운 실력으로 평가받았는데, 3년 동안 폐관 수련한 결과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천준은 그녀의 재능이 천무경에 비견될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겨뤄 볼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백무당에서 수련 중인 그의 아들 천윤(天閏)이 천무경, 천서은 부녀의 재능을 어느 정도 따라가길 바랄 뿐이었다.

천무경은 천윤에게도 언젠가 직접 사사할 계획도 있다고 하였으니 만약 천서은만 동의한다면 가문의 방가인 그와 천윤이 천무방을 이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천서은이 방주 후계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그저 희망 사항에 그칠 것이었다. 그렇다고 천준 본인이 무슨 흉계를 꾸밀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천무경에게 두려움과 경외심 모두를 가진 사람이었다.

* * * *

양자성은 도대체 서쪽으로 얼마나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한족의 행상인(行商人)인들을 따라가다 보니 유목민족들을 만나고 또 그렇게 조심해서 따라다니다가 이번엔 다른 민족끼리 섞인 상인들도 만났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몽골족도 있었고, 거란인도 있었고, 회골(回鶻:위구르)족도 있었다. 특히 회골족은 중원에서도 보이는 회족(回族)들과 문화적으로도 매우 달랐다.

그들의 복색은 한족과 사뭇 달랐는데 복식의 구성 자체는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색상이나 무늬를 수놓았고 머리에는 대부분 낮은 원통 형태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성들도 비슷한 느낌의 화려한 복색들이 눈에 띄었는데 종종 머리를 긴 천으로 덮어 머리카락을 가리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양자성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아니었다. 동서로 오가는 행렬들 가운데 섞인 한족들과 이민족들 가운데는 무공을 익힌 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기척과 행적을 뒤쫓고 있었다.

이들의 수준은 낮았기 때문에 양자성은 쉽게 여행자인 척 복색을 바꾸어서 접근했고 쉬이 그들의 여행로를 확보하여 함께 이동하였다.

양자성은 이런 자들이 바로 천마신교의 교도들임을 알았다.

회골족은 회회교(回回敎:이슬람)라는 종교를 갖고 있어서 하루 5번 바닥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문화 등으로 구분되어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무공을 익힌 자들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기도할 때가 되었소?”

행상에 섞여 함께 이동하던 후대선(侯大禪)이라는 자가 양자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짐말을 세우고 내려 동쪽에 반쯤 기울어져 보이는 태양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특별히 불호(佛號)같은 것을 소리를 내 외진 않았지만, 입술을 조금 달싹이고 있었다.

언젠가 양자성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광명 아래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이들의 하늘이 말 그대로의 하늘이 아닌 어떤 선지자를 뜻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후대선이란 인물과 오랫동안 함께 다니면서 그 하늘이 바로 ‘천마’를 뜻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후대선의 무공은 거란의 마적(馬賊) 떼의 습격으로 드러났는데 양자성은 단번에 그의 무공 특성이 마공임을 알아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검림과 염황종의 격돌, 강정학과 염황신마의 격돌에서 본 염황신마의 무공과 많이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칼에서 아른거리듯 이글거리는 불길의 기운은 속임수 없이 마적들의 상처와 옷자락을 불태워 버렸고 결국 고통에 기겁하며 도망쳐 버렸다.

양자성도 자신의 검술을 보였으니 후대선과 그는 서로의 무공에 감탄하며 의지하게 되었다.

“되었습니다. 가시죠, 형제.”

이동하면서 그런 마공을 익힌 자들을 후대선 외에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또 후대선은 그런 자들과 일부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꽤 친근하게 굴었다.

청해 합랍호(哈拉湖)라는 호수 근처에서 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던 그가 후대선을 만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두 사람을 포함한 행상은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후대선의 말에 따르면 이 산을 넘으면 신강(新疆)이라고 했다. 드넓은 초원과 분지, 메마른 사막, 서쪽으로 세상의 끝일지 모르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이 펼쳐져 있다고 하였다.

양자성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천산산맥 어딘가에 있을 천마신교의 본산을 찾아가 그 교주라는 인간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강정학과 염황신마의 대결에서 그는 마공의 신비로움을 보았다.

검기, 검강 같은 것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능력일진데 거대한 화염을 지배하며 그것이 바람에 그저 휘청거리는 불길도 아닌 검기, 강기와 같이 유형화하여 충돌하는 광경은 가히 경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것은 그의 눈에 또 한 차원 다른 수준의 무학으로 비쳤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열망이 백령신검 강정학의 후광이 아닌 마공이 가진 순수한 힘을 향한 열망과 닮았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가는 방향을 향해 양자성은 그런 기대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힐끔 양자성의 표정을 살피던 후대선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제는 재밌는 여행자요. 이런 오지까지 무슨 바람이 있어서.”

“하하하, 세상에 다양한 무학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꿈이오. 청해의 유목민족들의 기마술과 창술의 대단함을 보았는데 신강의 민족들은 또 어떨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소?”

양자성은 능숙하게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후대선이 그에게 큰 도움을 주는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천마신교와 검림 소속인 그는 적대관계였으므로 괜히 신분이나 목적을 모두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후대선이 그를 양자성이 아닌 ‘장성일(張星日)’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이유였다.

“장 형제는 검술이 그리 뛰어나신데 욕심이 참 많으시오.”

“후 형제의 도법보다야 하겠소. 내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런 화도(火刀)를 다루는 무공은 단 한 번도 없소이다.”

역시나 거짓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염황신마의 무공을 떠올렸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알까, 후대선이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좋게 봐주니 고맙소이다. 혹시 내 사문을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아니…… 없었던 것 같소이다.”

양자성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염황문(炎皇門)이라 하오.”

“염황문? 처음 들어보오.”

“중원에는 귀주(貴州)의 범정산(梵淨山)에 근거지가 있지요. 가 보셨소이까?”

“아아, 산세가 무척 험하고 특이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또 귀주에 그런 문파가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듣는군요.”

“범정산에는 불교사찰도 있습니다. 다만 모두 은밀히 염황문의 비호를 받을 뿐이지요. 범정산은 기산(奇山)이라 하여도 좋을 정도인데 특히 산의 정점에서 두드러지게 솟아오른 바위 지형들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모습이 가히 절경이지요. 사람들은 그 바위를 버섯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도 작은 산만한 높이입니다.”

후대선은 간만에 고향에 가까운 지역 얘기를 하는 것이 꽤 흥을 돋웠는지 손짓을 섞어가며 신나게 얘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양자성은 후대선이 말한 염황문이 바로 천마신교의 염황종임을 쉽게 알 수 있었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호오, 그렇습니까? 언젠가 다시 돌아가면 꼭 한번 가 보고 싶군요.”

“하하, 물론 저희 문파가 외지인을 함부로 받진 않소이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구경 정도는 하실 수 있으실 것이오.”

“후 형제께서 구경시켜 주면 되지 않겠소?”

“하하핫! 장 형제가 그리 말하니 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소.”

“호오,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염황문에서도 높은 직을 갖고 계신 모양이오? 전 제가 괜히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에 실례인 것 같아 바로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원래 버섯바위들은 범정산 사찰들을 통해서도 구경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오. 홍운금정(紅雲金頂)만이 접근 자체를 불허할 뿐이지요.”

“홍운금정?”

“문주님과 그 호법들만이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오.”

“아아!”

염황신마의 근거지.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신교의 진체(眞諦)를 보고 싶은 욕심도 컸지만, 염황종도 그의 열망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존재였다.

후대선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몇 달을 같이 다니면서 아주 친해졌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범정산이나 홍문금정은 그 지형 때문에 바람이 아주 기이하게 불고 또 매우 서늘한 곳이오. 운해도 자주 머무니 습도가 매우 높지요. 그런 환경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쉬운 일이겠소이까?”

“그런 곳이라면 마른 장작 구하기도 힘들 곳 같소이다.”

“그렇지요. 바로 그런 환경에서조차 불길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염황문 무공의 대단함이라오.”

“후 형제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소.”

“허허허!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 불길의 열기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수행이 필요하오. 불길을 다룬다고 해도 우리의 내공이 그 열기를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기에 정기적인 수행으로 체질과 내공의 성질을 정제할 필요가 있소. 내가 신강에 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오.”

“신강에 그런 곳이 있소?”

“혹시 과거 현장(玄奘)이라는 중이 불교 경전을 얻기 위해 천축(天竺)으로 여행을 떠나는 구전설화를 들어본 적이 있소?”

“아, 화과산(花果山) 손오공(孫悟空)을 데리고 말이지요?”

“아시는구려. 꽤 재밌는 설화이니. 그 내용 중에 손오공이 파초선(芭蕉扇)으로 불을 껐다는 화염산(火焰山)이 바로 그곳에 있소이다.”

“오오! 그럼 그곳이 바로?”

“그렇소. 본 염황문의 순례지(巡禮地)라오.”

염황종의 순례지, 화염산.

그렇다면 분명 천마신교의 흔적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찾아다녔다가는 금방 신분이 노출될 것이기에 청해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2년여 시간 동안 지내면서 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그들의 관습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여 떠나는 길에 후대선을 만나 청해 일대를 떠돌며 친분을 쌓고 이제 이런 중요한 정보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제 정말 목적지가 다 와 가는 느낌이었다. 그 설렘이 은연중에 양자성의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후대선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실눈으로 양자성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양자성, 얼마 남지 않은 편한 여행길 충분히 즐기시게.’

후대선은 그의 이름이 장성일 같은 이름 따위가 아님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양자성은 이미 2년 전부터 천마신교의 감시망에 들어왔으며 그의 목적이 평범하지 않음을 파악하고 후대선이 연기하며 접근한 것이었다.

물론 양자성은 장성일로서 후대선을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산길을 따라가면서 언덕의 정점에 이르렀다. 시원했던 공기가 사뭇 무겁고 뜨겁게 바뀌는 것을 느꼈다.

후대선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신강이오. 날씨가 뜨겁더라도 팔을 함부로 걷거나 옷을 벗지 마시구려. 새까맣게 살이 익을 수 있으니.”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모래의 평원, 수많은 유사(流沙) 언덕들과 초록을 머금은 작은 산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선 반대편 세상의 끝에 천산산맥이라는 눈 덮인 산의 장벽이 펼쳐져 있었다.

“놀랍군……!”

“후후, 이제부턴 정말 한 몸이 되어 움직여야 하오. 길 한번 잘못 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말라죽을 테니까.”

“후우……! 확실히 그렇구려.”

양자성이 숨과 함께 폐에 찬 열기를 토해냈다.

행상인들과 그들의 짐말이 먼저 움직이고 후대선과 양자성이 그 뒤를 따랐다. 무슨 팔 물건들이 그리 많은지 조심스럽게 산의 내리막을 걷는 짐말들의 뒤뚱거리는 모양새가 꽤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모습에 피식 웃다가도 다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신강의 거대한 광야와 뜨거운 공기에 숨이 텁텁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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