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제15장. 조가장(趙家莊) (5)
처음 그를 마주 보았을 때, 야율재는 조강선이 그 정도로 강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야율재는 흑풍신마의 모든 무공을 이었으며 심지어 야율강이 살아 돌아와 그와 겨룬다고 해도 끝내 이기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능히 천마신교의 교주에게 도전해서 그 자리를 쟁취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야망은 몽골 초원보다 넓었다.
하지만, 조강선과 충돌하였을 때 그는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천외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스승이 당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격은커녕 방어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어처구니없을 지경이었다. 흑풍신마라는 이름의 위용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할 줄이야.
월륜도는 조강선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것만 같은 조강선은 그의 초식을 훤히 내다보는 듯했다. 그의 공세는 잠깐뿐이었고 곧장 수세에 몰렸다.
기공을 모을 시간조차 없었다. 조강선의 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고 강기는 사방에서 쏟아졌다.
호신강기로 버텼지만, 그 충격은 온몸으로 전해졌고 몸에도 잔 상처들이 생겨났다.
만약 조강선 스스로 검을 놓지 않았다면 그는 곧 엄습해 올 죽음의 공포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두 달 전…….
첫인상은 참 말끔하게 생긴 노인네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탁함이 없고 고요함을 일컬어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중원에서 표현하곤 한다는데 자신이 조강선이라는 이 노인은 존재 자체가 그러한 느낌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는지 위협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부친이자 전임 흑풍신마 야율강을 자신이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월륜도를 뽑아 들고 노인네의 말라비틀어진 살점을 가볍게 도려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검이 뒤섞이면서 불과 스무 합도 겨루지 못하고 그는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초식의 운용, 검속 등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힘만이 비등하다 생각했지만, 운용의 묘에서 밀리니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마치 무공을 몇 수 배웠다고 부친에게 덤볐다가 혼쭐났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떠올릴 정도였다.
승기를 잡자 쏟아 내는 검강에 신경을 집중하여 호신강기를 펼쳐 내며 반격의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처럼 맹렬한 강공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쾅-!
호신강기는 흔들려 온몸에 충격이 강타하고 도무지 궤적을 알 수 없는 검로와 검풍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온몸에 상처를 만들어 냈다. 당장 상처는 얕았지만,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진다면 어찌 될지는 눈앞이 까마득했다.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기분이란…….
휘이잉……!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 속에 갇혀 있다가 일순 씻은 듯이 사라지며 바람만이 주변을 감돌았다.
월륜도의 넓은 도신 뒤에 숨은 채 두려움을 삼키던 야율재는 순간 찾아온 고요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검을 땅에 박아 거기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영문을 몰랐다.
분명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 존재감은 바로 옆의 돌덩이만도 못했다.
거친 호흡과 살짝 풀린 동공, 희미한…… 쓴웃음.
“……여기까진가 보군.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해 천하가 더 큰 혼란과 고통에 신음하였는데 결국 내 손으로는 매듭을 짓기엔 무리였는가…….”
넋두리 같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오롯이 모든 신경을 조강선에게만 집중하던 야율재의 귀에는 선명하게 꽂혔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말은 바로 야율강을 일컬음이요, 매듭을 지을 대상은 야율재 자신이었으리라.
“크크크! 결국 살아남은 자가 승자요, 역사는 승자만의 기록 아닌가?”
쿠쿠쿠쿠!
비스듬히 기울인 월륜도.
그를 중심으로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발밑에서부터 허리를 타고 두 팔을 따라 월륜도의 도신을 감싼다.
조강선의 기력이 쇠했음을 알았지만, 이 싸움의 결과로 생존을 승리로 포장하는 일은 그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어디서 시건방질 이냐!”
큰 보폭, 그만큼 더 커다란 참격. 그 모두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검은 도격이 그의 전면을 집어삼키며 조강선을 향해 쏟아졌다.
콰아아!
이유는 모르겠으나 다 죽어가는 노인네.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그렇게 일격에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으나 그가 뿜어낸 거대한 도강을 뛰어넘은 것처럼 지나간 자리에 솟아나듯 나타난 조강선.
가라앉은 눈빛, 희미한 미소 그리고 좌측 머리 뒤로 검을 숨긴 조강선의 모습에 야율재의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핏!
언제 베고 지나갔을까.
하얀 수평의 섬광이 나타났다는 착각과 동시에 조강선의 검은 어느새 오른쪽으로 뻗어 있었다. 분명 늦지 않게 월륜도를 들어 올려 막았다고 생각했으나 손에 느껴지는 충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동시에 발동한 호신강기를 뚫고 옷자락이 잘려 나간다. 수축한 대흉근에 붉은 가로 선이 그어지더니 입을 벌리고 피를 쏟아낸다. 그의 주위로 수평의 검풍이 10장 밖까지 날카롭게 퍼져 나갔다.
“커헉! 미친…….”
야율재가 입으로도 피를 쏟아 내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다. 월륜도마저 손에 넣으며 반쯤 갈라진 가슴을 주변을 급히 점혈하며 두 손으로 움켜쥐듯 압박했다.
[다시 네가 나타났듯, 내 제자도 나타날 것이다. 진도건…… 기억하거라.]
전음인지 뭔지 모를 흐릿하지만 선명한 음성이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든 야율재의 눈앞엔 땅에 박힌 조강선의 검 한 자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존재.
황망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크크큭……! 이 영감탱이가 씨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사라진 거야…….”
비틀거리며 일어난 야율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가슴의 상처는 깊어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호신강기에 더불어 두꺼운 근육이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걸음을 옮겨 조강선이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땅에 꽂혀 있는 검을 뽑았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의 손에는 작은 평범한 철검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철검의 검신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왼손으로 검날을 꽉 움켜쥐었다.
쨍!
조강선은 선천진기가 거의 고갈되면서 더는 속세에 머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지막 일검으로 야율재를 베었다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 짐을 제자에게 지우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이라 여겼다.
초원의 어느 메마른 숲에 도달하자 숨어 있던 개방의 광개(廣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르신.”
“흑풍신마는 처리하지 못했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전쟁이…… 더 길어지겠군요.”
조강선은 묵묵히 자신의 헤진 백의포(白衣布)를 벗어 주었다.
“이걸 조가장에게 전해주게. 조가장에는 내 손주에게 미리 일러둔 말이 있으니…… 아마 내 제자가 다시 오겠지.”
“진도건을 얘기하시는군요. 아직 회복 중이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다행히 그의 그릇은 깨지지 않고 더욱 커졌지. 금방 힘을 얻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어르신은……?”
“난 여기서 쉬다 가겠네.”
“그럼 소인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광개가 자리를 떠나가자 조강선은 다시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광개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평온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그에겐 삶의 어느 때보다 버거운 시간이었다.
“후우!”
주변을 잠시 살피던 그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겨 숲 밖으로 나갔다. 바로 시야에 눈 덮인 바위 하나가 눈에 뜨였다.
발을 질질 끌 듯 엉기적거리며 바위에 도달한 그는 호흡을 깊이 한 번 들이마시곤 바위 위로 훌쩍 뛰었다.
무사히 바위 위에 착지했으나 그만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눈더미의 냉기가 두 다리와 바닥을 짚은 팔로 전해졌다.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심스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두 손은 단전 아래 가지런히 모으고 초원의 바람을 느끼며 호흡을 다스렸다. 한 꺼풀에 불과한 얇은 상의가 바람에 연신 펄럭이고 백발의 수염과 머리카락도 바람에 밀려 휘날렸다.
살을 에는 듯한 이 겨울바람을 차갑다 느낀 게 어언 백 년도 지난 일이었건만, 이제는 그 추위로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새삼 반가운 마음도 잠시, 그런 평범한 감각도 호흡을 깊이 가라앉힐수록 조금씩 다시 무뎌져 갔다.
다시 한서불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육신의 감각이 영혼에서부터 이탈하고 있었다.
게슴츠레 뜬 눈에선 빛이 점점 꺼져가고 피부도 생기를 잃어 갔다.
의식은 이미 수면 아래 깊은 곳에 가라앉아 공허한 우주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지난 백오십여 년의 세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한 가문의 적장자로 태어나 전쟁터에서 살아왔지만, 나라에게 버림받아 강호로 쫓기듯 도망쳤다. 주백자라는 인생의 벗을 만나고 유변이라는 뜻을 나눌 벗도 만났다.
우리의 손으로 키운 원건은 강호의 적이 되어 우리의 손으로 목숨을 거두었으니 그 한을 마주하는 우리 셋의 방식은 모두 달랐으나 누구의 한이 더 컸는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속죄의 변을 위해 고아를 거두어 검을 가르쳤다 하나 아이의 성장에 내가 한 일이 뭐가 있을까? 다만 내 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린 제자에게 떠맡기고 이렇게 떠나게 되니 속세에 대한 끈을 놓기 너무나 아쉽다.
제자야, 도건아. 인생의 길에 정답은 없겠으나 연(緣)을 귀하게 여기고 의(義)를 고민하는데 주저하지 말아라. 그러면 긴 인생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겠느냐? 내 피를 이은 손주보다 너의 얼굴이 보고 싶은 건 지난 3년간 널 살리기 위해 했던 나의 수고가 내 빚을 좀 덜어준 느낌 때문이지 않을까…….’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들에 분노와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을 차례대로 느꼈다.
인생의 마지막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속에서 바스러져 가는 육신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폐허 속에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던 꼬마 아이.
작은 목검을 손에 쥐여 주던 때.
검을 함께 휘두르며 검결을 지도하던 일.
어느덧 성년이 되어가는 아이의 모습에 책임감을 다시 지기 싫어 도망가던 날.
신분을 숨기며 무림을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한 강적을 상대로 분투하는 제자의 모습.
원건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혈마로의 폭주.
엉망진창이 된 제자의 몸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 세월 동안 이뤄 놓은 모든 것을 쏟아붓던 날들.
보름 동안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검무.
마침내 정신이 돌아왔을 때, 품에 안겨 울음을 쏟아내던 제자.
아아, 도건아.
내 가는 길에 이렇듯 너의 우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건 속죄의 짐을 조금 덜었기 때문이더냐?
아아, 건아.
나의 검으로 너를 키웠고, 나의 검으로 너를 베었으며, 피투성이가 된 너를 화산에 묻고 떠나갔던 나를 용서해 주겠느냐?
상천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느냐?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느냐?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가는구나.
부디 나를 맞이하여 용서를 받아 주기를…….
조강선.
몽골 초원의 어딘가 작은 바위 위에서 마침내 우화등선하였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입고 있던 얇은 백의만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안에 남아 있던 한 줌의 온기는 쓸리듯 흐르는 눈가루에 차츰차츰 덮이며 조금씩 모습을 감추었다.
* * * *
청의향 마원당의 뒤뜰 정자에서 다도를 즐기는 일은 어느새 유변의 삶의 낙처럼 되어버렸다.
정자 밖으로 보이는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산들과 그 사이로 끼어있는 운무,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 때때로 그사이를 날아다니는 산새들의 모습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씻은 듯 사라지며 마음이 고요해졌다.
사마월도 종종 이곳에서 유변과 마주 앉아 차향을 즐기게 되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매일같이 함께 앉아 있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유변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조금씩 되짚어 보니 조강선이 나타났던 때부터였음을 깨닫게 된다.
수십 년을 보지 못했던 벗과 고작 단 이틀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했던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사마월은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있었다.
그가 유변의 말벗을 자청하며 함께 차를 즐기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강선의 일을 떠올리고 보니 그가 서둘러 떠났던 일을 떠올렸다.
일월신마와 천무경의 맞대결과 진도건이라는 조강선 제자가 혈마로 폭주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결과의 세세한 부분은 알 수 없었다.
유변이 가끔 그 일을 떠올리며 조강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제자를 구했을 거라고 믿는다며 중얼거리곤 했었다.
구마진이 찾아와 행패를 부린 일도 있었다. 일월신마가 진도건을 폭주시킨 후, 그 결과에 대해 떠들어대는 바람에 그 얘기를 듣고 자신에게 주어졌어야 할 힘이 엉뚱한 데로 샜다며 제2의 홍천환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를 해댔다.
물론 그는 목적한 것을 얻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유변은 어딘가 삶에 초탈한 듯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더는 의술이나 약제술에 관한 연구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청의향 안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보다가도 아침저녁에는 이곳에 와 차만 마시며 자연의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흐음~ 흠~.
산자락에 걸친 운해를 올려다보며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는 유변의 모습에 사마월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유변은 자주 정자 밖으로 보이는 높은 산자락을 비스듬히 올려다보곤 했는데 그가 누구를 그리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유변이 찻잔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마월도 찻잔에 손을 가져갔다.
두 사람이 같이 찻잔을 들었다.
유변은 가만히 코로 향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사마월은 항상 맡던 개완차의 향은 이젠 평범하게 되어버려서 바로 입을 가져가고 있었다.
쨍!
갑자기 난데없이 유변의 손에 있던 찻잔이 깨졌다. 그 안에 담겼던 뜨거운 찻물은 그대로 손과 다리에 쏟아져 피부가 뻘겋게 달아올랐다.
“대마의 어르신!”
사마월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유변을 살폈다.
유변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건 피부의 화상 때문이 아니었다.
깨진 찻잔의 손잡이만 그의 손가락에 걸린 채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있는 유변의 눈빛과 초점은 손잡이 조각 너머를 보고 있는 듯했다.
“아아…, 아아……. 하아!”
바들바들 떨며 신음을 내뱉던 유변의 고개가 천정을 향해 기울어졌다. 주름진 눈가엔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인지 이게…….”
황망히 말을 잇던 사마월은 유변의 눈물을 발견하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유변의 상체가 휘청 기울어졌다.
급히 옆에 달라붙는 사마월의 몸에 힘겹게 기댄 유변의 입술 사이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아…, 그가 떠나갔구나! 먼저 가 버렸어. 어찌 형님이 먼저 가신단 말이오……. 나의 죄가 더 큰 것을…….”
눈가의 주름을 타고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눈물의 양은 점점 많아지니 주름이 내어준 길들을 모두 덮을 만큼 쏟아져 수염도, 옷도 눈물에 적시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없었다.
촤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폭포 소리가 유변의 울음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사마월은 축 늘어져 멍하니 천정만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유변에게 몸을 대어준 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유변의 어깨가 가끔 떨릴 때마다 그의 슬픔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조강선이 마침내 세상을 떠났음을 그도 직감할 수 있었다.
끊어질 법했던 두 노인의 오랜 인연이 3년 전 재회로 다시 강하게 이어졌던 걸, 이렇게 찻잔을 깨뜨려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가 하며 소리죽여 곱씹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