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75화 (75/432)

75화 - 제15장. 조가장(趙家莊) (4)

진도건은 문득 무릎 위 자신의 팔을 잡는 작은 손길을 느꼈다.

서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괜찮다.”

서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진도건의 얼굴엔 쓴웃음이 감돌았다. 도저히 따스함을 담아낼 수가 없었기에 그는 일찍 고개를 돌려 조태상을 보았다.

조태상은 가만히 진도건을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때였다.

“아까 말했듯이 조부께선 넉 달 전에 이곳에 오셨소.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었지만, 난 일찍이 알아봤지. 우리 형제의 아버지와 많이 닮으셨으니까. 조부님의 인생을 길게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진도건 당신의 이야기는 들었소. 그분은 북부군에 몸담으셨기 때문에 전란이 길어지는 이 상황을 우려하셨고 직접 몽골족들의 땅으로 가겠다고 하셨소.”

“……전쟁에 참여하셨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라오. 무림의 일인 것 같아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소.”

“오래전부터 천마신교의 교리가 몽골의 땅에 머물고 있었다. 과거 흑풍마종의 신마를 한차례 벤 적이 있었지만, 고려하지 않았던 그 제자가 뒤를 이어 몽골군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자를 찾아 쓰러뜨리면 부족 간 통합이 아닌 교리에 의해 강제 통합된 몽골군은 다시 와해할 것이나 나의 기력이 예전만 못하니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흑풍……신마.”

“허나 보다시피 전란은 끝나지 않았고 흑응대마저 화북지방에 침투하여, 한 달 넘도록 약탈을 하고 있었소. 나는 오늘의 일을 예상하여 내 동생과 흑응대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당신이 그보다 먼저 찾아와 주길 원했소. 나는 전장에 나가야 할 운명이고, 당신이 늦는다면 이 소식을 전해줄 수 없었을 테니까.”

조태상은 조강선의 옷이 든 상자를 진도건 앞으로 밀었다.

진도건은 상자를 가져와 백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직도 스승이 이렇게 홀연히 떠나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진도건은 조심스럽게 덮개를 덮고 잠금쇠를 다시 채웠다. 이내 조태상과 진도건의 두 눈이 마주쳤다.

“내게 원하는 것이 있으실 것 같소이다.”

“당신이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소.”

“형님.”

“네가 얘기해 주지 않았더냐. 흑응대장을 노리기 위한 군 지휘는 저분의 조언 덕이었다고. 아무리 유리한 전장이었다고 한들 막 전장에 진입해서 그런 판단을 내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조부님의 제자라면 그만한 무용을 갖추고 계실 터. 적에게도 흑풍신마라 불리는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그 정도 무기는 있어야 이 난국을 타개하기에 용이하다.”

두 형제의 시선이 진도건에게로 쏠렸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진도건에게로 쏠렸다.

잠시 모두의 시선을 받던 진도건이 천천히 입을 뗐다.

“……지금의 난 흑풍신마를 처리할 능력이 없소이다.”

조태상과 조태번의 얼굴에 살짝 실망감이 스쳤다.

진도건이 영은성과 최현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혜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번에는 소녀에게 편안한 미소를 보여준다.

걱정 가득했던 서혜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런 서혜의 볼을 한번 쓰다듬더니 살짝 꼬집었다.

“아얏!”

“훗.”

진도건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소녀의 반응은 기분 전환하기에 적당했다.

그는 조태상을 향해 돌아보았다.

조태상의 눈에 진도건의 표정은 무척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당신의 군에 참전은 하겠소. 스승께서 흑풍신마의 손에 쓰러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목을 베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말 고맙소.”

진도건의 수락에 두 형제가 크게 기뻐했다.

조태상이나 조태번이나 무림인에 대해 깊은 환상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흑응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판단력과 더불어 조강선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강한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진도건의 눈빛에는 어떤 두려움도,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진도건의 물음에 영은성과 최현걸이 서로 눈을 주고받았다.

최현걸이 피식 웃었다.

“우리 홍 영감이 형님과 어르신을 보고 나서 내게 뭐라 했는지 아시오? 배우던 개 몽둥이질은 뒷전으로 미루고 형님을 한 5년, 10년 따라다니고 돌아오랍디다. 형님 명령에 따를 테니 걱정일랑 마시오.”

영은성도 최현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창천맹은 금 황실을 도와 각 군에 무인들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우리 화산파도 창천의 일원이고 제가 대협을 따라 종군해도 그 뜻을 따르는 일이니 아무 문제가 없지요. 진 대협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갈 길들 가라는 소리였는데, 이거 참…….”

“흐하하하!”

진도건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최현걸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태상이 흡족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진 대협이라고 부르겠소이다. 진 대협, 함께 해 주어서 고맙소.”

“전쟁에서 바로 이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흑풍신마를 따로 상대해야 한다면 내게도 시간이 필요하오. 정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6개월 전후라면 내게 충분한 힘이 갖춰지리라 생각하오.”

“그때까진 내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겠군. 나도 진 대협과 번이에게 줄 선물이 있소. 모웅.”

“예.”

“준비해 주겠나?”

“알겠습니다.”

모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7척 장신의 육중함이 느껴졌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대청 내문(內門)을 통해 나갔다.

“저도 말이오?”

“그래.”

잠시 후에 모웅이 다시 돌아왔는데 거치대에 걸린 갑주 한 벌과 팔 척 가까운 길이의 붉은 비단으로 말아 금색 수실로 봉인해 놓은 물건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갑주는 군청색의 비늘이 돋보이는 용린갑(龍鱗甲)의 형태였는데 매우 고급스러웠다.

“아, 이것은……!”

조태번은 그 갑주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릴 때 종종 창고에 보관된 이 갑주를 구경하러 가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조부님의 갑주다. 이번 전장에서 넌 이걸 입도록 해라.”

“형님이 입으셔야지요.”

“전장의 한복판에서 싸우는 건 네가 될 텐데 내가 입어 무엇하냐? 군말 말고 입도록 해라.”

조태번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동안 잊고 살았었지만, 보기만 해도 어릴 적 꾸었던 그 웅심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가 조강선의 갑주에 눈길을 보낼 때, 모웅은 어깨에 메었던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모웅은 조심스럽게 수실의 묶음을 풀었다. 그리고 조태상이 두 손으로 주의를 기하며 붉은 비단을 걷어내기 시작하자 조태번도 따라 시선을 던졌다.

스르륵.

“아아!”

이것 또한 조태번의 눈에 익숙한 것이다.

한 자루의 검, 한 자루의 창.

네 척 반의 길이와 다소 넓은 폭의 매끄러운 검신, 그 위로 새겨진 ‘홍무(紅霧)’라 새겨진 검명(劍名). 붉은 귀신의 얼굴이 새겨진 호수와 검붉은 가죽을 덧댄 손잡이, 자루 머리 또한 귀신의 머리가 붙어 있다.

창은 홍무검과 비슷한 형상의 칼날을 길게 세운 강창(鋼槍)이었다. 금색 구름무늬 테두리에 붉은 봉이 눈에 뜨인다. 창의 칼날에도 역시 창명(槍名)이 새겨져 있었으니 ‘적성(赤星)’이라는 붉은색을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조부께서 전장에서 사용하셨던 검과 창이오. 대협이 사용해 주시오.”

진도건이 홍무검을 들어보았다. 모웅이 직접 관리하여 칼날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군용검(軍用劍)이오?”

보통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검보다 검신이 좀 더 크고 두꺼웠다.

“조부께서 전장에서 사용하시던 검이오. 장군들은 무거운 무기를 사용하곤 하니 강성이 좋은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이오.”

무게도 그만큼 더 무거웠다. 물론 진도건에게는 크게 문제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적성창도 들어서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살짝 출렁이는 것이 탄성이 매우 좋은 것 같았다. 칼날부터 봉까지 모두 강철로 이뤄져 있어서 무게가 상당했다. 홍무검과 같은 목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피식.

진도건은 두 병기 모두 붉은 비단 위에 다시 놓았다.

“가문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과분한 물건이오. 동생분이 사용하시오.”

“난 언월도가 더 익숙하므로 필요 없소.”

“……그렇다면 잘 빌려 쓰도록 하겠소. 잘 쓰고 돌려드리겠소.”

“그렇게 하시오.”

짝짝!

“자, 그럼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합시다. 이틀 뒤에 출발할 예정이오. 그때까지 충분히 먹고 쉬면서 준비하도록 합시다.”

“소인이 네 분이 쉴 방을 안내해드리겠소.”

“고맙소이다.”

진도건 등은 모웅을 따라 대청을 나섰다.

모웅은 그들을 후원으로 안내하였다. 후원에는 조태상의 가족들이 사는 가옥과 함께 귀중한 손님을 모시는 별처(別處)가 따로 존재했다. 상선과 안호필도 이곳의 방을 얻었다.

모웅은 네 사람 각각 모두에게 따로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그밖에 이용할 수 있는 부대시설 등을 알려 준 후, 마지막으로 진도건과 함께 방에 같이 들어가 홍무검, 적성창의 비단 뭉치를 벽 한쪽에 기대 놓았다.

“혹시 홍무검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면 소인이 따로 한 자루 마련해드릴 수 있습니다.”

모웅의 말에 진도건은 자신의 검을 검집에서 뽑아보았다. 평범한 철검이었기에 날도 많이 상한 상태였다.

“부탁해도 되겠소?”

“내일 대장간으로 오시지요. 이미 준비된 가검(假劍)들이 있습니다. 하루 꼬박 두들기면 날 세우기엔 충분합니다.”

“고맙소.”

“그럼 쉬십시오.”

모웅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 진도건은 곧바로 몸을 씻기 위해 움직였다.

잠시 후, 목욕까지 마친 그는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파천신공.

진도건은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호흡을 통해 하단전에 축기를 이루고 다시 전신세맥으로 퍼져 나간다.

이미 한번 걸어갔던 길이다.

더군다나 천무경의 진기가 그의 몸을 헤집어 놓았던 것이 조강선의 노력으로 하단전의 복구에 성공하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상황이었다.

흑풍신마.

분명 일월신마 못지않을 강자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조강선이 기력을 많이 상실하였다고 하더라도 패배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저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는 반문조차 확실하게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조강선의 무위는 한 차원 위의 것이었다.

그는 어떤 적일까?

어디서 마주칠 것인가?

단신으로 맞붙는 상황이 올 것인가, 혹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충돌할 것인가.

손에 잡히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면서 진도건의 운기조식은 아주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아갔다.

* * * *

야율재(耶律災)는 제법 오래 눈을 감고 있었으나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피로감이 조금 있긴 해서 푹신한 침상에 몸을 누였지만, 왜인지 정신은 점차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욱씬!

정신이 맑아지면서 감각도 같이 예민해져서일까. 가슴에 남은 검상의 흉터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쳇!”

야율재가 인상을 찌푸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황갈색 바탕에 청홍의 기형적인 무늬가 새겨진 옷자락이 벌떡 일어서는 몸짓에 하늘거렸다.

야율재는 장성한 사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였다. 그의 온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하였으며 근력, 순발력 모두를 갖춘 초원의 호걸(豪傑)이었다. 황갈의(黃褐衣)의 상의 자락을 젖히자 우람한 가슴근육이 드러나는데 좌우 가슴을 가르는 깊은 검상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야율재는 가만히 그 검상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별것도 아닌 검상이었지만, 이 상처를 남긴 자의 혼(魂)이 대단했기에 이런 후유증이 남는다.

혼자 사용하는 파오임에도 그 안은 넓고 화려한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한구석에 걸려 있는 칠흑 같은 흑명갑(黑冥鉀)과 한 뼘 너비의 묵빛 칼날과 사람 키만 한 길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현철참마도(玄鐵斬馬刀)가 존재만으로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월륜도(月輪刀)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야율재는 무구(武具) 쪽은 시선도 주지 않고 파오의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휘장을 손으로 걷어 올렸다.

척!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몽골족 위병(衛兵)은 야율재가 나오자 경례를 올렸다. 야율재는 두꺼운 손으로 위병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했다.

달 밝은 야심한 밤,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우는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혔다.

초원의 겨울바람은 몹시 차가워 공기마저 얼어붙어 눈발로 날릴 정도였지만, 오히려 검상의 통증을 식혀 주는 느낌이 들었다. 상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야율재의 모습에 두꺼운 털옷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위병은 내심 감탄스러운 눈으로 그 거대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율재의 파오는 무척 크고 화려했다.

설원과 구분되지 않는 백색 바탕에 흑룡(黑龍)의 장식이 곳곳에 붙어있는 채로 눈에 반쯤 덮여 있었다. 그 주변은 작은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고 울타리 기둥들에 고정해 놓은 횃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간신히 밤을 밝히고 있었다.

터벅터벅.

무심코 옮기는 발걸음은 야율재를 울타리 끝으로 이끌었다.

그의 파오는 경사진 설원의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좌우로 꽤 높은 언덕이 나무 한 그루도 없이 있었고 전면엔 계단형 분지의 설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형 분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파오로 세워진 군영(軍營)이 펼쳐져 있었다.

3만 대군의 군영.

몽골족들을 규합하여 기마병들을 징발하고 거란(契丹)의 군대를 복속하여 거병한 군대의 본영(本營)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여봐라.”

“옛!”

“칸(汗)이 보낸다는 군사와 병참(兵站)은 언제 도착한다더냐?”

“고, 곧 도착하지 아, 않겠습니까?”

“예정보다 일주일 길어졌다.”

위병이 말까지 더듬으며 간신히 대답했지만, 바람직한 대답은 아니었다. 냉담한 야율재의 반응에 위병이 급히 무릎을 꿇고 눈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죄, 죄송합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됐다. 이 몸이 괜한 걸 물어봤다. 거기 지키고 서 있지 말고 돌아가 잠이나 자거라.”

“예, 옛!”

야율재가 혹여나 말이라도 바꿀까 위병은 두려운 마음을 힘들게 숨겨가며 서둘러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흥!”

그 모습을 흘겨보던 야율재가 콧방귀를 뀌었다.

위병 따위 필요 없었다.

누가 감히 여기까지 와서 암살을 기도할 수 있을까? 아마 남쪽의 포양진(咆陽陳)으로 후퇴한 황군과 그를 이끄는 대장군 남양 정도가 욕심을 낼 법하다. 물론 몽골의 허수아비 타타르 칸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통합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상 힘으로 복속시켰기 때문에 거란족 주력군의 물자와 병력을 타타르 부족을 통해서 공급하는 상황이었다. 관계가 이렇다 보니 요구한 군사나 물자가 종종 늦어지곤 했다.

타타르 부족을 쓸어버리는 것은 그에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천마신교의 지령에 따라 이 전쟁을 되도록 오래 끄는 것이 목적이었다.

몽골족의 분열을 일으키고 여러 부족을 공격 및 복속시켜 병사와 말과 물자를 징발하는 것. 무너져가는 거란족의 서요(西遼)조차 그의 본국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위한 욕구를 위하여 이용할 대상일 뿐이었다.

야율재.

그의 다른 이름은 흑풍신마.

사막과 초원에 피와 혼란을 몰고 다니는 재앙이었다.

이곳에서 흑풍신마 야율재는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었다.

흑풍신마의 지위가 깨진 일은 단 한 번.

그의 스승이자 부친인 전임 흑풍신마 야율강(耶律降)의 대였다.

야율강은 어느 한 암살자에게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그 암살자는 야율강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자식이 있었음을 간과했다. 이미 호시탐탐 흑풍신마의 지위를 욕심내던 야율재였기에 자연스럽게 그 힘과 권력을 차지해 마지않았다.

천마신교가 주는 힘과 욕망의 길은 그를 취하게 했고 기꺼이 모국인 서요까지 흔들어 중원까지 적극적으로 침략하였다. 그러면서도 스승이자 부친인 야율강을 죽인 암살자를 잊지 않고 살았었다. 부활한 흑풍신마를 다시 암살하러 나타날 수 있었으니까.

두 달 전, 암살자는 정말로 그의 앞에 너무나 당당하게 나타났다.

거구의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 해진 백의를 입고 검 한 자루만 달랑 들고 나타난 노인.

스스로 흑풍신마 야율강을 베었다고 밝힌 노인은 자신을 조강선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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