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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68화 (68/432)

68화 - 제14장. 한파(寒波) 속에서 (2)

두 사람의 등장으로 벌어진 갑작스러운 소란에 근처에 있던 기병들의 이목이 쏠렸다. 두 사람을 잡기 위해 몇 기가 더 말을 달려왔는데, 그들을 계속 상대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으아악!

근처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비명들.

“사람들을 구하고 시선을 돌려야 해!”

영은성이 암향표의 경공을 펼치며 지붕을 훌쩍 뛰어넘어갔다. 최현걸도 초가들과 지형지물 사이사이로 달리고 또 구르면서 영은성과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놈들을 죽여라!”

몽골어로 내뱉는 명령에 일부는 말에서 내려 쫓아가고, 일부는 말을 타고 돌아가 포위망을 구축하려 했다.

두 사람의 등장에 장내가 어지럽게 되었다. 지붕 위를 넘어 다니는 영은성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기도 했고 창으로 찌르기도 했지만, 어찌나 바람같이 움직이던지 맞출 수가 없었다. 최현걸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긴 마찬가지였다.

기병 하나가 지붕 위를 뛰어넘는 영은성을 향해 활을 겨눴다.

퍽!

“윽!”

화살이 날아가기도 전에 이내 최현걸이 던진 눈 뭉치가 날아와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그만 눈을 감고 비벼댔다.

“이 거지 새끼가!”

근처에 있던 몽골병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월도를 휘둘렀다.

“뭐라는 거야”

최현걸은 적이 뒤에서 접근한 통에 반격하긴 여의치 않아 몸을 옆으로 날리면서 중얼거렸다.

개방 거지라는 위치처럼 더러워지는 걸 마다하지 않는지 뛰다가도 데굴데굴 구르면서 얄밉게 피해 다녔다. 또 쌓인 눈들을 손바닥으로 쳐내 흩뿌리며 시야를 가리는 수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붕을 내달리던 영은성은 왼편에서 도망치는 노인을 향해 한 기의 기병이 멀리서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기병은 들고 있던 창을 노인을 향해 투척하였고 영은성은 그 사이로 몸을 곧장 날렸다.

탕!

영은성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창두를 치며 달리던 노인의 옆에 콱! 하고 박혔다.

영은성이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하는 사이 기병은 어느새 말을 달리던 기세 그대로 몸을 던지며 월도를 휘둘렀다.

카캉!

“크읏!”

몽골병의 공격이 워낙 신속하여 영은성도 아슬아슬하게 받아 내며 허리가 크게 젖혀졌다. 그렇게 몸을 한 바퀴 굴리며 다시 자세를 잡는 순간 월도의 도광이 어지럽게 눈 앞을 가렸다.

카카카캉!

도검이 맞부딪치며 영은성이 연방 뒤로 밀려났다. 몽골병의 월도는 환도법(幻刀法)에 가까워 허실을 현혹하면서도 파괴력이 있었다. 마지막 큰 횡격을 훌쩍 뒤로 뛰어올라 피해낸 영은성이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가며 검초를 펼쳤다.

매화검법 매화접무(梅花蝶舞).

매화검법 또한 대표적인 정파의 환검법(幻劍法)이었다. 검형(劍形) 자체는 직선적인 검로와 변초가 조화를 이루는 특성이 있었지만, 경지에 이르면 진기가 검로에 녹아들어 꽃잎 형태의 검기를 피워 내는 특징이 있었다.

무엇보다 묵허자가 장문인에 오르게 됨으로써 그 적전제자(嫡傳弟子)인 영은성은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익힐 수 있었다. 아직 수양의 깊이는 낮았지만, 그의 내공의 성질은 이미 상당 부분 변화하여 그 파괴력이 상승하였다.

카카캉!

“큭!”

전진하는 보법에 맞춰 나선을 그리며 수놓는 검광이 날개를 펼쳐 내자 몽골병의 월도가 어지러이 어울렸다. 그 속에 섞여나오는 직선적인 찌르기에 어깨가 스치고 다시 이어진 찌르기가 허초가 되어 뒤따른 참격이 허벅지를 쓸고 지나갔다.

슈슛!

옅은 분홍빛의 아지랑이가 영은성의 주변을 맴도는 듯하더니 검로를 따라 두 줄기 검기가 쏘아졌다.

전면에 하나,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사선으로 하나.

매개이도(梅開利導)의 일초였다.

캉!

“끄윽……!”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검기를 월도의 넓은 도신으로 막아 냈다. 그러나 한 줄기 검기는 그대로 명치를 꿰뚫고 몽골병 등 뒤에서 한 떨기 꽃잎으로 화하였다가 흩어졌다.

영은성이 빠르게 몽골병을 제압하면서 도망치던 노인은 안전하게 마을 밖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아직도 사방에서 비명이 꾸준히 들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몇 개의 비명은 단말마에 그치니 생명이 꺼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론 안 된다.’

영은성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싸웠던 몽골병이 타고 온 군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곧장 말에 올라타 말 머리를 돌리고 곧장 마을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럇!”

두두두두!

영은성이 말과 함께 뛰쳐나오며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리지 못한 기병의 목을 날려 버렸다.

이히히힝-!

몽골 초원을 질주하던 군마답게 그 돌진력이 대단했다. 말에서 내리고 설치던 몽골병 두 명을 부딪치고 짓밟아버리기까지 했다.

영은성이 말을 몰며 휘젓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몽골병들의 이목을 끌면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시도가 효과를 끌자 최현걸도 죽은 적의 창을 들고 말에 올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최현걸의 질주는 영은성보다 위협적이었다. 영은성은 검술은 매우 뛰어났지만, 적들의 활과 창을 이용한 견제가 다소 부실한 승마기술로 인해 애를 먹었다. 그러나 최현걸은 개방 방주에게 전해지는 타구봉법(打狗棒法)을 익히고 있었기에 원래의 타구봉보다 길이가 긴 창이었음에도 사용에 큰 무리가 없었다.

타구봉법은 개방 방주와 그 후계자만이 익히는 무공으로 그 초식의 오묘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자라도 제대로 익히고 위력을 펼치는 데 만도 수십 년이 걸린 무공이었다.

용두방주 홍두형도 36개의 초식 가운데 스무 개 정도만 제 위력을 펼칠 수 있을 정도였고, 최현걸도 고작 6개의 초식만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런 기병전에서도 그 정도로 위력은 충분했다.

타구봉법으로 승화한 최현걸의 창술에 몽골병들의 창술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형(形)과 형(形)이 부딪치는 공방에서 최현걸은 말 그대로 무적인 것만 같았다.

기마 위에서 처음으로 싸워 본 최현걸은 자신감이 생겼다. 순식간에 두 명을 찌르고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창을 쳐 낸 뒤에 말을 달렸다.

“흐압!”

타구봉법 사타구배(斜打狗背).

찌르는 척하다가 창끝으로 빙글 돌려 눈을 현혹하고는 반대편으로 크게 휘둘렀다. 비스듬히 파고드는 창대에 턱을 얻어맞은 몽골병이 말 위에서 그대로 붕 떠올랐다가 곤두박질쳤다.

최현걸의 무용(武勇)이 힘을 얻어 몽골병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자 말 위에서 어려움을 겪던 영은성은 자신의 역할을 그에게 넘기고 자신은 말 위에서 몸을 날렸다. 오히려 경공을 발휘하며 공중전을 취하는 것이 더 위력적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검과 창에 10명이나 쓰러졌다. 예기치 않게 많은 몽골병들의 피로 하얀 눈밭을 물들이자 그들은 당황하고 또 분노하였다.

백성들의 죽음이 이어지긴 했지만, 두 사람의 활약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흑응대 분대 전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드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두 사람을 화살로 견제하는 자들까지 생겼다. 수적 열세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고 두 사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곧 포위되었다.

“시선 끄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거 우리가 당하겠는걸?”

최현걸의 호흡도 꽤 가빠진 상태였다. 타구봉법이 대인전에서 초식으로 압도하기에 탁월하지만, 구사할 수 있는 초식이 제한적인 탓에 다수를 상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영은성도 다수의 창끝이 자신을 노리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날아다닐 수 없었다. 게다가 몽골의 유구한 궁술 전통답게 몽고궁(蒙古弓)의 위력과 정확도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무공이 나이에 비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무사했지만, 완전히 포위된 현 상황은 뚫어낼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영은성은 적들이 밀집되길 기다렸다. 최현걸이 타구봉법 초식의 위력이 다수의 견제에 막혔고,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항룡십팔장의 무공은 적수공권이 되어야 하기에 조건이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지만, 영은성에겐 새롭게 얻은 자하신공이 있었다.

“후우!”

가벼운 호흡.

좀 더 선명한 분홍빛의 기류가 영은성의 검을 타고 흘렀다. 가볍게 휘두르는 검광을 따라 꽃잎이 피어올랐다. 그 하나하나가 뚜렷한 형상을 갖추니 보기에 아름다웠으나 몽골병들에겐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매화검법 매화만개(梅花滿開).

검광이 만개한 매화의 꽃잎처럼 영은성의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수십 개의 검광의 환영과 그 움직임을 따라 휘몰아치는 꽃잎의 검기가 몽골병들을 덮쳤다. 자하신공으로 형성된 검기는 쇠붙이보다 날카로워 가죽 갑주 따위는 쉽게 갈라 버렸다.

“크억!”

영은성이 절초와 함께 한가운데 떨어지자 창대가 우수수 잘려나가고 그 주변으로 피가 튀었다. 네 명이 죽거나 부상으로 쓰러지고 공격의 가장자리에 있던 자들은 황망하게 피하기 바빴다.

다수의 견제를 초식으로 뚫어내기 힘들다면 힘으로 떨쳐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의 위협적인 검초로 포위망이 흔들리자 최현걸도 창을 돌리면서 기병 하나의 가슴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쐐액!

그 순간 화살 한 대가 영은성을 향해 날아왔다. 그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검을 휘둘렀다.

캉!

화살이 검신에 맞고 튕겨 나갔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엄청난 경력이다!’

캉! 캉!

화살 두 대가 연속으로 다시 날아왔지만, 모두 영은성의 검에 막혔다. 그러나 영은성도 더는 내공을 끌어올릴 여유가 없어졌다.

서너 겹의 포위망 너머로 활을 들고 있는 한 기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좀 더 화려한 갑주를 걸치고 있어서 이 분대를 이끄는 대장으로 보였다.

영은성의 예측대로 그는 흑응대의 분대장 제무였다. 제무는 째진 눈으로 영은성을 노려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제무의 견제로 두 사람은 상황을 개선할만한 여력이 사라지게 되자 곤란하게 되었다. 그래도 화려하게 판을 만든 바람에 적들의 시선을 끌어올 수 있었다. 미처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백성들은 충분히 피신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벌 수 있었다.

“이쯤 했으면 우리도 탈출하자.”

“형님은?”

“없으니까 안 나타났겠지. 일단 자리를 피했다가 내일 오자.”

영은성과 최현걸이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은 제무의 화살을 막아내고, 한 사람은 길을 열어야 할 터.

그때였다.

“꺄악!”

“서혜야!”

여아의 비명과 함께 노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군마 위에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제무의 옆으로 한 몽골병이 어깨에 십 대쯤 되어 보이는 소녀를 어깨에 들쳐 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한 노인이 마구간 뒤에서 허둥지둥 뛰어오고 있었다.

서덕과 서혜 노손은 여태까지 용케 숨어 있었지만, 하필 서혜가 먼저 몽골병의 수색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이거 놔! 으아앙!”

서혜는 발버둥 치며 두 주먹으로 몽골병의 등을 때렸지만, 그걸로 꿈쩍할 사람이 아니었다.

제무는 어린 서혜를 힐끗 쳐다보고는 씩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영은성과 최현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흑응대가 이렇게 마을을 휩쓸어갈 때,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자들은 노리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흑응대만의 얘기가 아니라 전란이 되면 적국의 백성들을 유린하는 행위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하는 것이다.

영은성은 소녀가 그런 꼴이 되도록 둘 수 없었다.

땅!

그가 움직이려고 하자 어김없이 제무의 화살이 날아왔다. 날카로운 눈으로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다시금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으니 쉽게 움직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쩌지 못하는 사이, 서덕은 노구를 이끌고 빠르지도 않은 뜀박질로 허겁지겁 가까이 달려온 상황이었다.

“이놈아, 손녀를 내려놓아라!”

땅에 떨어진 창을 힘겹게 들고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노인이 위협적이긴 할까.

제무의 옆에 있던 기병이 말을 타고 몇 걸음 거리를 좁히면서 창을 거꾸로 들었다.

“멈춰라!”

영은성의 다급한 외침은 닿지 않았다. 경공을 펼쳐 도약하려 했지만, 되려 제무의 화살만 날아올 뿐이었다.

따앙!

“큭!”

화살 때문에 공중에서 힘을 잃고 떨어져, 되려 포위하던 몽골병들의 창격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막아내고 피하며 돌아온 자리는 최현걸의 옆, 포위망 한가운데였다. 영은성의 눈이 다급하게 노인을 찾았을 때, 서덕은 들고 있던 창으로 다가오는 기병을 향해 찌르고 있었다.

텁!

“이, 이… 놓거라……!”

앙상한 두 팔로 찌르는 창에 무슨 힘이 있을까. 몽골병은 서덕의 창을 가볍게 왼손으로 잡아채고는 역수로 창을 쥔 오른손을 번쩍 들고 창끝을 서덕의 가슴을 향해 겨누었다.

슈아아악!

그때 멀리서부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몽골병 휘두르는 손에서 창이 떠나가려는 찰나 한 줄기 바람이 목을 갈라버리고 그 기세 그대로 내려꽂혀 제무의 군마 다리까지 잘라 버렸다.

스커컥!

푹!

몽골병의 목이 떨어졌지만, 팔을 휘두르던 관성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창은 그대로 손을 떠나 서덕의 옆구리를 뚫고 박혔다. 제무의 말은 울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고꾸라져버렸고 제무도 바닥을 뒹굴어야만 했다.

“크윽! 뭐, 뭐냐?”

제무가 눈더미에서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놀라 물었다. 날아든 바람엔 밀도가 있었고 예기도 있었다. 분명 인위적이었다. 다른 몽골병 어깨에 붙잡혔던 서혜는 고개를 들고 상황을 살피다가 동쪽 인접한 언덕에서 익숙한 인물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저씨-!”

검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나는 듯 마을과 인접한 나무 위를 달리는 남자는 바로 서혜의 초가 옆 마구간에서 신세 진다던 아저씨였다.

서혜와 서덕은 집 앞에 쌓인 눈을 같이 쓸러 나왔다가 몽골군이 오는 걸 알고 위험을 알리려 마구간에 갔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그가 먼저 도망간 줄 알고서 서둘러 숨었는데 서혜는 두려움과 실망감 때문에 흐느끼다가 몽골병에게 먼저 들켜버린 것이었다.

사내의 손엔 검이 들려 있었다.

나무들을 넘고 마을의 지붕 위를 뛰어오르면서 다시 검을 두 번 휘두르자 예의 그 검풍 두 줄기가 서혜와 그녀를 들고 있는 몽골병 양측으로 쏟아졌다.

퐈아아!

급변한 상황을 눈치채고 피한 몽골병들은 살았지만, 그렇지 않고 검풍을 맞닥뜨린 말과 몽골병은 여지없이 썰려 나갔다. 그나마 상황을 미리 눈치채고 내공으로 경력을 담은 월도를 휘두른 자도 무사할 수 있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에 그저 입을 쩍 벌릴 뿐이었다.

느닷없는 혼란에 영은성과 최현걸도 놀라 상황을 살폈다. 두 사람은 곧 기회임을 깨달았다. 최현걸은 고삐를 바짝 당겨 군마의 앞다리를 쳐들었다가 바로 앞을 덮쳤다. 영은성은 자신을 견제하던 눈앞의 몽골병의 시선이 흔들린 틈을 타 베어버리며 가까이 있는 초가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영은성은 곧장 지붕들을 암향표의 경공으로 타고 나는 듯 달려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휘날리는 검붉은 머리카락이 설광에 비추어 유독 더 붉게 빛나는 그는 바로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자이자, 최현걸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자였다. 그리고 영은성은 그를 다른 호칭으로 불렀다.

“진 대협!”

지붕 위 같은 높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만무했다.

진도건은 영은성을 힐끗 보고는 다시 몽골병에게로 눈동자를 돌렸다. 머리카락처럼 눈동자마저 은은한 붉은 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꽤 가까워진 거리에 살의가 끌어 오르며 눈동자가 더욱 선명한 적안(赤眼)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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