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65화 (65/432)

65화 - 제13장. 무너지다 (4)

* * * *

괴롭다.

목이 탄다.

배도 고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들썩거린다.

무언가에 갇혀서 싣고 가는 모양이다.

호흡하기가 어렵다.

가슴이 찌르는 듯 아프다. 특히 명치가.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몸은 옴짝달싹할 수 없고 진기 운용도 되지 않는다.

……불안하다.

그때 그걸 먹고 일월신마의 손에 고통스러웠던 게 원인일 지도.

기운이 없다.

……잠이 온다.

몸이 무겁다.

눈도 잘 떠지지 않는다.

밖으로 꺼내진 것 같은데 어딘지 알 수……

……산인가.

바람… 고통스럽다.

아프다.

제발 뭐가 됐든 덮어 줘. 바람에…… 베이는 것 같아!

아퍼. 힘들어.

하아, ……보고 싶어, 천서…은…….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뭐지?

눈을 뜬 것 같은데 보이지 않고,

분명 숨 쉬고 있는 거 같은데 코에도, 폐에도 감각이 없다.

오래 묶인 채로 있었던 거 같은데…… 배고픔도 없다.

지금도 묶여 있는 건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무섭다.

하아…….

시발.

이게 뭐야? 여기 어디야?

나 이렇게 의식이 멀쩡하잖아!

도대체 여기 어디야?

아무것도 안 보여.

일월신마!

나와라!

왜 내 목소리도 안 들리는 거야.

홍천환 하나 먹었다고 이렇게…….

네놈이 내게 기를 주입한 거로 이렇게?

대답해 보라고, 씨발!

……씨발.

허억, 헉, 헉……!

뭐지…….

느껴져.

…….

……너는.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진도건은 처음으로 자신을 보았다. 상처 하나 없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이 어둠 속에서 두 눈에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도 않았다. 단지 어둠 한가운데 서 있는 지금이 고독한 감정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진도건은 어둠 속에 누군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혹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느껴지는 감각의 경계가 몹시 모호하여 그 존재가 있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둘러싼 채 격리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놔”

처음으로 듣는 음성. 그러나 너무나 불분명하고 수십 개의 작은 목소리가 겹쳐 들려오며 음습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내놔.”

무엇을?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좀 더 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엇을 진도건에게 요구하는가.

“내놔, 너의 몸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순간 촉감이 되살아났는지 진도건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몸이 어둠에 잠식되고 있었다.

손가락, 발가락부터 팔다리로 이어지고 어깨, 허리 가슴으로 올라온다. 발버둥 쳐도 그저 꺼림칙한 느낌만이 점점 몸을 타고 올라올 뿐, 그것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놀라 입을 벌려 비명을 질러도 어둠에 묻힌 목소리는 열고 그의 귀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있어야 할 나의 몸이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무(虛無)로 돌아갔다.

그렇게 어둠은 얼굴마저 에워싸 마침내 공포에 질린 두 눈마저 삼켜버렸다.

“허억!”

두 눈을 부릅뜨며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황망하게 둘러보는데 다행히 팔다리, 몸뚱이 모두 멀쩡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나체 상태인 것도, 사위가 모두 허무의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그대로였다.

‘꿈이었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께름칙하다. 그 느낌이 아직 기억에서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손끝부터 온몸에 그 끈적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오를 때의 느낌처럼 나타났다.

그는 진도건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육신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주위 어둠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불투명한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는데 신체가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어서인지 어둠 속에 그 존재가 묻히지 않고 있었다.

“넌…… 누구냐?”

그렇게 묻는 진도건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뒷모습의 윤곽은 분명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강했다.

그는 반응이 없었다.

두근! 두근!

너무나 선명한 심장의 울림.

진도건은 조심스럽게 그 남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다가갔다.

하지만, 진도건은 남자에게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제자리걸음만 지속할 뿐이었다. 당황하여 발밑을 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진도건은 그 남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돌아선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남자는 조금씩 몸을 돌렸다.

“하…….”

헛웃음만 나왔다.

그자는 바로 진도건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너 뭐야?”

“킥!”

이질적인 자신의 모습.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소름이 끼치는 붉은 눈이 정녕 자신의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넌 내가 아니야.”

“킥킥킥……!”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저 웃음소리를.

자신으로 위장한 저 존재를 찢어발겨 버리고 싶었다.

“으아아아!”

울분이 함성으로 터져 나왔다.

필사적으로 저 붉은 자신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리를 달릴 뿐, 둘 사이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비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만이 그를 계속 조롱하고 있을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멈추지 않는다.

가까워지지 않아도 계속 달린다.

함성을 던지고 의지를 던진다.

존재를 부정하고 침식당하는 느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장 부숴야 한다.

이 미친 상황을 깨부수지 않는다면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나도 두렵다.

울분을 토해 내고 의지를 불태운다.

자신의 가면을 둘러쓴 저 가증스러운 존재를 베어 버려야만 한다.

검.

내 검은 어디 있는가?

이 어둠 속에서 검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모를 세계에서 어떻게 검을 찾는가?

꿈.

정신세계.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현실이 아니라면.

원류검결을 외워 보자.

아무렇게나 불길만 지피던 분노가 가라앉으며 조용히 그 불길을 깊고 고르게 정제한다. 어둠 속에 옭아 매여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이 육신에 어느 순간 자유로운 감각이 느껴진다. 희미한 광휘의 안개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한 모금 느낌 없는 호흡.

허리춤에 오른손을 가져가며 마음을 비운다.

베어라.

슈칵!

사선으로 베어 버렸다.

비웃음만 가득했던 피에 물든 눈앞의 자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오른다.

“키득!”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선명한 육성.

머릿속으로만 들려오던 비웃음 소리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

퍽!

마지막 재차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눈앞에서 터져 버린다. 어떤 형체도 살점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이 오로지 대량의 핏물이 되어 터졌다. 그 핏물이 어둠을 점점 물들어가더니 사위 전체를 덮어 버린다.

턱!

이질적인 감촉에 고개를 숙였다. 핏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발목을 잡았다. 그 손이 하나둘씩 늘어나 이내 수십 개가 되어 온몸을 붙들기 시작했다.

“으……!”

놀라 소리치기도 전에 입을 틀어막는 손.

그 손에서 기인한 핏물이 목구멍으로 울컥울컥 쏟아져 들어가며 두 눈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손인지 핏물인지 모를 기분 나쁜 감촉이 눈앞을 덮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몸부림도 칠 수 없으니 점점 정신이 무너져감을 느꼈다.

잠깐이나마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그 광휘의 안개는 전혀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죽는 것인가…….’

마지막이라 예감했다.

“도건! 진도건! 정신 차려!”

선명하게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듣자마자 너무나 반가워 눈물 날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고 있었다.

촤아악…….

물에 반쯤 잠겨 있었는지 당기는 힘에 끌려가면서 축축한 감촉이 온몸에 느껴졌다. 그리고 두 눈이 서서히 떠지고 눈앞의 시야가 트였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천서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눈앞이 흐릿했지만, 분명 그녀가 맞았다.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또 이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그녀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당당하게 서서 호위무사로서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함에도 지금, 이 순간 딱 한 번만 울면서 기대고 싶었다.

‘천서은!’

그 순간 진도건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입을 벌려 이름을 불렀는데 그것이 생각으로만 머물렀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천서은은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도건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요? 정신 차려요!”

옥녀지에서 꺼낸 진도건을 부축하고 일으켜 세우는 천서은.

초점 없이 멍한 눈빛과 그늘이 드리운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두 발로 똑바로 서고 조심스레 당기는 대로 걸어와 주고 있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요.”

큰 목소리로 독려하지만, 여전히 초점 없는 진도건의 모습에 천서은은 불안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끌었다.

천무경과 일월신마의 대결도 우세한 상황이었으니 곧 장내 정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일단 진도건을 끌고 연화궁 쪽으로 옮길 심산이었다.

“괜찮아요? 어디 말 좀 해 봐요.”

천서은은 손을 잡고 끌고 가면서도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나, 나는…….’

진도건은 당황했다.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의 시야는 초점이 맞지 않아 상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눈이 돌아가질 않았다. 걸음은 걷는데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왼팔의 흐느적거림도 이질적이었고 오른손에 느껴지는 천서은의 손길도 자신의 감각이 아닌 것 같았다.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망상에서 벗어나 너무나 분명하게 현실의 감각들을 느끼고 두 눈으로도 천서은을 보고 있는데 이 모든 시선과 감각들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흐릿하게 상이 겹쳐 보였던 시야에 초점이 똑바로 잡히며 천서은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정신이 들어요?”

천서은이 반가움에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와 진도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진도건의 목을 감아 꽉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지만, 진도건에겐 이것 또한 내 것이 아닌 감각에 혼란스러웠다.

너무나 그리운 느낌과 그녀의 향취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혼동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로 지금 이상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없다.

의지가 있으나 그 끝에 허무만이 맴돈다.

자신의 감정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의 것은 아니다.

마치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겹쳐져 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

문득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불안감은 현실로.

왼손은 멋대로 움직여 천서은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제야 꼭 끌어안았던 손을 풀고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천서은의 얼굴에 닿은 시선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멈춘 끝에는 그녀의 허리에 찬 무극신검의 손잡이가 눈에 들어온다.

진도건은 놀랐다.

‘아, 안돼…….’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또 다른 ‘감정’.

허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진도건은 느끼고 만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살의(殺意).

진도건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의지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며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다.

‘머, 멈춰. ……아, 안돼. 제, 제발! 빌어먹을 ……제발 멈추라고!’

스릉!

무심하게 무극신검을 쥐고 뽑는 오른손에 놀란 천서은이 뒤로 급히 물러서지만, 진도건의 왼손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푹!

복부의 옆구리를 관통하는 무극신검.

“어헙……!”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끔찍한 고통에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천서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진도건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왜…….”

가늘게 떨려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도건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그 끔찍한 감촉은 둘째치고, 어떻게 자신이 천서은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도저히 사지를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다.

“진도건……, 네 이노옴-!”

천무경의 진노한 목소리.

그 살기에 반응하여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

푸른 기운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분기탱천(憤氣撑天)한 천무경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의지를 따르지 않는 육신이 천서은을 뒤로 집어 던지면서 그녀의 몸에서 검이 빠져나가는 감촉이 다시 한번 손에 전해진 순간.

진도건의 영혼은 무너져내렸다.

“……돌아와요, 제발.”

뒤로 던져지기 직전 천서은은 힘없는 목소리로 진도건을 불렀다.

과연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고통은 이젠 의미 없었다. 공중으로 맥없이 날아가는 그녀의 육신엔 정신적인 충격으로 한 줌 힘도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옥녀지에 처박힌다.

첨벙!

보글보글…….

물방울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이내 물 밖으로 천둥 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햇빛이 스며들어와 고스란히 눈에 비치는 것은 눈물이었나.

흐릿해지는 시야.

막혀 오는 호흡.

마침내 닫는 눈꺼풀.

의식이 어둠에 잠겨갈 때.

무언가 요동이 치며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끌어올린다.

파아!

차가운 바람이 다시금 온몸을 휘감는다.

“서은아, 정신 차려라!”

익숙한 음성.

하지만,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눈을 뜨니 남궁평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처가 깊구나.”

점혈로 지혈해 보지만, 관통당한 상처의 출혈을 온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남궁평은 그녀를 바닥에 누이고 복부의 상처를 두 손으로 꾹 눌러 압박했다.

타는 듯한 복부의 고통이 전해졌음에도 신음조차 낼 힘도 없었다. 고작 검에 찔린 상처로 이토록 힘이 빠져버린 것은 다름 아닌 찌른 사람이 진도건이었기 때문이리라.

콰르릉! 콰쾅!

귀를 때리는 굉음에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후폭풍과 더불어 무시 못 할 검기의 파편들이 몰아쳤지만, 때마침 도착한 이혁성과 범굉대사가 그녀의 곁을 지키며 방벽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들의 다리 사이로 천서은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분노에 가득 찬 천무경과 붉은 기운을 내뿜는 혈귀로 변한 진도건이 무섭게 격돌하고 있었다.

천서은은 상반신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윽!”

“움직이면 안 된다, 서은아!”

“마, 말려야 해요…….”

“저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되려 천서은을 말리는 남궁평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으흐흑……!”

천서은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남궁평의 팔을 꽉 붙잡았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화산에 올라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쁨의 재회를 기대했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변해 버린 진도건의 모습은 그의 본모습이 아닐 것이다. 일월신마가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그녀와 진도건의 망가진 재회, 이 하나로도 벅찼다.

“아버지께서 도건을 죽이게 하면 안 돼요!”

천서은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버지.

연인.

어느 한쪽도 죽음으로 인해 이별할지 모를 현실을, 그녀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