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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63화 (63/432)

63화 - 제13장. 무너지다 (2)

강한 충격에 떠밀리듯 붕 떠오른 이혁성이 공중제비를 돌며 몸을 바로 세우고 착지했다. 직접 충격이 아니어서 내상이 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온몸이 찌릿찌릿 울릴 정도였다.

흩날리는 파편들 사이로 일월신마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흑의장포를 어깨로만 대충 걸친 채, 반쯤 터져나간 붕대들이 상체와 얼굴에서 제멋대로 휘날렸다. 서산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 태양에 비쳐 반짝이면서 흩날리는 백발이 그의 몰골과 함께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쾅!

마치 그의 등장을 기다린듯한 굉음이 아래에서 터졌다.

“끄억……!”

천무경의 주먹이 강기공을 뚫고 일월수라의 명치부를 강타하면서 난 굉음이었다. 일월수라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고 입으로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갔다. 쿵! 하면서 장벽으로 날아가 처박히며 다시 한번 피를 토해 냈다.

천무경은 그 모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지붕 위에 선 일월신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를 향한 살기에 둘 사이의 공기가 심상치 않게 흘렀다.

“일월신마.”

“파천무봉 천무경.”

나직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본다. 서로의 존재를 서로에게 확인하였으니 투기를 더욱 노골적으로 뿜어냈다.

툭!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일월신마.

마치 부력에 의해 뜬 사람처럼 천천히 내려왔다.

절대고수들끼리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화경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월신마가 가진 기운을 온전히 읽어 낼 수 없는 것으로도 어째서 노지신이 패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일월신마의 입장에서 천무경을 볼 때도 그 한계를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는 지붕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자마자 일월수라가 나가떨어지는 걸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제압해 버린 것에서 천무경이 그를 기다리면서 일월수라를 갖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 거라는 생각이 일월신마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기에 더욱 재밌는 법이지.’

일월신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크크……. 할 말은 없는가?”

“진도건은 어디 있지?”

천무경의 물음에 근처에 서 있던 이혁성은 조금 전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후원에 있다.”

“살아 있나?”

“아아, 사지는 멀쩡하지.”

“그대는 당연히 막아설 테지?”

“글쎄, 후후!”

뚜둑!

목을 까딱거리는 천무경과 양어깨를 빙글 돌리는 일월신마.

잠깐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 부딪히는 순간.

퍼퍽!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각자 내지른 우권이 가로막은 상대의 좌권에 막힌다.

파팟!

다시금 재차 적수공권의 공수가 빠르게 오갔다. 특별한 변초나 허초 따위는 구사하지 않았다.

지르고 휘두르고 찬다. 그리고 막고 피하고 반격한다.

간단한 듯한 동작의 공방이 엄청 빠르게 교환되며 두 사람 각자에게도 그 타격이 쌓여 갔다. 펑펑 북 치는 소리가 터졌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충격파가 터지며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천무경과 일월신마가 충돌하는 사이, 이혁성은 이 틈에 진도건에게 다가갈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앞을 새롭게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어딜 움직이느냐?”

천무경에게 얻어맞고 벽에 처박혔던 일월수라가 어느새 그의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심한 내상을 입긴 했지만, 여전히 무시 못 할 투기를 뿜어내었다.

일월수라는 이혁성이 금궁수라를 제압한 걸 스치듯이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아마 천무경과 싸우기 전이었으면 좀 더 여유로웠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도 이 악물고 싸워야 할 판.

사대수라 중에서도 일월혼극마공을 일월신마와 가장 가까운 경지까지 올린 일월수라였다. 그가 일월반전수까지 구사하며 달려들면서 이혁성과의 싸움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천무경과 일월신마의 공방이 더욱 거세졌다. 그 충격파 때문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웠던 남궁평과 앙검수라가 무의식적으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펑!

천무경과 일월신마의 우장(右掌)이 충돌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는데 천무경의 표정에 비해 일월신마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쳇!”

일윌신마는 천무경이 명성보다 더 대단한 자라는 걸 깨달았다. 창룡령에서 보여 준 신위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정도라면 막대한 진기를 소모했을 거로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이대로면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

천마신교 일월종의 종주이자 일월교의 교주 일월신마였다.

천하에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누가 있을까? 천마신교의 정점인 태상교주 단원진과 교주 단지운만이 인정하는 강자였고, 같은 종주들은 동등하거나 아래로 보았다. 중원무림에 천하오절의 명성이 높은 것은 알았지만, 거품이 끼어 있다고 생각했다. 조강선의 존재가 충격이긴 했지만, 아예 다른 존재로 여겼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천무경과 이렇게 권장을 주고받은 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천하오절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천무경의 무위만큼은 진짜라는 것을.

일월신마가 좌우 음양을 나누어 본격적으로 진기를 운용했다.

좌우로 갈라져 뿜어져 나오는 음양의 기운들이 권역을 형성하며 천무경을 압박했다.

일월반전수 음양역장.

휙!

빠른 움직임으로 접근함으로써 천무경을 음양기의 권역 안에 삼킨다.

폭발적으로 권역의 밀도를 증가시켜 지배력을 높인다.

어쭙잖은 공격은 통하지 않을 터.

팟!

일월혼극마공 역반공멸뢰(逆反共滅雷).

경계하는 천무경에 접근하며 두 손을 손뼉 치며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어 꽉 움켜쥐었다.

상단전에서 하단전으로, 신이 정을 품고 기를 붙잡으니 그 의지가 음양역장에 반영된다. 양분된 기운이 서로 뒤섞이고 뒤틀리니 그 공간 속의 압력이란 인체를 제멋대로 구겨 버릴 수도 있음이다.

음양역장에 갇히지 않으면 그대로 유형화하고 강기를 만들어 분출시키면 되고 갇히면 으스러뜨리면 된다. 음양의 결합력에 강제적 압력과 뒤틀림 안에서 같은 수준의 고수라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분명 그러할 진데…….

카가가각!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반쯤 웅크린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천무경. 그러나 살짝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두 주먹 사이로 비스듬히 보이는 얼굴과 어렴풋이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을 보았을 때 일월신마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것이 일월교의 마공인가.’

파천신공의 호신강기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강력하게 펼쳐지는데도 짓누르는 압력의 강대함을 천무경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새외무림이 마도대의라는 명분과 천마신교라는 깃발 아래 모여 힘을 합치고 중원무림에 공격을 가하는지, 그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조금은 알 듯했다. 또 노지신의 시체를 통해 보았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지금과 유사한 상황에서 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역시나 복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쿠쿠쿠쿠!

파천신공의 내력은 그 어떤 내공심법이나 무공들보다 막대한 내력을 찰나의 순간에 이동시킨다. 파천신공이 십성 경지에 이르면 임독양맥과 세맥이 크게 열리고 삼단전의 경계가 허물어져 생각과 의지, 진기 가운데 어느 쪽이 선인(先引) 되는지도 모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파천신공 개천(開天).

음양역장의 거대한 압력을 밀어내는 진기의 방출.

음양기의 결합이 뜯기듯 강제로 분리된다.

호신강기가 천무경의 신체를 단단하게 보호하고 분출되는 기운은 그의 주변으로 소용돌이치다 역장의 천장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일월신마는 두 눈을 부릅떴다.

“큿……!”

일월역장 속에서 음양기의 혼돈과 거대 압력은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강제로 해체되는 것은 반대로 서서히 일월신마에게 반작용을 가져온다.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거대 압력 속에서 천무경이 손날을 세웠다. 선명하게 유형화된 수강(手罡)이 역장을 뚫어내기 시작했다.

진기의 분출, 강기공.

언제 일월역장이 힘으로 찢긴 적이 있었던가?

“크하하하핫!”

일월신마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양손에 떨어지며 음양기의 결합력이 풀렸다. 역장을 유지하던 음양기가 제멋대로 날뛰며 휘몰아쳐 퍼졌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음양기의 파도는 한줄기, 한줄기가 모두 검기와 같으니 내외궁을 가르는 장벽이 흔들리며 일부가 무너지고 연환궁도 튀어나온 지붕이 부서지며 창이 흔들린다.

그 속에서도 천무경은 끄떡없었고 그의 수강은 압력의 장벽이 사라지자 불쑥 튀어 나가며 일월신마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슉!

아슬아슬했다. 일월신마가 빠르게 옆으로 숙이며 천무경의 수강은 잔상만을 꿰뚫었다.

일월신마의 쌍수가 천무경이 오른팔을 회수하기 전에 잡아챈다. 그의 쌍수를 타고 흐르는 음양기의 결합이 다시 한번 강력한 압력을 뿜어냈다.

까드득!

일월신마의 공력이 순간 팔꿈치에 집중되었는데도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되려 날아오는 천무경의 좌권에 손을 풀고 뒤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부웅!

거대한 풍압이 면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나는 일월신마를 쫓아 천무경이 몸을 날리며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뒤집었다. 곧바로 번천축(翻天蹴)의 일퇴를 내려침과 동시에 강기의 파도가 함께 쏟아져 내렸다. 일월신마가 즉각 두 손에 강기를 두르며 머리 위를 막았다.

콰쾅!

“큿!”

일월신마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같은 강기공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두 팔이 찌릿찌릿 울렸다.

‘연이은 격전들에 내가 지친 것인가? 저자가 그렇게 쏟아 내었어도 지금 내 상태보다 우위에 있단 말인가?’

창룡령에서의 신위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필시 내공 소모가 막대할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런 힘이 솟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원 무림의 저력이라는 걸 예기에 코웃음을 쳤던 것을 후회할 지경이었다.

“후우……!”

천무경은 바로 쫓지 않고 가볍게 한 번 호흡한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작은 불줄기들이 뭉쳐지며 더 큰 불줄기를 형성하듯 뭉쳐지니, 그 수가 아홉 개다.

일월신마는 천무경의 거대하고 웅혼한 기운에 온몸이 저릿함을 느꼈다. 호흡 한두 번의 짧은 시간에 저만큼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일월신마도 음양기를 할 수 있는 한 양손에 집중하였다.

일월혼극마공 일월붕천굉.

쌍수 장심에 가장 빠르게 음양기를 집중시켜 공격이든 방어든 전신을 가로막는 벽을 치기엔 이만한 절초가 없었다.

퉁!

땅을 울리는 진각음과 충격파가 퍼졌으나 그 자리에 이미 천무경은 없다.

마치 시위에서 손을 떼어 떠난 화살처럼 눈 깜짝할 새 거리를 좁혀 일월신마가 원구(圓丘)로 모은 공력의 벽을 향해 붕권(崩拳)을 지른다.

파천신공 구룡포화(九龍砲火).

쩌정!

커다랗고 두꺼운 주먹의 묵직한 일격.

일월붕천굉 원구의 기벽이 일그러지고 비틀어 냄에 갈라진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던지는 듯한 아홉 줄기의 포화가 두들겼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잿빛 기운이 충돌하며 그 파장의 여파가 공기를 쩌렁쩌렁 때렸다.

콰콰콰콰-!

이미 모든 싸움은 멈춰 있었다.

근처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던 남궁평과 앙검수라뿐만 아니라 내궁에 있던 모든 자가 그랬고 심지어 외궁에서 싸우던 자들마저 멈췄다. 피와 땀, 흥분의 열기로 지배되어 칼부림이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공간이 차갑게 식어갔다.

공기의 울부짖음이 멈추고 휘몰아치던 후폭풍이 가라앉을 때 즈음, 천서은은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일월신마가 나타나 보여 준 무공은 놀랄 만했지만, 부친의 무공이 이 정도일 줄은 그녀도 몰랐다. 어떤 공격에도 굳건하고 표정에 흔들림도 없이 몰아붙이는 모습에 어찌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있으랴?

그녀에게 문제는 진도건에 있었다. 일월신마는 살아 있다고 했는데 이만큼 싸움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어딘가 포박 등에 의해 제압당해있거나 목숨이 위험한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상대하던 천마신교 교도는 분명 사대수라들과 같이 있었으니 정예라고 예상했는데 맞아 들었다.

도강을 두르고 칼을 휘두르는 기세가 강력했다.

아직 그 수준으로 가기에 반보 부족했던 천서은이었기에 무극신검과 파천신공으로 다져진 강력한 내력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한철천잠보의는 그치기만 해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격들에 버틸 수 있는 보호력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빠르게 제압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기세는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적도 매우 노련하고 임기응변에 능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다양한 무공들을 조합해서 변화무쌍하게 가져가도 적은 수세에 몰렸다가도 다시 반격하면서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천무경과 일월신마가 아주 강하게 충돌했다.

파천신공의 절초 구룡포화와 일월혼극마공의 절초 일월붕천굉.

두 충돌로 발생한 강기의 파편들과 후폭풍은 그녀와 교도가 아슬아슬한 간극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중에 발생했다. 그리고 두 발로써 안정적으로 지면을 딛고 도약하려는 천서은과 달리 이미 공중에 떠올라 일격을 퍼부으려던 교도는 그 영향으로 중심이 깨지며 휘청거렸다.

‘지금!’

천서은의 눈에 확신이 가득 찼다.

팟!

후폭풍에 멈칫했던 것도 잠시 그녀는 정면으로 교도를 향해 돌진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닥쳐오는 천서은을 향해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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