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62화 (62/432)

62화 - 제13장. 무너지다 (1)

강호무림에서 무인들이 보여 주는 무용(武勇)은 일반 백성들의 시선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권력(權力)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절정고수들이 보여 주는 무용은 소설이나 야사에서나 들어볼 법한 수준의 또 다른 인종(人種)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를테면 아예 다른 핏줄을 가진 천인(天人)이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러했다.

무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실력과 경지가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절정고수라 표현하지만, 그 한계를 깨부숴 상식적인 기준에서의 상상 이상의 무용을 보여 주는 자는 흔히 절대고수라 평한다.

그것은 천외천의 느낌이었고, 실제로 그렇진 않더라도 모든 세상 이치에 통달한 선인(仙人), 선승(禪僧) 같은 존재들이 그러했다. 실존했던 인물이라면 장삼봉과 달마대사가 그러했겠지만, 그들은 이미 오랜 역사 속 인물들이었고 실제 신위(神威)가 어땠는지는 설화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들이 보여 주는 신위가 어떤 것이 있을까?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고 산을 통째로 옮기는 건 말 그대로 상상 속의 일이겠지만, 그들이 펼치는 그 무엇이든 상상의 그것과 닿아 있을 것이다.

무공의 경지가 오르고 절정고수라 불리는 존재들 이상의 위치에 서면 아주 깊고 풍부한 내공을 바탕으로 많은 조화를 부릴 수 있다.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중단전의 정(精)과 결합하여 더욱 강철의 칼날만큼 날카로운 예기를 구현한다. 이 기와 정의 결합이 견고해지면 강철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강기를 구현하기도 하며 성질이 다름을 이용한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공간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지고 거대해지니 한 사람이 열 명, 백 명 그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고 그 끝에 다다르면 만인지적(萬人之敵)이란 의미가 더는 칭찬을 위한 수사가 아닌 실제 현실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절대고수들은 홀로 다수를 싸울 때보다 다수 대다수로 여러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싸우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므로 제 역량을 모두 끄집어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즉, 가까운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니 광역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기공을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직접 공수를 다퉈야 하는데 이 또한 사람의 육신이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어서 아무리 내력으로 근력, 반응, 속도 등의 강화한다 한들 육신이 버티지 못하는 수준은 불가능했다.

진정으로 강한 무인이란 이런 내외공이 고루 발달하여 조화를 이루고 두 방향 모두 한계를 두드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 것이다.

‘실수했다…….’

일월신마는 천무경 등이 등장했을 때, 그는 싸움 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6인 모두 강기를 구사할 정도의 고수인 데다가 수적으로도 유리하여 높은 곳에 있는 금궁수라가 적을 겨누면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적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강했다.

남궁평과 앙검수라와의 대결만 호각일 뿐, 범굉대사가 두 명을 붙잡고 상대하고 있었으며 천서은도 한 명을 상대로 유리하게 싸우고 있었다. 일월수라로서 미치겠는 부분은 천무경이 자신과 교도 한 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일월수라가 양손에 음양기로 강기를 형성하며 강력한 폭발을 동반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으나 천무경은 좌수로 여유롭게 받아 내면서 협공을 하던 다른 교도를 오른손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검으로 천무경의 주먹을 받아 내는데, 충돌할 때마다 벼락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교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이런 것은 일월수라가 예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금궁수라의 화살이었지만, 그는 오로지 이혁성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혁성은 쾌검만큼 경공술이 매우 뛰어났다.

천무경이 곧바로 우세를 점하자 금궁수라가 두 발의 화살을 날렸다. 당연히 애초에 통하지 않은 공격이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이혁성에게 틈을 제공하게 되었다.

이기어검술.

미완성이었으나 양자성을 쫓았을 때와 달리 지금 금궁수라와의 거리는 상대적으로 가까웠다. 거기에 더해 천무경의 조언으로 깨닫는 부분이 있어서 그는 금궁수라에게 검을 던지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다.

퓨웅!

화살을 시위에 걸고 이번엔 남궁평을 향해 겨누어 조준하는 순간, 느닷없는 파공성과 살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쾅!

이혁성의 검이 금궁수라의 어깨를 스친 채 천장을 뚫었다.

“큭……!”

금궁수라가 신음을 삼키며 어깨를 살피니 근육까지 꽤 깊게 베어지며 피가 흘러 금방 팔을 적시고 있었다. 적은 금방 찾을 수 있었는데, 이혁성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섬뜩함을 느꼈다.

이혁성은 검지와 중지를 눈앞에 두고 세운 채 금궁수라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딱 보아도 무언가 집중하는 모습이었으니 금궁수라는 재차 옆으로 몸을 날려야만 했다.

콰직!

천장을 뚫고 튀어나온 이혁성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금궁수라를 다시 한번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엔 허벅지에 닿았는데 깊이가 얕았고 검은 다시 이혁성의 손에 돌아갔다.

‘이기어검이라고……?’

아주 높은 수준의 이기어검 구사는 아니었지만, 저렇게 쏘아 보내고 다시 회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방금의 출수는 정확도까지 분명했으니 보통 실력이 아님이 분명했다.

“칫!”

금궁수라가 방에서 나와 지붕의 기와를 타고 빠르게 옆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등에서 화살을 뽑아 이혁성을 향해서 시위에 걸었다.

퓽!

그보다 먼저 이혁성의 이기어검이 날아들었다. 금궁수라가 급히 멈추고 위로 뛰어 피했다. 동시에 화살을 다시 겨누는데 이기어검이 발밑을 스쳐 지나가자마자 바로 방향을 틀어 날아들었다.

“큭!”

금궁수라는 급히 측면으로 날아드는 이기어검을 낙양궁 활대로 휘둘러 쳐 냈다.

캉!

튕겨 나간 이혁성의 검이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그러나 금방 바로 서더니 그 검 끝을 다시 금궁수라를 향해 겨누고 날아들었다.

‘몇 번을……!’

캉! 캉!

두 차례 더 공격을 막아 낸 금궁수라는 이혁성의 이기어검이 생각보다 변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방어 동작에 맞춰 궤적을 자유자재로 바꾸었다면 틀림없이 몸 어딘가 꿰뚫렸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직선적인 움직임밖에 없어서 막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 밖에 안되면서……!’

캉!

다시 한번 퉁겨 내고는 활대를 휘두르는 회전력으로 손에 들고 있던 세 발의 화살 중 두 발을 이혁성을 향해 던졌다. 낙양궁으로 쏘는 화살보다는 아니었지만, 강기를 구사하는 고수가 손으로 투척하는 화살은 충분히 위협적일 정도로 빨랐다.

금궁수라의 반격에 이혁성도 집중을 이어가지 못하고 황급히 몸을 날려 피해냈다. 집중이 깨지자 그의 검도 공중에서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금궁수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에 이미 들린 한발을 시위에 걸고 있었고 곧바로 이혁성을 노리고 쏘아 냈다. 순간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강기를 싣는 과정은 생략했지만, 낙양궁의 무거운 탄성으로 쏘아 내는 철시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패앵!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5층 전각 지붕과 지면 사이의 거리였기 때문에 쉽게 반응하기도 어려운 거리였다.

카각!

금궁수라의 두 눈이 놀라 커졌다.

그의 수를 읽기라도 한 것인가? 그가 쏜 화살이 놀랍게도 어느새 이혁성의 왼손에 들린 검집 속으로 거칠게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이혁성의 놀라운 수법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화살이 검집 속으로 반쯤 들어가는 순간 쥐고 있던 왼손을 푸니 화살의 기세를 받아 검집과 함께 뒤로 날아가 버렸다. 왼손을 놓으면서 동시에 도약하니 이혁성의 몸은 어떤 저항도 걸리는 것 없이 빠르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공격이 아쉽게 되었지만 금궁수라는 이미 다음 화살을 준비하고 있었고 뛰어오른 이혁성의 두 손은 빈손이었다.

‘빈손으로 뭘……. 헉!’

절대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궁수라는 잠깐 착각하고 말았다. 맥없이 5층 높이에서 땅으로 떨어지던 검이 어느새 추락을 멈추고 이혁성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뛰어오른 이혁성의 자세는 이미 검을 휘두르기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자세였다.

‘내가 더 빠르다!’

이미 화살은 시위에 걸려 팽팽하게 당기고 있어서 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천뢰삼검식 일섬뢰, 이기어검.

이혁성의 쾌검은 천무방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진도건이나 천무경, 삼장로 수준에 이르러야 대응할 수 있었고, 남궁평이나 천준 같은 다른 당주들도 무공의 다른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이지 이혁성의 순수한 검속을 제대로 따라붙진 못했다.

천뢰삼검식의 가장 순수한 위력을 제대로 이은 사람이 바로 이혁성이었으며, 이제 그는 이기어검이라는 삼단전의 신기정(神氣精)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정수까지 손에 쥐려 하고 있었다.

캉!

금궁수라의 눈엔 그저 빛이 번쩍였을 뿐이었고, 시위를 놓았을 땐 낙양궁을 쥔 왼손의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가 활대가 방향을 잃은 뒤였다.

핑!

화살은 시위를 떠났지만, 이미 목표를 잃고 아래의 이혁성이 아닌 전면을 향해 날아갔다.

손가락을 잃은 왼손을 보며, 놓쳐 버린 낙양궁에까지 신경을 쓰지도 못하고 경악하는 금궁수라.

타탓!

비천도경(飛天道輕)의 경공술로 빠르게 지붕을 차례로 박차고 뛰어오르는 이혁성의 접근마저 허용하고 말았다.

텁!

이혁성이 왼손으로 어느새 금궁수라의 멀쩡한 오른팔을 봉쇄하고 오른손으로 목줄을 움켜쥐었다.

“컥!”

금궁수라가 신음을 토해 내며 손가락을 잃고 피 흘리는 왼손을 번쩍 들었다. 강기가 왼손에 서리니 그것으로 이혁성을 떼어 내려 할 셈이었지만, 이혁성에겐 제3의 손이 있었다.

푸욱!

“끄윽……!”

금궁수라의 손가락을 자르고 낙양궁의 활대에 퉁겨져 올라가 팽그르르 회전하던 그의 검이 어느새 방향을 틀어 금궁수라의 쇄골을 뚫고 박혔다. 금궁수라의 왼손에 서리던 강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미 생명의 끈이 끊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으로 울컥울컥 피를 쏟아 내는 금궁수라의 얼굴을 차가운 표정으로 쳐다본 이혁성은 검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츄악!

“끄어어…….”

검을 뽑으면서 동시에 상체를 갈라 버리니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금궁수라는 마지막 신음과 함께 지붕에서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쿵!

그 소리는 모두에게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

꽤 짧은 시간에 금궁수라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별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원거리에서의 지원이 끊어져 버렸다. 천마신교 교도들이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계획은 그의 지원이 필수였는데 이게 불가역적으로 멈춰 버리자 모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미 천무경의 손에 한 사람의 머리가 터져 죽으며 일월수라는 단숨에 열세에 빠졌고, 남궁평은 여전히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범굉대사가 그동안 밀리는 형세였지만, 금궁수라의 위협이 사라지자 안심이 된 건지 기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천서은은 대적하는 교도와 팽팽하게 검을 섞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검강을 다룰 수준은 아니었지만, 무극신검은 영력(靈力)을 담은 무당파의 신물로써 그녀의 검기를 잘 보조하여 크게 밀리지 않도록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천무방의 상승무공을 대부분 섭렵한 그녀의 다양한 변화를 담은 검초는 오히려 때때로 적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혁성은 5층 지붕 위에 섬으로써 전황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외궁에서 벌이는 싸움은 치열했으며 교도들뿐만 아니라 매화검수들이나 천혼당에서도 안타깝게 사상자가 나온 듯했다. 쌍륜을 잃어버린 금강수라를 상대로 묵허자와 석대호가 여전히 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

이혁성은 문득 뒤편의 좀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시선을 돌렸다.

전각의 상층부가 시야를 가렸지만, 그 너머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지붕을 따라 이동하자 상궁의 후원과 옥녀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대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옥녀지를 두른 검은 안개의 장막이었다. 멀리서 보고 있어도 그 형체가 매우 괴이한데 짙게 낀 안개가 옥녀지를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혁성은 내공을 끌어올려 시력을 돋우어 그 내부를 투시하려 했다. 꺼림칙한 검은 안개의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두 사람의 인영(人影)이었다.

‘천무방주에게 드리는 선물로써 일월신마님께서 직접 준비 중이시니…….’

그때 문득 일월수라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일월신마, 진도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저 심상치 않은 공간에서 일월신마가 진도건에게 어떤 장난질을 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꽤 짙게 끼었던 옥녀지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그의 생각처럼 그 속에서 일월신마과 진도건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월신마는 옥녀지의 중앙부의 디딤돌 위에 서서 진도건의 두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진도건은 머리와 팔다리 모두 추욱 늘어진 채 의식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안개가 모두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가 되자 일월신마의 손에서 진도건의 신체가 밀려 나갔다.

첨벙!

작게 들려오는 물소리와 함께 진도건은 그대로 옥녀지에 빠져 버렸다.

일월신마는 잠시 진도건이 빠진 자리를 내려다보는 듯하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붕대가 반쯤 흘러내린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헉!’

이혁성은 제법 거리가 되었음에도 일월신마의 시선이 그의 눈으로 확 꽂히는 걸 느끼자 가슴이 철렁거렸다. 잠깐 보았음에도 일월신마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는데, 그 순간 그는 다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콰쾅!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 존재감을 인지하자마자 일월신마가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단숨에 후원 장벽을 뛰어넘고 5층까지 날아오른 것이었다. 그렇게 날아들면서 일월반전수의 장력을 방출하니 5층 지붕 한쪽을 박살 내며 부서진 기와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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