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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61화 (61/432)

61화 - 제12장. 화산 (5)

천무경은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같이 유형화된 기운이 맴돌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두 당주와 천혼당 무사들, 소림사 승려들, 화산파의 검수들, 개방의 거지와 천서은까지 소리 없는 경탄 섞인 시선으로 천무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름통의 폭발과 발화로 거대한 불길이 창룡령을 집어삼키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류가 모두의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그 강렬한 열기까지도 기류에 떠밀려 화상을 입을 수준을 넘지도 않았다.

거대한 기류를 순간적으로 펼쳐 내고 그것으로 바람의 통로를 만든다.

불길을 유도하고 영역을 장악하여 차츰 자신이 만든 두 손의 공간 안으로 빨아들인다.

천무경이 부린 조화로 누구도 불길에 머리카락 한 올 그슬림도 없이 무사했으며 소림사와 화산파 모두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경탄할 일인데 그 불길을 이기어검과 결합하여 적에게 일격을 날린 것이다.

백여 장이나 떨어진 곳까지 날린 검을 이기어검으로 통제하는 것은 단순히 가진 내공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중단전, 상단전까지 연결하여 정신력을 크게 소모하는 일이었다.

축기는 하단전에 이뤄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것의 운용과 발현은 상단전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상단전은 신(神)이 머문다고 도가에서 표현하지만, 철학과 추상에서 멀어져 객관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생각이 열려있고 사고가 자유로운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감 중 어느 하나 목표를 특정할 정도로 인식한다면 인지 영역은 거기에까지 확장하여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백여 장의 거리는 사람이 작은 점으로 보이는 거리임에도 정확하게 조준하고 파검술(破劍術)까지 시전하는 것은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 보아도 이것이 진실로 가능한 수준인지 두 눈으로 보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파천무봉 천무경.

그가 이루었다던 화경의 경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소림사에서도 달마조사(達磨祖師) 이래로 화경에 이르렀다 하는 선승들에 대한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무위였다.

‘경이롭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범굉대사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정사가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천무경이 보여 준 무위는 가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것이니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 가장 뛰어난 고수 다섯 명을 거론하지만, 그 가운데 제대로 화경에 이르렀다 평가받는 사람은 세 사람에 불과했다. 그중 단연 수좌로 거론되는 천무경이 이 정도인데 강정학과 금태하의 무위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범굉이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자는 주백자였다. 현 정파의 구원자인 그는 지금 천무경처럼 눈으로 무언갈 보여 주지 않았지만, 그의 지도와 조언은 모두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줄 정도였기에 아주 높게 보고 있었다.

반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니 천무경과 비교하여 누가 우위에 있는지 절로 궁금해졌는데 아무래도 주백자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격지심에 대리만족……. 나의 수행이 아직 멀었구나.’

욕심에 마음이 뜬구름처럼 떠다니니 범굉은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묵허자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천무경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무공이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늠조차 해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격차가 심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란 말인가……?’

시선을 돌려 화산검수들을 돌아보면 그들의 표정도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경계심에 은연중 적개심마저 드러나 있었는데 조금 전의 일로 이젠 모두가 천무경을 경외하는 표정이었다. 오죽하면 자신도 오랜 은원으로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이 크게 흔들렸는데 특히 영은성 같은 젊은 제자들이 볼 땐 어떠할까?

더군다나 정사, 우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불길에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그 무공의 신위와 배포가 가히 하늘 아래 이만한 대장부가 없을 정도였으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후우……!”

깊이 토해 내는 숨과 함께 천무경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몸을 타고 피어오르던 아지랑이도 공기 중에 흩어졌다.

“모두 준비들은 되었나?”

“아미타불. 천 대협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범굉대사가 누구보다 앞서서 불호를 외며 머리를 숙였다.

천무경 대협.

철천지원수여도 모자를 현 정파 사파의 관계에서 소림사의 대나한이 천무경을 대협이라 불렀음에 천서은도, 남궁평도, 이혁성과 그 이하 천혼당 모두 놀란 눈으로 범굉대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같은 사대금강을 비롯한 화산파와 석대호도 마찬가지였다.

천무경은 잠시 범굉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낯간지럽게. ……갑시다.”

천무경의 필두로 40여 명의 무리가 빠르게 창룡령을 돌파했다.

곧장 도달한 금쇄문을 지날 무렵, 동쪽 조양봉에서부터 내려오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화산파 은화당의 부당수 구소자와 석대호의 사제인 종요가 10명의 매화검수들이었다. 이미 천무방의 움직임에 대해 종요를 통하여 계획을 들은 바 있던 구소자가 천무경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천무방주를 돕겠소이다.”

“환영하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구소자 등을 훑어보았다. 조양봉에서 약간의 전투를 치른 모양새였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구소자가 입을 열었다.

“금쇄문에서 귀측으로 화살을 쏘던 자들이었소이다. 아마 조양봉 쪽에 숨었다가 뒤를 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오히려 숨어서 이동하던 우리에게 걸려서 기습하여 정리했소이다.”

구소자는 즉각 대답하면서도 천무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멀리서 그의 무공을 보았기 때문에 한 번 감탄하고 이렇게 만나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 화산파 제자들이 불길 속에서 모두 멀쩡히 살아 있으니 두 번 감탄했다.

천무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좌중을 한 번 쓱 돌아보았다. 그리곤 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 목표는 연화봉 상궁, 옛 화산파의 본궁이었다.

되찾고자 하는 사람이, 되찾고자 하는 장소가 모두 연화봉 정상에 있었기에 어느새 정사가 단결하여 무서운 속도로 연화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몇 개의 도관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측 중간에는 파천염룡검의 일격으로 아직 불길이 남아 있는 곳도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날린 불씨가 위에까지 흩날리니 새삼 직전의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재현되는 듯했다.

마침내 도착한 상궁의 정문은 마치 그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마당과 함께 60여 명에 가까운 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외궁을 구분하는 장벽과 관문(館門)이 적들 등 뒤를 받치고 있었으며 그 너머로 화산파가 본궁으로 사용했던 연화궁(蓮華宮)의 거대한 전각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적 무리 가운데서 한 거한(巨漢)이 앞으로 나섰다.

“난 천마신교 일월종의 금강수라다. 천무방 외에 예상치 못한 놈들이 섞여 있는데 쳐 죽이기 전에 정체나 들어보자.”

“후후! 건방진 놈이군.”

천무경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 사이 범굉대사와 묵허자가 천무경 옆으로 나섰다.

“소림의 범굉대사올시다.”

“화산파의 묵허자다.”

그들의 복색을 보고 설마 했던 금강수라가 그들의 대답에 눈빛을 빛냈다.

“죽자고 서로 물어뜯던 정사가 신교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다니. 이거…… 참으로 애틋하군.”

“진도건은 어디 있느냐?”

“일월신마와 함께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나?”

“네까짓게 논할 사안이 아니다.”

“크크크! 과연, 그럼 넘어 보아라.”

꽝!

금강수라가 철갑을 두른 두 주먹을 명치 앞에 두고 맞부딪치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투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들을 위협하였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교도들이 갑자기 손에 든 무언가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것은 일월교 비전의 각성제 명경단(明鏡丹)이었다.

대마의 유변이 명천단, 명현단이라는 영약을 개발하는데, 일월교의 도움이 있었을 정도로 의술과 약제술도 발달한 교단이었다.

심장의 박동수를 올리고 신경계를 각성시키는 명경단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반응속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비약으로 마약성이 있어 잦은 사용은 금해 왔지만, 연화봉 만장절애(萬丈絶崖)를 배수진으로 두고 싸우는 이 자리만큼 복용해야 할 이유가 또 어디에 있을까?

명경단의 반응은 빠르다.

피부에 붉은 기운이 돌고 두 눈도 살짝 충혈 기가 돈다. 집중력이 올라간 눈동자는 또렷하며 호흡은 조금 가빠진다. 일월마공의 내공이 증폭되면서 느껴지는 투기가 결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적들에게 천마의 단죄를 선사하라!”

우오오오오!

금강수라의 벼락같은 외침에 교도들의 함성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묵허자가 검을 뽑아 적들을 향해 겨누었다.

“신성한 화산을 정화한다! 참살하라!”

“적들을 죽여라!”

묵허자와 남궁평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달려오는 적들을 맞으러 매화검수들과 천혼당이 일제히 돌진했다. 사대금강도 동시에 뒤따르니 곧 정사가 함께 어우러져 마교도들과 충돌하였다. 석대호와 묵허자는 직접 금강수라와 맞붙었는데 둘을 상대해도 금강수라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사이 범굉대사가 천무경을 보며 말했다.

“당주들을 이끌고 내궁으로 가십시오. 사대수라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입니다.”

천무경은 좌우를 보며 아직 참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다.

범굉과 남궁평, 이혁성 그리고 천서은이었다.

천서은에게 시선이 닿자 천무경이 입을 열었다.

“넌 여기서 싸워라.”

“저도 같이 갈 거예요.”

“내궁은 더 위험할 것이다. 일월신마와의 싸움에 휘말리면 못 버틸 게다.”

“반대로 아버지께서 그자를 붙잡고 있으면 제가 구할 수도 있죠.”

“아직 상황도 모르는데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아라.”

스륵.

천서은이 자신의 장포 옷깃을 살짝 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 입은 한철천잠보의의 은빛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보의도 입고 손에는 신검도 있죠. 비무제 우승까지 했는데 절 너무 보호하시면 곤란해요.”

“서은이의 실력이 당주를 맡아도 될 정도이니 허락하시지요.”

남궁평이 미소를 지으며 의견을 내었다. 남은 사람들 가운데 천서은의 무공이 가장 낮았지만, 역설적으로 천혼당 수준을 이미 넘어섰으니 독립적인 전력으로 봐도 무방했다.

잠시 고심하던 천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서은이 기뻐하는 표정을 짓자 천무경이 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지그시 눌러 흥분을 가라앉혔다.

“절대 흥분하지 마라. 각성제까지 사용한다면 진도건에게도 무슨 짓을 해 놨을지도 모르니 되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느니라.”

“알겠어요.”

천무경은 시선을 돌려 전황을 다시 살펴보았다.

양측의 격돌은 매우 치열하고 또 팽팽했다. 천혼당의 실력 수준이 높아 조 단위로 움직이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였다면 매화검수들은 개개인의 실력은 조금 낮았지만, 정파 특유의 검진(劍陳)을 형성하며 집단전을 끌어갔다.

특히 화산파의 매화검진은 양의(兩儀)에서 육합(六合)까지 인원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오묘함을 품고 있어서 난전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데 최적이었다.

사대금강도 개인의 뛰어난 무위로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잘 제어하고 있었다.

반대로 금강수라를 상대하는 석대호와 묵허자는 수적 우위에 있음에도 밀리고 있었다. 특히 금강수라는 철갑의 호구와 작은 쌍륜을 사용하는데 적수공권인 석대호와 묵허자의 날카로운 검술을 상대하는데 여러 가지로 상성 상 우위에 있어 보였다.

“내궁에 가기 전 저놈의 견고함을 조금 부러뜨려야겠다. 서은아, 너의 검을 빌려다오.”

천서은이 검을 뽑아 천무경의 손에 건넸다.

“그것은……!”

그걸 보고 놀란 범굉을 천무경이 쓱 돌아보았다.

“맞소. 무당파의 무극신검이오.”

“아미타불.”

범굉이 불호를 외우며 눈을 감았다. 무당파와 함께 정파를 지탱했던 소림사로써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당면한 과제들을 앞에 두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따져 물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무경도 범굉의 반응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하늘로 쑥 날아올랐다가 치열하게 싸우던 세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쿵!

하늘에 드리웠던 그림자에 금강수라와 석대호, 묵허자가 때맞춰 반응하며 서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천무경의 모습을 확인하자 석대호와 묵허자는 반색을, 금강수라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네놈 혼쭐은 내주고 가련다.”

“어디 실력 좀 구…….”

‘구경이나 해 보자’라는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도 못했다.

천무경의 손에 들린 무극신검이 어느새 영롱한 청옥(靑玉) 같은 선명한 검강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금강수라는 그것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오싹함을 느꼈다. 그 검강이 호를 그리며 그를 향해 벼락같이 떨어졌다.

한창 싸우던 중인 데다가 천무경이 나타나자마자 이미 쌍륜에 내공을 주입해 놓았던 금강수라도 급히 강기를 시전하며 검강을 막아내었다.

꽈꽝!

검강과 륜강(輪罡)의 충돌. 그러나 같은 강기여도 질적으로 달랐으며 천무경은 검강에 그가 가진 무학의 정수를 담아내니 바로 충돌의 충격파를 상대의 강기를 뚫고 무기에 전달시킨 것이었다.

콰지직!

“큿……!”

엄청난 충격의 진동이 쌍륜과 철갑을 지나 금강수라의 두 팔에까지 전달된다. 그 충격이 상당했는데 쌍륜에 심한 균열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뒤로 훌쩍 물러났다.

천무경은 금강수라를 잡아내고 싶었지만, 일월신마의 실력이 아직 미지수인 데다가 남은 세 명의 수라들과 진도건의 상황이 어떤지 몰랐기 때문에 더 힘을 쓸 수는 없었다. 이미 파천염룡검으로 기력이 많이 소진되었는데 일월신마라는 대적을 두고 더 낭비할 수는 없었다. 물론 여전히 단전 안의 진기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었다.

천무경이 내궁 관문 위쪽으로 풀쩍 뛰어오르자 묵허자와 석대호가 다시 득달같이 금강수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쌍륜은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바스러지자 결국 철갑을 두른 쌍수로 상대하였는데 거리의 이점과 천무경에게 받은 충격으로 형세가 달라져 버렸다.

남궁평과 이혁성, 천서은, 범굉대사도 천무경을 따라 난전을 치르고 있는 자들을 넘어 장벽을 넘어섰다. 그리고 내궁엔 여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천무경의 감각에 연화궁 전각 상층에 기척 하나를 더 잡아내었다.

쐐액!

전각 상층 창문에서 화살이 천서은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캉!

그것을 무극신검으로 쳐 낸 천무경은 다시 천서은에게 돌려주며 앞을 가로막았다.

내궁에 여섯 명 가운데서도 가장 앞에 선 두 사람은 바로 일월수라와 앙검수라였다.

일월수라가 천무경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소인은 일월수라, 이쪽은 앙검수라라고 하외다. 그리고 저쪽은 금궁수라. 천무방주의 창룡령에서 보여 준 무위는 잘 구경하였소. 그래, 일월신마님과 싸울 힘은 남아 있소이까?”

“진도건은 어디에 있지?”

“천무방의 평범한 소속 무사를 구하러 오다니 애정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닌가 보오.”

“후원에 있나 보군.”

천무경은 이미 기감을 확장하여 연화궁 너머 후원에 두 사람의 기척을 잡아내고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대단하군.”

그 말과 동시에 일월수라와 앙검수라가 일제히 살기를 뿜어내었다. 뒤따라 다른 네 명도 살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그들의 기세가 외궁의 교도들보다 훨씬 강력하게 느껴졌다. 아마 사대수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따르는 고수들인 것 같았다.

“진도건이란 놈은 준비가 되는 대로 내어 줄 생각이오.”

영문 모를 말에 천무경의 눈살이 찌푸리는 때에 일월수라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명성이 자자한 천무방주에게 드리는 선물로써 일월신마님께서 직접 준비 중이시니 그동안 우리와 어울리며 놀아보는 게 어떻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천무경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창룡령에서의 일을 보았다면 이리 거들먹거리지 못할 텐데 혹여 기력을 크게 소진했다고 여기는 것인지 적들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까짓거 놀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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